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생물안전 4등급(BL4) 실험실은 충청북도 오송에 위치한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생물안전 4등급(BL4) 실험실은 충청북도 오송에 위치한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에 있습니다. [1]

국내 생물안전 4등급(BL4) 실험실 개요
  • 위치: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오송생명2로 187,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 소속: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 특징: 국내 유일의 최고 수준(4등급) 생물안전 밀폐 실험시설 [1]
생물안전 4등급(BL4) 주요 특징
  • 대상 병원체: 에볼라바이러스, 라싸바이러스, 마버그바이러스 등 치명적이고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고위험 병원체
  • 안전 관리: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음압 환경 유지, 전용 양압복(AIR-SU1) 착용, 2중 HEPA 필터 및 폐수·폐기물 고압멸균 처리 등 최고 수준의 격리 기술 적용

삼성전자 20년간 법인세 내역2023년 적자로 법인세 환급, 삼성전자 주식은 2024년에 샀어야

 

삼성전자 최근 20년 법인세비용 추이 (단위: 조 원)

연도법인세비용 (조 원)주요 이슈 및 특이사항
20061.5글로벌 IT 경기 호조
20071.2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
20080.9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20091.2금융위기 이후 빠른 회복
20103.1스마트폰(갤럭시 S) 출시 및 반도체 호황
20113.4갤럭시 S2/스마트폰 매출 증대
20126.1스마트폰 글로벌 1위 달성
20137.9갤럭시 S4 출시, 최대 실적 기록
20144.5스마트폰 경쟁 심화로 실적 일시둔화
20156.9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실적 개선
20168.0갤럭시 노트7 중단 악재에도 반도체 견인
201714.0메모리 슈퍼사이클 초입
201816.8역대 최대 실적 (메모리 반도체 호황 극대화)
20198.7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실적 감소
20209.9코로나19 언택트 특수 (비대면 수요 폭발)
202113.4IT/반도체/가전 전 부문 호조
202211.7하반기 메모리 다운턴 시작
2023-4.6반도체 대규모 적자로 인한 법인세 환급(Negative)
20243.2AI 반도체/HBM 반등 시작
20256.8AI 메모리 수요 본격화 및 실적 정상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특수시험검정동은 충북 청주시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내에 위치한 신종감염병 및 신기술 백신 품질관리 검정시설 오송역이 쓸데없이 여러 철로가 갈라지는 중요한 지점이 되어 병원체 확산속도 확산에 기여?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 657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특수시험검정동은 충북 청주시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내에 위치한 신종감염병 및 신기술 백신 품질관리 검정시설입니다. [1, 2]

주요 특징
  • 규모: 지상 3층, 연면적 2,971.31㎡ [1]
  • 주요 시설:
    • 생물안전3등급(BL3) 실험실
    • 신종감염병 백신 실험실
    • 차세대 및 혼합 백신 검정 시설 [1, 2]
  • 역할: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유행에 대응하여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국가출하승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건립(2023년 12월 준공)되었습니다
  • 식약처안에 전시안 눈깔모양 all seeing eye도 있음

개신교 장준하 가톨릭으로 개종 후 산에서 떨어진것으로 위장 사살, 노무현 전 대통령때 수법하고 왜 이렇게 비슷하냐? 또 김재규가 군사쿠데타 시도한 흔적도 엿보임, 이미 박전대통령 시해음모가 상당

 1975년 4월 민주통일당을 탈당하였다.[34] 1975년 8월 17일을 며칠 앞두고 30년 넘게 보관해 온 중경(충칭)임시정부의 태극기를 대학 박물관에 기증하는가 하면, 아내와 갑자기 천주교식 혼례의식을 치르고, 백범 묘소와 망우리에 있는 부모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뭔가 중대한 일을 앞둔 사람처럼 신변 정리를 서둘렀다는 얘기다.[81]

