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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신촌 이미지 한의원 02-336-7100 정관정요 제 4 구간

卷二 求諫第四(凡十一章)
2권 간언을 구함 제 4
모두 11장이다.

太宗威容儼肅,百僚進見者,皆失其舉措。
태종이 위엄있는 용모와 엄숙함으로 여러 관리들이 나아가 알현할 때 모두 일 조치를 실수하였다.
太宗知其若此,每見人奏事,必假顏色,冀聞諫諍,知政教得失。
태종이 이와 같음을 알고 매번 사람을 만나서 일을 주청할때를 보면 반드시 안색을 꾸며서 간쟁을 바라 듣고자 하며 정교의 득실을 알고자 했다.
貞觀初,嘗謂公卿曰:
정관 초기에 일찍이 공경들에게 말했다.
“人欲自照,必須明鏡;主欲知過,必藉忠臣。主若自賢,臣不匡正,欲不危敗,豈可得乎?
사람이 스스로 비추고자 하면 반드시 밝은 거울이 될 것입니다. 군주가 잘못을 알고자 하면 반드시 충신에 기대게 됩니다. 군주가 만약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신하가 바로잡지 않으면 위패롭고 패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렇게 되겠습니까?
故君失其國,臣亦不能獨全其家。
그래서 군주가 나라를 잃고 신 또한 홀로 집안을 완전히 할 수 없습니다.
至於隋煬帝暴虐,臣下鉗口,卒令不聞其過,遂至滅亡,虞世基等,尋亦誅死。
수양제의 포학할시기에는 신하가 입을 칼을 물려서 마침내 잘못을 듣지 않으려고 하여 멸망함에 이르니 우세기등은 또한 벌로 죽었다.
前事不遠,公等每看事有不利於人,必須極言規諫。”
앞의 일이 멀지 않으니 공 등은 매번 일을 보아 사람에게 불리함이 있으면 반드시 지극한 말과 간언을 하여라.
貞觀元年,太宗謂侍臣曰:
정관 원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正主任邪臣,不能致理,正臣事邪主,亦不能致理。惟君臣相遇,有同魚水,則海內可安。朕雖不明,幸諸公數相匡救,冀憑直言鯁議,致天下太平。”
바른 군주가 사악한 신하를 임명하면 다스리지 못하며 바른 신하가 사악한 군주를 섬기면 또한 이치에 나아가지 못한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만나길 물과 물고기와 같음이 있으면 중국이 편안하게 된다. 짐이 비록 밝지 않으나 다행히 여러 공이 몇 번 도와 바로잡아 구하여 직언과 바른 논의를 바라니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諫議大夫王珪對曰:
간의 대부 왕규가 대답하여 말했다.
“臣聞木從繩則正,後從諫則聖。
신이 듣기로 나무가 먹줄을 따라서 바라지며 뒤에 간언을 따라서 성인이 된다고 합니다.
是故古者聖主必有爭臣七人,言而不用,則相繼以死。
그래서 고대에 성왕은 반드시 간쟁하는 신하가 7명이 있고 말을 듣고 등용하지 않으면 서로 죽음으로 계속하였습니다.
陛下開聖慮,納芻蕘,愚臣處不諱之朝,實願罄其狂瞽。”
폐하가 성스러운 생각을 열어서 꼴 베는 머슴이나 나무꾼의 의견까지 들으면 어리석은 신이 꺼림이 없는 조정에 있으니 실제로 어리석고 몽매한 소견이라도 울리고자 합니다.
太宗稱善,詔令自是宰相入內平章國計,必使諫官隨入,預聞政事。
태종이 착하다고 말하며 조서에 스스로 재상으로부터 들어와 국가의 계책을 평화롭게 드러내게 하니 반드시 간관을 따라 들어오게 하여 미리 정사를 들었다.
有所開說,必虛己納之。
말을 함에 반드시 자기를 낮추어 들었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
정관 2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明主思短而益善,暗主護短而永愚。隋煬帝好自矜誇,護短拒諫,誠亦實難犯忤。虞世基不敢直言,或恐未爲深罪。昔箕子佯狂自全,孔子亦稱其仁。及煬帝被殺,世基合同死否?”
군주가 단점을 생각하고 더욱 좋아지나, 어리석은 군주는 단점을 보호하여 영원히 어리석다. 수양제가 스스로 뻐기고 과장함을 좋아하여 단점을 보호하고 간언을 막아서 진실로 또한 실제로 범하고 거스르기 어려웠다. 우세기가 감히 직언하지 않으며 혹은 아직 직언하지 못함이 깊은 죄가 되었다. 예전에 기자가 거짓으로 미쳐서 스스로를 보존하나 공자는 그를 인하다고 칭하였다. 수양제가 피살되니 우세기가 함께 죽지 않았는가?
杜如晦對曰:
두여회가 대답하였다.
“天子有諍臣,雖無道不失其天下。仲尼稱:‘直哉史魚,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
천자에는 간쟁하는 신하가 있으니 비록 천자가 무도하여도 천하를 잃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길 정직하구나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처럼 곧았다.
世基豈得以煬帝無道,不納諫諍,遂杜口無言?
우세기가 어찌 수양제가 무도하여 간쟁을 받아들이지 않자 입을 막고 말을 안했겠습니까?
偷安重位,又不能辭職請退,則與箕子佯狂而去,事理不同。
귀중한 위치의 편안함을 훔치며 또한 사직하여 물러남을 청하지 않으며 기자가 거짓으로 미쳐서 떠나니 사리가 같지 않습니다.
昔晉惠帝賈後將廢湣懷太子,司空張華竟不能苦爭,阿意苟免。
예전에 진혜제때 가후가 민회태자를 폐하려고 하였는데 사공 장화가 힘을 다하여 고통스럽게 간쟁하지 못하고 아첨하는 뜻으로 구차하게 모면했습니다.
及趙王倫舉兵廢後,遣使收華,華曰:
조왕 윤이 군사를 일으켜 폐지한 뒤에 사신을 파견하여 장화를 잡으니 장화가 말했습니다.
‘將廢太子日,非是無言,當不被納用。’
태자를 폐하는 날을 폐기하니 실제로 말이 없음이 아니며, 간납하여 사용되지 못해서입니다.
其使曰:‘公爲三公,太子無罪被廢,言既不從,何不引身而退?’
사신이 말하길 공은 3공이 되며 태자는 죄가 없이 폐기되니 말이 이미 따르지 않으니 어찌 몸을 당겨 물러나지 않았는가?
華無辭以答,遂斬之,夷其三族。
장화가 대답할 말이 없자 드디어 베어지니 3족을 죽였습니다.
古人有 云:‘危而不持,顛而不扶,則將焉用彼相?’
고대 사람이 말하길 위험한데 지탱하지 못하며, 엎어지는데 붙들지 못하면 장차 저를 재상으로 등용하겠는가?
故‘君子臨大節而不可奪也。’
그래서 군자가 중대한 절목에 임하면 빼앗을 수 없다.
張華既抗直不能成節,遜言不足全身,王臣之節固已墜矣。
장화가 이미 곧게 항거하여 절목을 이루지 못하며 겸손한 말로 몸을 온전히 하기에도 부족하니 왕의 신하의 절도로 이미 추락하였습니다.
虞世基位居宰輔,在得言之地,竟無一言諫諍,誠亦合死。”
우세기는 위치가 재상으로 보좌함에 말할 곳을 얻었으나 마침내 한 마디의 간쟁도 없으니 진실로 또한 죽음에 합당합니다.
太宗曰:“公言是也。人君必須忠良輔弼,乃得身安國寧。
태종이 말하길 공의 말이 옳다. 사람의 군주가 반드시 충성스럽고 어질게 보필하여야 몸이 편안하며 국가가 편안하다.
煬帝豈不以下無忠臣,身不聞過,惡積禍盈,滅亡斯及。
수양제가 어찌 아래로 충신이 없겠는가? 몸이 잘못함을 들으면 악이 쌓이고 화가 차니 멸망함에 이르렀다.
若人主所行不當,臣下又無匡諫,苟在阿順,事皆稱美,則君爲暗主,臣爲諛臣,君暗臣諛,危亡不遠。
만약 군주의 행실이 부당하면 신하가 또한 바로잡고 간하지 않으면 진실로 아첨하여 순종하면서 일이 모두 아름답다고 칭찬하면 군주는 어두운 군주가 되며 신하는 아첨하는 신하가 되어 군주가 어둡고 신하가 아첨하면 위급과 멸망이 멀지 않다.
朕今志在君臣上下,各盡至公,共相切磋,以成治道。
짐이 지금 뜻을 군신의 상하에 두어 각각 공까지 다하게 하며 함께 서로 끊고 갈아서 치도를 이루고자 한다.
公等各宜務盡忠讜,匡救朕惡,終不以直言忤意,輒相責怒。”
공등은 각각 충성과 직언을 다함에 힘쓰고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구하며 마침내 직언으로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 서로 책망하고 분노할 것이다.

貞觀三年,太宗謂司空裴寂曰:
정관 3년에 태종이 사공 배숙에게 말했다.
“比有上書奏事,條數甚多,朕總黏之屋壁,出入觀省。所以孜孜不倦者,欲盡臣下之情。每一思政理,或三更方寢。亦望公輩用心不倦,以副朕懷也。”
군주에게 글로 일을 상주함에 비하여 조문 수가 매우 많으나 짐은 모두 집 벾에 붙여서 출입하면서 보고 살핀다. 부지런히 권태롭지 않으며 신하의 정을 다해야 한다. 매번 한 생각으로 정치를 다스리며 혹은 3번 고치고 곧 잔다. 또한 공의 무리가 마음을 씀을 권태롭게 하지 않으며 짐의 마음에 부합하고자 하라.
貞觀五年,太宗謂房玄齡等曰:
정관 5년에 태종이 방현령등에게 말했다.
“自古帝王多任情喜怒,喜則濫賞無功,怒則濫殺無罪。
고대 황제와 왕으로부터 많이 정의 기쁨과 분노를 맡겨서 기쁘면 공로가 없는데 상을 넘치게 주며, 분노하면 죄가 없는데도 도에 넘치게 죽였다.
是以天下喪亂,莫不由此。
그래서 천하를 잃고 혼란함이 이에 유래하지 않음이 없었다.
朕今夙夜未嘗不以此爲心,恒欲公等盡情極諫。
짐이 일찍부터 저녁까지 이를 마음쓰지 않음이 없으니 항상 공등이 정을 다하여 지극히 간언하길 바란다.
公等亦須受人諫語,豈得以人言不同己意,便即護短不納?
공등이 또한 다른 사람의 간언을 받으면 이미 사람의 말이 자기의 뜻과 같지 않음을 아는데 곧 단점을 보호하여 들이지 않지 않는가?
若不能受諫,安能諫人?”
만약 간언을 받지 않으면 어찌 다른 사람을 간언하는가?
貞觀六年,太宗以禦史大夫韋挺、中書侍郎杜正倫、秘書少監虞世南、著作郎姚思廉等上封事稱旨,召而謂曰:
정관 6년에 태종이 어사대부 위정, 중서시랑 두정륜, 비서소감 우세남, 저작랑 요사렴등으로 일을 봉하여 뜻을 아뢰니 불러서 말했다.
“朕曆觀自古人臣立忠之事,若值明主,便宜盡誠規諫,至如龍逄、比干,不免孥戮。
짐은 두루 고대 사람의 신하가 충성을 세우는 일을 보니 마치 분명한 군주라도 곧 규의 간을 다하니 용봉, 비간도 자식의 죽음을 면치 못했다.
爲君不易,爲臣極難。
군주가 바꾸지 않으면 신하는 지극히 어렵다.
朕又聞龍可擾而馴,然喉下有逆鱗。
짐은 또한 용은 요란하여도 순종하게 할 수 있는데 후두 아래에 역린이 있다고 들었다.
卿等遂不避犯觸,各進封事。
경등은 범촉함을 피하지 말고, 각각 봉한 일을 말하라.
常能如此,朕豈慮宗社之傾敗!
항상 이에 능하면 짐이 어찌 종묘사직이 기울고 패함을 염려하겠는가?
每思卿等此意,不能暫忘,故設宴爲樂。”
매번 경등이 이 뜻을 생각하여 잠시도 잊지 말으며 그래서 잔치를 열어 즐거움을 삼았다.
仍賜絹有差。
비단을 하사하여 낫게 하였다.

