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불나방도 죽지 않게 미물을 아낀 영조와 화상흉터치료

불나방도 죽지 않게 미물을 아낀 영조와 화상흉터치료


정조가 지은 행록에 의하면 영조는 길을 걷다 개미들이 있으면 밝지 않고 피해 갈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고 한다. 영조 역시 내가 일찍이 차마 미물들을 밟지 못해 개미같이 하찮은 것 역시 밟지 않았고, 밤 등물에 나방이 달려들면 손으로 휘저었다.”고 회상했다. 영조는 감정이 복받치면 펑펑 울기도 했으며, 감정대로 행동하다 나중에 한없이 후회하기도 했다
영조는 마음이 여린 반면 체면을 아주 중요시했다. 영조인지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여린 마음과 체면 중시를 빼놓고 영조의 치세 50여년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조선왕조 스캔들, 생각정거장, 신명호 지음, 페이지 139
 
의학입문을 보면 음즐(陰騭)에 관한 논의가 있는데 음즐은 陰德음덕과 같은 말이다.
貧則效其習醫 救疾 娶瞽 娶啞 放鶴 放魚 渡蟻 療鵲 傾囊活命.
가난한 사람은 그 의술을 배워 질병을 고쳐 주고 시각장애인과 벙어리를 장가보내고 학을 날리어 놓아주고 고기를 놓아주며 물에 빠진 개미를 건네주고 병든 까치를 낫게 해 주며 주머니를 털어 인명을 구제하여 주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속칭 애교살이라고 하는 마의상법[www.upaper.net/homeosta 전자책]등 관상학에서는 음즐(陰騭 : 눈아래 나타나는 주름)이 나타나면 재난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해주고 생명을 구해주게 되며 음란하지 아니하고 재물이 넉넉하고 도량이 크다. 송교는 개미에게 물을 건너게 도와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필자는 인삼을 즐겨 먹고 소식을 했던 영조를 소음인으로 본다. 그런데 하찮은 곤충도 살려주려고 하는 왕이 왜 자기 자식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못하고 악독하게 굴었을까?
이 책에는 영조의 금주령,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다목차로 영조가 백성을 위해서 술을 못 마시게 한 금주령을 어기고 사도세자가 한두번 어기다가 패악한 짓을 하게 되어 결국 금주령 자체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갈라 놨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기회음후 열전을 보면 한신이 항우를 평하며"항왕이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지르면 1000명이 모두 엎드리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니 그저 보통 남자의 용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선뜻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저 아녀자의 인()일 뿐입니다."
반면에 서초패왕 태양인 항우는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쳐들어가며 20만에 이르는 진나라군의 포로들이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뤄양시(洛阳市)에 있는 신안(新安)에서 이들 모두를 생매장해 죽였다.
그렇다면 영조도 하찮은 벌레인 미물은 사랑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는 물도 못마시게 굶겨 비참하게 죽이는 항우처럼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평행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 즉 인조-소현세자, 영조-사도세자의 사건이 똑같다고 본다. 즉 소현과 사도세자는 유교사회를 개혁하려고 아버지를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똑같이 아버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으며, 그 반역 사실이 유교적 덕목에 의해서 자식 잘못도 아비의 부덕의 소치이므로 감춰져야만 했던 것이다. 특히 영조의 경우 세손 정조를 왕으로 세워야 했기 때문에 사약을 내려 사도세자를 죽이면 결국 반역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살인했다. 뒤주 가둔 군졸들도 오줌싸며 사도세자를 욕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사도세자가 그만큼 잘못을 많이 한 것이다. 또 정조가 즉위한 뒤에 만약 사도세자가 무고나 잘못 죽었다면 반드시 연산군이 폐비윤씨를 위해 사화를 일으켰듯이 복수를 했을텐데 정조는 사도세자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정권을 잡았음에도 처벌한 사례가 없다.
역사를 공부해보면 평행이론이 있는데 필자는 이것들이 모두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되며 그 배후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오다 노부나가가 쿄토에 머무르다가 부하인 예수회 아케치 미츠히데의 반란으로 적은 혼노지(本能寺にあり!)’에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으며 시해당해 죽게 된다. 그런데 미츠히데가 정권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게 된다. 500년 뒤에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 그 시해자인 김재규, 전두환 이 세 사람으로 극적으로 재연되었다.
평행이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인물은 바로 애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 링컨은 1846년 하원의원 당선, 1860년 제 1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북전쟁을 감행하면서까지 개혁을 이끌어가려 했지만 저격범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46년 하원의원 당선, 1960년 제 35대 대통령이 된 케네디. 케네디도 링컨처럼 혁신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역시 암살당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이 같은 사실 외에도 두 사람이 금요일에 암살당했고, 당시 링컨은 포드 극장, 케네디는 포드 자동차를 탄 채 저격 당했으며, 암살 일주일 전 케네디는 마를린 먼로(여배우)와 링컨은 마를린 먼로(지명)라는 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네티즌 사이에서 평행이론의 주요한 증거들로 제시되고 있다. 링컨과 케네디의 후임 대통령 이름이 모두 존슨이었고, 두 암살범은 정식 재판 전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근거로 두 사람이 100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운명을 반복했기 때문에, 케네디 역시 암살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유럽 전역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정복자 혹은 독재자로 기억되는 나폴레옹 1세와 아돌프 히틀러 역시 129년을 주기로 같은 운명을 반복한 평행이론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은 프랑스 혁명은 1799, 그리고 히틀러가 나치스 당 결성을 결심한 독일혁명은 191 8년 일어났고,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지 129년 후인 1933년 히틀러는 총통이 된다. 나폴레옹이 패전하게 된 큰 이유로 꼽히는 워털루 전쟁 패배가 1815, 히틀러 세력이 타격을 입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수비 실패는 1944년으로 두 사람은 129년의 시간차이를 두고 같은 삶을 산 것. 히틀러가 프랑스 점령 후 나폴레옹의 무덤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닮은꼴이었던 두 사람이다.
 
영조는 자기 아들인 사도세자가 불을 보고 좋아서 덤벼드는 불나방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경고를 하고 세자를 바로잡으려고 했다가 평양을 가서 군대를 빌려오고 군사무기를 숨기고 挾劍협검하고 가 아무리 하고 오고 싶다라고 말하며 영조를 칼로 찔려죽이고 싶다고 말하니 결국은 大義滅親대의멸친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서로 말로 소통을 못하고 영조가 너무 소음인의 냉정한 마음을 일으켜 사도세자를 냉혹하게 대해서 상처를 줘서 결국 오해가 비극이 된 측면도 존재한다.
불나방은 불에 뛰어드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불빛이 태양인줄 알고 방향을 잡으려다 방향을 잃어서 뛰어드는 것이다. 우리 몸도 불을 사람의 문명으로 자주 쓰지만 분명히 화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화상흉터는 www.imagediet.co.kr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 02-336-7100에서 화상흉터침, , 한약 재생약침으로 치료가 가능하게 만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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