장준하는 1975년 들어 평소 잘 만나지 않던 김대중과 만나고, 함석헌·홍남순과 접촉하며 8월 15일, 광복절 30주년을 맞아 모종의 거사를 계획했다. 마침 김영삼이 동남아 여행중이라 그가 귀국한 뒤인 8월 20일으로 계획은 연기되었다.[82] 장준하의 아들 장호권은 이 당시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일’이 계획되고 있었으며, 장준하가 “박정희를 깨는 것은 민중의 힘으로 역부족이니 게릴라전으로라도 박을 제거해야 한다. 군부 쪽에도 상당한 연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한다.[83][84] 또한 1976년 4월에 자신이 테러를 당했을 때 주한 미 대사 하비브가 찾아와 “당신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일이 이뤄질 터이니 몸조심하고 기다려라”고 했다고 한다.[85]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장준하는 재야와 야당 전체를 아우르고 군부 일부가 동조하는 어떤 거사를 계획중이었으며, 여러가지 증언으로 미루어 8월 20일경으로 예정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86] 또한 장준하는 국회의원 재직 시절 사적인 인연이 있던 김재규와 만났는데,[주 4] 당시 2군단장이던 김재규는 장준하의 국방에서 의정활동과 청렴상에 감동하여 장준하의 죽음 이후 박선호를 시켜 가족들을 돌봐주었다.[87][88] 1976년 말, 김재규는 장호권을 남산으로 불러 “부친의 사망사건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10·26 3개월 전에는 미국에 나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미국행을 권유했다.[83][89] 2005년 1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호권은 장준하의 계획에 포함되었던 군내 동조 세력이 김재규 등이며, 10·26도 장준하의 영향을 입은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하였다.[90]

최후

본문을 가져온 내용이 내용은 장준하 의문사 사건 문서의 본문을 가져와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박정희정권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던 1975년 8월 17일, 장준하는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거사와 관련해 당시 비밀리에 김대중 등 다른 야당 인사들과의 연락을 돕고 있던 자신의 측근 임춘원을 집으로 초대해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임춘원은 1960년대 서울 종로에서 상아탑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며 큰 재산을 모은 재력가로 장준하의 사상계 출판을 남몰래 재정적으로 도와주다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아 고초를 겪고 장준하의 측근이 된 인물이었는데, 그의 증언에 의하면 장준하는 천주교에 입교하였다는 말과 임시정부 태극기 등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말을 하였고, 며칠전 망우리에 있는 부모의 산소에 다녀왔다며 벌초로 갈라진 자신의 손바닥을 펴보이며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벌초로 생긴 이 손바닥의 상처는 나중에 경찰에 의해 장준하가 산에서 추락하는 도중 소나무 가지를 붙잡아 생긴 것이라며 그의 추락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왜곡되어 발표되었다.[81]

"나는 8월이 다가오면 가슴이 설레인다. 8월에는 광복절이 있고 선생께서는 조국 광복이 있던 8월달을 그렇게 좋아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3리 험준한 약사골 한켠에서 비통하게 떠나셨다. 선생이 떠나시던 그 날, 선생은 아침에 나를 집으로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그 날 따라 날씨가 몹시 더웠다. 부채도 잘 부치지 않는 선생의 사모님은 이상한 선풍기를 갖다 놓고 돌렸는데, 덜그럭 덜그럭 하는 소리마저 나서 더 더운 것 같았다. 선생은 나에게 손을 펴보이면서 엊그제 망우리 산소를 다녀오셨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손바닥이 갈라져 있는 모습을 펴 보이셨다. 그런데 그 며칠 뒷날, 선생께서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여 산에서 떨어질 때 소나무를 붙잡아서 손바닥이 갈라졌다고 하는 왜곡된 언론보도를 보고, 나는 그들의 허무맹랑한 보도에 항의하다가 또다시 붙잡혀 가서 일주일동안 남대문 경찰서에 갇혀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날 아침에 선생은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보름 전이라고 하시던가, 아니면 20여일 전이라고 하셨던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던 독립과 관련된 태극기나 김구 선생으로부터 받은 보든 것들을 이화여자대학교에 다 주셨다고 했다. 또 천주교에 입교했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렇게도 기독교 신앙에 빠져 계시던 분이 왜 천주교에 입교하시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선생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왜, 생전에 자신이 귀하게 간직하던 중요한 것들을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시기 며칠 전에 모두 학교에 기증하고, 천주교에 입교하셨는지 지금도 궁금하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임춘원, <<내 속에 살아 숨쉬는 등불>>, '아, 장준하' 추모의 글 모음에서, 장준하기념사업회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가톨릭 그들은 평화를 항상 말해왔지만 실제 시행한 행동은 전쟁임, 십자군전쟁, 카타리파, 종교재판소, 성바르톨로메오축일살해, 30년전쟁배후, 이단 토벌을 명분으로 한 가문 간 재산 압류 전쟁, 2차세계대전 히틀러와도 관계