太常卿韋挺嘗上疏陳得失,太宗賜書曰:
태상경 위정이 일찍이 상소로 실정을 진술하니 태종이 글을 하사하며 말했다.
“所上意見,極是讜言,辭理可觀,甚以爲慰。
진상한 의견은 지극히 곧은 말이니 말의 이치를 볼 수 있으며 매우 위로가 된다.
昔齊境之難,夷吾有射鉤之罪,蒲城之役,勃鞮爲斬袂之仇。
예전에 제나라 경계의 난으로 관중[이오]가 제환공의 갈고리를 쏜 죄가 있어서 포성의 노역에는 발제가 진문공의 소매를 벤 원수가 되었다.
而小白不以爲疑,重耳待之若舊。
소백은 의심하지 않고 중이는 그를 예전처럼 대했다.
豈非各吠非主,志在無二。
어찌 각 개가 주인이 아니면 짖음이 뜻이 둘이 아님에 있지 않겠는가?
卿之深誠,見於斯矣。
경의 깊은 진실은 이에 드러난다.
若能克全此節,則永保令名。
만약 이 구절을 완전하게 하면 영구히 이름을 보존하게 할 것이다.
如其怠之,可不惜也。
만약 그것을 권태롭게 여기면 애석하지 않겠는가?
勉勵終始,垂範將來,當使後之視今,亦猶今之視古,不亦美乎?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서 장래에 범절을 드리워서 후대에 지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한 지금이 고대를 봄과 같으니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朕比不聞其過,未睹其闕,賴竭忠懇,數進嘉言,用沃朕懷,一何可道!”
짐이 잘못을 듣지 않으면 빠짐을 목격하지 않고 충성의 간절함을 다함에 의뢰하여 자주 좋은 말을 올리면 내 소회를 적실 것이니 어찌 한번으로 말하겠는가?

貞觀八年,太宗謂侍臣曰:
정관 8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朕每閒居靜坐,則自內省。
짐이 매번 고요히 앉을때 스스로 안으로 반성하였다.
恒恐上不稱天心,下爲百姓所怨。
항상 위로 하늘의 마음을 칭하지 않고 아래로 백성의 원망이 될까 염려하였다.
但思正人匡諫,欲令耳目外通,下無怨滯。
다만 사람을 바로잡아 간할 생각을 하여 귀와 눈을 밖으로 통하려고 하나 아래로 원망과 체념이 없었다.
又比見人來奏事者,多有怖懾,言語致失次第。
또한 사람이 와서 일을 아룀에 비하여 많이 공포와 두려움이 있으니 언어가 순서를 잃게 되었다.
尋常奏事,情猶如此,況欲諫諍,必當畏犯逆鱗。
보통 일을 아뢸때 뜻을 이처럼하니 하물며 간쟁하려고 할때 반드시 역린을 범할까 두려워하였다.
所以每有諫者,縱不合朕心,朕亦不以爲忤。
그래서 매번 간언할 때 비록 짐의 마음과 합하지 않아도 짐 또한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
若即嗔責,深恐人懷戰懼,豈肯更言!”
만약 성내고 책망하여 깊이 사람을 전율하고 두렵게 하면 어찌 말 바꾸길 긍정하겠는가?

貞觀十五年,太宗問魏徵曰:
정관 15년에 태종이 위징을 불러서 말했다.
“比來朝臣都不論事,何也?”
근래에 조정 신하가 모두 일을 논의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徵對曰:“陛下虛心采納,誠宜有言者。然古人 云:
위징이 대답하길 폐하가 빈 마음으로 채집하여 들임에 성의있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사람이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未信而諫,則以爲謗己;信而不諫,則謂之屍祿。’
믿지 않고 간언하게 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기며 믿고서도 간언하지 않으면 녹을 죽인다고 말한다.
但人之才器,各有不同。
다만 사람의 재기는 각각 같지 않음이 있습니다.
懦弱之人,懷忠直而不能言;
유약한 사람은 충직한 말을 품고 말하지 못합니다.
疏遠之人,恐不信而不得言;
소원한 사람은 믿지 못함을 두려워서 말하지 않습니다.
懷祿之人,慮不便身而不敢言。
녹을 품는 사람은 몸이 불편해질까 염려하여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所以相與緘默,俯仰過日。”
그래서 서로 입을 묶어서 침묵하며 숙이고 고갤 들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太宗曰:“誠如卿言。朕每思之,人臣欲諫,輒懼死亡之禍,與夫赴鼎鑊、冒白刃,亦何異哉?
태종이 말하길 진실로 경의 말과 같습니다. 짐이 매번 그것을 생각하면 신하가 간언하려고 하여 곧 죽음의 화가 두렵고 솥으로 삶아지게 되며, 백색 칼날을 무릅써야 하는데 또한 어찌 이상하겠는가?
故忠貞之臣,非不欲竭誠。
그래서 충정의 신하는 성의를 다하려고 하지 않음이 없다.
竭誠者,乃是極難。
성의를 다함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所以禹拜昌言,豈不爲此也!
그래서 우임금이 창성한 말에 절함은 어찌 이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朕今開懷抱,納諫諍。
짐은 지금 회포를 열고 간쟁을 들이려고 한다.
卿等無勞怖懼,遂不極言。”
경등은 공포를 수고롭게 하여 지극한 말이 없게 하지 말라.

貞觀十六年,太宗謂房玄齡等曰:
정관 16년에 태종이 방현령등에게 말했다.
“自知者明,信爲難矣。
스스로 안다고 함은 분명하나 믿기가 어렵다.
如屬文之士,伎巧之徒,皆自謂己長,他人不及。
만약 문장에 속한 선비가 기교의 무리가 모두 스스로 자기의 장점과 타인은 그에 이르지 않음을 말한다.
若名工文匠,商略詆訶,蕪詞拙跡,於是乃見。
만약 이름난 공인과 문장이 있는 장인이 비난함을 생각하여 거친 말과 졸렬한 자취를 내놓음을 이에 볼 수 있다.
由是言之,人君須得匡諫之臣,舉其愆過。
이로부터 말하면 군주는 바르게 간쟁하는 신하를 얻어서 허물과 잘못을 들추어내어야 한다.
一日萬機,一人聽斷,雖復憂勞,安能盡善?
하루에 만가지 계책을 한 사람의 판단을 들으면 비록 근심과 수고로우나 어찌 착함을 다하지 않겠는가?
常念魏徵隨事諫正,多中朕失,如明鏡鑒形,美惡必見。”
항상 위징이 일에 따라서 바로잡으려고 간쟁함을 생각하여 많이 짐의 실수에 적중하기가 마치 밝은 거울로 형체가 비추면 아름답고 추함이 반드시 드러남과 같았다.
因舉觴賜玄齡等數人勖之。
방현련등 몇사람에게 뿔잔을 들어 하사하여 격려하였다.

貞觀十七年,太宗問諫議大夫褚遂良曰:
정관 17년에 태종이 간의대부 저수량에게 말했다.
“昔舜造漆器,禹雕其俎,當時諫者十有餘人。食器之間,何須苦諫?”
예전에 순임금이 칠기를 만들고 우임금이 제기를 조각하게 하는데 당시에 간언하는 사람이 십여명이었다. 식기에도 어찌 고통스런 간언이 필요한가?
遂良對曰:“雕琢害農事,纂組傷女工。首創奢淫,危亡之漸。漆器不已,必金爲之。金器不已,必玉爲之。所以諍臣必諫其漸,及其滿盈,無所復諫。”
저수량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조각하고 쪼음은 농사에 피해가 되며 조를 짬은 여공을 손상합니다. 초창기에 사치가 넘치고 위망이 점차 옵니다. 칠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금으로 만들게 됩니다. 금그릇이 끝나지 않으면 반드시 옥으로 만듦니다. 그래서 간쟁하는 신하가 반드시 점차됨을 간언하여 충만함에 이르니 다시 간하지 않았습니다.
太宗曰:“卿言是矣,朕所爲事,若有不當,或在其漸,或已將終,皆宜進諫。比見前史,或有人臣諫事,遂答云‘業已爲之’,或道‘業已許之’,竟不爲停改。此則危亡之禍,可反手而待也。”
태종이 말하길 경의 말이 옮다. 짐이 일에 만약 부당함이 있고, 혹은 점차됨에 있고 혹은 이미 끝남에 모두 간언을 진언하라. 앞의 역사를 보면 혹은 신하가 일을 간언하며 문답하길 업이 이미 하였다고 말하며 혹은 업이 이미 허락하였다고 하니 마침내 정지해 고치지 않았다. 이는 위망한 화가 손바닥을 뒤집듯이 기다리게 된다.

신촌 이미지 한의원 02-336-7100 정관정요 제 3

卷二 任賢第三(凡八章)
2권 제 3 현명한 사람의 임용
모두 8장이다.

房玄齡 杜如晦 魏徵 王珪 李靖 虞世南 李勣 馬周
방현령 두여회 위징 왕규 이정 우세남 이적 마주

房玄齡,齊州臨淄人也。
방현령은 제주 임치 사람이다.
初仕隋,爲隰城尉。
초기에 수나라에서 벼슬해 습성위가 되었다.
坐事,除名徙上郡。
일에 연좌되어 이름을 제거되어 상군으로 옮겨갔다.
太宗徇地渭北,玄齡杖策謁於軍門,太宗一見,便如舊識,署渭北道行軍記室參軍。
태종이 땅을 두루 가서 위수 북쪽에서 방현령이 군문에서 채찍을 잡고 배알하였는데 태종이 한번 보고 곧 옛 직책처럼 해주며 관직을 위북도의 행군 기실참군으로 하였다.
玄齡既遇知己,遂罄竭心力。
방현령은 이미 자기를 아는 사람을 만나니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是時,賊寇每平,衆人競求金寶,玄齡獨先收人物,致之幕府,及有謀臣猛將,與之潛相申結,各致死力。
이 때에 도적이 매번 평정할 때 여러 사람이 다투어 금과 보배를 경쟁하나 방현령은 홀로 먼저 다른 사람의 사물을 거두어 막부에 보내니 신하의 용맹한 장수가 있다고 하면 함께 몰래 서로 펴서 주며 각각 사력을 다하였다.
累授秦王府記室,兼陝東道大行臺考功郎中。
자주 진왕부기실에 제수되고 섬동도의 행대고공랑중을 겸직하였다.
玄齡在秦府十餘年,恒典管記。
방현령은 진부에서 10여년 있어서 항상 경전을 관리하고 기록했다.
隱太子、巢刺王以玄齡及杜如晦爲太宗所親禮,甚惡之,譖之高祖,由是與如晦並遭驅斥。
은태자와 소자왕이 방현령과 두여회를 태종이 친하고 예우함을 매우 싫어하여 고조에게 참언하여 이로부터 두여회와 함께 배척당하고 몰아내쳤다.
及隱太子將有變也,太宗召玄齡、如晦,令衣道士服,潛引入閤謀議。
은태자가 장차 변고가 있으면 태종이 방현령과 두여회를 불러서 도사의 복장을 하고 몰래 대궐에 들어가서 모의하였다.
及事平,太宗入春宮,擢拜太子左庶子。
일이 평정되자 태종이 춘궁에 들어가게 하여 태자좌서자를 발탁하였다.
貞觀元年,遷中書令。
정관 원년에 중서령으로 옮겨갔다.
三年,拜尚書左仆射,監修國史,封梁國公,實封一千三百戶。
정관 3년에 상서 좌복야에 제수되어 국사를 감수하여 양국공에 봉해지니 실제로 1300호에 봉해졌다.
既總任百司,虔恭夙夜,盡心竭節,不欲一物失所。
여러 벼슬을 모두 임명하여 경건하고 공손하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마음을 다하여 절도를 다하니 한 물건도 잃음이 없고자 했다.
聞人有善,若己有之。
사람의 선행을 들으면 자기에게 있는 듯이 하였다.
明達吏事,飾以文學,審定法令,意在寬平。
관리의 일에 밝게 통달하고 문학으로 꾸미며 법령을 살펴 결정하니 뜻을 관대하고 화평함에 두었다.
不以求備取人,不以己長格物,隨能收敘,無隔疏賤。
다른 사람에게 구하고 갖추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장점으로 사물을 배격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서 거두고 펴니 멀고 천한 사람을 격에 두지 않았다.
論者稱爲良相焉。
논의하는 사람이 좋은 재상이라고 말했다.
十三年,加太子少師,玄齡自以一居端揆十有五年,頻抗表辭位,優詔不許。
정관 13년에 태자소사에 더해지며 방현령은 스스로 15년동안 재상일을 헤아리니 자주 지위를 사양하는 표를 내나 태종은 더욱 조서로 허락하지 않았다.
十六年,進拜司空,仍總朝政,依舊監修國史。
정관 16년에 사공에 배수되고 조정을 총괄하니 예전의 국사를 감수하였다.
玄齡復以年老請致仕,太宗遣使謂曰:
방현령이 다시 나이가 많아서 벼슬길에서 물러나고자 청하니 태종이 사신을 파견하여 말했다.
“國家久相任使,一朝忽無良相,如失兩手。公若筋力不衰,無煩此讓。自知衰謝,當更奏聞。”
국가에 오래 재상으로 임명되어 맡아서 하루 아침에 갑자기 좋은 재상이 없음이 마치 양쪽 손을 잃은 듯합니다. 공이 만약 근력이 쇠하지 않으면 번거로이 자주 사양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쇠약함을 알아서 사양하면 다시 주청하십시오.
玄齡遂止。
방현령이 중지하였다.
太宗又嘗追思王業之艱難,佐命之匡弼,乃作《威鳳賦》以自喻,因賜玄齡,其見稱類如此。
태종이 또한 일찍이 왕사업의 어려움과 방현령의 어명을 도와 보필함을 생각하고 위봉부를 지어 스스로 깨우치니 현령을 하사하니 이와 같이 종류를 칭하였다.

