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6일 목요일

흰옷을 입고 죄를 기다리는 소복대죄와 흰색 튼살치료

흰옷을 입고 죄를 기다리는 소복대죄와 흰색 튼살치료


치평요람 제95권 당() 소종(昭宗) 천복(天復) 3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 왕사범(王師範)이 학문을 퍽 좋아하고 충의(忠義)로 자부하였으며 치적도 좋게 남겼다. 주전충(朱全忠)이 봉상(鳳翔)을 포위하자 한전회(韓全誨)가 조서(詔書)로 번진(藩鎭)의 군사를 징발해 들어와서 승여(乘輿)를 지원하라고 하니, 왕사범이 이를 보고 눈물을 흘려 옷자락을 적시며 말하기를, “우리들이 제실(帝室)의 번병(藩屛)이 되어서 천자가 이처럼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앉아서 볼 수 있겠는가? 각자 강병을 거느리고 자신만 보호하자는 것인가? 비록 힘은 부족하더라도 마땅히 사생을 걸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때 관동(關東)의 군사가 대개 주전충을 따라 봉상에 있었는데, 왕사범이 여러 장수를 나누어 보내어 공헌(貢獻) 및 상판(商販)을 사칭하고 병장(兵仗)을 묶어 작은 수레에 싣고 변주(汴州)와 서주(徐州) 등의 여러 주로 들어가서, 섬주(陝州)와 화주(華州)에 도착한 다음 같은 날에 함께 발진하여 주전충을 토벌하기로 하였는데, 여러 주로 간 자가 대개 일이 누설되어 사로잡히고, 유독 행군사마(行軍司馬) 유심(劉鄩)만이 연주(兗州)를 공취하였다.
이때 태령절도사(泰寧節度使) 갈종주(葛從周)가 군사를 거느리고 형주(邢州)에 주둔하였는데, 유심이 먼저 사람을 보내어 기름을 파는 자를 가장하여 성안으로 들어가서 허실(虛實) 및 군사가 진입할 길을 정찰하게 하고 나서 밤에 정예병을 거느리고 하수구멍으로 들어가 부사(府舍)를 점령한 다음, 갈종주의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며 매일 아침에 문안을 드리고 그의 처자를 은례(恩禮)를 갖추어 매우 후대하였으며, 관직에 있는 자제들의 급료도 종전과 같이 하였다. - 유심이 갈종주가 반드시 돌아와서 연주를 공격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집에 선심을 쓴 것이다. -
주전충이 절도판관(節度判官) 배적(裴迪)을 머물러 두어 대량(大梁)을 지키게 하니, 왕사범이 주졸(走卒)을 보내어 편지를 싸 가지고 대량으로 가게 하였는데 - 주졸은 군졸로서 어디로 달려갈 것에 대비하고 있는 자이다. - 배적이 동쪽의 일을 물으니 주졸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에 배적이 변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람을 물리치고 자세히 물으니, 주졸이 사실대로 갖추어 말하였다. 그러자 배적이 주전충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서둘러 마보도지휘사(馬步都指揮使) 주우령(朱友寧)에게 요청하여 군사 1만여 인을 거느리고 동으로 연주와 운주(鄆州)를 순찰하게 하고 갈종주를 형주(邢州)로 불러 함께 왕사범을 공격하였다
 