 역사 속에서 가톨릭 교단이 종교적 명목이나 정치적 타협, 혹은 묵인을 통해 전쟁과 무력 충돌에 연루되었거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받아 온 역사적 사건 및 정황 100가지입니다.


I. 중세 및 근세의 종교전쟁과 무력 행사 (1~30)

  1. 우르바노스 2세의 제1차 십자군 선포 (1095년): 성지 탈환을 명목으로 유럽 전역의 봉건 군주와 대중을 무장시켜 대규모 원정 개시.

  2. 예루살렘 점령 당시 대학살 방관 및 조장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뒤 무슬림과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

  3. 제4차 십자군의 동로마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1204년): 이슬람으로 향해야 할 십자군이 같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도를 침공해 약살과 파괴 자행.

  4. 알비파(카타리파) 십자군 운동 (13세기): 남프랑스 등에서 가톨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기독교 분파를 상대로 선포한 대규모 토벌 및 학살 전쟁.

  5. 북방 십자군 운동: 발트해 연안의 이교도 지역을 정복하고 강제 개종시키기 위해 교황의 승인 아래 수행된 군사 원정.

  6. 후스파 전쟁 당시 토벌대 파견: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 처형 이후 일어난 저항에 맞서 교황청이 십자군을 보내 진압.

  7. 이베리아 반도 레콘키스타(Reconquista)의 종교적 정당화: 이슬람 세력과의 영토 회복 전쟁에 교황청이 특권과 면죄부를 부여하며 군사적 결합.

  8.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무력 탄압 후원: 가톨릭 양왕(이사벨과 페르난도) 시기 이단자 색출과 고문, 처형을 종교적으로 승인.

  9. 프랑스 종교 전쟁(위그노 전쟁) 당시 개입: 신교도(위그노)와 구교도 사이의 내전에서 가톨릭 동맹(리가)을 측면 지원.

  10.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침묵 및 축하: 프랑스 파리 등에서 수천 명의 신교도가 학살당했을 때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이를 축하하는 미사를 드림.

  11. 30년 전쟁 초기 교황청의 재정·정치적 지원: 유럽 최대의 종교 내전인 30년 전쟁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톨릭 동맹 측을 독려.

  12. 이단 심판소(Inquisition)를 통한 세속 권력의 처형 공조: 교회가 이단으로 판정하고 세속 법정에 넘겨 화형 등 사형 집행을 유도한 시스템.

  13. 중세 교황령의 영토 확장 전쟁: 교황들이 세속 군주처럼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 내 도시국가들과 영토 다툼 전쟁 수행.

  14. 십자군 면죄부(면벌부) 판매를 통한 전쟁 자금 조달: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영적 구원을 상업화하고 신자들에게 기부 강요.

  15. 템플 기사단 등 종교 군사 조직 창설 및 운용: 교황의 직속으로 무장 군사 조직을 만들어 군사 작전 수행.

  16. 영국 정복 시기 윌리엄 1세의 원정 축복: 교황 알렉산드로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정당화하는 축복된 깃발 하사.

  17. 아일랜드 정복 시기 잉글랜드 왕권의 교황청 승인: 아일랜드 정복 전쟁을 교황이 묵인하거나 방조했다는 역사적 비판.