杜如晦,京兆萬年人也。
두여회는 경조 만년 사람이다.
武德初,爲秦王府兵曹參軍,俄遷陝州總管府長史。
무덕초기에 진왕부에 병조참군으로 갑자기 섬주의 총관부장사로 옮겨갔다.
時府中多英俊,被外遷者衆,太宗患之。
진왕부에서 영특하고 준걸이 많아서 외부로 천거된 사람이 많아서 태종이 근심하였다.
記室房玄齡曰:
기실 방현령이 말했다.
“府僚去者雖多,蓋不足惜。杜如晦聰明識達,王佐才也。若大王守藩端拱,無所用之;必欲經營四方,非此人莫可。”
부의 관료가 떠남이 매우 많으니 애석하기에 부족합니다. 두여회가 총명하고 식견이 통달하니 왕을 보좌할 인재입니다. 만약 대왕이 변방을 지킴에 팔짱을 끼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반드시 사방을 경영케 하여야 하니 이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太宗自此彌加禮重,寄以心腹,遂奏爲府屬,常參謀帷幄。
태종이 이로부터 더욱 예의를 중시하여 심복으로 맡기니 상주하여 부속에 두니 항상 장막안에서 참모를 맡겼다.
時軍國多事,剖斷如流,深爲時輩所服。
시기에는 군정의 나라에 일이 많아서 판결을 함에 흐름을 끊음과 같으니 깊이는 이 때의 동료가 복종하였다.
累除天策府從事中郎,兼文學館學士。
자주 천책부의 종사중랑에 제수되고 문학관학사를 겸직하였다.
隱太子之敗,如晦與玄齡功第一,遷拜太子右庶子。
은태자가 패함에 두여회와 방현령의 공로가 제일이여서 태자우서자로 임명되었다.
俄遷兵部尚書,進封蔡國公,實封一千三百戶。
갑자기 병부상서에 옮겨가서 채국공에 봉해지니 실제 봉토가 1300호였다.
貞觀二年,以本官檢校侍中。
정관 2년에 본관으로 시중을 검교케 하였다.
三年,拜尚書右仆射,兼知吏部選事。
정관 3년에 상서우복야아 지리부선사에 겸직하였다.
仍與房玄齡共掌朝政。
두여회는 방현령과 함께 조정을 관장하였다.
至於臺閣規模,典章文物,皆二人所定,甚獲當時之譽,時稱房、杜焉。
대각의 규모, 전장과 문물에 이르기 까지 모두 두 사람이 결정하니 많이 당시대의 명예를 얻으니 때로 방 두라고 칭해졌다.

魏徵,鉅鹿人也,近徙家相州之內黃。
위징은 거록사람으로 근래에 집안이 상주의 내황에 이사갔다.
武德末,爲太子洗馬。
무덕 말기에 태자세마가 되었다.
見太宗與隱太子陰相傾奪,每勸建成早爲之謀。
태종이 은태자와 몰래 서로 투쟁함을 보고 매번 은태자 건성에게 일찍 모의하도록 권했다.
太宗既誅隱太子,召徵責之曰:
태종이 이미 은태자를 죽이고 위징을 불러 책망하면서 말했다.
“汝離間我兄弟,何也?”
너는 내 형제를 왜 이간질했는가?
衆皆爲之危懼。
대중이 모두 위태롭고 놀라했다.
徵慷慨自若,從容對曰:
위징이 강개하여 태연히 대답하였다.
“皇太子若從臣言,必無今日之禍。”
황태자가 신의 말을 만약 따랐다면 반드시 지금의 화가 없을 것입니다.
太宗爲之斂容,厚加禮異,擢拜諫議大夫。
태종이 용안을 거두고 두터이 이상하게 예우하여 간의대부로 발탁하였다.
數引之臥內,訪以政術。
자주 침실안까지 불러들여 정치기술을 물었다.
徵雅有經國之才,性又抗直,無所屈撓。
위징은 우아하며 나라를 경영하는 재주가 있으며 성품이 또한 강직하여 굽힘이 없었다.
太宗每與之言,未嘗不悅。
태종이 매번 그와 더불어 말함에 일찍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徵亦喜逢知己之主,竭其力用。
위징이 또한 지기를 알아주는 군주를 만남을 기뻐하여 힘을 다 썼다.
又勞之曰:“卿所諫前後二百餘事,皆稱朕意,非卿忠誠奉國,何能若是?”
또한 그를 위로하여 말하길 경이 간쟁한 것이 200여일 전후인데 모두 짐의 뜻을 칭하며 경이 충성으로 나라를 받들지 않았으면 어찌 이와 같이 했겠는가?
三年,累遷秘書監,參預朝政,深謀遠算,多所弘益。
3년에 자주 비서감에 옮겨가며 조정에 참여하고 미리하며 깊은 도모와 먼 계산이 많이 널리 이익이 있었다.
太宗嘗謂曰:“卿罪重於中鉤,我任卿逾於管仲,近代君臣相得,寧有似我於卿者乎?”
태종이 일찍이 말하길 경의 죄는 관중이 제환공의 갈고리에 적중시킴보다 크나 내가 관중보다 경을 더 신임하였고, 근대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얻음이 어찌 나와 경 사이와 유사함이 있겠는가/
六年,太宗幸九成宮,宴近臣,長孫無忌曰:
정관 6년에 태종이 구성궁에 행차하여 가까운 신하에게 잔치를 여는데 장손무기가 말했다.
“王珪、魏徵,往事息隱,臣見之若讎,不謂今者又同此宴。”
왕규, 위징은 전에 식은태자를 섬기니 신은 그를 원수처럼 보는데 지금은 또한 같이 잔치함을 말하지 못합니다.
太宗曰:“魏徵往者實我所讎,但其盡心所事,有足嘉者。朕能擢而用之,何慚古烈?徵每犯顏切諫,不許我爲非,我所以重之也。”
태종이 말하길 위징은 전에 실제로 내 원수이나 진심으로 섬기니 족히 아름다움이 있다. 짐이 발탁하여 등용함에 고대의 맹렬함을 부끄러워하겠는가? 위징은 매번 용안을 범하며 적절히 간언하니 내가 잘못함을 허락하지 않으니 내가 그래서 그를 중시한다.
徵再拜曰:“陛下導臣使言,臣所以敢言。若陛下不受臣言,臣亦何敢犯龍鱗,觸忌諱也。”
위징이 다시 절하면서 말하길 폐하가 신을 인도하여 말하게 하나 신은 감히 말하겠습니다. 만일 폐하가 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신 또한 감히 용린을 범하여 꺼림을 접촉하겠습니까?
太宗大悅,各賜錢十五萬。
태종이 크게 기뻐하여 각각 돈 15만전을 하사하였다.
七年,代王珪爲侍中,累封鄭國公。
정관 7년에 왕규가 대신하여 시중이 되어 여러번 승진하여 정국공에 봉해졌다.
尋以疾乞辭所職,請爲散官。
질병으로 사직하려고 말하니 청하여 벼슬을 떠나고자 했다.
太宗曰:“朕拔卿於讎虜之中,任卿以樞要之職,見朕之非,未嘗不諫。
태종이 말하길 짐이 경을 원수와 포로속에서 발탁하여 경을 중요한 관직에 임명하니 짐의 잘못을 발견하면 일찍이 간언하지 않음이 없었다.
公獨不見金之在鑛,何足貴哉?
공은 홀로 금이 광산에 있음을 보지 못하니 어찌 족히 귀하겠는가?
良冶鍛而爲器,便爲人所寶。
잘 단련하여 그릇을 만들면 곧 사람의 보배가 된다.
朕方自比於金,以卿爲良工。
짐이 바로 스스로 황금에 비유하니 공은 좋은 공인이 되어라.
雖有疾,未爲衰老,豈得便爾耶?”
비록 질병이 있어서 노쇠하지 않았는데 어찌 사임하는가?
徵乃止。
위징이 사임을 그쳤다.
後復固辭,聽解侍中,授以特進,仍知門下省事。
뒤에 다시 고사하여 시중을 풀어줄 것을 청하니 특별히 승진하여 제수하니 문하성사가 되었다.
十二年,太宗以誕皇孫,詔宴公卿,帝極歡,謂侍臣曰:
정관 12년에 태종이 황손의 탄생에 공과 경에 잔치를 하명하여 황제가 매우 기뻐하여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貞觀以前,從我平定天下,周旋艱險,玄齡之功無所與讓。
정관 이전에는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여 두루 어려움과 험함을 격고 방현령의 공로를 사양할 수 없다.
貞觀之後,盡心於我,獻納忠讜,安國利人,成我今日功業,爲天下所稱者,惟魏徵而已。
정관 이후에 나에게 마음을 다하여 충간을 들여보내 나라를 편안케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여 내가 지금 공업을 완성하여 천하에 칭해짐이 오직 위징의 공로일 뿐이다.
古之名臣,何以加也。”
고대의 이름난 신하가 어찌 더해지겠는가?
於是親解佩刀以賜二人。
이에 친해 찬 칼을 풀어 두 사람에게 하사하였다.
庶人承乾在春宮,不修德業。
서인이 된 승건은 동궁에 있어서 덕과 학업을 닦지 않았다.
魏王泰寵愛日隆,內外庶寮,咸有疑議。
위왕 태에 대한 총애가 날마다 융성하여 안팎의 관료 모두 논의하였다.
太宗聞而惡之,謂侍臣曰:
태종이 그 소식을 듣고 그것을 싫어하여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當今朝臣,忠謇無如魏徵,我遣傅皇太子,用絕天下之望。”
지금 조정의 신하는 위징처럼 충언과 직간이 없으니 내가 황태자의 스승을 파견하여 천하의 명망을 끊을 것이다.
十七年,遂授太子太師,知門下事如故。
정관 17년에 태자태사에 제수되니 문하사를 예전처럼 보았다.
徵自陳有疾,太宗謂曰:
위징이 스스로 질병이 있음을 진언하니 태종이 말했다.
“太子宗社之本,須有師傅,故選中正,以爲輔弼。知公疹病,可臥護之。”
태자는 종묘와 사직의 근본이며 스승이 있어야 하므로 중용과 바른 사람을 선택하여 보필하게 합니다. 공이 질병이 있음을 아니 누워서 가르쳐도 됩니다.
徵乃就職。
위징이 직에 나아갔다.
尋遇疾。
질병에 만나게 되었다.
徵宅內先無正堂,太宗時欲營小殿,乃輟其材爲造,五日而就。
위징 지방ㄴ에 먼저 정당이 없으니 태종은 그 때 작은 궁전을 짓게 하여 재목을 만들게 하니 5일에 완성하였다.
遣中使賜以布被素褥,遂其所尚。
사자를 파견하여 베 피복과 흰 이불을 하사하여 숭상케 하였다.
後數日,薨。
수일뒤에 그가 죽었다.
太宗親臨慟哭,贈司空,諡曰文貞。
태종이 친히 가서 통곡하며 사공을 추증하고 시호를 문정이라고 하였다.
太宗親爲制碑文,復自書於石。
태종이 친히 비석문장을 지어서 다시 돌에 스스로 글을 썼다.
特賜其家食實封九百戶。
특별이 집안에 식읍을 실제 900호를 봉하였다.
太宗後嘗謂侍臣曰:
태종은 뒤에 일찍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夫以銅爲鏡,可以正衣冠;以古爲鏡,可以知興替;以人爲鏡,可以明得失。朕常保此三鏡,以防己過。今魏徵殂逝,遂亡一鏡矣!”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다. 예전에 거울이 되니 흥망과 대체를 알게 되었다. 삶이 거울이 되니 득실을 밝힐 수 있었다. 짐은 항상 이 3명 거울을 보존하여 자기 과실을 방지하였다. 지금 위징이 죽어 서거하니 한 거울을 잃었구나!
因泣下久之。
울음을 오래 하였다.
乃詔曰:“昔惟魏徵,每顯予過。
조서를 내려 말하길 예전에 위징이 있어서 매번 내 잘못을 드러내 주었다.
自其逝也,雖過莫彰。
서거한 뒤로부터 비록 잘못이 있어도 드러나지 않았다.
朕豈獨有非於往時,而皆是於茲日?
짐이 어찌 홀로 지난때의 잘못을 모두 지금의 날에 옳겠는가?
故亦庶僚苟順,難觸龍鱗者歟!
그래서 또한 여러 관리가 진실로 순종하여 용린을 접촉하기 어렵게 되었다.
所以虛己外求,披迷內省。
그래서 자기를 비게 하여 밖에서 구하여 미혹을 쪼개 안의 반성을 하게되었다.
言而不用,朕所甘心。
말로는 사용하지 않음을 짐이 달게 받아들이겠다.
用而不言,誰之責也?
등용하였은데 간언하지 않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自斯已後,各悉乃誠。
이 이후에 각자 모두 충성을 하여라.
若有是非,直言無隱。”
만약 시비가 있으면 직언하길 숨기지 말라.

