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와 종자기 의사와 환자 튼살치료
열자 5편 탕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존재한다.
伯牙善鼓琴, 鍾子期善聽.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하고 종자기는 잘 들었다.
伯牙鼓琴, 志在登高山.
백아가 거문고를 튕기니 뜻이 높은 산을 오르는 듯했다.
鍾子期曰:“善哉峩峩兮若泰山.”
종자기가 말하길 “좋구나 우뚝 선것이 태산과 같구나.”
志在流水
뜻이 흐르는 물에 두었다.
鍾子期曰:“善哉洋洋兮若江河!”
洋洋 [yángyáng] ① 가득하다 ② 망망하다 ③ 풍부하다 ④ 끝없이 넓다 ⑤ 충만하다
종자기가 말하길 “크구나 끝없이 넓은 것이 강과 하천과 같다!”
伯牙所念, 鍾子期必得之.
백아가 생각하면 종자기가 반드시 그것을 얻었다.
伯牙遊於泰山之陰, 卒逢暴雨, 止於岩下;
백아는 태산 그늘에 놀러갔다가 마침내 폭우를 만나 바위아래에서 그쳤다.
心悲, 乃援琴而鼓之.
마음이 슬퍼서 거문고를 안고 연주를 했다.
初爲霖雨之操, 更造崩山之音, 曲每奏, 鍾子期輒窮其趣.
백아는 초기에 장마비를 생각하고 타고 다시 산이 무너지는 음을 만들어 곡을 매번 연주함에 종자기는 문득 그 취지를 다 알았다.
伯牙乃舍琴而歎曰:“善哉善哉! 子之聽夫志, 想象猶吾心也. 吾於何逃聲哉?”
백아는 거문고를 버리고 탄식하여 말했다. “좋다 좋아! 그대가 뜻을 들어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되니 내가 어디에 거문고 소리를 도망가겠는가?”
백아절현 [伯牙絶絃] 이란 고사가 있는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진실한 우정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또한 깊은 속마음까지 서로를 알아 주고 위하는 완벽한 우정을 비유할 때 인용된다. 줄여서 절현이라고도 하며, 백아파금(伯牙破琴)이라고도 한다. 비슷한말은 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높은 산과 그곳에 흐르는 물이라는 말로, 아주 미묘한 음악, 특히 거문고 소리를 이르거나 知己를 비유하는 뜻), 지기지우(知己之友) 등이다. (두산백과)
위 내용을 보면 서로 손바닥이 맞아야 소리가 남을 알수 있다. 《유마경(維摩經)》은 원명을 비말라키르티 수트라(Vimalakīrti Sūtra)라고 하며 《반야경》에 이어 나타난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그 성립이 오랜 것 중의 하나이다.『유마경』은 재가의 거사인 유마힐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출가중심주의의 형식적인 부파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진의를 드러내고 있다. 유마거사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승의 보살도를 성취하여 출가자와 동일한 종교 이상을 실현하며 살고 있었다. 유마거사는 방편으로 병이 들었는데, 문병 오는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제자들에게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갈 것을 명하였지만, 일찍이 유마거사로부터 힐난을 들은 적이 있는 제자들은 병문안 가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유마거사는 비록 세속에 있지만, 대승의 가르침을 자각하였기에 10대 제자들과 보살들이 그를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명을 받아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가게 된다. 두 사람은 유형적 상대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대화한다. 유마거사는 기존의 출가중심의 불교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시 불교의 문제점을 비판 지적하고 있다. 경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이다. 불국토라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곳이다. 「불국품」에서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의 정토이다.” “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하다.”라고 하여 정토라는 것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살의 실천정신 가운데 이미 표현되어 있으므로 현실국토가 바로 정토라고 하였다.
둘째, 자비정신의 실천이다. 「문질품」에서 “어리석음과 탐욕,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은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보살의 병은 보살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보살은 이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번뇌에 싸인 중생들을 깨달음에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이다. 5무간죄,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 탐, 진, 치의 3독에 몸을 던지면서도 이에 속박됨이 없는 것이 보살의 길이다.
셋째 평등의 불이사상(不二思想)의 실천이다. 출가, 재가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보리와 번뇌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정토와 예토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사상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실상의 진리는 형상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공의 경지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깨달음은 언어문자를 초월해 있다.
넷째, 중생들에게 모두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유마거사는 현실의 인간이 비록 번뇌를 가지고 악을 행하고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체의 번뇌가 곧 여래의 종성이다.”라고 하여 불법은 번뇌 가운데 나타난다고 하였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앓고, 그들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는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처럼 백아는 의사라면 종자기는 환자라고 볼수 있다. 자신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종자기가 없으면 백아가 필요가 없어질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정 반대이니 공공병원의사가 없고 사익을 추구하는 의사가 넘쳐 있다 보니 의사 유인수요로 성형이나 피부 미용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미지한의원 원장인 필자는 한방 피부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피부과 진료를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러가지 피부 질환을 치료해봤지만 치료가 가장 잘되며 환자가 치료를 원하는 것은 튼살치료와 흉터치료이기 때문에 ST침으로 튼살의 치료에 중점을 둬서 치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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