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9일 금요일

범인은 혼노지에 있다는 오다노부나가를 죽인 예수회 아케치 미쓰히데(일본어: 明智 光秀 )처럼 범인이 이 안에 있는데 부엉이 바위 살인사건을 영화로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23일 6:59: 경호원 이모씨, 뒷좌석에 노무현 전 대통령 태우고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출발, 8시 13분경 인공호흡을 시행하며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센터로 이송되었는데
새벽에 전화?
  • 06:15 ~ 06:16: 부엉이바위에서 투신(추정)
떨어지는 순간 네가 전화받았다는 이야기? 어떻게 전화가 너한테 먼저가냐?






https://www.youtube.com/watch?v=nrX4tJ8Omtg

힐링캠프 인터뷰내용

힐링캠프 25회 20120109 SBS

어떤 백이 있으면 대선 직전에 공중파에 나와서 시체팔이가 가능하지?


청와대에서 나와서 시원하다는 자가 왜 또 노무현 살인사건에 개입함? 

사주한 범인으로써 나타난것 아님?

눈물도 흘리지 않음?

세월호 계획하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한것 아님?

어떻게 거의 유족인 권양숙 여사와 같은 때 도착하냐?

왜 네가 노무현 대통령 사인에 대해서 설명하냐? 비서 가톨릭 김경수가 다 목격했는데 네가 배후?

 

가족이 아닌데 네가 왜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냐?

나는 사망진단서 100여통 이상 쓴 사람인데 가족 아닌 사람이 생명유지장치 말하는것을 들어본적이 없음

그리고 의사는 절대 생명유지장치 제거하자고 말하지 않음, 그 이유는 자기가 보라매병원처럼 적극적인 행위가 살인죄로 문제될수 있기 때문에 그런말 안함

물론 완전 말기 암환자에게는 가능하지 급하게 발생한 환자에게는 그런 말 안함
네가 사인확인은 왜 함? 의사임? 어떤 자격으로?

확인사살한것 아님?


아래는 요약한 것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새벽 봉하마을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불길함을 느꼈고, 곧이어 들려온 비보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결정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어 눈물조차 흘릴 겨를이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1.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심경과 대처

A split image showing a person receiving a phone call in the early morning with a worried expression on one side, and on the other side, the same person making difficult decisions amidst a pile of documents, with a somber atmosphere.

새벽 봉하마을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불길함을 느꼈고, 비보에 가슴이 찢어졌지만 결정해야 할 일들로 눈물조차 흘릴 겨를이 없었다.


1.1. 청와대 생활의 우여곡절과 해방감

  1.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국길 방콕 공항에서 '노무현 탄핵 소추' 관련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2.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소추 사건의 대리인이 많았을 정도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3. 청와대 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마치 영화 같은 인생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4.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날, 함께 나오면서 섭섭함보다는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5. 이전에는 온갖 신문과 뉴스를 다 보며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긴장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6.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예 뉴스나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1.2.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과 심경

  1. 새벽 봉하마을에서 김경수 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 시간대에 걸려온 전화에 순간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2. 전화 통화 중 가슴이 먹먹해졌고, 새벽에 대통령이 봉화산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병원으로 후송 중이며 상태가 엄중하다는 보고를 들었다.

  3. 이 보고를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으며, 그날 봉화산에 간 것이 몇 달 만이었고 시작 이후 처음이었기에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4. 대통령이 힘들어하거나 외롭다고 하신 적이 있냐는 질문에, 힘든 적은 있었지만 강인한 분이었고 핍박이나 역경에 더 강하게 맞서는 성품이었다.

  5. 검찰이 거리로 내몰아도 재판 가면 무죄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대통령께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끝까지 버티실 거라고 생각했다.

  6. 정말 인내심이 대단하셨던 분이었기에, 서거하신 모습을 보고 상주 역할까지 하며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7. 하지만 그 순간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 먼저 여사님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2. 스스로 뛰어내리셨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했다.

    3. 서거 사실을 국민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알려야 할지 발표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4. 발인 후 생명 유지 장치를 유지할지 뗄지 결정해야 했다.