  18. 십자군 파견 실패에 따른 동방 교회와의 갈등 격화: 군사적 원정이 정치적 분열과 폭력으로 얼룩져 동서 교회의 골을 깊게 만듦.

  19. 중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간의 '서임권 투쟁' 전쟁: 권력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이탈리아 도시들을 황폐화한 내전 양상의 대립.

  20. 십자군 전쟁 중 기독교인 대상 약탈 묵인: 원정 길에 오른 십자군이 동유럽과 비잔틴 영내의 같은 기독교인 마을을 약탈한 행태 묵인.

  21. 중세 봉건 영주들의 전쟁에 종교적 명분 제공: 영주들의 사유지 다툼이나 정욕적 침략에 '하느님의 뜻'이라는 이름 포장.

  22. 십자군 패배 후 교황권 실추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한 군사 호소: 대중의 희생만 키운 무의미한 소아시아 원정 지속 독려.

  23. 이단 토벌을 명분으로 한 가문 간 재산 압류 전쟁: 재산을 빼앗기 위해 가문이나 지역을 이단으로 몰아 군사 침공하는 행태 방조.

  24. 중세 성직자들의 무장화 및 직접 전투 참전: 주교나 사제들이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전쟁터 최전선에 나서는 풍조 방치.

  25. 종교적 파문(Excommunication)을 정치적 무기화: 적대 군주를 파문하여 내란이나 전쟁을 유발하는 정략적 도구로 활용.

  26. 십자군 원정대 내 내부 권력 다툼 방치: 성지 회복보다 지휘관들 간의 영토 분배와 약탈품 싸움으로 변질된 원정 방관.

  27. 이슬람 문화권과의 평화적 공존 가능성 차단: 대화와 외교 대신 대규모 유혈 충돌을 '거룩한 전쟁'으로 미화하여 문명 간 적대감 고착.

  28. 중세 민중의 반란(예: 돌치노의 가르침 등)을 십자군으로 진압: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민중 운동을 이단으로 몰아 군대로 학살.

  29. 십자군 전쟁 파생 세력들의 민간인 학살: 유럽 본토로 돌아오는 길에 유대인 게토 등을 습격해 벌인 학살에 대한 교단 차원의 제재 부족.

  30. 전쟁 중 포로에 대한 잔혹한 처우 묵인: 종교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포로들을 처형하거나 노예로 삼는 관행 용인.

II. 대항해시대와 식민지 정복 과정의 방조 (31~60)

  1. 교황 칙서(Inter caetera)를 통한 신대륙 분할: 1493년 알렉산드로 6세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비유럽 세계 영토 분할 및 정복 권한 공식 승인.

  2. 아메리카 원주민 정복 전쟁의 종교적 명분 제공: '야만인 교화'와 '복음 전파'를 내세워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의 잔혹한 침략 정당화.

  3. 원주민 강제 동원 및 노예화 방치: 콜럼버스 이후 신대륙에서 벌어진 원주민 강제 노역과 학살에 초기 교단 지도부의 침묵.

  4. 남미 엔콤이에다(Encomienda) 제도와 결탁: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노동력으로 수탈하는 시스템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초기 체제 유지 협조.

  5.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 대한 묵인: 대서양 노예 무역 초기 포르투갈 등의 흑인 노예 수탈 구조에 대해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금지령을 내리지 않음.

  6. 필리핀 정복 전쟁 시 스페인 군대와 선교사의 동행: 십자가와 칼이 함께 이동하며 무력으로 원주민을 복속시키는 식민화 과정 협력.

  7. 중남미 원주민 고유 종교 및 문화 말살: 사원 파괴, 서적 소각 등 강압적인 동화 정책으로 수많은 문화유산 파괴.

  8. 라틴 아메리카 자원 수탈 체제 동조: 유럽 열강이 은과 금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현지 교구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기득권 공유.

  9. 고대 아메리카 문명(아스테카, 잉카 등) 파괴의 정당화: 문명의 이기나 가치를 무시하고 '악마의 소굴'로 규정해 파괴 전쟁 용인.

