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동탁의 낙양 방화와 화상흉터치료

동탁의 낙양 방화와 화상흉터치료


동탁의 병사는 불과 3,000명뿐이었지만 사오일 간 밤에는 몰래 밖으로 군사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북을 울리며 입성시키기를 반복하여 대군인 양 꾸며서 위세를 보였다. 죽은 하진·하묘 형제의 병력을 자연스레 거두었을 뿐더러 여포를 부추겨 집금오 정원을 제거하고 그 군대까지 흡수하니 정말로 대군이 되었다. 가뭄을 이유로 사공 유홍을 면직시키고 대신 그 자리에 올랐다.
소제는 어리석은 데 반해 유협은 똑똑한데다 같은 성씨인 동태후가 길렀으므로 폐립할 뜻을 품었다. 먼저 원소에게 그 뜻을 내비치니 반대하기에 유씨(劉氏)는 남겨둘 수 없다고 화냈다. 원소 역시 발끈하여 천하에 강한 자가 어찌 동탁뿐이겠는가!’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이내 기주로 달아났다.
9월 대신들과 폐립을 의논하였다. 오직 노식만이 반대했을 뿐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 했다. 소제는 폐위하여 홍농왕으로 강등시키고 유협을 제위에 앉혔으며 하태후와 그 어머니 무양군(舞陽君)을 죽였다. 이내 태위로 옮겼다가 헌제를 옹립한 공이 있다 하여 스스로 상국에 오르고(1126)자신은 미후(郿侯), 어머니는 지양군(池陽君)에 봉했다. 황제를 배알할 때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며[贊拜不名] 칼을 찬 채 전각에 올랐다.[劍履上殿] 동탁과 그 휘하 군대는 살인·약탈·겁탈·축재 등 온갖 전횡을 저질렀다.
환관들이 충성스럽고 어진 이들을 주살했던 것을 천하가 미워했으므로 뭇 선비들을 발탁하였다. 주비는 이부상서, 오경(伍瓊)은 시중(侍中), 정태는 상서에 임명하고 한복은 기주, 유대는 연주, 공주는 예주 자사로 각각 파견하였으며 장자(張咨)는 남양태수로 삼았다. 사실 이들은 모두 동탁을 몰아내려고 공조하고 있었고 마침내 190(초평 원년) 발해 태수 원소를 맹주로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났다.
안 그래도 황건적이었던 곽태(郭太) 등의 백파적(白波賊)이 서하군(西河郡)에서 봉기하여 그 규모가 10여만 명이었는데 반동탁 연합군까지 일어나자 난감해진 동탁은 이유를 시켜서 홍농왕을 독살하고(190125) 그들을 천거한 주비와 오경은 참했으며 태위 황완·사도 양표의 반대를 내치면서 장안 천도를 강행했다. 낙양 사람 수백만 명을 군대로 몰아치며 이주시키니 짓밟히거나 굶어 죽은 시체가 거리를 메웠고, 궁궐, 관청, 민가는 모두 불태워서 200리 내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여포를 통해 황제와 대신들의 묘까지 도굴하였다. 그 과정에서 원소의 숙부 원외와 원술의 동복형 원기 등 낙양에 남아있던 원소 일가를 멸족하였다.
6(음력) 한융(韓融음수·호모반·오수(吳脩왕괴(王瓌)를 보내 진정시키려 했으나 한융을 제외하고 모두 잡혀 죽었다. 이러는 중에 오수전을 녹이고 대신 소전(小錢)으로 화폐 개혁을 실시했는데 조악한데다 너무 많이 만들어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곡식 한 곡()이 수십만 전에 이를 정도로 실패하였다.
하내 태수 왕광이 태산병을 하양진(河陽津)에 주둔시키고 장차 남쪽으로 넘어오려 하기에 평음진(平陰津)에서 황하를 건널 것처럼 속이고 몰래 소평진에서 북상해서 그 배후를 둘러 공격해 거의 다 죽였다. 조조는 제북상 포신, 진류 태수 장막의 부하 위자와 함께 형양(滎陽) 방면으로 오므로 서영을 보내 무찔렀다. 서영과 이몽을 네 번 출전시켜 일대를 노략질하고 원소의 예주 종사(從事) 이연을 삶아 죽였다. 겨울에는 노양(魯陽)으로부터 올라오던 장사 태수 손견까지 양(, 지금의 허난성 루저우시)에서 서영이 대파함으로써 세 방향 모두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191년 음력 2월 손견이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고 다시 양인(陽人)으로 진격해오자 호진을 대독(大督), 여포를 기독(騎督)으로 삼아 요격하였다. 호진과 여포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내분으로 패하였고 이각을 보내 화친을 시도했으나 결렬되었다. 손견이 낙양 가까이까지 진군해오므로 친히 맞붙었지만 패하여 낙양 입성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만 낙양은 이미 황폐해져 보급이 어려웠기에 손견은 곧 노양으로 돌아갔다. 주준 역시 한때 낙양에 입성했었으나 이내 중모(中牟)에 주둔하였다. 동탁은 중랑장 동월(董越), 단외, 우보를 각각 면지(黽池), 화음(華陰), 안읍(安邑)에 배치하여 대치시키고 장안으로 들어갔다.
 
한 헌제 초평원년(190)에 동탁이 상경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후장군 원소, 익주 태수 한복, 연주자사 유대, 하내 태수 왕광을 비롯해 당시 아무런 세력도 없던 조조를 비롯한 관동군이 등장했다. 동탁 타도를 외치는 이들은 원소를 맹주로 추대한 뒤 나라와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동탁을 제거하겠다며 기세 좋게 나섰다!
동탁의 행동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관동군이 자신의 상대가 될수 없다고 판단한 동탁은 낙양 부근에 있는 공경 이상 되는 무덤 여러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동한 역대 제왕의 능묘가 포함되어 있었다. 동탁은 무덤을 훼손해 순장된 보물을 훔쳐내더니 급기야 낙양의 궁전, 왕부, 아문, 민가, 상점, 길거리 곳곳에 불을 지른 뒤 병사들을 이끌고 유유히 낙양을 빠져나왔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나선 관동연합군이 낙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낙양 주변 200리가 모조리 새하얀 재로 변했다. 200년동안 힘겹게 쌓아올린 동한 제국의 재화, 인재, 문화가 하룻밤 사이에 허망하게 불길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해 6월 동탁은 고도 장안에 발을 디뎠다.
 
중국 역사 속에서 살펴보는 화폐 이야기, 천위루, 양중수 지음, 이지은 옮김, 아이넷북스, 페이지 222-223
위 내용을 보면 약탈이후에 방화로 완전히 한 문명을 원폭을 쏘듯이 폐허로 만들었다. 우리 개인적인 집이나 회사도 화마가 들이닥치면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된다. 사람도 화상이란 인명손상을 당하는데 그 이후에도 화상흉터로 눈물짓는 경우가 많다. 화상흉터로 고민과 걱정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에서 화상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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