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二 求諫第四(凡十一章)
2권 간언을 구함 제 4
모두 11장이다.
太宗威容儼肅,百僚進見者,皆失其舉措。
태종이 위엄있는 용모와 엄숙함으로 여러 관리들이 나아가 알현할 때 모두 일 조치를 실수하였다.
太宗知其若此,每見人奏事,必假顏色,冀聞諫諍,知政教得失。
태종이 이와 같음을 알고 매번 사람을 만나서 일을 주청할때를 보면 반드시 안색을 꾸며서 간쟁을 바라 듣고자 하며 정교의 득실을 알고자 했다.
貞觀初,嘗謂公卿曰:
정관 초기에 일찍이 공경들에게 말했다.
“人欲自照,必須明鏡;主欲知過,必藉忠臣。主若自賢,臣不匡正,欲不危敗,豈可得乎?
사람이 스스로 비추고자 하면 반드시 밝은 거울이 될 것입니다. 군주가 잘못을 알고자 하면 반드시 충신에 기대게 됩니다. 군주가 만약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신하가 바로잡지 않으면 위패롭고 패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렇게 되겠습니까?
故君失其國,臣亦不能獨全其家。
그래서 군주가 나라를 잃고 신 또한 홀로 집안을 완전히 할 수 없습니다.
至於隋煬帝暴虐,臣下鉗口,卒令不聞其過,遂至滅亡,虞世基等,尋亦誅死。
수양제의 포학할시기에는 신하가 입을 칼을 물려서 마침내 잘못을 듣지 않으려고 하여 멸망함에 이르니 우세기등은 또한 벌로 죽었다.
前事不遠,公等每看事有不利於人,必須極言規諫。”
앞의 일이 멀지 않으니 공 등은 매번 일을 보아 사람에게 불리함이 있으면 반드시 지극한 말과 간언을 하여라.
貞觀元年,太宗謂侍臣曰:
정관 원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正主任邪臣,不能致理,正臣事邪主,亦不能致理。惟君臣相遇,有同魚水,則海內可安。朕雖不明,幸諸公數相匡救,冀憑直言鯁議,致天下太平。”
바른 군주가 사악한 신하를 임명하면 다스리지 못하며 바른 신하가 사악한 군주를 섬기면 또한 이치에 나아가지 못한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만나길 물과 물고기와 같음이 있으면 중국이 편안하게 된다. 짐이 비록 밝지 않으나 다행히 여러 공이 몇 번 도와 바로잡아 구하여 직언과 바른 논의를 바라니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諫議大夫王珪對曰:
간의 대부 왕규가 대답하여 말했다.
“臣聞木從繩則正,後從諫則聖。
신이 듣기로 나무가 먹줄을 따라서 바라지며 뒤에 간언을 따라서 성인이 된다고 합니다.
是故古者聖主必有爭臣七人,言而不用,則相繼以死。
그래서 고대에 성왕은 반드시 간쟁하는 신하가 7명이 있고 말을 듣고 등용하지 않으면 서로 죽음으로 계속하였습니다.
陛下開聖慮,納芻蕘,愚臣處不諱之朝,實願罄其狂瞽。”
폐하가 성스러운 생각을 열어서 꼴 베는 머슴이나 나무꾼의 의견까지 들으면 어리석은 신이 꺼림이 없는 조정에 있으니 실제로 어리석고 몽매한 소견이라도 울리고자 합니다.
太宗稱善,詔令自是宰相入內平章國計,必使諫官隨入,預聞政事。
태종이 착하다고 말하며 조서에 스스로 재상으로부터 들어와 국가의 계책을 평화롭게 드러내게 하니 반드시 간관을 따라 들어오게 하여 미리 정사를 들었다.
有所開說,必虛己納之。
말을 함에 반드시 자기를 낮추어 들었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
정관 2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明主思短而益善,暗主護短而永愚。隋煬帝好自矜誇,護短拒諫,誠亦實難犯忤。虞世基不敢直言,或恐未爲深罪。昔箕子佯狂自全,孔子亦稱其仁。及煬帝被殺,世基合同死否?”
