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와 봉합흉터치료
에르제베트 일가의 많은 사람들은 간질, 광기를 비롯한 정신병력을 갖고 있었는데 근친결혼으로 열성 유전자가 득세한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에르제베트 숙모인 클라라 바토리는 성관계에 탐닉하여 첫 남편을 쇠약사시켰으며 둘째 남편도 침대 위에서 질식사했다. 세번째 결혼 한 후에도 섹 스를 계속한 끝에 결국은 사망했다. 에르제베트의 아버지도 사촌인 안나와 결혼했는데 현대의 의학자들은 에르제베트의 일대기를 검토한 결과 그녀에게도 간질증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에르제버트는 6살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건을 목격했다. 집시 무리 한 명이 자기 아이들을 터키인들에게 팔았다고 고발당한 뒤 곧바로 유죄가 인정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녀가 새벽에 처형 현장으로 갔을 때 병사들은 말의 배를 가른 다음 그 안에 사형수를 밀어 넣었다. 그의 머리만 튀어 나왔다. 그러는 동안 긴 바늘과 거친 실로 말의 배와 사형수를 꿰매버렸다. 이 장면은 그 후 에르제베트가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자기와 같이 왕족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저급한 계층의 사람들을 마음껏 처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였다.
세기의 악당, 악인은 왜 매력적일까? 북 카리반, 이종호 지음, 페이지 230-231
바토리 에르제베트(헝가리어: Báthory Erzsébet, 체코어: Alžběta Báthoryová 알주베타 바트호리오바[*], 슬로바키아어: Alžbeta Bátoriová 알주베타 바토리오바, 폴란드어: Elżbieta Batory 엘주비에타 바토리; 1560년 8월 7일 (?) - 1614년 8월 21일)는 헝가리 왕국 출신의 귀족이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가운데 하나로서 후세에는 흡혈귀 전설의 모델이 되었다.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합스부르크 왕조와 비견될 정도로 트란실바니아에서 가장 유서 깊고 유복한 바토리 가 태생이었으며, 폴란드의 스테판 바토리의 질녀에 해당한다. 당시 트란실바니아 공이나 헝가리의 재상은 그녀와는 사촌지간이었다.
당시 유럽의 여러 가문은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혼을 많이 하였는데, 그로 인한 정신이상자나 기형아가 나오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에르제베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친척 중에는 동성애자(숙모), 악마숭배자(숙부), 색정광(형제) 등이 있었으며 그녀 역시 어릴 때부터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괴팍한 성격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4살에는 하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1575년, 15살의 에르제베트는 5살 연상의 헝가리의 나더슈디 페렌츠(Nádasdy Ferenc) 백작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남편보다 더 높은 신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한 후에도 바토리라는 성을 유지했다. 나더슈디는 오스만 제국과 치른 전쟁에서 헝가리군을 지휘했는데 용맹하기로 유명하였지만 동시에 잔혹하기로도 유명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총 다섯 명의 아이가 생겼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남편의 부재가 잦았다. 1602년(또는 1604년)에 에르제베트는 전쟁통에 일찍 남편을 여의어 과부가 되었으며, 이후 자신의 소유지인 슬로바키아 지방의 체이테 성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현지에 거주하는 루터교 목사가 에르제베트를 수상히 여겨 그녀가 기이한 행각을 벌인다는 소문을 당국에 알렸지만 바토리 가문의 명예를 고려해 수사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천한 농부의 딸뿐만 아니라 귀족의 영애에게까지 피해가 미쳤으며 이는 헝가리 궁정에까지 알려지게 된다. 1610년에는 감금당했던 소녀 한 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당국에 신고하면서 마침내 수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1610년 12월 30일 성 안에 들어간 조사팀은 다수의 시체와 소수의 생존자를 발견했다. 더불어 온갖 종류의 고문도구와 성 주변 여기저기에 매장된 여자 시체 50여 구도 나중에 발견하였다.
나중에 에르제베트는 처녀의 피로 목욕하며 잔인함으로 유명했다. 아름다움을 위해서 인명을 경시하는 사이코 패스였는데 그런사실이 없고 모함을 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위 내용을 보면 말배에 사람을 넣는 완전히 제왕절개 수술도 아닌 봉합 수술을 하는데 사람의 잔인성은 그 상상을 초월한다.
의학적인 치료는 같은 칼을 사용하지만 살인을 하는 검과 사람을 살리는 活人활인 검이 있듯이 사람을 살리려는 좋은 의도로 외과 수술적 치료를 하는데 결과적으로 흉터를 남겨 미적인 아름다움을 깨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암수술등이 있는데 사람은 우선 살렸기 때문에 흉터를 남기는 것은 너무 쉽게 생각한다. 또 물에 사람을 구해줬는데 잃어버린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억지를 쓸수 없어서 수술후 흉터가 생기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불가피한 상황에서 발생한 수술후 흉터를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는 수술후 흉터침인 OT침으로 침, 한약 재생약침등을 이용해 수술적으로 생긴 흉터를 제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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