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채점 중에 황당한 일과 튼살 교과서 내용
인터넷 유머를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국어 선생님이 중간고사 주관식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주관식 중 ‘백범일지’ 본문 일부를 적어 놓은 뒤 “위 본문의 출전은 어디인가?”라고 묻는 문제가 있었다. 채점을 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화를 내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야, 교과서라고 쓴 자식 나와!”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가 쓴 자서전으로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은 백범이 53세 되던 해인 1929년에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지난 독립운동 사실을 회고하며 집필하였고, 하권은 백범이 67세 되던 해인 1943년경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하였다고 하권 책머리의 서문에서 적고 있다. 상권은 만년필에 국한문 혼용이며, 하권은 모필(毛筆)로 역시 국한문을 혼용하여 적었다.
상권은 첫머리에 『여인신양아서(與仁信兩兒書)』란 제목으로 아들인 인(仁)과 신(信)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는데, 백범의 친필이 아닌 듯하다. 다음 『백범일지상권(白凡逸志上卷)』이란 제목으로 「조선과 가정(祖先과 家庭)」, 「출생급유년시대(出生及幼年時代)」 두 편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상권을 집필할 때 쓴 것이 아니라 하권 집필 때 쓴 것으로 추정되며, 이어 일지(逸志)가 시작되는데 첫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임시정부 주석답게 잘 묘사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고려공산당의 총격 사건만 언급하는 등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비평을 받기도 한다.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처음으로, 아들 김신에 의해 초간 발행을 필두로 오늘날까지 국내·외에서 10여 본이 중간(重刊)되었다. 그러나 자료나 보조원 없이 오로지 기억을 더듬으면서 집필한 것으로 치하포 사건 같은 왜곡, 과장 등에 서술내용과 시기가 모순되는 경우가 많고 인명, 지명 등에도 착오가 있다.
〈나의 소원〉은 백범일지의 본문 뒤에 실려있는 글로 동포에게 호소하는 글이다.
백범일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중략)…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말씀하신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매우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그런데 獨立독립이란 말은 홀로 선다는 뜻인데 일제가 중국에 대해서 한국을 자주국으로 독립을 시켜주는 척하고서 만들어낸 말이다. 독립협회를 보면 시장 개방과 투자 유치(이권 양여)를 통한 열강의 조선에 대한 이해관계를 중첩시킴으로써 그 세력 균형에 의한 조선의 주권이 유지되는 “보호중립론”이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리고 보호 중립 기간 동안 자강 개혁을 통해 국력을 확보하려 했다. 독립협회의 주장은 그들의 계급적 기반이 지주와 상인이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생각한 조선의 근대화란 지주와 상인의 성장을 통한 위로부터의 자본주의화를 뜻하였다. 당시 조선의 무역 구조는 미곡 수출과 면제품 수입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유 무역은 이들의 경제적 이해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독립협회는 이권침탈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원 개발로 이해하여, 항상 반대하는 부정적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열강의 식민지 침탈을 사회진화론에 따라 세계 질서를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로 이해하고 긍정하였고, 조선에 대한 이권 침탈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았다. 그들이 가진 외세에 대한 위기의식은 정치·군사적 침탈에 고정되어 있어 경제·문화적 침탈은 오히려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긴다고 받아들였다.
필자는 근대화와 민권을 꾀하는 겉으로는 맞는 말만 하는 독립협회 배경에 고종의 황위를 뒤흔들려는 일제가 배경이 되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완용이 1대 독립협회 위원장인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교과서가 진리는 아니다.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 만든 고산자 김정호를 포도대장을 고문해 죽게 했다는 일제 교과서나 김일성 찬양 북한 시대 교과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주장을 하는 일제 교과서등 문제가 많다. 필자는 현정부 국정화 교과서도 입맛에 맛게 진실을 왜곡시킬까 걱정이 든다.
현재는 모르겠지만 의사들이 공부하는 피부과 교과서를 보면 팽창선조라고 불리는 튼살은 뚜렷한 치료법은 없다고 매우 짤막하게 언급을 하고 있다. 필자는 예전 튼살 환자가 오면 그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대학병원등에서 치료를 못하는 튼살환자를 어떻게 한의원에서 ST침 침치료로 치료가 가능한 것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교과서란 독재 정부의 입김에 좌우될 수도 있고 다 진리가 아니란 생각을 가져야 하며 www.imagediet.co.kr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에서 난치라는 튼살을 ST침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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