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일 월요일

곽송령 도과 창을 거꾸로와 수술후 흉터치료

곽송령 도과 창을 거꾸로와 수술후 흉터치료



궈쑹링 郭松齡(곽송령) 1886 ~ 1925 랴오닝성[遼寧省] 출생. 장쭤린[張作霖]의 아들 장쉐량[張學良]의 교육을 맡았다. 1925년 장쉐량의 부사령으로서 화북(華北)에 들어갔으나, 남방혁명파에 접근한 펑위샹[馮玉祥]의 국민군과 결탁하여 11월 장쭤린에게 하야를 요구, 둥베이[東北] 국민총사령으로서 둥베이로 역진격을 시작하였다. 일본의 간토군[關東軍]은 장쭤린의 패퇴를 겁내어 무장간섭에 나서서 만철(滿鐵) 연선에서의 작전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를 잃고, 12월 신민툰[新民屯]에서 패하여 그 아내와 함께 총살되었다.
201651일 저녁 9시에 방송되는 종합편성채널 JTBC '차이나는 도올'에서 김용옥은 장학량을 통해 근대 중국사를 조명한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김용옥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중국 근대사를 소개했다. 그는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 손문의 신해혁명, 동북성 장작림의 군벌 시대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기로 통하는 중국 근대사를 설명하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당시 중국의 핵심 인물로 장학량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강의에서 중국의 역사를 바꾼 서안사변을 주도한 인물로 소개된 바 있는 인물이다.
도올은 "한국에서는 20세기 초 중국 역사의 핵심 인물로 주로 모택동, 장개석을 언급하지만 실제 중국 근대사의 중심에 있던 인물은 이들이 아닌 바로 장학량"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올은 장학량이 당시 중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명의 인물로 중국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백령과, 근대 의식의 운동가 곽송령을 지목했다.
도올은 패기 넘치는 10대 장학량과 스승 장백령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전하였다. 장백령은 중국을 구할 사람은 나라고 말하여 15살 장학량은 그렇게 왜 거만하게 말하냐고 하니 장백령은 바로 나란 너를 의미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곽송령의 갑작스러운 도과(자기편을 배신하여 난을 일으킴) 선언으로 존경하던 스승을 진압해야 했던 장학량의 사연을 공개했다. 곽송령은 장작림이 일본과 항거하지 않고 중국 안에서 내분만 일으켜 자기 민족을 치는 현실을 개탄해 난리를 일으킨 것이고 장학량의 서안사변과 상통하는 내용이다.
봉천군 휘하의 곽송령은 풍옥상과 밀약을 맺고, 192511월 장작림의 하야를 요구하며 봉천으로 진군했다. 하지만 장학량은 비행기로 삐라를 뿌리며 장씨 집안의 밥을 먹는 사람은 장씨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앞세워 원래 부하들의 마음을 돌려 곽송령을 이길수 있었다. 곽송령은 달아나려고 했지만 부인이 말을 타지 못해 붙잡혔고, 장작림은 직접 죽이지 말고 심문을 본인이 하겠다고 하며, 장학량은 유학을 보내주려고 했지만 곽송령과 대립되는 사람에 의해서 사형을 당했다.
반봉전쟁 (1925.11~12)은 봉천군 휘하의 곽송령이 풍옥상과 밀약을 맺고, 19251124일에 8만 병력을 이끌고 장작림의 하야를 요구하며 봉천으로 진군했다. 장작림은 직속부하의 반란으로 곤경에 처했으나, 봉천에 주둔하던 일본 관동군의 지원으로 인해, 곽송령은 패배하고 1224일에 살해되었다.
도과[倒戈]란 창을 거꾸로 한다는 뜻으로, 자기편을 배신(背信)하고 반란(反亂)을 일으킴을 이르는 말이다. 즉 적을 향해야 할 창이 거꾸로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좋은 목적으로 하여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예가 있다.
예를 들어 수술을 하는 것은 질병 치료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일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질병은 치료되었지만 수술이후에 흉터란 것을 남길수 있다. 성형수술도 아름다움을 위해서 실시하지만 반대로 오히려 수술이후에 흉터로 고민할 수 있다.
이런 수술이후에 발생하는 흉터를 이미지한의원에서는 수술후 흉터침인 OT침으로 치료하는데 성형흉터는 지방흡입이나 코축소술 흉터와 외과수술은 갑상선등을 많이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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