이무정(李茂貞)이 단독으로 소종(昭宗)을 만나보는데, 중위(中尉) 한전회(韓全誨)장언홍(張彦弘), 추밀사(樞密使) 원이간(袁易簡)주경용(周敬容) 등은 모두 입대하지 못하였다. 이무정이 한전회 등을 죽이고 주전충(朱全忠)과 화해하여 거가(車駕)를 모시고 경사로 돌아갈 것을 청하니, 소종이 기뻐하며 즉시 한전회 등을 수포하여 죽이고, 또 이계균(李繼筠)이계회(李繼誨)이언필(李彦弼) 16인을 죽인 다음, 제오가범(第五可範)과 구승탄(仇承坦)을 중위로 삼고, 왕지고(王知古)와 양건랑(楊虔朗)을 추밀사로 삼았다. 또 한악(韓偓)과 조국부인(趙國夫人)을 주전충의 영내로 보내어 한전회 등의 머리를 자루에 담아 가서 보이며 말하기를, “지난날 거가를 협박하여 억류하고 죄가 두려워서 이간질을 하며 화해를 하지 않으려고 한 자가 모두 이들이다. 지금은 내가 이무정과 함께 죽이기로 결의하였으니, 경은 여러 제군(諸軍)을 효유하여 군중의 분노를 풀어라.”라고 하니, 주전충이 판관(判官) 이진(李振)을 보내어 표장을 받들고 들어가 사은(謝恩)을 하게 하였다. 그래도 포위는 풀지 않아서 이무정이 최윤(崔胤)이 주전충을 사주하여 기어코 봉상(鳳翔)을 공취(攻取)하려는 것으로 의심하고, 소종에게 아뢰어 최윤을 빨리 불러 백관을 거느리고 행재소로 가게 하였다. 무려 예닐곱 차례나 조서를 내리고 말을 아주 간절히 하고 지난날의 관작을 다 복원하여 주었음에도 최윤이 끝까지 병을 핑계로 오지 않다가, 주전충이 또 편지를 보내어 부르며 농담으로 말하기를, “나는 천자를 알 수 없으니, 공이 와서 그 시비를 가려야 되겠소.”라고 하자, 최윤이 비로소 왔다.
봉상에서 비로소 성문을 열었다. 이무정이 그의 아들 이간(李侃)을 평원공주(平原公主)에게 장가보낼 것을 청하고, 또 소검(蘇檢)의 딸을 경왕(景王) 이비(李祕)의 왕비로 삼아서 자신의 기반을 굳히고자 하였다. - 이비는 황자(皇子)이다. - 평원공주는 하후(何后)의 딸인데, 하후가 내심 난처해 하다가 소종이 말하기를, “곧 나를 구출할 것인데, 어찌 네 딸을 걱정하는가?”라고 하니, 하후가 이에 따랐다. 이때 봉상에서 죽인 환관이 72명이었는데, 주전충이 또 몰래 경조(京兆)에 지시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거가를 따르지 않은 자를 수포하여 90인을 더 죽였다.
거가가 봉상을 나와서 주전충의 군영에 행차하였다. 주전충이 소복(素服)을 입고 대죄(待罪)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니, 소종 역시 울며 말하기를, “종묘와 사직이 경의 힘을 입어 다시 안정되고 나와 종족이 경의 힘을 입어 다시 살았다.”라고 하며, 친히 옥대(玉帶)를 풀어 하사하고 조금 쉬었다가 곧 길을 떠났다. 주전충이 단기(單騎)10여 리의 길을 선도하다가 소종이 사양을 하자 아들 주우륜(朱友倫)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호종하게 하였다. 거가가 흥평(興平)에 당도하자 최윤이 비로소 백관을 거느리고 마중을 나와 소종을 뵈었는데, 다시 최윤을 재상으로 삼아 종전처럼 삼사(三司)를 통괄하게 하였다.
거가가 장안(長安)에 들어가니 최윤이 아뢰기를, “개국 초기 태평할 적에는 환관이 병권을 잡거나 정사에 간여하지 못하였으나, 천보(天寶) 이래로 환관이 점차 번성하여 정원(貞元) 말년에는 우림위(羽林衛)를 나누어 좌우신책군(左右神策軍)을 편성하여 위종(衛從)을 편리하게 하면서 비로소 환관이 주관하게 되어 정원을 2천 인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국가의 기밀을 같이 관장하고 백관의 권리를 빼앗아서 위아래가 서로 감싸주며 다 같이 불법을 저질러서 크게는 번진(藩鎭)을 선동하여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작게는 매관(賣官) 육옥(鬻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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