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3일 금요일

돌 던지기 놀이와 상흔 흉터치료

돌 던지기 놀이와 상흔 흉터치료


돌 던지기 놀이를 구경하던 태종은 종루 아래에서 잔치를 베풀어 신하들과 종친들을 대접했다. 놀이에 참석한 백성들에게는 베와 저화를 상으로 내렸다.
왕이 직접 관람하고 깃발을 하사하면서 돌 던지기 놀이는 조선의 대표 스포츠가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후원을 받는 프로팀이 만들어진 셈이다. 142963일 판부사 허조가 세종에게 건의함으로써 브레이크가 걸렸다. 나라에 아무런 이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니 돌 던지기 놀이를 금지시키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백성들은 단오가 되면 편을 나누어 돌 던지기 놀이를 즐겼다. 1438년에는 양녕대군을 비롯한 종친들이 사람들을 모아 반송정에서 돌 던지기 놀이를 벌이게 하고는 구경했다. 말을 타고 참가해서 독려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달아 올라 많은 사람이 다치고 사망자도 나오면서 사헌부에서 조사에 나섰다. 예종 때도 이 놀이를 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이 발생하자 조사를 명하기도 했다.
갑갑한 일상에 짓눌려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이 놀이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었다. 특별한 오락거리도 없을 뿐더러 굶주림과 전염병에 언제 시달릴지 모르는 백성들이 돌을 던지면서 잠시 시름을 잊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백성실록 우리 역사의 맨얼굴을 만나다, 정명섭 지음, 북로드, 페이지 18-19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에서도 석전이라고 하는 돌던지기 시합을 대비해 아기장수인 길동이가 돌 맞추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필자는 오락거리가 없는 조선에 축제처럼 재미를 선사하고 모의전쟁연습을 하여 군사적으로 장려되었던 듯 하다. 문제는 돌 던지기가 장난이 아니라 개구리에게 장난삼아 돌을 던지는데 개구리입장으로서는 생사가 걸린 중대문제가 될수 있는 점이다.
돌에 맞으면 상흔과 상처가 발생하는데 돌은 가속도를 받고 무게가 있어서 진피깊숙히까지 쉽게 다치게 된다. 이 상처가 아물면서 흉터가 생기면서 좋아지긴 하지만 문제는 흉터는 자연치유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흉터가 얼굴이나 신체등 피부에 남는점이다.
현대인이 돌에 맞을 경우는 없지만 넘어져서 돌에 찧어서 발생한 상처나 유리조각등 날카로운 물건에 찢어진 열상이나 찔린 자상으로 흉터가 생길수 있다. 위와 같은 흉터는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 흉터침, , 한약 재생약침등으로 관리와 치료가 가능할수 있으니 안심하고 치료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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