  10. 아시아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의 열강 타협: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방 침략(파도바르 등) 과정에 선교사들이 외교적·정보적 역할 수행.

  11. 선교 명목의 스파이 및 정보 제공: 제국주의 열강이 미지의 지역을 침략할 때 선교사들이 지리·문화 정보를 수집해 제공한 전력.

  12. 원주민 저항 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 지지: 식민 통치에 반발하는 원주민들의 봉기를 '반란'이자 '신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

  13. 아프리카 분할(Scramble for Africa) 시기 유럽 열강의 침략 방관: 19세기 말 유럽의 아프리카 무자비한 분할 점령 과정에서 침묵.

  14. 원주민 강제 이주 및 보호소 정책 협조: 국가 주도의 원주민 격리 및 통제 정책에 종교 시설이 직접 동원.

  15. 식민지 배후에서 누린 막대한 면세 특권: 정복 전쟁의 과실로 현지에서 토지와 재물을 면세로 축적하여 빈부격차 심화.

  16. 문화적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종 차별 정당화: 유럽인의 침략을 백인 우월주의와 결합해 교리적으로 합리화한다는 비판.

  17. 아시아 포교 과정에서의 현지 문화 탄압(전례 문제 등): 제사나 현지 전통을 우상숭배로 몰아 사회적 갈등과 박해 유발.

  18. 식민지 현지 주민에 대한 억압적 교육 통제: 순종적인 식민지 신하를 기르기 위한 교화 중심의 교육 정책 고수.

  19. 유럽 열강의 외교적 패권 싸움에 교황청의 편향: 특정 가톨릭 국가(스페인, 프랑스 등)의 패권 전쟁에 교황청이 줄타기 외교 전개.

  20.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현지 저항 세력의 파문 위협: 외세에 저항하는 토착 지도자들을 교회법으로 압박.

  21. 남미 가톨릭 대지주 체제의 형성 방치: 정복 이후 소수의 대지주와 군사 권력이 토지를 독점하는 구조에 침묵.

  22. 원주민 인구 급감(전염병 및 학살) 시기 구조적 방관: 수백만 원주민이 죽어 나갈 때 가해자들인 정복자들을 강력히 파문하지 않음.

  23. 해외 식민지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강제 노동: 성당 및 수도원 건축을 위해 원주민들을 무급 동원한 역사.

  24. 카리브해 원주민(타이노족 등)의 절멸 과정에서의 방조: 스페인 군대의 학살과 수탈 속에서 교회가 실질적 보호 조치를 취하지 못함.

  25. 불평등한 식민지 조약(토르데시야스 조약 등)의 교황청 중재 포장: 강대국들의 영토 약탈을 나누는 조약을 합법화해 준 주체.

  26.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강제 통혼 및 인권 침해 묵인: 정복자들의 성적 착취와 폭력에 대한 교단의 침묵.

  27. 식민지 군사 기지 내 성직자들의 군종 활동: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종교적 의식 집행.

  28. 약탈 재산의 바티칸 유입: 식민지에서 약탈되거나 수탈된 재화의 일부가 교황청의 재정으로 유입되었다는 비판.

  29. 현지 언어 말살 정책 지원: 원주민 고유 언어 사용을 억제하고 유럽 언어와 라틴어 강요.

  30. 식민주의와 복음 전파의 불가분적 결합으로 인한 선교의 순수성 훼손: 군대의 칼과 선교사의 십자가가 한몸으로 움직였다는 오명.

III. 근현대 전체주의(나치·파시즘)와의 타협 및 세계대전 방조 (61~90)

  1. 이탈리아 무솔리니와의 라테란 조약 체결 (1929년): 파시스트 정권을 합법화해 주는 대가로 가톨릭 교단의 기득권과 재정 지원 획득.

  2.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략 전쟁 축복: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침략 전쟁 당시 일부 고위 성직자들이 승전을 기원하고 군대를 축복.