신촌 이미지 한의원 02-336-7100 정관정요 제 2 정체

卷一 政體第二(凡十四章)
1권 제2 정체 모두 14장이다.

貞觀初,太宗謂蕭瑀曰:
정관 초기에 당 태종이 소우에게 말했다.
“朕少好弓矢,自謂能盡其妙。近得良弓十數,以示弓工。
짐은 젊어서 화살과 활을 좋아하며 스스로 오묘함을 다하였다고 말했다. 근래에 좋은 활 십수개를 화살 공인에게 보여주었다.
乃曰:‘皆非良材也。’
그가 말하길 모두 좋은 재료가 아닙니다.
朕問其故,工曰:‘木心不正,則脈理皆邪,弓雖剛勁而遣箭不直,非良弓也。’
짐이 그 연고를 묻자 공인이 말하길 나무의 중심이 바르지 않으면 맥의 이치가 모두 사악하며 활이 비록 강하나 화살이 곧지 않으므로 좋은 활이 아닙니다.
朕始悟焉。朕以弧矢定四方,用弓多矣,而猶不得其理。
짐은 비로소 깨달았다. 짐은 활과 화살로 사방을 평정하며 활을 사용함이 많은데 이치를 얻지 못했습니다.
況朕有天下之日淺,得爲理之意,固未及於弓,弓猶失之,而況於理乎?”
하물며 짐이 천하를 다스린 날이 얼마 안되어 이치의 뜻을 얻어서 진실로 활에 이르지 못하며 활에도 그것을 잃었는데 하물며 이치는 어떻겠는가?
自是詔京官五品以上,更宿中書內省。
스스로 조서로 수도의 관리 5품 이상은 다시 중서내성에서 숙직케 하였다.
每召見,皆賜坐與語,詢訪外事,務知百姓利害,政教得失焉。
매번 불러서 모두 자리를 하사하여 더불어 말하며 밖의 일을 자세히 물어서 임무를 백성의 이해와 백성 교화의 득실을 알게 하였다.]

貞觀元年,太宗謂黃門侍郎王珪曰:
정관 원년에 태종이 황문시랑 왕규에게 말했다.
“中書所出詔敕,頗有意見不同,或兼錯失而相正以否。
중서성에서 내는 조칙이 자못 의견이 같지 않음이 있고, 혹은 착오와 실수로 서로 아닌것을 바로잡으려고 함이다.
元置中書、門下,本擬相防過誤。
원래 중서, 문하를 둔 것은 본래 서로 과실과 잘못을 방지하려고 함이다.
人之意見,每或不同,有所是非,本爲公事。
사람의 의견이 매번 혹은 같지 않아 시비가 있으니 본래 공적인 일이다.
或有護己之短,忌聞其失,有是有非,銜以爲怨。
혹은 자기의 단점을 보호함이 있어서 실수를 듣길 꺼리며 옳음이 있고 그릇됨이 있어서 원망을 삼는다.
或有苟避私隙,相惜顏面,知非政事,遂即施行。
혹은 진실로 사사로움 틈을 피하여 서로 안면을 애석하게 여겨 바르지 않는 정사를 알고도 시행한다.
難違一官之小情,頓爲萬人之大弊。
한 관리의 작은 정을 어기기 어려우니 곧 만인의 큰 폐단이 되었다.
此實亡國之政,卿輩特須在意防也。
이는 실로 나라가 망할 정치로 경의 무리는 특별히 이 뜻을 방지해야 한다.
隋日內外庶官,政以依違,而致禍亂,人多不能深思此理。
수나라때 날마다 내외의 여러 관직을 정치 어긋나게 하여 화와 난리를 이르게 하니 사람들이 이 이치를 깊이 생각하지 못함이다.
當時皆謂禍不及身,面從背言,不以爲患。
당시에 모두 화가 자기 몸에 이르지 않게 하고 안면으로는 따르며 등으로 말하니 근심으로 여기지 않았다.
後至大亂一起,家國俱喪,雖有脫身之人,縱不遭刑戮,皆辛苦僅免,甚爲時論所貶黜。
뒤에 큰 혼란이 한번 일어나서 집안과 나라가 모두 잃고 비록 몸의 신분이 박탈되어도 형벌과 죽임을 만나지 않음을 모두 고생하여 겨우 면하니 매우 시론이 폄하되고 쫒겨났다.
卿等特須滅私徇公,堅守直道,庶事相啟沃,勿上下雷同也。”
경등은 특별히 사를 멸하고 공적임을 쫒아서 단단히 곧은 도를 지켜서 여러 일을 서로 열어 적셔주니 위와 아래가 부화뇌동하면 안 된다.

貞觀二年,太宗問黃門侍郎王珪曰:
정관 2년에 태종이 황문시랑 왕규에게 물었다.
“近代君臣治國,多劣於前古,何也?”
근대의 임금과 신하가 나라를 다스림에 앞의 고대보다 많이 용렬함은 어째서입니까?
對曰:“古之帝王爲政,皆志尚清靜,以百姓之心爲心。
대답하길 고대의 제왕이 정치함에 모두 뜻을 청정함을 숭상하여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았습니다.
近代則唯損百姓以適其欲,所任用大臣,復非經術之士。
근대는 오직 백성을 버리고 욕심을 나아가며 대신을 임용할 때 다시 경영하고 재주가 있는 선비가 아닙니다.
漢家宰相,無不精通一經,朝廷若有疑事,皆引經決定,由是人識禮教,理致太平。
한나라의 재상은 한 경전을 정통하지 않음이 없고 조정도 의심되는 일이 있으면 모두 경전을 인용하여 결정하니 이로부터 사람이 예의와 교화를 알고 이치가 태평함에 이르렀습니다.
近代重武輕儒,或參以法律,儒行既虧,淳風大壞。”
근대에는 무예를 중시하고 유학을 경시하여 혹은 법률로 참고하여 유학의 시행이 이미 훼손되니 순조로운 풍조가 크게 무너졌습니다.
太宗深然其言。
태종이 그 말이 심오하다고 여겼다.
自此百官中有學業優長、兼識政體者,多進其階品。
이로부터 모든 관리에 학업이 우월한 사람을 정치의 본체에 겸직하게 하여 많이 품계를 올려주었다.
累加遷擢焉。
자주 천거하고 발탁하게 하였다.

貞觀三年,太宗謂侍臣曰:
정관 3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中書、門下,機要之司。擢才而居,委任實重。
중서, 문하는 틀이 되는 중요한 관직이다. 인재를 발탁하여 살며 맡김이 실제로 중요하다.
詔敕如有不穩便,皆須執論。比來惟覺阿旨順情,唯唯苟過,遂無一言諫諍者,豈是道理?
조서가 온당하고 편하지 않다면 모두 집착하여 논의해야 한다. 근래에 오직 짐의 뜻을 아부하고 정황에 따르며 예예 만 함이 지나치니 한 마디의 간쟁하는 말이 없으니 어찌 도리이겠는가?
若惟署詔敕、行文書而已,人誰不堪?
만약 관청에서 조서와 칙령이며 문서를 운행할 뿐이면 사람이 누가 감당치 못하겠는가?
何煩簡擇,以相委付?
어찌 간택함을 번거롭게 하여 서로 맡기겠는가?
自今詔敕疑有不穩便,必須執言,無得妄有畏懼,知而寢默。”
지금부터 조서와 칙령에 의심스럽게 온당하고 편하지 않으면 반드시 말을 고집하여 망령되이 두려워하지 말고 알아서 잠자면서 침묵하지 않게 하라.

貞觀四年,太宗問蕭瑀曰:
정관 4년에 태종이 소우에게 물었다.
“隋文帝何如主也?”
수문제는 어떻게 군주가 되었습니까?
對曰:“克己復禮,勤勞思政,每一坐朝,或至日昃,五品已上,引坐論事,宿衛之士,傳飱而食,雖性非仁明,亦是勵精之主。”
대답하길 자기를 이겨 예의를 회복하며 근로하여 정치를 생각함에 매번 조정에 앉으면 해가 기울때까지 힘쓰며 5품 이상을 앉아서 정사를 논의하여 숙위의 선비에게 저녁밥을 전달하여 먹게 하니 비록 성품이 인자하고 명확하지 않으나 또한 격려하며 정진하는 군주였습니다.
太宗曰:“公知其一,未知其二。此人性至察而心不明。
태종이 말하길 그대는 하나를 알고 둘을 알지 못한다. 이 사람의 성품이 지극히 관찰하나 마음이 밝지 않다.
夫心暗則照有不通,至察則多疑於物。
마음이 어두우면 비추어도 통하지 않으며 관찰함에는 만물에 의심이 많다.
又欺孤兒寡婦以得天下,恒恐群臣內懷不服,不肯信任百司,每事皆自決斷,雖則勞神苦形,未能盡合於理。
또 고아와 과부를 속여서 천하를 얻어서 여러 신하 안의 회포를 복종시키지 못함을 두려워하며, 모든 관리를 신임하지 못하며 매사에 모두 스스로 결단하여 비록 정신이 피로하고 몸이 고통스러워도 이치에 다 합하지 못했다.
朝臣既知其意,亦不敢直言。
조정 신하가 이미 뜻을 아나 또한 감히 직언하지 못했다.
宰相以下,惟承順而已。
재상 이하는 오직 받들어 순종할 뿐이었다.
朕意則不然,以天下之廣,四海之衆,千端萬緒,須合變通,皆委百司商量,宰相籌畫,於事穩便,方可奏行。
짐의 뜻은 그렇지 않으니 천하가 넓고 사해가 대중이며, 천가지 만가지 실마리가 변통에 합하니 모두 모든 관리에 맡겨 생각게 하며 재상이 계획함에 일의 온당하고 편하면 바로 아뢰어 시행케 하였다.
豈得以一日萬機,獨斷一人之慮也。
어찌 하룻날의 만가지 틀을 홀로 한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겠는가?
且日斷十事,五條不中,中者信善,其如不中者何?
또한 하루에 10일을 판단하면 5조는 적중하지 않고, 적중한 것을 진실로 좋으나 만약 적중하지 못하면 어찌하겠는가?
以日繼月,乃至累年,乖謬既多,不亡何待?
하루로 한달을 계속하면 여러 해에 이르니 이지러지고 오류가 이미 많으니 망하지 않고 어떤것을 기대하겠는가?
豈如廣任賢良,高居深視,法令嚴肅,誰敢爲非?”
어찌 널리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임명하여 높은 지위와 심사숙고를 하게 하여 법령을 엄숙하게 하면 누가 감히 틀리다고 하겠는가?
因令諸司,若詔敕頒下有未穩便者,必須執奏,不得順旨便即施行,務盡臣下之意。
여러 관리에게 명령하여 만약 조서와 칙령의 반포가 온당하고 편하지 않으면 반드시 아뢰게 하여 뜻을 따라서 편하게 시행하지 않음을 신하의 뜻을 힘씀을 다하게 하였다.

