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4일 화요일

박문수가 소금장수가 된 이유와 흰색 튼살 치료

박문수가 소금장수가 된 이유와 흰색 튼살 치료



1723(경종 3)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다. 이듬해 설서(設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영조 즉위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削職)되었다.
1727년에는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기용되자 사서에 등용되어 영남안집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했고,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사로 도순문사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전공을 세워 경상도 관찰사에 발탁되고,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으로 영성군(靈成君)에 봉해졌다. 1730년 참찬관에 이어 호서 어사로 나가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썼으며, 1734년에 진주사 부사(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앞서 안동서원을 철폐시킨 일로 탄핵을 받아 풍덕(豊德) 부사로 좌천되었다.
1741(영조 17) 어영대장을 거쳐 함경도 진휼사로 나가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실어 와서 기민(飢民)을 구제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다음해 병조 판서, 1743년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이듬해 황해도 수군절도사로 좌천되었다. 1749년 호조판서가 되어 양역의 폐해를 논하다 충주 목사로 다시 좌천되었다. 그 후 영남 균세사(均稅使)를 거쳐 판의금부사·세손사부를 지내고 1752년 왕세손인 의소세손이 죽자 약방제조로 책임을 추궁 받아 제주도에 안치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우참찬에 올랐다.
박문수는 과거에 급제해 정7품에서5년 만에 지방 관찰사에 임명되는 면모를 보인다.오늘날로 치면7급 공무원에서 5년 만에 장, 차관 급까지 오른 것으로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가 이토록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서이며, 또 그의 불같은 정열적인 성격이다.
역사저널 그날을 보면 암행어사란 말은 없었으니 박문수는 어사시절 흩어진 민심을 다독이고 직접 사재를 털어 굶주린 백성을 돌봤다. 그를 두고 백성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은덕을 기리고 고마움을 기리는 비석까지 세운다. 박문수는 기록에는 조정 대신들이 그를 소금장수라고 부른 것으로 나온다.
1731'승정원일기'(영조 7)에도 보면 우리가 아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명지도에서 제염사업을 벌이자는 논의를 했다는 내용과 2년 뒤 173312월 박문수가 여기서 소금 2만 석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3 '삼소관음 중생사(三所觀音 衆生寺)'에는 김해 사람들이 경주 중생사에 쌀 6섬과 소금 4섬을 시주하였다는 내용이 있고, '홍재전서''일성록' 등에도 명지의 소금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박문수는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것이다. 빛과 소금 [light and salt]은 영적인 면에서 어둡고 부패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가 지녀야 할 본분과 역할 및 자세를 나타낸 표현이다(5:13-16).
여기서 ''이라 함은 참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8:12)의 모범을 쫒아 살아가는 거룩하고 온전한 삶이나 예수의 제자로서의 빛된 본질 및 선교적 사명을 나타낸다. 그리고 '소금'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지녀야 할 자기 희생적 삶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적 사명을 강조한다. (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생명의말씀사)
 
하지만 흰소금은 고혈압의 주범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조미용 Nacl소금이 아니라 천일염은 칼륨[포타슘]등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에 혈압상승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3백식품인 흰소금, 흰 설탕, 흰 밀가루는 건강에 나쁜 것으로 알려지고 글루텐 때문에 밀가루도 나쁘다고 인식되고 있다.
이런 흰색이 피부에 발생해도 문제인데 종아리나 허벅지등 하체에서 많이 발생하는 백색 튼살이 생각보다 큰 문제이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튼살을 ST침을 사용하여 진피 콜라겐을 재생하여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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