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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3일 화요일

맥으로 아는 간이며 쓸개는 무엇인가?

왜 한의사는 서양의학에 밀리는가?






첫째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하는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며 또 하나는 용어가 서양의학에 밀려서이다. 나는 튼살이나 화상흉터등을 치료하기 때문에 보이는 부분을 치료하기 때문에 첫 번째 침 치료 효과는 보여주는 것은 확실히 할 수 있다.



둘째는 용어자체가 서양의학에 잠식을 당해서이다. 환자들은 한의사에게 진맥을 원한다. 그것은 의식적인 의례(ritual)일 수도 있고 그냥 왔으니 신기하고 궁금해서일 수 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겠다. 나는 한방병원 수련의일때 독일인 의대생이 많이 왔다. 그들은 한의학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이름은 잘 기억안나지만 한 명이 나에게 진맥좀 해달라고 했다. 너무 우리나라 사람처럼 쉽게 손목을 내밀어서 정말 놀랬다. 김흥국씨 말대로 나한테 들이댄 것이다. 내가 모 대형병원 응급실 참관수업을 받는 중이었는데 나는 그의 진심이 궁금했다. 즉 왜 팔뚝을 들이밀고 진맥을 요구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당신 밥 먹었냐고 했다. 그 사람은 밥을 아직 안 먹었다고 했다. 시간 핑계를 댈려고 했는데 마침 오전 7시경으로 평단에 가까운 진맥하기 좋은 시기였다. 그럼 내가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다음 날 그는 또한 팔을 들이밀었다. 나는 밥을 먹고 왔냐고 하니 먹었다고 했다. 먹은지 얼마 되었냐고 하니 바로 먹었다고 한다. 나는 밥을 먹으면 담음이 있는 것처럼 맥이 매끄러운 활맥이 나오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또 나한테 팔을 들이 밀었다. 나는 진맥을 봐줄려고 했는데 옆에 커피가 있었다. 나는 커피 마셨냐고 물어보니 커피 마셨다고 해서 커피는 맥을 빠른 맥인 빈맥으로 만들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또 다음날 정말 밥 먹고 커피도 안먹고 정말 말 잘듣는 학생처럼 왔다. 삼고초려에 감동한 나는 맥을 봐줄수 밖에 없었다.



한의학적으로는 맥으로는 오장육부의 기운을 알수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좌측 관맥이 허약하니 간이 나쁘고 혈의 저장이 안되며 어지럽고 눈이 침침하고 주저리주저리 말해봐야 환자는 이 사람 사기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며칠전 종합검진 받았는데 간(liver) 수치(보통 OT, PT라고 말하는 AST, ALT)가 모두 정상이었다. 그러니 한의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한약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던데.. 그러면서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간은 동양의학에서는 춘추전국 시대 이전부터 씌여 왔다. 서양의학적으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간을 독수리가 파먹었다는 오래된 신화에서 처음나오는지 알수 없으나 아무튼 liver이다. 즉 liver는 간이 아니라 liver일 뿐이다. 그것을 간으로 누가 번역했는지 모르나(아마 네덜란드 의학을 동양학문으로 번역한 일본사람이었을 것이다. 1766년 봄, 이미 난학의 기초 지식을 습득한 마에노 료타쿠와 아직 화란어를 배워보지 못한 스키타 겐파쿠가 번역한 해부학책인 해체신서가 처음인가?) 물론 잘한 것도 있다. 하지만 소화기계인 비장은 서양의학으로 면역력을 담당하는 spleen으로 되는 등 이런 혼동이 한의학을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 들게 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한의학 일원론자가 아니다. 나는 빼앗긴 용어를 되찾아오자는 것 뿐이다. 즉 앞으로는 의사들은 간이라고 하지 말고 liver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의사들은 메디컬 용어가 모두 영어이며 그들도 영어로 쓰면 편하다. 정말 서양의사들은 무의식중으로 영어가 그들은 더 편하니 만약 컨퍼런스 등에서도 만약 영어를 쓰지 말라고 하면 번역하려고 더 땀을 뺄 것이다. 나는 하얀거탑이란 드라마에서 일부러 의학영어를 한글로 바꿔 쓰는 것을 보고 정말 경악했다. 차라리 영어로 말하고 자막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사실감이 있고 맞다. 또한 경제는 economy일 뿐이다. 경제가 한자로 經濟로 經世濟民의 뜻에서 나왔다고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경제는 이코노미일 뿐이다. 번역상 빌려온 말에 그다지 뜻을 둘 필요가 없다. 한의학이 과학인가 하는 논쟁도 있지만 science는 사이언스다. 우리가 왜 일본이 번역을 위해 만든 과학이란 단어에 휘둘려야 하는가?