貞觀五年,太宗謂侍臣曰:“治國與養病無異也。
정관 5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길 나라를 다스림과 병을 치료함에 차이가 없다.
病人覺愈,彌須將護,若有觸犯,必至殞命。
환자가 나았다고 느껴서 장차 보호하여야 하는데 만약 접촉하여 범하면 반드시 생명을 잃게 된다.
治國亦然,天下稍安,尤須兢慎,若便驕逸,必至喪敗。
나라를 다스림도 또한 그러하니 천하가 조금 안정되어 더욱 삼감을 경쟁해야 하는데 만약 편하게 교만하고 안일하면 반드시 잃고 패함에 이른다.
今天下安危,系之於朕。故日慎一日,雖休勿休。
지금 천하의 편안과 위태로움은 짐에게 매여 있다. 그래서 날마다 하루를 삼감에 비록 쉬어도 쉬지 못한다.
然耳目股肱,寄於卿輩,既義均一體,宜協力同心,事有不安,可極言無隱。
그러나 귀와 눈과 넓적다리와 팔을 경의 무리에 맡겨서 이미 뜻이 일체로 고르며 협력하며 같은 마음으로 일에 불안함이 있으면 온당치 않다고 말한다.
儻君臣相疑,不能脩盡肝膈,實爲國之大害也。”
혹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의심함에 간격을 다 준비치 못하면 실제로 국가의 큰 피해가 된다.

貞觀六年,太宗謂侍臣曰:
정관 6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看古之帝王,有興有衰,猶朝之有暮,皆爲蔽其耳目,不知時政得失,忠正者不言,邪謅者日進,既不見過,所以至於滅亡。
고대의 제왕을 보면 흥기함과 쇠약이 있음에 아침에는 저녁이 있음과 같으니 모두 귀와 눈을 막으면 시대 정치의 득실을 알지 못하며 충정한 사람은 말하지 않고 사악하고 날마다 승진하니
朕既在九重,不能盡見天下事,故布之卿等,以爲朕之耳目。
짐이 이미 구중궁궐에 있어서 천하의 일을 다 보지 못하니 그래서 경등에게 반포하니 짐의 귀와 눈이 되어야 한다.
莫以天下無事,四海安寧,便不存意。
천하에 일이 없고 사해가 편안하여 곧 마음을 보존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可愛非君,可畏非民。
아낄 사람은 군주가 아니며 두려워할 사람은 백성이 아닌가?
天子者,有道則人推而爲主,無道則人棄而不用,誠可畏也。”
천자는 도리가 있으면 사람이 추대하여 군주로 삼고 도리가 없으면 사람이 폐기하여 등용치 않으니 진실로 두려워할만하다.
魏徵對曰:“自古失國之主,皆爲居安忘危,處理忘亂,所以不能長久。
위징이 대답하길 고대부터 나라를 잃은 군주는 모두 편안함을 거처하여 위태로움을 잊고 처리함에 혼란을 잊어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今陛下富有四海,內外清晏,能留心治道,常臨深履薄,國家曆數,自然靈長。
지금 폐하는 부유함이 사해가 있고 안팎이 맑고 편안하여 마음을 머무름에 도를 다스리며 항상 깊은 연못에 있고 엷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여 국가의 역수가 자연히 신령하며 오래가게 되었습니다.
臣又聞古語 云:‘君,舟也;人,水也。水能載舟,亦能覆舟。’陛下以爲可畏,誠如聖旨。”
신이 또한 듣길 고대 말에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싣게 해주나 또한 배를 엎게도 한다고 했습니다. 폐하가 두려워함이 진실로 성인의 뜻과 같습니다.

貞觀六年,太宗謂侍臣曰:
정관 6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古人 云:‘危而不持,顛而不扶,焉用彼相?’君臣之義,得不盡忠匡救乎?
고대 사람이 말하길 위태로우나 지탱하지 않고 엎어지나 돕지 않으면 어찌 재상으로 등용하겠는가? 임금과 신하의 의는 충성을 다하여 바로잡아 구하지 않을 수 있는가?
朕嘗讀書,見桀殺關龍逄,漢誅晁錯,未嘗不廢書歎息。
짐이 일찍이 독서함에 걸왕이 관용봉을 죽이며, 한나라가 조착을 죽일때 일찍이 글을 버려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公等但能正詞直諫,裨益政教,終不以犯顏忤旨,妄有誅責。
공등은 다만 바른 말과 곧은 간언으로 정치와 교화를 도와 더해주며 마침내 용안을 침범하여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니 망령되이 책임을 베어버립니다.
朕比來臨朝斷決,亦有乖於律令者。
짐이 근래에 조정에 임하여 판결할 때 또한 율령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公等以爲小事,遂不執言。
공 등은 작은 일로 여겨서 말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凡大事皆起於小事,小事不論,大事又將不可救,社稷傾危,莫不由此。
큰 일이 모두 작은 일에서 일어나니 작은 일을 거론하지 않으면 큰 일은 또한 장차 구할 수 없으니 사직이 기울어 위태로움이 이로부터 유래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隋主殘暴,身死匹夫之手,率土蒼生,罕聞嗟痛。
수나라 군주가 잔혹하고 포악하여 몸은 필부의 손에 죽어서 땅의 백성들이 드물게 탄식하고 애통해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公等爲朕思隋氏滅亡之事,朕爲公等思龍逄、晁錯之誅,君臣保全,豈不美哉!”
공 등은 짐을 위해 수나라 시대가 멸망한 일을 생각하고 짐은 공 등이 관용봉, 조착의 죽음을 생각하면 임금과 신하가 보존함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貞觀七年,太宗與秘書監魏徵從容論自古理政得失,因曰:
정관 7년에 태종이 비서감 위징과 조용히 고대부터 정치를 다스리는 득실을 논의하다가 말했다.
“當今大亂之後,造次不可致化。”
지금 큰 혼란이 있은 뒤에 잠시 교화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徵曰:“不然,凡人在危困,則憂死亡。憂死亡,則思化。思化,則易教。然則亂後易教,猶饑人易食也。”
위징이 말하길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위험과 곤궁에 있으면 사망을 근심합니다. 사망을 근심하면 교화를 생각합니다. 교화를 생각하면 가르침을 쉽습니다. 그러므로 난리된 뒤 교화가 쉬움은 굶주린 사람이 쉽게 먹음과 같습니다.
太宗曰:“善人爲邦百年,然後勝殘去殺。大亂之後,將求致化,寧可造次而望乎?”
태종이 말하길 선량한 사람이 나라를 백년간 다스린 연후에 잔혹함을 이기며 살인이 없어집니다. 크게 혼란한 뒤에 교화에 이름을 구하나 어찌 잠시 바라겠습니까?
徵曰:“此據常人,不在聖哲。若聖哲施化,上下同心,人應如響,不疾而速,期月而可,信不爲難,三年成功,猶謂其晚。”
위징이 말하길 이는 보통사람을 근거함이며, 성인과 철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성인과 철인이 교화를 시행하면 위와 아래가 같은 마음으로 사람이 메아리처럼 은하며 서두르지 않고도 빠르니 1달이면 가능하니 진실로 어렵지 않고 3년이면 성공함도 늦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太宗以爲然。
태종이 그렇다고 여겼다.
封德彝等對曰:“三代以後,人漸澆訛,故秦任法律,漢雜霸道,皆欲理而不能,豈能化而不欲?若信魏徵所說,恐敗亂國家。”
봉덕이 등이 대답하길 3대이후로 사람이 점차 경박하고 그릇되므로 진나라는 법률을 임명하며, 한나라는 패권과 도를 섞었고, 모두 다스리고자 하나 그렇지 못하며 어찌 교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겠습니까? 만약 위징의 말을 믿으면 국가가 패하고 혼란될까 염려됩니다.
徵曰:“五帝、三王,不易人而化。
위징이 말하길 5제와 3왕은 백성을 바꾸지 않고 교화하였습니다.
行帝道則帝,行王道則王,在於當時所理,化之而已。
황제의 도를 행하면 황제이며, 왕의 도를 행하면 왕이니 당시의 다스림에 있어서 교화하였을 뿐입니다.
考之載籍,可得而知。
전적을 고찰하면 알 수 있습니다.
昔黃帝與蚩尤七十餘戰,其亂甚矣,既勝之後,便致太平。
예전에 황제와 치우가 70여년간 전쟁하여 혼란이 심하나 이미 이긴 뒤에는 곧 태평하게 되었습니다.
九黎亂德,顓頊征之,既克之後,不失其化。
9려가 도덕을 혼란케 하여 전욱이 그들을 정벌하니 이미 이긴 뒤에는 교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桀爲亂虐,而湯放之,在湯之代,即致太平。
걸은 혼란하고 포악하여 탕임금이 그를 내쫒고, 탕의 시대에서는 태평하게 되었습니다.
紂爲無道,武王伐之,成王之代,亦致太平。
주왕이 도가 없어서 무왕이 그를 정벌하니 성왕이 대신하여 또한 태평함에 이르렀습니다.
若言人漸澆訛,不及純樸,至今應悉爲鬼魅,寧可復得而教化耶?”
만약 사람이 점차 경박하고 잘못되어 순박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면 지금에 모두 귀신과 도깨비가 되니 어찌 다시 교화할 수 있겠습니까?
德彝等無以難之,然 咸以爲不可。
봉덕이 등이 어렵다고 하지 않으니 모두 불가하다고 여겼다.
太宗每力行不倦,數年間,海內康寧,突厥破滅。
태종이 매번 힘써 실행함에 권태롭지 않아서 수년간에 중국안이 편안하며 돌궐을 격파하여 멸망케 했다.
因謂群臣曰:“貞觀初,人皆異論,云當今必不可行帝道、王道,惟魏徵勸我。
여러 신하에게 말하길 정관초기에 사람들이 모두 이론이 있어서 지금 시대에는 반드시 황제의도, 왕도의 시행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오직 위징이 나를 격려하였다.
既從其言,不過數載,遂得華夏安寧,遠戎賓服。
이미 그의 말을 따라서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중국이 편안해지며 먼 오랑캐가 손님으로 복종하게 되었다.
突厥自古以來,常爲中國勍敵,今酋長並帶刀宿衛,部落皆襲衣冠,使我遂至於此,皆魏徵之力也。”
돌궐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항상 중국을 강하고 적대시하여 지금 추장이 칼을 차고 숙위하며 부락이 모두 의관을 입으며 내가 이에 이르게 되니 모두 위징의 힘이다.
顧謂徵曰:“玉雖有美質,在於石間,不值良工琢磨,與瓦礫不別。若遇良工,即爲萬代之寶。朕雖無美質,爲公所切磋,勞公約朕以仁義,弘朕以道德,使朕功業至此,公亦足爲良工爾。”
위징을 돌아보면 말하길 옥이 비록 좋은 바탕이나 돌 사이에 있으니 좋은 공인이 쪼개고 갈지 않으면 기와 자갈과 구별되지 못합니다. 만약 좋은 공인을 만나면 만대의 보배가 됩니다. 짐이 비록 아름다운 자질이 아니나 공이 갈고 닦아서 공이 짐을 인의로써 수고하게 하며 짐을 도덕으로 넓히니 짐의 공업이 이에 이르르니 공은 또한 족히 좋은 공인이 됩니다.

