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딱지와 흰 딱지 적색과 흰색 튼살치료
김정한은 1908년생으로서 식민지기를 몸소 겪은 분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알지 못하는 정신대의 원래 뜻을 정확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수공장으로 간 여자들이라고 말입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막상 정신대로 간 사람들로부터의 ‘소식’에 의하면 중국 남방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 소식은 과연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요. 소설을 좀 더 따라 읽으면 드디어 마을의 여인들이 끌려가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결국 옥이에게 붉은 닦지가 나오고야 말았다. 역시 그놈이었다. 여자정신대원! 일본 병정의 위안부!
소설의 주인공 가야부인의 몸종인 옥이 처녀에게 드디어 ‘붉은 딱지’, 곧 정신대 영장이 발부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역사가의 입장에서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붉은 딱지’[赤紙]는 군인으로 징병될 청년들에게 발부되는 영장이었습니다. ‘흰 딱지’[白紙]도 있었는데요, 징용 대상자에게 발부되는 영장이었습니다. 여자정신대에 대해서는 붉은색이든 흰색이든 영장이 발부된 적이 없습니다. 전술한 대로 조선에서는 ‘여자정신근로령’이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장을 발부하기 위해 국가는 치밀하게 준비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선 모든 사람의 직업능력을 등록시킨 필요가 있습니다. 호적지를 떠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늘날의 주민등록부와 같은 것이 정비될 필요도 있습니다. 동원의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예비 교육도 시켜야 합니다. 실제 총독부는 1938년 발포된 ‘국민총동원법’에 근거하여 이러한 준비과정에 착수합니다. 국민직업능력신고령에 의거하여 국민등록제를 실시하였으며, 기류령(寄留令)을 공표하여 호적지를 떠나 사는 사람들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했으며, 농촌청년을 대상으로 일본말을 가르치고 제식훈련을 시키는 등, 이른바 연성(鍊成)과정을 운영했습니다. 총독부가 1944년 징병제와 국민징용령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이 같은 준비작업이 치밀히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그러한 준비작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1944년 8월 ‘여자정신근로령’이 발동되었지만 조선에서는 실행하려야 할 수 없는 객관적인 여건이었지요.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여자들이 학교나 직장 단위로 정신대로 간 것은 사실상 강제였습니다만 형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지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딱지 같은 것이 발부된 적은 없었던 것이죠.
김정한은 소설가이기 때문에 역사가처럼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당시 붉은 딱지가 조선인을 상대로 발부되었다는 사실, 여인들이 정신대로 나갔다는 사실, 그리고 위안부로 끌려간 여인들이 있었다는 사실 등입니다. 그는 장소와 시간을 달리 하는 이 세 가지 사건을 그 스스로도 당시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인 1969년에 이르러 어렵지 않게 하나로 통합하였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붉은 딱지’가 발부된 “여자정신대! 일본병정의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야말로 소설처럼 쓰인 소설이었지요. 그렇지만 소설의 힘은 위대합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들의 마음에 소설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신대를 위안부로 아는 국민의 집단기억은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제가 읽었던 좁은 범위의 근거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위 기사를 보면 붉은 딱지와 흰 딱지가 등장한다. 赤紙적지라고 하여 붉은 종이는 일제 징병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피부에 발생하는 튼살도 초기에는 붉은 튼살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흰색 튼살로 발생한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적색이거나 백색 튼살을 막론하고 이미지한의원의 튼살침인 S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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