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기생 매화 그림과 이미지한의원 문신 흉터치료
2017년 1월 26일 밤 10시에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에서는 신사임당(이영애 분)의 시대로 타임슬립하는 서지윤(이영애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된 '사임당'은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강사 서지윤이 교수 임용을 위해 담당 교수 민정학(최종환 분)에게 '갑질' 당하는 모습으로 시작됐다. 서지윤은 민정학에게 어렵게 얻은 기회로 '금강산도'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고 발표까지 맡았다. 서지윤은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정학이 지닌 '금강산도'가 모조품임을 확인했지만, '갑질'로 유명한 민정학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결국, 학회 보고에서 터졌다. 학과 후배인 한상현(양세종 분)이 민정학의 '금강산도'가 진품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이로 인해 서지윤이 답변을 망설이며 민정학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문제는 이태리 볼로냐 학회로 이어졌다. 민정학은 의도적으로 서지윤에게 복수했고, 이로 인해 서지윤은 학교에서 매도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 강사 자리에서 해임됐다.
펀드 매니저인 남편 정민석(이해영 분)이 사고를 치면서 집과 재산 모두를 압류당한 서지윤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민정학의 '금강산도'가 모조품임을 증명해야 됐다.
기생의 다리와 가슴 등에 그림을 그리며 파락호(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로 전락한 이겸(송승헌)의 모습은 앞으로의 극 진행의 궁금증을 더했다.
이겸은 기생들끼리 서로 다투며 빠른 순서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한복 가슴위에다 매화그림을 그렸다. 이겸의 솜씨가 좋아서 기생이 이 그림을 며칠이면 지워야 하니 너무 아쉽다고 하자 이겸은 지지 않는 꽃은 없다면서 오히려 매화 그림의 일회성을 칭찬했다. 육촌동생은 고모의 명으로 갑자기 들어와 이겸과 키스를 하고 기생은 놀라 男色남색을 한다며 요강의 소변을 쏟아버리고 결국 이겸은 파락호로 먼 길을 또 떠나게 되었다. 결국 고모 앞에 이르렀지만 결혼을 강권하는 고모가 은장도로 자진할수도 있다고 협박하니 고모가 살집이 있어서 은장도는 짧지 않다고 비웃었다.
신사임당을 보면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필요한 것 외에 고증이 잘못되었다.
첫째 어린 사임당(박혜수 분)은 안견의 '금강산도'를 직접 보기 위해 이겸(양세종 분)의 집 담을 넘었다. 사임당은 치마까를 벗어 시종에게 맡긴 뒤 가볍게 담넘기에 성공했다. 이후 붉은색 치마를 넘겨달라고 소리쳤지만 치마는 이겸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이겸은 속옷바지 차림의 사임당에게 "요즘 유행하는 차림이냐"고 농담을 건넸다. 당황한 사임당은 치마를 빼앗아 도망치면서 그림을 그리던 책을 흘리고 말았다. 이겸은 살아움직일 듯한 그녀의 그림에 감탄했고, 사임당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금강산도를 보고 서로 통성명을 이겸과 했다. 이겸이 자신 이름을 밝히자 사임당은 사임당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12월 5일(음력 10월 29일) ~ 1551년 6월 20일(음력 5월 17일)) 또는 사임당 신인선(師任堂申仁善),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었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본명은 인선(仁善)으로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당호란 본명이나 자(字) 이외에 쓰는 이름으로 별호(別號), 또는 호(號)라고 불린다. 신사임당은 외에 인임당(姻姙堂) 또는 임사제(姙師齊)라는 호도 가졌다고 한다. 결혼 이후에는 본이름 대신 사임당, 임사재, 인임당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 유명한 세계 최초의 태교책인 태교신기를 쓴 사주당이씨란 분도 있는데 끝에 堂 당 글자는 결혼한 후에 붙는 것이다. 결코 미혼 처녀시절에 쓸수 없다. 태교에서부터 정성을 기울여 아들 주나라 문왕을 얻은 현숙한 부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사임당(師任堂)으로 아호를 정하였다. 태임은 결혼한 사람이고 태교를 잘한 사람인데 결혼도 안한 처녀가 태교에 힘쓰는 기혼 부인을 본받는 호를 먼저 쓴다는 것은 처녀가 애를 배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일이다.
분명히 신인선이라고 해야하지 사임당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둘째 임꺽정은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건널 때 부하를 시켜 돌다리를 놔주거나 힘을 쏟는데 임꺽정이 출몰하던 지역은 강원도가 아니다. 1559년(명종 14년)부터 황해도·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를 살해하는 한편 창고를 털고 빈민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었다. 황해도 장연(長淵)·옹진(甕津)·풍천(豊川) 등지에서 관군이 토벌을 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내응하여 이를 피했다.
위 내용에 이겸이 문신이 아니라 사람 몸에 그림을 그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원시부족사회에서는 사람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치장이 되지만 나중에는 문신으로 바뀐다. 물론 문신이 옷보다 유래가 먼저이지만 말이다.
조선 유교시대에는 신체발부는 부모에게 받기 때문에 문신을 할수 없다. 즉 그림으로 표현은 할수도 있었을 텐데 실제 필자 생각에는 그림 그린것만으로도 신체 훼손에 해당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타투라고 해서 서양풍습이 들어와 신체를 마음대로 캔버스로 여겨서 문신을 새기지만 철이 든 이후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케이스는 문신을 레이저로 지우는 치료를 받는데 문제는 레이저로 문신 제거 시술후 흉터가 발생할수 있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문신 지운 흉터도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에서 흉터침, 침, 한약재생약침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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