貞觀八年,太宗謂侍臣曰:
정관 8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隋時百姓縱有財物,豈得保此?自朕有天下已來,存心撫養,無有所科差,人人皆得營生,守其資財,即朕所賜。向使朕科喚不已,雖數資賞賜,亦不如不得。”
수나라 시대의 백성이 비록 재물에서 어찌 이를 보전하겠는가? 짐이 천하를 평정한 이래로 마음을 어루만짐과 기름에 두어서 차이가 없으며 사람마다 모두 생명을 영위케 하며 바탕과 재물을 지켜 짐이 하사하였다. 짐을 향하여 울부짖음이 그치지 않으니 비록 몇가지 재물로 상을 하사하여도 또한 얻지 않음이 없었다.
魏徵對曰:“堯、舜在上,百姓亦云‘耕田而食,鑿井而飲’,含哺鼓腹,而云‘帝何力’於其間矣。
위징이 대답하길 요임금과 순임금이 재위시에 백성이 또한 말하길 밭을 갈고 먹으며 우물을 파서 마시며 배불리 먹어 배를 두드리니 황제의 힘이 무엇인가란 말이 있었습니다.
今陛下如此含養,百姓可謂日用而不知。”
지금 폐하가 이처럼 함양하면 백성이 날마다 씀에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又奏稱:“晉文公出田,逐獸於碭,入大澤,迷不知所出。
또한 아뢰어 칭하길 진문공이 밭을 나가서 탕에 짐승을 몰아내며 큰 연못에 들어가서 미혹하여 나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其中有漁者,文公謂曰:‘我,若君也,道將安出?我且厚賜若’
그 속에 어부가 있어 문공이 말하길 내가 군주라면 길이 장차 어디로 나오며, 나는 또한 후사하겠다.
漁者曰:‘臣願有獻。’
어부가 말하길 신은 바치려고 함이 있습니다.
文公曰:‘出澤而受之。’於是送出澤。
문공이 말하길 연못을 나가면 받겠다고 하니 이에 연못을 나오게 되었다.
文公曰:‘今子之所欲教寡人者,何也?願受之。’
진문공이 말하길 지금 그대가 과인에게 가르치려고 함이 무엇인가? 받길 원합니다.
漁者曰:‘鴻鵠保河海,厭而徙之小澤,則有矰丸之憂。黿鼉保深淵,厭而出之淺渚,必有釣射之憂。今君逐獸碭,入至此,何行之太遠也?’
어부가 말하길 큰 기러기와 고니는 강과 바다를 보존하여 싫으면 작은 못으로 이사가니 주살과 탄환의 근심이 있습니다. 자라와 악어가 깊은 연못에서 보존하여 싫어서 얕은 저수지로 나오면 반드시 낙시와 쏘게되는 근심이 있습니다. 지금 군주가 수탕을 쫒고 이에 이르니 어찌 행차가 이리도 멉니까?
文公曰:‘善哉!’謂從者記漁者名。
진문공이 말하길 좋다 시종에게 어부의 이름을 적게 하였다.
漁者曰:‘君何以名?爲君尊天事地,敬社稷,保四國,慈愛萬民,薄賦斂,輕租稅,臣亦與焉。君不尊天,不事地,不敬社稷,不固四海,外失禮於諸侯,內逆民心,一國流亡,漁者雖有厚賜,不得保也。’
어부가 말하길 임금께서는 왜 이름을 적습니까? 임금은 하늘을 존중하고 땅을 섬기며, 사직을 공경하며 사국을 보존하며, 만민을 자애롭게 하며, 세금을 거둠을 엷게 하며 조세를 경감해주니 신 또한 더불수 있습니다. 군주가 하늘을 존중하지 않고 땅을 섬기지 않고 사직을 공경하지 않고 사해를 견고케 여기지 않으면 외부로 제후에게 예를 잃고 안으로 백성 마음을 거스르니 한 나라의 지속과 멸망에 어부가 비록 후사하여도 보존할 수 없다.
遂辭不受。”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太宗曰:“卿言是也。”
태종이 말하길 경은 이 말을 했다.

貞觀九年,太宗謂侍臣曰:
정관 9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往昔初平京師,宮中美女珍玩,無院不滿。
예전에 초기에 경사가 궁중의 미녀가 보배를 주어 원에 그득차지 않았다.
煬帝意猶不足,徵求無已,兼東西征討,窮兵黷武,百姓不堪,遂致亡滅。
양제가 부족하다고 여기며 징발하여 구하길 그치지 않고, 동서로 정벌과 토벌을 하여 병사를 다하여 무예를 욕되게 하니 백성이 감당치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
此皆朕所目見。
이는 모두 짐이 보는 바이다.
故夙夜孜孜,惟欲清淨,使天下無事。
그래서 이른 저녁에 화목하여 청정하여 천하에 일이 없게 하려고 했다.
遂得徭役不興,年穀豐稔,百姓安樂。
부역이 흥기하지 않고 해마다 곡식이 풍년이며 백성이 안락하였다.
夫治國猶如栽樹,本根不搖,則枝葉茂榮。
나라를 다스림이 나무를 심음과 같으니 근본이 요동하지 않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영화로웠다.
君能清淨,百姓何得不安樂乎?”
군주가 청정하여 백성이 어찌 안락함을 얻지 못하는가?

貞觀十六年,太宗謂侍臣曰:
정관 16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或君亂於上,臣理於下;或臣亂於下,君治於上。二者苟逢,何者爲甚?”
혹 군주가 위에서 혼란하며 신하가 아래에서 다스리게 하였다. 혹은 신하가 아래에서 혼란하며, 임금이 위에서 다스리게 하였다. 2가지가 만나면 어찌 심하게 되는가?
特進魏徵對曰:
특별이 위징을 나가게 하여 말했다.
“君心治,則照見下非。誅一勸百,誰敢不畏威盡力?若昏暴於上,忠諫不從,雖百里奚、伍子胥之在虞、吳,不救其禍,敗亡亦繼。”
군주가 마음다해서 치료함에 신하를 비추어 보면 잘못이 있습니다. 한번 벌주어 백을 권선하면 감히 위엄을 두려워하여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위 군주가 어둡고 사나워서 충간이 따르지 않으면 비록 백리해, 오자서가 우나라, 오나라에 있어서 화를 구제하지 못하니 패망함이 또한 따르게 됩니다.
太宗曰:“必如此,齊文宣昏暴,楊遵彥以正道扶之得治,何也?”
태종이 말하길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하니 제나라 문선제가 어둡고 포악하여도 양준언이 도를 바로잡아 도와서 다스림이 어떠하였습니까?
徵曰:“遵彥彌縫暴主,救理蒼生,才得免亂,亦甚危苦。與人主嚴明,臣下畏法,直言正諫,皆見信用,不可同年而語也。”
위징이 말하길 양준언이 포악한 군주를 미봉하여 백성을 구제하여 다스려서 겨우 난리를 면하고 또한 매우 위태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사람의 군주가 엄격하고 분명하며 신하가 법을 두려워하여 직언으로 정당하게 간하면 모두 믿어 사용하니 같은 해의 말이 아닙니다.

貞觀十九年,太宗謂侍臣曰:
정관 19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朕觀古來帝王,驕矜而取敗者,不可勝數。
짐이 고대 이래로 제왕까지 교만하고 뻐겨서 패한 사람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不能遠述古昔,至如晉武平吳、隋文伐陳已後,心逾驕奢,自矜諸己,臣下不復敢言,政道因茲弛紊。
고대 애석함을 멀리 기술할 수 없으니 진나라 무제가 오나라를 평정하고 수나라 무제가 진나라를 정벌한 이후에 마음이 교만과 사치를 넘어서 스스로 뻐겨서 신하가 다시 감히 말하지 못하니 정치의 도가 이에 느슨하고 문란하였습니다.
朕自平定突厥、破高麗已後,兼並鐵勒,席卷沙漠以爲州縣,夷狄遠服,聲教益廣。
짐이 돌궐을 평정하고 고구려를 깨뜨린 이후에 철륵을 병합하여 사막까지 주와 현으로 자리하며 동이와 북적을 멀리 정복하니 소리와 교화가 더욱 넓어졌습니다.
朕恐懷驕矜,恒自抑折,日旰而食,坐以待晨。
짐은 교만과 긍지를 뻐기며 항상 스스로 누르고 햇볕이 성하면 먹고 앉아서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每思臣下有讜言直諫,可以施於政教者,當拭目以師友待之。
매번 신하가 직간이 있으면 정치의 교화를 시행하니 눈을 비비고 스승과 벗으로 기대하였습니다.
如此,庶幾於時康道泰爾。”
이와 같이 거의 시기가 편안하고 도가 태평하게 되었습니다.
太宗自即位之始,霜旱爲災,米穀踴貴,突厥侵擾,州縣騷然。
태종이 즉위할 때 서리와 가뭄이 재앙이 되어 미곡이 귀해지니 돌궐이 침범해 소란하며 주와 현이 소란하였다.
帝志在憂人,銳精爲政,崇尚節儉,大布恩德。
황제가 뜻을 사람의 근심에 두어 정을 날카롭게 함을 정치로 삼아서 예절과 청렴을 숭상하여 크게 은덕을 베풀었다.
是時,自京師及河東、河南、隴右,饑饉尤甚,一匹絹才得一斗米。
이 때에 수도에서부터 하북, 하남, 농우까지 기근이 더욱 심하여 한 필의 비단이 겨우 한 말의 쌀과 가격이 같았다.
百姓雖東西逐食,未嘗嗟怨,莫不自安。
백성이 비록 동서로 먹을 것을 쫒아서 일찍이 탄식하고 원망하나 스스로 편안하지 않음이 없다.
至貞觀三年,關中豐熟,咸自歸鄉,竟無一人逃散,其得人心如此。
정관 3년에 이르면 관중이 풍요롭고 익어서 모두 마을에 돌아오니 한 사람도 도망가고 흩어짐이 없으니 사람 마음을 얻음이 이와 같았다.
加以從諫如流,雅好儒術,孜孜求士,務在擇官,改革舊弊,興復制度,每因一事,觸類爲善。
간언을 따라함이 흘러감과 같으니 유학의 기술을 우아하게 좋아하고 부지런하게 선비를 구하며 임무는 관리의 선택에 있고 예전의 폐단을 개혁하며 제도를 흥기하여 회복하며 매번 한 일에 원인하여서는 무리에 접촉하면 좋게 된다.
初,息隱、海陵之黨,同謀害太宗者數百千人,事寧,後引居左右近侍,心術豁然,不有疑阻。
초기에 식은 해릉의 당이 함께 모의하여 태종을 시해하려는 사람이 수백 수천명으로 일이 편해져서 뒤에 좌우의 가까운 신하가 마음을 넓히니 의심되고 막힘이 없었다.
時論以爲能斷決大事,得帝王之體。
때에 논의하길 큰일을 결단함에 제왕의 몸을 얻었다고 한다.
深惡官吏貪濁,有枉法受財者,必無赦免。
깊이 탐관오리의 혼탁을 싫어하고 법을 굽혀 재물을 받으면 반드시 사면하지 않았다.
在京流外有犯贓者,皆遣執奏,隨其所犯,寘以重法。
수도에 밖에 범하고 해침이 있으니 모두 잡는 사람을 파견하여 침범하여도 중법으로 받아들인다.
由是官吏多自清謹。
이로부터 관리가 많이 청정하고 삼가게 되었다.
制馭王公、妃主之家,大姓豪猾之伍,皆畏威屏跡,無敢侵欺細人。
왕공과 왕비 공주의 집을 통제함에 대성의 호족과 교활한 무리가 모두 위엄으로 자취를 감추니 감히 침범하여 사람을 속이지 못했다.
商旅野次,無復盜賊,囹圄常空,馬牛布野,外戶不閉。
상인과 나그네가 들에 머무르니 다시 도적질을 안 하며 항상 공간에 갇혀서 말과 소가 들판에 퍼지니 지게문밖을 닫지 않았다.
又頻致豐稔,米斗三四錢,行旅自京師至於嶺表,自山東至於滄海,皆不齎糧,取給於路。
또한 자주 풍년이 들어서 쌀 한말이 3,4전으로 여행객이 수도에서 영표에 이르고 산동에서 창해에 이르니 모두 식량을 가져오지 않고 도로에서 공급하였다.
入山東村落,行客經過者,必厚加供待,或發時有贈遺。
산동의 촌락에 들어가서 손님이 경과함에 반드시 두터이 제공하고 기대하니 혹은 발생할때에 선물을을 주었다.
此皆古昔未有也。
이는 모두 고대와 예전에도 없었다.

