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란 팔리어로 vipassan입니다. vi라는 접두사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뛰어나다(visesa)는 의미와 다양성(vividha)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몸, 마음, 느낌, 법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즉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행동이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즉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면서도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모두 느낌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에 느낌이 별도로 포함됩니다. 또한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다양한 대상을 법이라고 합니다. 위파사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띠(sati)라고 하는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은 기억이란 뜻과 알아차림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이라는 것을 현재 알아차릴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먹을 때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외부 사물에 끌려다닙니다. 즉 티 브이를 보면서, 인터넷 하면서,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지 먹는 것 자체에만 징중을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금방 먹게 되며 음식에 대한 고마움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단지 배가 차면 그 때서야 포만감으로 뿌듯한 느낌을 들지만 허릿살이 늘어나며 몸에 해로울 뿐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목적은 음식을 통해서 생명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입니다. 즉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먹습니다. 배부른 육식동물이 사냥을 하는 것을 언제 보았습니까? 미물인 동물들도 배 부른 시기에는 짐승을 잡아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배가 불러도 먹고, 배가 고파도 먹습니다. 즉 본인이 배부르다는 상태를 인지 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카우치 포테이토란 말처럼 앉아서 티브이나 보면서 감자칩을 먹듯이 부지불식간에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즉 극장가서 영화보다가 어느새 기름이 범벅된 팝콘을 순식간에 다 먹게 되는 것이지요. 즉 우리 마음이나 몸이 깨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음식 섭취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각성되어 있다면 몸에 해로운 불량 음식등을 입에 쑤셔 넣지 않을 것이며, 나쁜 습관중에 하나인 간식도 없앨 수 있습니다. 즉 습관적으로 담배를 무는 사람은 어릴때 구강기에 고착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엄마 젖에 대한 그리움이나 본능처럼 담배를 물고 있기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하고 줄에 매인 동물처럼 나쁜 습관에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먹는 목적이 생명 유지에 있는데 우리는 단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먹는 비겁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주 무서운 동물에 마주쳤을때 도망을 갑니다. 그러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고 다행히 줄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줄은 쥐가 갉아먹고 있어서 계속 끊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꿀과 같은 액체가 곁에 있어서 맛있다고 느끼면서 계속 핥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즉 꿀바른 칼을 맛있다고 계속 핥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암, 심장병,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중풍을 일으키는 비만과 칼을 먹는 행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즉 스트레스 원인에 대한 해결이나 대처가 없이 먹는 행위로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제 마 선생은 방강 함강이라고 떨어지는 감정이라고 했는데 먹는 즐거움(식도락)은 위험에 맞서 싸우지 않고 구덩이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위파사나 수행에서는 예를 들어서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과정을 구분합니다. 즉 수저를 드는 행위, 수저가 입에 들어가는 동작, 입에 들어가서 씹는 과정을 깨어있는 상태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작이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많이 씹게 되고 뇌의 시상하부는 천천히 음식이 들어오지만 금방 알아차려서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서구인들은 식사를 1시간 넘게 하는데 바쁜 한국사람은 10분안에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바쁘기도 하겠지만 마음과 몸이 깨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습관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즉 꿈 속에서 밥을 먹는 경우처럼 의식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음식에 의존성만 키우게되는 결과입니다. 예전 선사는 도가 무언인가란 질문에 배 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잔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 우리는 먹고 잠을 자지 않았겠습니까만, 우리는 먹을 때도 딴 생각, 잠을 잘 때도 꿈에서 딴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수입니다. 우리는 평상의 일에도 도를 깨우치는 것처럼 일상 생활 자체를 수행으로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과식을 하거나 절대 살이 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다른 생명을 파괴해야 하는데 많이 먹었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해치는 일인데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항상 먹을 때는 먹는 것을 느끼면서 생명에 대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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