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잔인한 동탁과 끓는 물 화상흉터치료

잔인한 동탁과 끓는 물 화상흉터치료


동탁(董卓, ? ~ 192년 음력 423)은 중국 후한 말의 장군 겸 정치가로 자는 중영(仲穎)이며 양주(凉州) 농서군(隴西郡) 임조현(臨洮縣) 사람이다. 변방에서 무공을 쌓았다. 영제 사후 십상시의 난 등 정치적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잡았다. 소제를 폐하고 부패·살인·약탈·도굴·방화·축재 등 온갖 폭정을 휘둘렀다. 관리들의 대규모 무장 항명사태인 반동탁 연합군과 각종 암살 시도가 있었고 결국 왕윤·여포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대표적인 악인으로 두루 회자되었다.
거칠고 사나웠으며 지략이 있었다. 강족들도 경외할 정도로 힘이 세고 무예가 뛰어나서 동개 두 개를 차고 말을 몰면서 좌우로 활을 쏠 수 있었다. 오부(伍孚)가 동탁의 암살을 시도했을 때도 힘이 세서 실패한 바 있다. 한편으로 매우 뚱뚱했다. 동탁의 시체에서 기름이 흘러 이를 지키는 관리가 그 배꼽 위에 심지를 놓고 불을 붙였는데 며칠씩이나 계속 탔다.
흉악하고 방자한데다 잔인했다. 한번은 양성(陽城)에 군대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마침 백성들이 지신제를 지내고 있기에 모두 죽이고 재물과 부녀자를 취하고는 도적을 격파했다며 만세를 불렀다. 장안에서는 공경대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항복한 수백 명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먼저 혀를 자른 다음 손발을 베고 눈알마저 파낸 후에 삶았으며 미처 죽지 않은 자들은 주안상 사이로 굴러다녔다. 모두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수저를 들지 못 하는데 동탁만이 태연자약하게 먹고 마셨다.
억세고 편협하며 화가 나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동탁이 아끼는 호인 부하가 이를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사례교위 조겸(趙謙)에게 죽었다. 동탁이 대노하여 내가 사랑하는 개도 꾸짖지 못하게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아닐쏘냐!”라고 하며 사례도관(都官)을 죽였다. 위위 장온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태형을 받고 목숨을 잃었으며 동탁을 노려보기만 해도 저세상으로 갔다. 호위를 맡긴 여포에게까지 사소한 이유로 수극을 던질 정도였고 결국 이것이 화가 되었다.
동탁이 정권을 장악한 후 순유는 정태, 하옹, 충집, 오경과 그 암살을 모의하며 동탁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보다도 심하니 그를 죽이는 것은 제 환공이나 진 문공의 의거와 같다.’고 하였다. 순욱은 191년 조조에게 임관하며 그 포학함이 지나치게 심하니 필히 변을 당해 망할 것입니다.”라 평하였고 그 말대로 수회 암살 시도가 있었고 결국 왕윤, 여포 등에게 죽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거칠고 포악하며 사악한데다 잔인하다. 역사를 기록한 이래 이와 같은 자는 없었다.’고 평하였다. 후한서의 저자 범엽은 원래 호랑이 같은 성깔로 우연히 난세를 만나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대신들과 정사를 타협하고 찬탈도 주저했으니 어찌 보면 대도라 하겠다.’고 평하였다. 왕찬의 영웅기에서는 사람들이 동탁이 있어서 큰 난리가 생겼고 그 난리가 동탁 자신까지 집어삼켰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동탁은 왕망, 조조 등과 함께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역적의 대명사로 취급되었다.
 
無字小錢무자소전을 시장에 유통시키고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기 위해 동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함을 보여줬다. 동탁은 연회에서 흥을 돋우라며 걸핏하면 사람을 죽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한 술자리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백명의 목숨을 앗았다. 먼저 혀를 자른 뒤 손발을 잘랐다. 그러고도 성이 안찼는지 눈알을 뽑은 뒤에 물에 던져 삶아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젓가락을 땅에 떨어뜨리자 동탁만이 박장대소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 동탁 개인의 위력을 등에 진 무자소전이 등장하면서 장안성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다. 후한서, 삼국지, 진서 모두 동탁이 무자소전을 발행한 후 장안성 곡식 1(, 동한 말년 1곡은 지금의 30근에 해당한다.)의 가격이 100만전까지 치솟았다고 기록한다.
 
중국 역사 속에서 살펴보는 화폐 이야기, 천위루, 양중수 지음, 이지은 옮김, 아이넷북스, 페이지 224-225
 
동탁이 이민족이라 악행이 과장되어 있다고도 하지만 없는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지는 않은 듯하다. 특히 눈을 뽑은뒤 끓는 물에 삶았다는 내용을 보면 치가 떨릴 정도로 나쁜 인간임을 알수 있다. 그런데 끓는 물을 이용해 동탁이 노리는 것은 두려움일 것이다.
사람은 끓는물이나 불에 대해 화상과 그 통증에 대한 공포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화상사고도 직접적인 불보다는 끓는 물 국물등으로 발생한다. 다행히 끓는물로 생긴 화상흉터는 일반 불에 데인 화상보다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 화상후 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기간이 짧고 더 호전이 될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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