신촌 이미지 한의원 02-336-7100 정관정요 군도 제2 원문 및 한글번역

是月,徵又上疏曰:
이 달에 위징은 또한 상소하여 말했다.
臣聞求木之長者,必固其根本;
신은 나무가 자람을 구함에 반드시 근본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欲流之遠者,必浚其泉源;
강의 흐름이 멀려면 반드시 원천을
思國之安者,必積其德義。
나라가 편안하게 생각하려면 반드시 덕과 의를 쌓아야 한다.
源不深而望流之遠,根不固而求木之長,德不厚而思國之理,臣雖下愚,知其不可,而況於明哲乎!
근원이 깊지 않고 강이 멀길 바라며 근본이 견고치 않고, 나무가 자라길 구하며, 덕이 두텁지 않고, 나라가 다스려진다고 생각하면 신이 비록 아주 어리석어도 불가함을 아니 하물며 명철한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人君當神器之重,居域中之大,將崇極天之峻,永保無疆之休。
군주는 그릇이 무거움을 알고 영역이 큼에 살며, 하늘의 준렬함을 궁국으로 하여 영원히 끝이 없는 아름다움을 보존한다.
不念居安思危,戒奢以儉,德不處其厚,情不勝其欲,斯亦伐根以求木茂,塞源而欲流長者也。
편안함에 거처하여 위험을 생각하며 검소함으로 사치를 경계하며, 덕은 두터움에 거처하지 않고 정은 욕심을 이기지 못하니 또한 근본을 쳐서 나무가 무성함을 구하며, 근원을 막아 흐름이 길고자 함이다.
凡百元首,承天景命,莫不殷憂而道著,功成而德衰。
여러 원수[군주]는 빛나는 천명을 이어서 근심하여 도가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며 공이 완성되며 덕이 쇠약해진다.
有善始者實繁,能克終者蓋寡,豈取之易而守之難乎?
잘 시작하면 실제가 번잡함이 있으면 마침을 이겨서 적음을 덮으니 어찌 쉽게 취하여 지키기 어렵겠습니까?
昔取之而有餘,今守之而不足,何也?
예전에 취함에 남음이 있고 지금 지킴에 부족함이 어떻습니까?
夫在殷憂,必竭誠以待下;
매우 근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의를 다하여 아래를 기다립니다.
既得志,則縱情以傲物。
이미 뜻을 얻으면 정이 방종해지며 사물에 오만해집니다.
竭誠則胡越爲一體,傲物則骨肉爲行路。
성의를 다하면 호와 월나라가 한 몸이 되며 사물에 오만하면 골육이 행로가 됩니다.
雖董之以嚴刑,震之以威怒,終苟免而不懷仁,貌恭而不心服。
비록 엄벌의 형벌이 더해지며, 위협적인 분노로 진노하며 마침내 면하여 인을 품지 않고 모습이 공경하나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습니다.
怨不在大,可畏惟人,載舟覆舟,所宜深慎,奔車朽索,其可忽乎!
원망이 큰 곳에 있지 않고 오직 사람을 두려워하며, 물은 배를 싣고 배를 엎으니 깊이 두려워햐야 하며 수레를 달리는데 썩은 줄로 하니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君人者,誠能見可欲則思知足以自戒,將有作則思知止以安人,念高危則思謙沖而自牧,懼滿溢則思江海下百川,樂盤遊則思三驅以爲度,憂懈怠則思慎始而敬終,慮壅蔽則思虛心以納下,想讒邪則思正身以黜惡,恩所加則思無因喜以謬賞,罰所及則思無因怒而濫刑。
군주는 진실로 욕심을 보나 족함을 알음을 생각하여 스스로 경계하며 장차 일어나면 멈춤을 생각하여 알아 사람을 편안케 하며, 높고 위험함을 생각하여 겸손함을 생각하여 스스로 다스리니 그득차며 넘침을 두려워하며 강과 바다가 모든 하천을 아래에 있음을 생각하고 사냥하려 할때는 세곳으로 몰 생각을 하여 한도로 삼고 근심하고 나태할 때는 시작에 삼감을 생각하고 끝까지 공경하며, 눈과 귀가 막힘을 생각할 때는 빈 마음으로 아래를 들일 생각을 하며 참설과 사악함을 생각할때는 생각으로 몸을 바로잡아 악함을 내쫒으며, 더함을 은혜로울때는 기쁨으로 잘못 상주지 않게 하며, 벌이 이름에는 분노로 하여 형벌이 넘치게 하지 않습니다.
總此十思,宏茲九德,簡能而任之,擇善而從之。
모두 이것이 10가지 생각이며 이 9덕을 넓히며, 능력있는 사람을 써서 맡기며, 착한 사람을 선택하여 따르게 합니다.
則智者盡其謀,勇者竭其力,仁者播其惠,信者效其忠。
지혜로움에 도모를 다하며 용감함에는 힘을 다하며, 인자함에는 은혜를 베풀며, 믿음에는 충성을 본받습니다.
文武爭馳,君臣無事,可以盡豫遊之樂,可以養松、喬之壽,鳴琴垂拱,不言而化。
문과 무가 다투어 달리며 임금과 신하가 일이 없고 유희의 즐거움을 다 할 수 있으며 적송자와 왕자교의 장수를 배양할 수 있고 거문고를 울리며 소매를 늘어뜨리며 말하지 않고도 교화가 됩니다.
何必勞神苦思,代下司職,役聰明之耳目,虧無爲之大道哉!
하필 정신을 피로하게 하여 고통스러운 생각으로 아랫사람을 대신하여 관직을 맡아서 총명한 귀와 눈을 부리면 무위의 대도를 휴손하게 됩니다.
太宗手詔答曰:
태종이 손수 조서를 내려 답하였다.
省頻抗表,誠極忠款,言窮切至。
자주 표를 살피니 진실로 충성과 정성을 다하니 말이 지극히 간절하다.
披覽忘倦,每達宵分。
열어 보면 권태로움을 잊고 매번 한 밤중까지도 이르렀다.
非公體國情深,啟沃義重,豈能示以良圖,匡其不及。
공이 나라를 위해 몸소 사정이 깊으려 열어 비옥하게 하여 뜻이 무겁지 아니면 어찌 좋은 의도를 보여서 이르지 못함까지 바로잡겠는가?
朕聞晉武帝自平吳已後,務在驕奢,不復留心治政。
짐이 진무제가 평오에서부터 끝난 뒤에 교만과 사치를 힘써서 다시 마음을 정치에 두지 않았다고 들었다.
何曾退朝謂其子劭曰:
하증이 조정에서 물러나 자식인 하소에게 말했다.
“吾每見主上不論經國遠圖,但說平生常語,此非貽厥子孫者,爾身猶可以免。”
내가 매번 주상을 알현함에 국가의 경륜과 원대한 도모를 논의하지 않고 다만 평생의 일상 말만 말하니 이는 그 자손에 이르지 않으니 몸에 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指諸孫曰:“此等必遇亂死。”
여러 자손을 지칭하여 말하길 이런 무리는 반드시 혼란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及孫綏,果爲淫刑所戮。
자손 하수에 이르러 과연 넘치는 형벌로 죽게 되었다.
前史美之,以爲明於先見。
앞의 역사는 그를 찬미하여 선견지명이 있다고 하였다.
朕意不然,謂曾之不忠其罪大矣。
짐의 뜻은 그렇지 않으니 일찍이 불충한 죄가 크다고 말한다.
夫爲人臣,當進思盡忠,退思補過,將順其美,匡救其惡,所以共爲理也。
군주의 신하가 되어서는 생각을 진상하여 충성을 다하며 물러서 생각하기에 잘못을 보완하여 아름다움을 순조롭게 하며 악행을 바로잡아 구제하여 함께 다스려야 한다.
曾位極台司,名器崇重,當直辭正諫,論道佐時。
하증의 위치가 태사를 다하여 명성과 그릇이 숭상되고 존중되어 직접 말이 바르게 간해야 하는데 논의하는 도로 시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今乃退有後言,進無廷諍,以爲明智,不亦謬乎!
지금 물러남에 뒷말이 있고 나아감에 간쟁함이 없음을 분명한 지혜로 여기면 또한 그릇되지 않는다.
危而不持,焉用彼相?
위태로운데 지니지 않으면 어찌 저런 재상을 등용하겠는가?
公之所陳,朕聞過矣。
공의 진술함에 짐도 잘못을 들었다.
當置之幾案,事等弦、韋。
상소문을 책상에 두고 무두질한 가죽과 활시위처럼 마음을 바로 잡았다.
必望收彼桑榆,期之歲暮,不使康哉良哉,獨美於往日,若魚若水,遂爽於當今。
반드시 저 뽕나무와 느릅나무가지가 있는 서쪽을 바라서 해가 저물때를 기약하여 편안하고 좋게 하지 않고 홀로 가는 해를 찬미하며 임금과 신하의 사이가 물처럼 고기처럼되지 지금에는 상쾌하다.
遲復嘉謀,犯而無隱。
늦게라도 다시 좋은 도모를 하여 나를 범하나 숨김이 없게 하라.
朕將虛襟靜志,敬佇德音。
짐은 장차 빈 흉금으로 뜻을 고요하게 하여 공경하여 덕스러운 말을 오래하였다.
貞觀十五年,太宗謂侍臣曰:
정관 15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守天下難易?”
천하를 지킴이 어려운가 쉬운가?
侍中魏徵對曰:“甚難。”
시중 위징이 대답하여 말하길 매우 어렵다고 하였다.
太宗曰:“任賢能、受諫諍,即可,何謂爲難?”
태종이 말하길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맡기며 간쟁을 받으면 가능한데 어찌 어렵다고 말하는가?
徵曰:“觀自古帝王,在於憂危之間,則任賢受諫。及至安樂,必懷寬怠,言事者惟令兢懼,日陵月替,以至危亡。聖人所以居安思危,正爲此也。安而能懼,豈不爲難?”
위징이 말하길 고대의 제왕으로부터 보면 근심하고 위태로운 사이에 있어서 현명한 사람을 임명하여 간쟁을 받았습니다. 편안함에 이르러 반드시 생각이 느슨하고 권태로워서 말과 일이 다투어 두려우니 날이 가고 달이 교체하여 위급하고 망함에 이릅니다. 성인이 편안함에 거처함에 위태로움을 생각함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편안하여도 두려울 수 있는데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신촌 이미지 한의원 02-336-7100 정관정요 군도 제1 원문 및 한글번역

卷一 君道第一(凡五章)
1권 군도 제일 5장



貞觀初,太宗謂侍臣曰:
정관 초기에 태종이 신하에게 말했다.
“爲君之道,必須先存百姓,若損百姓以奉其身,猶割股以啖腹,腹飽而身斃。
임금이 되는 도리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보존하고 만약 백성을 손상하여 자기 몸을 받듦은 넓적다리를 베어서 배를 먹임과 유사하니 배가 불러도 몸은 피폐해진다.
若安天下,必須先正其身,未有身正而影曲,上治而下亂者。
만약 천하를 편안케 하려면 반드시 먼저 몸을 바른데 그림자가 굽고 위가 다스려지나 아래가 혼란함은 없다.
朕每思傷其身者不在外物,皆由嗜欲以成其禍。
짐이 매번 몸을 손상하여 밖의 사물에 두지 않고 모두 기호와 욕심으로 화를 생성하였다.
若躭嗜滋味,玩悅聲色,所欲既多,所損亦大,既妨政事,又擾生民。
만약 자양된 음식을 즐기고 소리와 여색을 즐겨 기뻐하며 욕심이 이미 많으며 손상함 또한 크니 이미 정사를 방해하고 또한 백성을 요란하게 한다.
且復出一非理之言,萬姓爲之解體,怨讟既作,離叛亦興。
또한 다시 한 이치가 없는 말이 만백성의 몸은 풀어지며, 원망이 이미 생기니 민심의 이반이 또한 흥기한다.
朕每思此,不敢縱逸。”
짐이 매번 이를 생각하니 감히 방종하고 안일할 수 없다.
諫議大夫魏徵對曰:
간의대부 위징이 대답하여 말했다.
“古者聖哲之主,皆亦近取諸身,故能遠體諸物。
고대의 성왕과 철인의 군주는 모두 가까이로 자신의 몸에서 취하므로 멀리로는 만물에는 본받습니다.
昔楚聘詹何,問其理國之要。
예전에 초나라는 첨하를 초빙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요점을 물었습니다.
詹何對以修身之術。
첨하가 몸을 닦는 기술로 대답하였습니다.
楚王又問理國何如?
초나라 왕은 또한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물었습니다.
詹何曰:‘未聞身理而國亂者。”
첨하가 말하길 몸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혼란해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陛下所明,實同古義。”
폐하가 밝으면 실체가 고대의 뜻과 같습니다.