    5. 시신을 봉하마을로 옮길지, 아니면 임시로 둘지 결정해야 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23/2009052300991.html



이렇게 가셨다가 알게 되시면, 예, 예, 그 귀국하는 길에 방콕 공항에서 비행기를 환승하는데, 방콕 공항에서 방콕 포스트는 막 아예 막 일면 톡으로 더 나오더라고요 외국 분들이요, 예, 대통령 노무현 탄핵 소추는 선포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저 재판도 했죠, 예, 그래서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그 탄핵, 그 소추 사건의 대리인도 많았죠 아, 야, 정말 청와대 생활도 이렇게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보니까요 예, 그렇죠 인생의 참 영화 같은 인생, 정말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던 것 같아요 그럼, 청와대 날, 이제 마지막 날, 이제 청와대에서 나오지 않아요, 함께 나오셨잖아요, 그죠? 예, 어땠어요? 나올 때 좀 섭섭했어요? 아니면 뭐 이렇게 속이 시원했어요? 아니면 왠지 이렇게 아쉬움도 있고, 그러니까 이제 저희는 그때 여러 가지 허탈감과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해방감을 느꼈어요 아이고, 이제 정말 해방이다 예, 그뿐만 아니고, 하이 인자들은 막 신문이나 그다음에 막 뉴스도 안 봐도 되고요 그전까지는 막 온갖 신문, 다 봤죠 뭐 뉴스랑 뉴스는 다 봤습니까? 예, 그러면요, 뭐 다 보세요 그러면요, 행여 뭐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연애 뉴스는 안 보시죠? 프로그램 사실 좀 보면 그게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네, 그죠? 예, 그럴 수 있어야 돼요 연유가 있어야 돼요 [음악] 그렇게 하는 거죠 제일 먼저 그 소식을 알게 되신 거죠 예, 예 그때 의 어떤 심경은 좀 어렸어요 그날 이제 새벽에 봉화 마을에서, 그 모시고 있던 김경수 비서관이 전화를 해 왔어요 네네 그런데 딱 그 시간대에 전화를 받는데, 순간적으로 정말 좀 불길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원래 그런.. 시간대 전화라는 게 가슴이 좀 먹먹했어요, 아아, 무슨 무슨 급한 일이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데, 새벽에 대통령이 봉화산에 올라갔다가 떨어지셨다면 병원으로 후송 중이라는데, 상태가 좀 엄중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보고를 들었을 때, 저는 정말로 막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날 봉화산에 간 게 몇 달 만이었고, 시작한 이후에 처음 갔던 거였거든요 그 새벽에 봉화산에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일이었어요, 그리고 만약 떨어지셨다면 모르는 일이니까, 아이고, 뭐, 뭐, 뭐, 그때부터 가슴이 막 쿵쾅거렸죠 혹시 서거하시기 전에 힘들다거나, 지금 외롭고 힘들다고 하신 적이 있냐고 묻기도 했어요 힘든 적은 있으셨지만, 그래도 굉장히 강인한 분이었어요 특히, 어떤 핍박이나 역경이 닥쳤을 때는 오히려 더 강하게 맞서시는 성품이셨거든요 저희는 그 꿈에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검찰이 거리로 내 몰아도 재판까지 가면 무죄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던지실 거라고 생각했고요 정말로 인내심이 대단하셨던 분이었어요 그래서, 서거하신 모습도 보시고, 상주 역할도 다 하시면서 장례식도 치르셨다고 들었어요 실감이 잘 안 나고, 정말 그때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어요 그 순간엔 또 제가 결정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았고, 먼저 여사님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보여드려야 할지, 또 스스로 뛰어내리셨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했고요 서거 사실을 또 국민들에게 또 발표를 해야 되는데, 이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알려야 되냐, 또 발고 난 이후에 생명 유지 장치를 유지할 건가, 뗄 건가, 이것도 또 고민하고 결정해야 되고, 그러고 이제 시신을 봉하마을로 옮길 건가, 아니면 거기에 임시로 두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