군주가 단점을 생각하고 더욱 좋아지나, 어리석은 군주는 단점을 보호하여 영원히 어리석다. 수양제가 스스로 뻐기고 과장함을 좋아하여 단점을 보호하고 간언을 막아서 진실로 또한 실제로 범하고 거스르기 어려웠다. 우세기가 감히 직언하지 않으며 혹은 아직 직언하지 못함이 깊은 죄가 되었다. 예전에 기자가 거짓으로 미쳐서 스스로를 보존하나 공자는 그를 인하다고 칭하였다. 수양제가 피살되니 우세기가 함께 죽지 않았는가?
杜如晦對曰:
두여회가 대답하였다.
“天子有諍臣,雖無道不失其天下。仲尼稱:‘直哉史魚,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
천자에는 간쟁하는 신하가 있으니 비록 천자가 무도하여도 천하를 잃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길 정직하구나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처럼 곧았다.
世基豈得以煬帝無道,不納諫諍,遂杜口無言?
우세기가 어찌 수양제가 무도하여 간쟁을 받아들이지 않자 입을 막고 말을 안했겠습니까?
偷安重位,又不能辭職請退,則與箕子佯狂而去,事理不同。
귀중한 위치의 편안함을 훔치며 또한 사직하여 물러남을 청하지 않으며 기자가 거짓으로 미쳐서 떠나니 사리가 같지 않습니다.
昔晉惠帝賈後將廢湣懷太子,司空張華竟不能苦爭,阿意苟免。
예전에 진혜제때 가후가 민회태자를 폐하려고 하였는데 사공 장화가 힘을 다하여 고통스럽게 간쟁하지 못하고 아첨하는 뜻으로 구차하게 모면했습니다.
及趙王倫舉兵廢後,遣使收華,華曰:
조왕 윤이 군사를 일으켜 폐지한 뒤에 사신을 파견하여 장화를 잡으니 장화가 말했습니다.
‘將廢太子日,非是無言,當不被納用。’
태자를 폐하는 날을 폐기하니 실제로 말이 없음이 아니며, 간납하여 사용되지 못해서입니다.
其使曰:‘公爲三公,太子無罪被廢,言既不從,何不引身而退?’
사신이 말하길 공은 3공이 되며 태자는 죄가 없이 폐기되니 말이 이미 따르지 않으니 어찌 몸을 당겨 물러나지 않았는가?
華無辭以答,遂斬之,夷其三族。
장화가 대답할 말이 없자 드디어 베어지니 3족을 죽였습니다.
古人有 云:‘危而不持,顛而不扶,則將焉用彼相?’
고대 사람이 말하길 위험한데 지탱하지 못하며, 엎어지는데 붙들지 못하면 장차 저를 재상으로 등용하겠는가?
故‘君子臨大節而不可奪也。’
그래서 군자가 중대한 절목에 임하면 빼앗을 수 없다.
張華既抗直不能成節,遜言不足全身,王臣之節固已墜矣。
장화가 이미 곧게 항거하여 절목을 이루지 못하며 겸손한 말로 몸을 온전히 하기에도 부족하니 왕의 신하의 절도로 이미 추락하였습니다.
虞世基位居宰輔,在得言之地,竟無一言諫諍,誠亦合死。”
우세기는 위치가 재상으로 보좌함에 말할 곳을 얻었으나 마침내 한 마디의 간쟁도 없으니 진실로 또한 죽음에 합당합니다.
太宗曰:“公言是也。人君必須忠良輔弼,乃得身安國寧。
태종이 말하길 공의 말이 옳다. 사람의 군주가 반드시 충성스럽고 어질게 보필하여야 몸이 편안하며 국가가 편안하다.
煬帝豈不以下無忠臣,身不聞過,惡積禍盈,滅亡斯及。
수양제가 어찌 아래로 충신이 없겠는가? 몸이 잘못함을 들으면 악이 쌓이고 화가 차니 멸망함에 이르렀다.
若人主所行不當,臣下又無匡諫,苟在阿順,事皆稱美,則君爲暗主,臣爲諛臣,君暗臣諛,危亡不遠。
만약 군주의 행실이 부당하면 신하가 또한 바로잡고 간하지 않으면 진실로 아첨하여 순종하면서 일이 모두 아름답다고 칭찬하면 군주는 어두운 군주가 되며 신하는 아첨하는 신하가 되어 군주가 어둡고 신하가 아첨하면 위급과 멸망이 멀지 않다.