또한 진료기록부도 의료법상 반드시 한글과 한자로 표시되어야 하는데 의사들은 영어를 쓴다. 의사들은 영어하고 약자 정말 좋아한다. 왜냐하면 영어가 익숙하고 편한 것이다. 따라서 제발 오장육부를 한의학적 이름을 빌리지 말고, 제발 국제화시대에 맞추어서 영어로 쓰길 바란다. 한의사[의사]는 서양의학에 정말 간이며 쓸개를 내준 것이다.

2010년 7월 8일 목요일

제중원에 의사란 말은 다 거짓이다. 한의사가 진정한 의사이다.

한의사는 빼앗긴 의사란 명칭을 돌려받아야 한다.






나는 한의사지만 한의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김용옥 교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알 수 없으나 꼭 한의과 나온 본인이 의과 대학 나오고 의사라고 말한다. 나는 漢方이든 韓方이든 한방이란 말이 붙는 것이 정말 싫다. 왜냐하면 한방이란 말은 일제가 만든 말이다. 의사들이 양방 의사란 말 싫어하는 것과 같다.



공자님은 공자는 자로라는 제자가 위나라에서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냐고 물었을 때,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라고 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이며 잘못된 개념에서 잘못된 것이 파생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제중원이란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다. 과연 현재 흰가운 입는 양의사란 존재가 그 때 존재했을까?



1900년 고종시대 대한 제국 의사 규칙 제1조1항을 보자. “의사는 의학을 慣熟하야 천지운기와 맥후진찰과 내외경과 대소방과 약품온량과 침구보사를 통하야 對症投劑한자를 云하니라” 현재의 의사(MD, Medical Doctor)는 이 글을 한자 때문에 해석하지도 못할 것이다. 해석해보면 “한의사는 한의학을 습관적으로 익히며 하늘과 땅의 운기(오운육기)와 진맥과 진찰과 내경과 외경과 성인과 소아의 처방과 한약의 차고 더움과 침구의 보법과 사법을 통하여 증상에 대응하여 약제를 투약한 사람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이 때 의사는 분명히 한의사를 말하며 의사들은 오운육기를 알수도 없고 침구법도 알 수 없다. 또한 양약에는 차고 덥다는 성질이 있지도 않을 것이니 한약을 말함이다. 간단히 말해서 더하는 보법과 빼는 사법도 오직 한의학에만 존재한다.



그런데 대한제국이 10년후에 일제에 강제 합병된후(그 조약도 국제법상으로 무효지만) 의사들은 오직 양의사만을 가리키며 한의사들은 의생으로 격하되었다. 의생이란 중국어로도 의사이지만 왠지 의학학생이란 말 같다. 즉 의사는 의학을 배운 스승, 의생은 의학을 배우는 학생이란 말처럼 한의사는 한단계 낮은 준의사 취급을 받는다. 일제는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한의학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침구사란 제도를 설립하며 아직도 현재 의료법에도 의료유사업자란 존재에 간혹 침구사가 등장한다. 아니면 한의사는 의사(醫師스승사)가 아닌 의사(醫士)로도 표기되었다. 만약 병원가서 선생님이라고 소리 안하면 큰일 나는 것도 표기 때문이다. 지금 간호사는 ‘선비 사(士)’로 표기가 되어 있다. 따라서 서양의사는 절대로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짜 의사란 말은 서양의학을 배운 Medical Doctor가 아닌 한의사이다. 한의사란 말은 어디서 생겼는지 알아보려면 우리는 국악을 상기하면 된다. 즉 모든 서양음악은 음악이며 국악은 서양의학에 대비할 때만 국악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즉 일제전에는 음악은 모두 국악이며 서양의학은 없다. 즉 필자도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서양음악이 양악라고 불리어야 하며 국악이 음악이 되어야 한다. 같은 말로 한의학은 의학이며, 서양의학은 양의학이라고 불리어져야 한다. 그럼 의사는 어떻게 불리어야 할까?



예전에 여성이 의사가 귀한 시절에는 여의사라고 불렸다. 왜 그럼 남의사가 없는가? 숫자가 적고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성 의사가 늘어났는데(의대생은 한 50%정도 될까?) 여의사라고 부르면 오히려 더 이상하다.