貞觀二年,太宗問魏徵曰:
정관 2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何謂爲明君暗君?
무엇을 밝은 군주와 어두운 군주라고 말함인가?
徵曰:“君之所以明者,兼聽也;其所以暗者,偏信也。
위징이 대답하길 임금이 밝다는 것은 함께 듣는 것이며, 어둡다는 것은 치우처서 믿음입니다.
《詩》云:‘先人有言,詢於芻蕘。’
시경에 말하길 선대 사람의 말에 나무꾼에게도 자세히 물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昔唐、虞之理,辟四門,明四目,達四聰。
예전에 당나라와 우나라의 사람은 4방의 문을 열고 4방의 눈을 밝히며 4방의 총명함에 도달한다고 했습니다.
是以聖無不照,故共、鯀之徒,不能塞也;
그래서 성인이 비추지 않음이 없으므로 공공과 곤의 무리도 막지 못했습니다.
靖言庸回,不能惑也。
편안한 말과 용렬한 돌림도 의혹하지 못합니다.
秦二世則隱藏其身,捐隔疏賤而偏信趙高,及天下潰叛,不得聞也。
진나라 2세황제(胡亥)가 몸을 감추어 숨김에 버리고 간격에 두어 소원하고 천하게 여기며 오로지 환관 조고만 믿어서 천하를 무너지고 반란하게 하니 듣지 못함입니다.
梁武帝偏信朱異,而侯景舉兵向闕,竟不得知也。
양나라 무제가 치우쳐 주이만 믿고, 후경이 병사를 일으켜 대궐에 향하여도 마침내 알지 못했습니다.
隋煬帝偏信虞世基,而諸賊攻城剽邑,亦不得知也。
수나라 양제는 치우쳐 우세기를 믿어서 여러 적이 도성을 공격하고 읍을 노략질하여도 또한 알지 못했다.
是故人君兼聽納下,則貴臣不得壅蔽,而下情必得上通也。”
그래서 옛 임금은 아랫사람의 말을 들어 들이면 귀족의 신하라도 백성의 말을 막을 수 없으니 백성의 실정을 반드시 위로 통하게 됩니다.
太宗甚善其言。
태종은 그 말을 매우 좋게 여겼다.

貞觀十年,太宗謂侍臣曰:
정관 10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帝王之業,草創與守成孰難?”
제왕의 업에 창업과 수성중에 어떤것이 어렵습니까?
尚書左仆射房玄齡對曰:
상서 좌부야 방현령이 대답하였다.
“天地草昧,群雄競起,攻破乃降,戰勝乃克。由此言之,草創爲難。”
천지의 어두움에 여러 영웅이 다투어 일어나며 공격하여 깨뜨려야 항복하며 전쟁에서 이겨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하면 창업이 어렵습니다.
魏徵對曰:“帝王之起,必承衰亂。覆彼昏狡,百姓樂推,四海歸命,天授人與,乃不爲難。
위징이 대답하길 제왕이 일어남에 반드시 쇠약하고 혼란함을 이어 받습니다. 엎어지며 어두움에 이르고 백성이 즐겨 추대하여 중국이 천명에 귀의하며 하늘이 사람에게 주니 어렵게 됩니다.
然既得之後,志趣驕逸,百姓欲靜而徭役不休,百姓凋殘而侈務不息,國之衰弊,恒由此起。
그러나 이미 얻은 뒤에 뜻이 크고 안일해지며, 백성이 고요하고자 하나 역사가 그치지 않으며 백성이 시들고 잔멸하여 사치함에 힘쓰길 쉬지 않으며 국가가 쇠락하고 피폐하니 항상 이로부터 생깁니다.
以斯而言,守成則難。”
이로써 말하면 수성이 어렵습니다.
太宗曰:“玄齡昔從我定天下,脩嘗艱苦,出萬死而遇一生,所以見草創之難也。
태종이 말하길 방현련은 예전에 나를 따라서 천하를 평정하여 일찍이 갖은 고생을 하여 만번 죽을것을 구사일생하여 그래서 창업의 어려움을 보았다.
魏徵與我安天下,慮生驕逸之端,必踐危亡之地,所以見守成之難也。
위징은 나와 함께 천하를 편안케 하여 생각이 교만하고 안일한 폐단을 낳아서 반드시 위급한 지경을 밟으니 그래서 수성이 어려움을 보았다.
今草創之難,既已往矣,守成之難者,當思與公等慎之。
지금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가고 수성의 어려움이 항상 그대와 함께 신중히 하고 있다.
貞觀十一年,特進魏徵上疏曰:
정관 11년에 특별히 위징이 상소를 올렸다.
臣觀自古受圖膺運,繼體守文,控禦英雄,南面臨下,皆欲配厚德於天地,齊高明於日月,本支百世,傳祚無窮。
신이 고대로부터 하도를 받고 운을 받아서 몸소 문장을 계속 지키며 영웅을 당기고 막아서 남면하면서 아래를 임하니 모두 천지에 덕을 두터이 하고자 하며, 해와 달처럼 나란히 높고 밝고자 하며 백세에 근본과 가지를 만듦이 끝이 없습니다.
然而克終者鮮,敗亡相繼,其故何哉?
그러나 끝까지 한 나라가 드물고 패망이 서로 이어짐이 어떤 이유가 있겠습니까?
所以求之,失其道也。
그것을 구해보면 도를 잃어서입니다.
殷鑒不遠,可得而言。
은나라의 귀감이 멀지 않음이 말할 수 있습니다.
昔在有隋,統一寰宇,甲兵強銳,三十餘年,風行萬里,威動殊俗。
예전에 수나라에서 통일하여 한 수도권과 천하가 있으니 갑병이 강하고 날카롭고 30여년이며 바람이 만리를 가니 위엄의 움직임이 풍속과 달랐습니다.
一旦舉而棄之,盡爲他人之有。
하루아침에 들렸다 잃게 되니 다 다른 사람에게 있게 됩니다.
彼煬帝豈惡天下之治安,不欲社稷之長久,故行桀虐,以就滅亡哉!
저 양제는 어찌 천하가 편안하게 다스려짐을 싫어하고 사직의 장구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만 행실이 포악하며 멸망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恃其富強,不虞後患。
부강함만 믿으니 후환을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驅天下以從欲,罄萬物而自奉,采域中之子女,求遠方之奇異。
천하가 욕심을 따르게 하며 만물을 다하게 하여 스스로 받들어 영역중의 자녀를 뽑아서 먼 지방의 기이함을 구하였습니다.
宮苑是飾,臺榭是崇,徭役無時,干戈不戢。
궁전과 동산을 꾸미며 대와 사당을 숭상하여 부역을 때가 없이 하며, 방패와 창으로 전쟁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外示嚴重,內多險忌,讒邪者必受其福,忠正者莫保其生。
외부로 존엄과 귀중함을 보이며 안은 험악과 꺼림이 많으며 참소와 사악한 사람이 반드시 복을 받고 충정을 가진 사람이 생명을 보존하지 못했습니다.
上下相蒙,君臣道隔,民不堪命,率土分崩。
상하가 서로 뒤집어 쓰며, 임금과 신하의 길이 떨어지며 백성이 명을 감당치 못하니 국토가 나뉘고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遂以四海之尊,殞於匹夫之手,子孫殄絕,爲天下笑,可不痛哉!
중국의 존중은 필부의 손에 떨어지고 자손이 다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니 애통하지 않겠습니까?
聖哲乘機,拯其危溺,八柱傾而復正,四維弛而更張。
성인과 철인이 기회를 타고 위태로운 빠짐을 돕고 8기둥이 기울면 다시 바로잡고 4유가 느슨해지면 다시 펴게 하였습니다.
遠肅邇安,不逾於期月;
엄숙함은 멀고 편안함을 가까워서 시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勝殘去殺,無待於百年。
승자와 남은 사람이 죽이니 국가가 백년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今宮觀臺榭,盡居之矣;
지금 궁전의 대와 사당을 보면 모두 있게 됩니다.
奇珍異物,盡收之矣;
진기한 기이한 물건을 다 거두었습니다.
姬 姜 淑 媛,盡侍於側矣。
미녀인 희, 강, 숙, 원은 모두 옆에서 전하를 모십니다.
四海九州,盡爲臣妾矣。
사해와 구주는 모두 신과 첩이 됩니다.
若能鑒彼之所以失,念我之所以得,日慎一日.
만약 저들의 실수를 거울삼아 내 얻음을 헤아리면 날마다 하루를 삼가게 됩니다.
雖休勿休,焚鹿臺之寶衣,毀阿房之廣殿,懼危亡於峻宇,思安處於卑宮,則神化潛通,無爲而治,德之上也。
비록 쉬려해도 쉬지 못하며 녹대의 보배와 옷을 불사르며 아방궁의 넓은 궁전을 훼손하나 높은 집의 존망을 두려워하며 낮은 궁궐의 편안한 곳을 생각하면 신의 조화가 잠겨 통하며 인위가 없이 다스려지니 덕의 최상이 됩니다.
若成功不毀,即仍其舊,除其不急,損之又損。
만약 성공하여 훼손하지 않고 옛것을 이어서 급하지 않음을 제거하고 덜어내고 또 덜어냅니다.
雜茅茨於桂棟,參玉砌以土堦,悅以使人,不竭其力,常念居之者逸,作之者勞,億兆悅以子來,群生仰而遂性,德之次也。
계수나무에 잡다한 띠로 지붕을 이어서 흙 섬돌을 만들어서 기쁘게 사람을 시켜서 힘을 다하지 않고 항상 생각을 안일하게 하며 노력을 하며 억조창생이 기쁘게 오니 무리가 우러르며 성에 다다르며 덕의 순서대로 합니다.
若惟聖罔念,不慎厥終,忘締構之艱難,謂天命之可恃,忽采椽之恭儉,追雕牆之靡麗,因其基以廣之,增其舊而飾之,觸類而長,不知止足,人不見德,而勞役是聞,斯爲下矣。
오직 성인이 생각이 없이 그 끝을 삼가지 않고, 얽혀맨 어려움을 잊으며 천명을 믿을만하며, 갑자기 서까래를 채집하여 삼가고 검소하여 조각된 담장을 아름답게 하여 터로 하여 넓히며, 오래된 것을 더하여 꾸미니 접촉하여 자라서 만족을 알지 못하니 사람이 덕을 보지 못하니 노역의 고통만 들리니 이것이 아래이다.
譬之負薪救火,揚湯止沸,以暴易亂,與亂同道,莫可測也,後嗣何觀!
비유컨대 땔나무를 짊어지고 불을 구하며 탕을 흔들어 끓음을 멎게 하며 폭력으로 혼란을 바꾸며, 혼란으로 함께 함을 측정할 수 없으니 후대에 대를 이음을 어찌 보겠는가?
夫事無可觀則人怨,人怨則神怒,神怒則災害必生,災害既生,則禍亂必作,禍亂既作,而能以身名全者鮮矣。
일이 보지 못하면 사람이 원망하며, 사람이 원망하면 신이 노하며, 신이 노하면 재해가 반드시 생기며, 재해가 이미 생기면 화와 혼란이 반드시 생기니 화와 혼란이 이미 생기면 몸과 이름이 완전한 사람이 드물다.
順天革命之後,將隆七百之祚,貽厥子孫,傳之萬葉,難得易失,可不念哉!
하늘에 따른 혁명의 뒤에 장차 700의 복이 융성하여 그 자손에 이르니 전하길 만가지 잎과 같은 자손이며, 얻기 어렵고 잃기 쉬우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