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의 고문과 화상흉터치료
진나라 조정에서는 농민들에게 田賦전부, 인두세를 마구잡이로 부과했는데 세금이 전국시대 육국보다 20배 높은 수준이었다. 요역이나 부역의 경우, 전국시대보다 무려 30배 많았다. 육국 귀족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영정이 그들의 재산 상태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함양 도성 근처로 억지로 이전해 재산을 바쳐야 했다. 그 결과 빈털터리로 전락하지 않은 부호가 없었다. 사회상 탓에 진나라에 관한 서적에서 다음 같은 내용이 있다.
‘시체가 천 리를 뒤덮고 시뻘건 피가 논밭을 적시니, 힘을 다한 백성은 도탄에 빠졌네. 과부와 노인, 어린아이가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그저 길에서 죽기만을 바라네.’
육국시대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디로든 도망가서 열심히 일하기만 해도 배곯을 잃은 없었다. 천하가 통일된 상태에서는 땅을 버리고 도망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도망치지 않거나 머뭇거린다고 해도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영정은 도망치거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죄인에게 무자비한 형벌을 가했다. 방법이 열두가지나 되는데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허리를 자르는 요참, 머리를 자르는 효수, 머리를 잘라 거리에 내거는 棄市기시, 戮屍육시, 車裂거열, 坑갱, 나무 기둥에 묶어두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石磔석책, 戮死육사, 철기로 머리를 박살내는 鑿顚착전, 갈비뼈를 뽑는 推肋추륵, 가마솥에 산채로 삶는 釜烹부팽, 사형..
사치를 일삼았던 영정은 자신으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점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등 폭정을 일삼으면서 물 쓰듯 펑펑 소중한 재화를 낭비했다.
중국 역사 속에서 살펴보는 화폐 이야기, 천위루, 양중수 지음, 이지은 옮김, 아이넷북스, 페이지 95
白巖(백암) 朴殷植(박은식)선생님이 쓴 韓國獨立運動之血史(한국독립운동의 혈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將各處村落, 人家, 敎堂, 學校及糧穀數萬石付之一烥
장각처촌락, 인가, 교당, 학교급양곡수만석부지일신
또 각처의 촌락, 인가, 교당, 학교와 양곡 수 만석을 불 질렀다. 烥(불꽃 신)
將男女老幼加以砲殺, 刀殺, 杖殺, 縛殺, 拳殺, 踢殺, 磔殺
장남녀노유가이포살, 도살, 장살, 박살, 권살, 척살, 책살
또 남녀, 노유에게 총으로 죽이고, 칼로 죽이고, 몽둥이로 죽이고, 목메 죽이고, 주먹으로 처 죽이고, 발로 차 죽이고, 갈라 죽이고)
踢(발로찰 척), 磔(책형 책; 짖어죽이고, 갈라 죽이는 것)
生埋,火燒,釜烹,解剖,穿鼻,穿脇,割腹,斬首,鑿眼,刮皮 생매,화소,부팽,해부,천비,천협,할복,참수,착안,괄피 생매장 하고, 불태우고, 솥에 삶고, 해부하고, 코를 뚫고, 배를 가르고, 머리를 베고, 눈을 뽑고, 피부를 벗기고 鑿(뚫을 착), 刮(깍을 괄)..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내용에도 산채로 솥으로 삶아버리는 내용이 등장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세 종교재판 불로 화형시키거나 끓는 물로 태우는 고문이 등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끓는 물이나 뜨거운 물건에 데이는 작은 화상을 겪어봤기 때문에 전체 고문 화상을 받는 두려움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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