의사는 Medical Doctor라고 불리어야 하며 아니면 줄여서 M.D.라고 불리어야 한다. 즉 의사는 의학박사라고 불리어야 한다. 하지만 의사는 전문의는 많으나 학부만 나온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의학박사라고 불리면 실제 의학박사랑 혼돈이 된다. 따라서 메디칼 닥터라고 불리거나 서양의사라고 불리어야 한다. 아니면 그냥 닥터라고 불리면 된다. 나는 독일인 의대생에게 한의학을 가르친 적이 많은데 그들은 그냥 의사를 ‘독터[닥터의 독일말]’ 이런 식으로 부른다.



아니면 서양의학이 수술위주의 개체적이며 분석적인 Biomedicine(생의학)을 패러다임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의학 의사라고 불리어야 한다. 더 황당한 사건은 liver가 동양의학의 간(肝)을 내쫒는 등 서양의 오장육부 이름이 한의학의 명칭을 내쫒아 버린 것이다. 이것은 뒤에 서술하겠다.

2010년 6월 14일 월요일

한약 먹는 방법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 중

보통 한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약을 지어주면서 하루 세첩을 꼭 다려먹으라하고, 환자들은 또 하루 세첩을 다 안먹으면 큰일나는 줄로 생각하는데 이것 또한 약에 대한 상식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약은 복용방법에도 그 획일적 기준이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약을 먹어 내 몸에 부담이 가거나 좋지않다고 생각될 때는 그 약이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해도 계속 복용하는 것을 심각히 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로부터 瞑眩(명현)이라는 것이 있어 良藥을 복용하면 그 직후에 몸에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있으나 이 명현이란 좋은 효과를 위한 몸의 적응기전을 말하는 것으로 해로운 부작용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명백한 부작용이 지속될 때는 복용을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보약같은 것은 대개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먹는 것인데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몸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여 그것이 누적되면 나쁜 효과가 나타난다.
보약에는 當歸와 같이 점성(粘性)이 강한 약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대개 위장에 부담을 준다.
이런 약을 하루에 세첩씩 들이킨다는 것은 실로 우매한 짓이다. 더구나 요즈음 같이 모든 음식이 비후(肥厚)한 것일 때에.
나는 한약을 평상적으로 하루에 한첩을 기준으로 하여 느낌에 따라 자율적으로 가감한다.
하루 세첩의 원칙은 우매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재탕도 해먹지 않는다.
요새같이 약이 흔한 세상엔 유감없이 버리는 것이 좋다.

Ⅴ...
약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정성이다. 요즈음 한의원에서 약을 비닐팩에 포장하여 주는데 이것은 한약의 보편화에 크게 기여했을 뿐아니라 그 편리함 때문에 때로 우리가 불가피하게 이용치 않을 수 없는 방법이지만, 약은 반드시 첩약으로 지어와서 집에서 대려먹는 것이 좋다.
시간제 타이머가 붙은 전기약탕관도 그리 나쁠 것은 없으나 재래식 도기탕관에 가스불로 대려먹는 것만 하지는 못하다.
허나 도기탕관이 요즈음은 악독한 유약을 바른 것이 많다하고 또 현대생활에 여간 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가스불로는 약을 태워먹기 십상이므로 그런 경우는 오히려 전기탕관도 부방할 것이다.
허나 전기탕관의 경우는 탕관이 테프론코팅을 한 것은 독이 됨으로 절대 써서는 안된다.
순수 파이렉스 유리그릇만을 사용할 것이다. 제일 좋기는 역시 무해한 전통도기탕관에 가스불로 대려먹는 것이다.
전남 증광같은데서 만드는 도기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약을 대릴 때 뚜껑을 밀폐하여 압축솥으로 대리는 방법은 약물이다.
그것은 약성을 파괴시키는 우매한 짓이다. 많은 한의원에서 시간단축을 위해 압축솥을 쓰는데 그것은 좋지 않다.
끓이는 과정이 반드시 정상기압에서 氣가 순환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뚜껑이 없이 창오지로만 막았던 것이다. 창호지는 우수한 기의 필터였던 것이다.

Ⅵ...
약을 다리는 원칙은 中庸이다. 약재에 따라, 그 최종산물의 중용상태를 점검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같은 약이라도 다리는 방법에 따라 그 약효가 천차만별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