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사도세자와 낙선당 화재 화상흉터치료

사도세자와 낙선당 화재 화상흉터치료


영조는 금주령을 내리고 숭문당에서 사도세자의 근황이 궁금해서 낙선당으로 행차했다. 낙선당에 간 영조가 사도세자와 관련해서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환관 신치하와 궁녀 해정이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3시경 사도세자가 낙선당에서 조정 중신들과 춘방관들을 만났고 뒤이어 그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때 사도세자와 조정 중신들 간에 오고간 대화가 승정원일기에는 삭제되어 있었다. 승정원일기에는 丙申(1776, 영조 52)의 하교로 세초했다고 기록되었다丙申년의 하교는 세손이었던 정조가 승정원 일기의 내용중에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청하자 영조가 허락했다.
사도세자가 밤 3경에 낙선당에서 조정 중신들과 만나 무엇인가 대화한 직후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방화범이 사도세자일수 있음을 암시한다. 영조가 낙선당에 들이닥쳐 사도세자를 불렀을때 세자는 얼굴도 씻지 않고 옷차림도 단정치 않았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밤새 술을 마시고 자다온 것으로 의심했다. 영조는 백성들을 상대로 엄격한 금주령을 시행하는 중인데 세자가 밤새 술을 마시니 격노해 세자가 술을 마셨는지 누가 술을 들였는지 책망하듯 물었다. 사도세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밧소주방(대전 밖에 있던 소주방) 큰 나인 희정이가 주어 마셨다고 대답했다.
낙선당 화재는 사도세자 방에 있던 촛대가 넘어져 일어난 화재였지만 영조는 세자가 홧김에 방화한 것이라 의심했다. 사도세자를 부른 영주는 네가 불한당이냐? 불은 어이 지르는 것이냐?”하며 전후 사정을 묻지도 않고 호되게 꾸짖었다. 사도세자 역시 변명하지 않고 자신이 방화했다고 대꾸했다. 근본적으로 불신과 불통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조선왕조 스캔들, 생각정거장, 신명호 지음, 페이지 148-150
 
금주법(禁酒法, the prohibition law)은 술의 제조, 판매·운반·수출입을 금지하는 법이다.
조선에서 금주령을 내리는 까닭은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조선에서는 쌀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쌀의 소비를 줄여 식량 사정을 악화되지 않게 하려고 금주령을 내렸다. 조선 영조 시대의 금주법이 그 예다.
미국 금주법 시대(禁酒法時代, Prohibition era)란 미국 의회에서 미국 수정 헌법 제18, 소위 금주법을 비준한 1919년부터 1933년까지를 말한다. 금주법 제정을 주도한 것은 농촌지역의 개신교 세력인 "금주 십자군(dry crusaders)", 로비 단체인 안티살롱 동맹, 기독교 여성단체인 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이었다. 1919116일 비준된 수정헌법 제18조와 볼스테드 법은 주류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종교적 목적으로 그러니까 성만찬에 사용하는 포도주 등만이 허용되었고, 알코올의 개인적 소유 및 소비는 연방 법률로 불법화되었다. 금주법은 1933125일 미국 수정 헌법 제21조가 수정헌법 제18조를 대체하면서 폐지되었다.
금주법은 1890년대에서 1920년대를 가리키는 "진보 시대"의 끝물을 장식한 사건이었다. 19세기에 들어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 도박 중독을 비롯한 다양한 악폐를 추방하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래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여러 공동체에서 알코올 금지를 도입했고, 이는 알코올 금지의 법제화로 이어졌다. 금주법 지지자들(dires)은 금주법을 공공도덕과 보건후생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한편 반대자들(wets)은 알코올 금지는 농촌 지역 개신교도들의 이상을 도시지역 이민자 공동체와 천주교 신자들에게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념적으로 금주법은 실패로 돌아간 악법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동안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1940년대까지 알코올 소비량은 금주법 이전 수준 이하를 유지했다. 때문에 금주법이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도 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금주법의 실패를 법 자체의 문제보다 그 주위의 역사적 맥락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금주법의 결과 마피아나 갱스터 같은 도시 지역 범죄조직들이 성장하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들 범죄조직의 밀주 유통 사업이 오늘날의 마약 밀매 사업의 원조가 되었다고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금주법은 해가 갈수록 지지자를 잃었으며, 1929년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각 주 정부들은 주세가 없어졌기 때문에 심한 세수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알코올 중독이나 범죄를 줄이기 위한다는 것이 법의 제정 명분 및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양조업에 종사하는 독일 이민자들에 대한 견제를 위한 것이었다. 이는 독일 잠수함의 미국 여객선 격침 사건인 루시타니아호 사건과 미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인해 미국에서 독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금주법을 통해 독일 이민자들이 양조업을 함으로써 부를 쌓는 일을 견제하려고 한 데에서 비롯한다.
1920년대 미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퇴폐적인 것으로 생각한 보수적 복음주의 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 행사도 금주법 제정의 한 배경이다. 보수적 복음주의 또는 기독교 근본주의는 죄를 인종, ,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생태계 훼손,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 폭력 등의 구조적인 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음주, 흡연, 성적인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에 한정짓는다. 청교도의 나라였던 점도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금주법은 알카포네가 대표적인 조직폭력배의 주류 밀거래, 무허가 술집 개업, 주류 사업 이익을 노린 폭력조직간의 살인사건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메틸알코올로 인해서 죽기도 했다. 결국 1933년 미국 서민의 환영 속에 금주법은 미국 헌법 수정 제21조에 의해 폐지되었다.
미국 금주법도 도덕적인 이유로 시작했지만 오히려 마피아들이 비싼 돈을 받고 술을 유통시키듯 활개치는 부작용이 나오자 폐지되었다. 개신교신자였던 술 한방울도 안하던 록펠러가 배후에 있는데 음모론에서 보면 록펠러가문이 알코올연료는 석유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금주법은 산업용 알코올을 못쓰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필자가 보기에는 금주령으로 영조는 인체에 불과 같은 화가 났고 사도세자도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술을 못마시게 하니 홧김에 방화를 했다고 본다. 또한 필자 생각에는 불을 지른 것을 신호로 삼아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반역을 꾀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1776년 왕위에 오를 정조가 미리 자신에게 불리한 아버지에 대한 역사를 왜곡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정조는 개혁군주, 정순왕후과 영조는 노론 수구세력, 사도세자는 억울하게 당파싸움으로 죽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사실 사도세자는 소현세자와 평행이론 마찬가지로 반역의 결과로 죽었을 뿐이다.
사람이 화가 난다고 불[]를 지르면 안된다. 불은 재산 피해 뿐만 아니라 인명피해를 일으키고 최고로 사망사고에 만약 경미하게 다쳤다고 해도 放火방화는 피해자에게 화상흉터를 남기게 된다. 02-336-7100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는 불에 의해서 발생된 심도 2도 이상의 화상흉터를 화상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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