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9일 월요일

태조 왕건 겨드랑이 비늘과 겨드랑이 가슴확대 흉터치료

태조 왕건 겨드랑이 비늘과 겨드랑이 가슴확대 흉터치료


태조(太祖, 877131(음력 114) ~ 94374(음력 529))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의 초대 천자(재위기간 : 918 725- 94374)이다. 성은 왕(), 휘는 건(),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약천(若天),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응운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인용신성대왕(應運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仁勇神聖大王)이다. 연호는 천수(天授)이다.
송악의 호족 왕륭(王隆)과 그 부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877년에 태어났으며, 896년에 궁예(弓裔)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장수가 되었다. 후백제와의 교전에서 거듭 승리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 지역에서 견훤의 군사를 여러 번 격파하고 906년 상주의 사화진, 909년 진도 부근의 도서와 나주를 공략하였다. 이어 충주와 청주 등의 충청도 지역과 경상북도의 상주 등을 점령하여 태봉국의 세력권을 넓혔으며, 나주를 공략하여 후백제의 배후를 위협하고, 중국과의 뱃길을 차단하여 국력을 확장시켰다. 뛰어난 전과를 바탕으로 궁예의 총애를 받으며 마흔 살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백관의 우두머리인 시중에까지 올랐고, 918에 궁예의 독단과 전횡을 문제삼은 여러 호족들과 배현경, 홍유 등 무장들의 지지로 거병하여 마침내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세웠다.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세력을 다투었으며, 92710월 견훤이 경주를 약탈하자 출병, 공산 동수 전투에서 후백제에게 대패하였으나 고창 전투와 병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패권을 잡았다. 935년에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쫓겨나 투항해오자 9369월에 대병을 일으켜 후백제를 무너뜨렸다. 938에 탐라를 복속시키고, 신라에 호의를 보여 경순왕은 자발적으로 그에게 투항하였다. 그는 경순왕에게 두 딸인 낙랑공주 왕씨와 부인 왕씨를 내려주고, 정승공에 봉하였으며 토지와 경주를 식읍으로 내렸다. 또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아 고려 사심관제도의 시원이 되었다. 926년부터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북방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호족가문의 딸들과의 결혼정책, 자제를 도성으로 유학시켜서 볼모로 삼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918부터 943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918 나주도대행대시중 구진(具鎭)과 국구 유금필(庾黔弼)이 잠시 순차적으로 대리청정하여 국정을 담당했고 같은 해 918부터 943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왕건은 877년에 한주 송악군에서 사찬(沙湌) ()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서해 용왕의 딸과 혼인하여 왕건을 낳았기 때문에, 대대로 왕씨 일족의 겨드랑이에는 용의 비늘이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당나라의 황제(숙종)가 왕자 시절 한반도를 유람하다가 얻은 사생아가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라는 전설도 있으나, 왕가의 핏줄을 미화하기 위해 생겨난 전설로 여겨진다. [고려사]에도 실려 있는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융이 송악의 남쪽에 집을 짓자 당대 도참(圖讖)의 제일인자였던 도선(道詵)이 지나가다가 이곳에서 성인이 나시리라라고 외치고는, 융에게 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도선은 왕건이 17세 때 다시 찾아와 너는 장차 왕이 될 운명이다.”라고 알리고, 병법과 각종 술법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군주를 용에 비겨서 용상(龍床)이니 용안(龍顔)이니 하여 그 권위와 존엄성을 높이기도 했다. 용상(龍床)이나 용안(龍顔) 외에도, 황제의 후대를 뜻하는 용자(龍子), 황제의 수레인 용여(龍輿) 등은 그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낸다. 현빈이 등장한 영화제목이기도 했던 역린은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말이다.
()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이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그의 목 아래에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 즉 다른 비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임금도 역린이 있어 말하는 사람이 이 역린만 건드리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人主亦有逆鱗]
즉 왕건 겨드랑이에 비늘은 왕건이 해양세력이며 왕이 될 징조라는 전설을 담고 있다. 가슴이 큰 여성도 자랑스럽겠지만 역린처럼 약점이 있다. 바로 겨드랑이에 생긴 가슴확대수술 절개 흉터이다. 이 흉터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겠지만 나시티를 입고 팔을 들어 만세를 부르거나 대중교통 손잡이등을 잡을 때 너무 잘 보일 수 있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이런 가슴확대수술흉터를 치료하는데 유륜이나 가슴아래에 생긴 흉터도 물론 수술후 흉터침으로 치료할 수 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