  3. 독일 나치 정권과 라이히 정교협약(Reichskonkordat) 체결 (1933년): 히틀러 정권에 초기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한 역사적 타협.

  4. 독일 중앙당(Zentrum)의 수권법(Enabling Act) 찬성 가담: 가톨릭계 정당이 히틀러에게 독재 권력을 부여하는 법안에 투표하도록 바티칸이 용인.

  5. 비오 12세의 전쟁 중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개 규탄 주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에 대해 '도덕적 침묵'을 지켰다는 전 세계적 비판.

  6. 독일 가톨릭 주교들의 히틀러 전쟁 지원 서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독일 국방군의 전쟁 수행과 조국 수호를 정당화하는 사목서한 발표.

  7. 군종 신부들을 통한 나치 군인들의 사상 고취: 독일군 군종 신부들이 최전선에서 장병들에게 '기독교적 의무'라며 전쟁 참여 독려.

  8. 크로아티아 우스타샤(Ustaše) 정권의 세르비아인 학살 방조: 파시스트 가톨릭 정권이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을 강제 개종 및 학살할 때 현지 성직자들의 동조 및 침묵.

  9. 스페인 프랑코 독재 정권 지지: 민주적으로 수립된 공화정을 무너뜨린 파울로 프랑코의 극우 파시즘 정권을 가톨릭 수호자로 규정하고 공식 지지.

  10.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나치 전사들의 탈출 지원(Ratlines): 일부 가톨릭 성직자(바티칸 고위 인사 포함)들이 '오데사(ODESSA)' 조직 등과 연계해 나치 전범들의 남미 도피 조력.

  11.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 전쟁에 대한 교황청의 묵인: 일제의 아시아 침략과 난징대학살 등 만행에 대해 바티칸이 적극적인 반전 성명을 내지 않음.

  12. 오스트리아 합병(Anschluss) 당시 가톨릭 지도부의 환영: 나치 독일에 오스트리아가 병합될 때 현지 주교단이 지지 성명 발표.

  13. 냉전 시기 반공주의를 명목으로 한 극우 독재 정권 후원: 남미 등지의 군부 독재 정권이 공산주의자 색출을 명목으로 인권 탄압을 할 때 침묵하거나 결탁.

  14. 비오 11세의 'Mit brennender Sorge' 회칙의 한계: 나치즘을 비판하긴 했으나, 인종주의 전체를 근본적으로 깨부수기보다 '교회 조직의 이익 침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비판.

  15.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교전국 양측의 가톨릭 군종 신부 충돌: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각국 가톨릭 신부들이 자국 군대의 승리를 위해 상대편 신도들을 향해 총을 쏘도록 독려.

  16. 바티칸 은행(IOR)의 불투명한 자금 운용과 전쟁 자금 연루 의혹: 전후 및 냉전 시기 의심스러운 자금(나치 잔재 자금 등) 세탁 의혹 보도.

  17. 비오 12세의 전쟁 방지 외교의 실효성 상실: 히틀러의 폭주를 막기 위한 실질적 외교 압박보다 바티칸의 중립 유지를 우선시하여 대참사를 막지 못함.

  18. 전후 나치 전범들의 바티칸 여권 발급 연루: 은닉망을 통해 전범들이 뉴질랜드나 남미로 도망칠 수 있도록 바티칸 신분증 및 여권 발급에 개입한 사제들 존재.

  19. 파시즘 체제 하에서 평화주의자 사제들에 대한 교단 내 징계: 전쟁에 반대하거나 나치에 저항한 소수 양심적 사제들을 교단 지도부가 보호하지 않고 방치.

  20.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 대상에서 바티칸의 안전만 도모: 로마와 바티칸의 안전보장에만 집중하며 유럽 전역의 민간인 학살에는 소극적 태도.

  21. 유럽 가톨릭계의 반유대주의 역사 방치: 수백 년간 유럽 가톨릭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유대인 멸시 문화가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용인되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신학적 비판.

  22. 동유럽 반공 게릴라 운동(파르티잔 등)에 대한 복잡한 개입: 전쟁 혼란기 속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우 무장 조직과 타협.