朕今志在君臣上下,各盡至公,共相切磋,以成治道。
짐이 지금 뜻을 군신의 상하에 두어 각각 공까지 다하게 하며 함께 서로 끊고 갈아서 치도를 이루고자 한다.
公等各宜務盡忠讜,匡救朕惡,終不以直言忤意,輒相責怒。”
공등은 각각 충성과 직언을 다함에 힘쓰고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구하며 마침내 직언으로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 서로 책망하고 분노할 것이다.
貞觀三年,太宗謂司空裴寂曰:
정관 3년에 태종이 사공 배숙에게 말했다.
“比有上書奏事,條數甚多,朕總黏之屋壁,出入觀省。所以孜孜不倦者,欲盡臣下之情。每一思政理,或三更方寢。亦望公輩用心不倦,以副朕懷也。”
군주에게 글로 일을 상주함에 비하여 조문 수가 매우 많으나 짐은 모두 집 벾에 붙여서 출입하면서 보고 살핀다. 부지런히 권태롭지 않으며 신하의 정을 다해야 한다. 매번 한 생각으로 정치를 다스리며 혹은 3번 고치고 곧 잔다. 또한 공의 무리가 마음을 씀을 권태롭게 하지 않으며 짐의 마음에 부합하고자 하라.
貞觀五年,太宗謂房玄齡等曰:
정관 5년에 태종이 방현령등에게 말했다.
“自古帝王多任情喜怒,喜則濫賞無功,怒則濫殺無罪。
고대 황제와 왕으로부터 많이 정의 기쁨과 분노를 맡겨서 기쁘면 공로가 없는데 상을 넘치게 주며, 분노하면 죄가 없는데도 도에 넘치게 죽였다.
是以天下喪亂,莫不由此。
그래서 천하를 잃고 혼란함이 이에 유래하지 않음이 없었다.
朕今夙夜未嘗不以此爲心,恒欲公等盡情極諫。
짐이 일찍부터 저녁까지 이를 마음쓰지 않음이 없으니 항상 공등이 정을 다하여 지극히 간언하길 바란다.
公等亦須受人諫語,豈得以人言不同己意,便即護短不納?
공등이 또한 다른 사람의 간언을 받으면 이미 사람의 말이 자기의 뜻과 같지 않음을 아는데 곧 단점을 보호하여 들이지 않지 않는가?
若不能受諫,安能諫人?”
만약 간언을 받지 않으면 어찌 다른 사람을 간언하는가?
貞觀六年,太宗以禦史大夫韋挺、中書侍郎杜正倫、秘書少監虞世南、著作郎姚思廉等上封事稱旨,召而謂曰:
정관 6년에 태종이 어사대부 위정, 중서시랑 두정륜, 비서소감 우세남, 저작랑 요사렴등으로 일을 봉하여 뜻을 아뢰니 불러서 말했다.
“朕曆觀自古人臣立忠之事,若值明主,便宜盡誠規諫,至如龍逄、比干,不免孥戮。
짐은 두루 고대 사람의 신하가 충성을 세우는 일을 보니 마치 분명한 군주라도 곧 규의 간을 다하니 용봉, 비간도 자식의 죽음을 면치 못했다.
爲君不易,爲臣極難。
군주가 바꾸지 않으면 신하는 지극히 어렵다.
朕又聞龍可擾而馴,然喉下有逆鱗。
짐은 또한 용은 요란하여도 순종하게 할 수 있는데 후두 아래에 역린이 있다고 들었다.
卿等遂不避犯觸,各進封事。
경등은 범촉함을 피하지 말고, 각각 봉한 일을 말하라.
常能如此,朕豈慮宗社之傾敗!
항상 이에 능하면 짐이 어찌 종묘사직이 기울고 패함을 염려하겠는가?
每思卿等此意,不能暫忘,故設宴爲樂。”
매번 경등이 이 뜻을 생각하여 잠시도 잊지 말으며 그래서 잔치를 열어 즐거움을 삼았다.
仍賜絹有差。
비단을 하사하여 낫게 하였다.
太常卿韋挺嘗上疏陳得失,太宗賜書曰:
태상경 위정이 일찍이 상소로 실정을 진술하니 태종이 글을 하사하며 말했다.
