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인조의 불안과 소현세자 번침 화상흉터치료



인조의 의심과 불안은 이후에도 또 표출됐다. 소현세자와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한 원접사 김육을 만난 자리였다. 김육은 원손의 나이가 10살이나 입학과 혼례의 일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육은 원손을 세손으로 책봉할 것을 요청했지만 요청을 받은 인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현세자의 영구 귀국에 대한 의심과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소현세자 영구 귀국소식을 받은 이후로 인조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원인은 없었다. 인조는 극심한 의심이나 불안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병을 앓곤 했다.
인조의 건강은 1645(인조 23)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심해졌다. 세자는 북경에서 귀국 길에 오른 이후로 건강이 악화됐고, 인조는 세자의 귀국 소식을 들은 이후로 건강이 악화됐다. 세자의 배종의관이 조선의 어의들에게 처방을 요청하던 그 즈음, 인조는 특명으로 이형익을 불러들였다. 그 때가 1645(인조 23) 14일이었다. 인조는 이형익으로부터 燔針번침(불에 달군 침)을 맞기 시작했다. 이형익의 번침을 맞고 인조 증세는 많이 좋아졌지만 소현세자가 한양에 들어온 이후 다시 악화됐다.
소현세자는 25일에도 한약을 복용하고 번침을 맞았다. 병세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26일 오전에 세자는 어의 최득룡이 처방한 시호탕을 들었다. 시호탕을 들고 난 후 세자는 더욱 위중한 상태가 됐다. 약방에서는 이형익의 번침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지만 번침을 맞은 직후 세자는 창경궁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때가 341645(인조 23) 426일 정오였다.
조선왕조 스캔들, 생각정거장, 신명호 지음, 페이지 129-134
 
반정공신 심기원이 인조를 상왕에 앉히고 세자를 왕위에 앉혀 반정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는데 세자가 귀국한 걸 보고 왕이 될 재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회은군으로 바꾸고 이것저것 꾸미다 발각된 사건인데 이로 인해 세자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강해진다.
소현세자는 고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든 지 며칠만에 죽었다. 그런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임금]도 알지 못했다. 종실인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는 인렬왕후 한씨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인조실록 인조 46, 23
 
인조를 보면 자기의 주치이였던 이형익을 소현세자를 치료하게 시켰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형익이 소현세자를 죽이려는 모종의 임무를 띠고 치료했다고 본다. 인질생활 8년째 되던 해 청은 북경을 점령하게 되었고 같이 북경으로 갔던 소현세자는 이때 아담샬과 만나게 되었다. 소현세자는 32, 아담 샬은 중국에 온지 22년이 지난 45세때 였다. 조선 귀국시 중국에서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것을 보면 로마 가톨릭에 대해 아주 무관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시도는 결국 중국교회의 성직자 부족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다. 순치제는 독일출신 예수회 선교사인 아담 샬 폰 벨을 만났는데 그와 친밀하여 아담 샬을 사적으로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見血封喉案견혈봉후안이 있는데 순치제가 사망하고 강희제가 즉위하려는데 탕약망의 수하에 있는 1명의 신부와 4명의 중국인 기독교도를 체포하고, 탕약망의 과학기술학교를 폐지시키며, 탕약망이 7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150권의 과학기술번역서도 인쇄가 중단된다. 1665년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 계속되는 이 사건에서 양광선이 지적한 탕약망의 죄상은 세가지이다. 반역을 음모하고, 사교를 전도하고, 잘못된 천문학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은 "견혈봉후안(見血封喉案)" 또는 "순치독살안(順治毒殺案)"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탕약망은 형부에서 극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중에 풀려난다.
견혈봉후라는 것은 열대나무로서 속칭 독수(毒樹), 살인수(殺人樹)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 가지에 있는 가시가 사람의 피부를 찌르면, 독소가 혈액에 들어가서, 혈관을 타고 심장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은 신경을 마비시키고, 전신의 근육(특히 심장)이 위축되며, 최종적으로 심장이 피를 공급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여 목구멍이 막혀 죽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소현세자가 인조에게 독살당했으며 그 이유는 인조를 대체하며 조선을 싹 바꾸려는 개혁을 하려는 반역 때문이고 그 배후에 누군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위 내용을 보면 번침으로 치료를 받은 케이스가 나오는데 불에 달군 침은 한의학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불에 달구면 피부가 화상을 입게 되며 흉터를 입기 때문이다. 조선은 신체발부는 부모로부터 받는다는 효경 사상이 있기 때문에 번침이 자주 쓰이지 않았다.
만약 화상을 입게 되면 어떻게 될까? 02-336-7100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에서 시술하는 화상흉터침인 BT침 치료를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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