  23. 슬로바키아의 친나치 정권수립자 요제프 티소(Jozef Tiso)의 성직자 신분 유지: 나치 괴뢰국 대통령이자 홀로코스트에 협력한 가톨릭 신부(후에 처형)에 대해 교단이 오랫동안 강력한 파면 조치를 취하지 않음.

  24. 군사주의와 애국주의를 결합한 강론: 전쟁 시기 강론을 통해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적군에 대한 증오를 신앙적 미덕으로 포장.

  25. 전후 독일 가톨릭 주교들의 전쟁 책임 회피: 패전 직후 독일 주교단이 나치 전쟁에 협력한 과오를 즉각 인정하지 않고 수십 년간 침묵.

  26. 프랑스 비시 정권(친나치 정부)에 대한 초기 협조: 페탱 원수의 친나치 정권에 대해 프랑스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정권 안정을 위한 지지 표명.

  27. 바티칸의 정보력을 연합군 승리가 아닌 자체 보신에 사용: 나치 독일의 동향이나 유대인 학살 정보를 입수하고도 공개적 경고보다 개별 구호에만 머물렀다는 비판.

  28. 냉전 시기 '십자군' 개념의 반공 전쟁화: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새로운 성전(Holy War)으로 규정하며 베트남전 등 수많은 현대 전쟁과 쿠데타 정당화.

  29. 이탈리아 파시즘 청년 조직과 가톨릭 청년 단체의 통합 압박 타협: 무솔리니가 청년들을 파시스트로 교육하려 할 때 교단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양보.

  30. 세계대전 피해자 보상 요구에 대한 소극적 태도: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강제 노역 피해자나 전쟁 희생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에는 미온적.

IV. 현대 지정학적 갈등과 구조적 책임 (91~100)

  1. 중동 분쟁 시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모호한 외교: 인류 평화를 외치면서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실질적인 폭력 종식을 이끌어내지 못한 외교적 한계.

  2. 아일랜드 신구교 내전(The Troubles) 당시 방조: 북아일랜드 분쟁에서 가톨릭계 무장조직(IRA)과 개신교계 민병대의 유혈 충돌을 교단 차원에서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 책임.

  3. 르바단 내전 및 레바논 가톨릭 민병대(팔랑겔당 등)의 유혈 충돌 연루: 레바논 정치·종교 분쟁 속에서 가톨릭계 기독교 민병대가 벌인 학살과 무장 투쟁에 대한 교단의 복잡한 연관성.

  4. 남미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 탄압: 독재 정권과 폭력에 고통받는 민중의 편에 선 진보 성향 사제들을 교황청이 좌경화로 몰아세워 징계하고 탄압.

  5. 냉전 시대 CIA 등 정보기관과 바티칸의 비밀 공조: 공산권 붕괴를 위해 서방 정보기관들과 손잡고 비밀 정치 공작에 자금과 조직 지원.

  6.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세르비아 종교 갈등 방치: 가톨릭(크로아티아)과 정교회(세르비아) 간의 민족·종교적 증오가 유혈 내전으로 번질 때 종교적 화해 실패.

  7. 아프리카 현대 내전 지역에서의 무기 밀매 및 군벌 유착 방관: 콩고 등 자원 채굴권을 둘러싼 내전에서 현지 부패 세력과 교회의 유착 의혹.

  8. 현대 핵무기 보유국들의 체제에 대한 묵인: 핵무기를 통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초강대국들의 군사 패권 구조에 대해 실질적 제재 조치 부재.

  9.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전쟁 경제에 대한 구조적 비판의 추상성: 평화를 부르짖으면서도 무기 수출과 전쟁 산업을 지탱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선언적 비판에 그침.

  10.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정치 권력의 역사적 분리 실패: 지난 2천 년간 평화를 표방했음에도 정작 결정적인 전쟁의 순간마다 국가 권력과 타협하거나 야합하여 인류의 유혈 사태를 막지 못한 구조적 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