“所上意見,極是讜言,辭理可觀,甚以爲慰。
진상한 의견은 지극히 곧은 말이니 말의 이치를 볼 수 있으며 매우 위로가 된다.
昔齊境之難,夷吾有射鉤之罪,蒲城之役,勃鞮爲斬袂之仇。
예전에 제나라 경계의 난으로 관중[이오]가 제환공의 갈고리를 쏜 죄가 있어서 포성의 노역에는 발제가 진문공의 소매를 벤 원수가 되었다.
而小白不以爲疑,重耳待之若舊。
소백은 의심하지 않고 중이는 그를 예전처럼 대했다.
豈非各吠非主,志在無二。
어찌 각 개가 주인이 아니면 짖음이 뜻이 둘이 아님에 있지 않겠는가?
卿之深誠,見於斯矣。
경의 깊은 진실은 이에 드러난다.
若能克全此節,則永保令名。
만약 이 구절을 완전하게 하면 영구히 이름을 보존하게 할 것이다.
如其怠之,可不惜也。
만약 그것을 권태롭게 여기면 애석하지 않겠는가?
勉勵終始,垂範將來,當使後之視今,亦猶今之視古,不亦美乎?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서 장래에 범절을 드리워서 후대에 지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한 지금이 고대를 봄과 같으니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朕比不聞其過,未睹其闕,賴竭忠懇,數進嘉言,用沃朕懷,一何可道!”
짐이 잘못을 듣지 않으면 빠짐을 목격하지 않고 충성의 간절함을 다함에 의뢰하여 자주 좋은 말을 올리면 내 소회를 적실 것이니 어찌 한번으로 말하겠는가?
貞觀八年,太宗謂侍臣曰:
정관 8년에 태종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했다.
“朕每閒居靜坐,則自內省。
짐이 매번 고요히 앉을때 스스로 안으로 반성하였다.
恒恐上不稱天心,下爲百姓所怨。
항상 위로 하늘의 마음을 칭하지 않고 아래로 백성의 원망이 될까 염려하였다.
但思正人匡諫,欲令耳目外通,下無怨滯。
다만 사람을 바로잡아 간할 생각을 하여 귀와 눈을 밖으로 통하려고 하나 아래로 원망과 체념이 없었다.
又比見人來奏事者,多有怖懾,言語致失次第。
또한 사람이 와서 일을 아룀에 비하여 많이 공포와 두려움이 있으니 언어가 순서를 잃게 되었다.
尋常奏事,情猶如此,況欲諫諍,必當畏犯逆鱗。
보통 일을 아뢸때 뜻을 이처럼하니 하물며 간쟁하려고 할때 반드시 역린을 범할까 두려워하였다.
所以每有諫者,縱不合朕心,朕亦不以爲忤。
그래서 매번 간언할 때 비록 짐의 마음과 합하지 않아도 짐 또한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
若即嗔責,深恐人懷戰懼,豈肯更言!”
만약 성내고 책망하여 깊이 사람을 전율하고 두렵게 하면 어찌 말 바꾸길 긍정하겠는가?
貞觀十五年,太宗問魏徵曰:
정관 15년에 태종이 위징을 불러서 말했다.
“比來朝臣都不論事,何也?”
근래에 조정 신하가 모두 일을 논의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徵對曰:“陛下虛心采納,誠宜有言者。然古人 云:
위징이 대답하길 폐하가 빈 마음으로 채집하여 들임에 성의있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사람이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未信而諫,則以爲謗己;信而不諫,則謂之屍祿。’
믿지 않고 간언하게 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기며 믿고서도 간언하지 않으면 녹을 죽인다고 말한다.
但人之才器,各有不同。
다만 사람의 재기는 각각 같지 않음이 있습니다.
懦弱之人,懷忠直而不能言;
유약한 사람은 충직한 말을 품고 말하지 못합니다.
疏遠之人,恐不信而不得言;
소원한 사람은 믿지 못함을 두려워서 말하지 않습니다.
懷祿之人,慮不便身而不敢言。
녹을 품는 사람은 몸이 불편해질까 염려하여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所以相與緘默,俯仰過日。”
그래서 서로 입을 묶어서 침묵하며 숙이고 고갤 들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太宗曰:“誠如卿言。朕每思之,人臣欲諫,輒懼死亡之禍,與夫赴鼎鑊、冒白刃,亦何異哉?
태종이 말하길 진실로 경의 말과 같습니다. 짐이 매번 그것을 생각하면 신하가 간언하려고 하여 곧 죽음의 화가 두렵고 솥으로 삶아지게 되며, 백색 칼날을 무릅써야 하는데 또한 어찌 이상하겠는가?
故忠貞之臣,非不欲竭誠。
그래서 충정의 신하는 성의를 다하려고 하지 않음이 없다.
竭誠者,乃是極難。
성의를 다함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所以禹拜昌言,豈不爲此也!
그래서 우임금이 창성한 말에 절함은 어찌 이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朕今開懷抱,納諫諍。
짐은 지금 회포를 열고 간쟁을 들이려고 한다.
卿等無勞怖懼,遂不極言。”
경등은 공포를 수고롭게 하여 지극한 말이 없게 하지 말라.
貞觀十六年,太宗謂房玄齡等曰:
정관 16년에 태종이 방현령등에게 말했다.
“自知者明,信爲難矣。
스스로 안다고 함은 분명하나 믿기가 어렵다.
如屬文之士,伎巧之徒,皆自謂己長,他人不及。
만약 문장에 속한 선비가 기교의 무리가 모두 스스로 자기의 장점과 타인은 그에 이르지 않음을 말한다.
若名工文匠,商略詆訶,蕪詞拙跡,於是乃見。
만약 이름난 공인과 문장이 있는 장인이 비난함을 생각하여 거친 말과 졸렬한 자취를 내놓음을 이에 볼 수 있다.
由是言之,人君須得匡諫之臣,舉其愆過。
이로부터 말하면 군주는 바르게 간쟁하는 신하를 얻어서 허물과 잘못을 들추어내어야 한다.
一日萬機,一人聽斷,雖復憂勞,安能盡善?
하루에 만가지 계책을 한 사람의 판단을 들으면 비록 근심과 수고로우나 어찌 착함을 다하지 않겠는가?
常念魏徵隨事諫正,多中朕失,如明鏡鑒形,美惡必見。”
항상 위징이 일에 따라서 바로잡으려고 간쟁함을 생각하여 많이 짐의 실수에 적중하기가 마치 밝은 거울로 형체가 비추면 아름답고 추함이 반드시 드러남과 같았다.
因舉觴賜玄齡等數人勖之。
방현련등 몇사람에게 뿔잔을 들어 하사하여 격려하였다.
貞觀十七年,太宗問諫議大夫褚遂良曰:
정관 17년에 태종이 간의대부 저수량에게 말했다.
“昔舜造漆器,禹雕其俎,當時諫者十有餘人。食器之間,何須苦諫?”
예전에 순임금이 칠기를 만들고 우임금이 제기를 조각하게 하는데 당시에 간언하는 사람이 십여명이었다. 식기에도 어찌 고통스런 간언이 필요한가?
遂良對曰:“雕琢害農事,纂組傷女工。首創奢淫,危亡之漸。漆器不已,必金爲之。金器不已,必玉爲之。所以諍臣必諫其漸,及其滿盈,無所復諫。”
저수량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조각하고 쪼음은 농사에 피해가 되며 조를 짬은 여공을 손상합니다. 초창기에 사치가 넘치고 위망이 점차 옵니다. 칠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금으로 만들게 됩니다. 금그릇이 끝나지 않으면 반드시 옥으로 만듦니다. 그래서 간쟁하는 신하가 반드시 점차됨을 간언하여 충만함에 이르니 다시 간하지 않았습니다.
太宗曰:“卿言是矣,朕所爲事,若有不當,或在其漸,或已將終,皆宜進諫。比見前史,或有人臣諫事,遂答云‘業已爲之’,或道‘業已許之’,竟不爲停改。此則危亡之禍,可反手而待也。”
태종이 말하길 경의 말이 옮다. 짐이 일에 만약 부당함이 있고, 혹은 점차됨에 있고 혹은 이미 끝남에 모두 간언을 진언하라. 앞의 역사를 보면 혹은 신하가 일을 간언하며 문답하길 업이 이미 하였다고 말하며 혹은 업이 이미 허락하였다고 하니 마침내 정지해 고치지 않았다. 이는 위망한 화가 손바닥을 뒤집듯이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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