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8일 화요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나치와 금연 화상흉터치료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나치와 금연 화상흉터치료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흔히 '나치'(독일어: Nazi [ˈnaːtsi],) 또는 '나치스'([ˈnaːtsis], 나치의 복수형)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당의 정식 명칭이 아닌 널리 쓰이는 줄임말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國家社會主義獨逸勞動者黨, 독일어: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나치오날조치알리스티셰 도이체 아르바이터파르타이, 약칭 NSDAP 엔에스데아페)1919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독일의 정당이다. 일명 '나치'(Nazi)라고 일컬어진다.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반공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등을 중점적 정책을 내세웠으나, 이와 사회주의를 절충한 정도는 논란이 된다. 1차 세계 대전의 평화협정 베르사유 조약에 강력히 반대해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으며 이른바 아리아인’, ‘게르만인이나 독일인의 우월주의를 주장하였다. 당의 정책은 25개조 강령에 잘 드러나 있다.
당명의 Nationalsozialistisch국가사회주의로 번역하느냐 민족사회주의로 번역하느냐에는 논란이 있다. 독일어 단어 ‘Nation’은 국민, 국가 또는 민족을 뜻하는 낱말이다.
한편, 사회주의라는 말의 어원은 그 나라의 공장, 토지, 농지, 기업 등의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자본가들이 소유하느냐, 국가가 소유하느냐, 노동자들의 정당이 소유하느냐에 따라 자본주의와 국가 사회주의와 볼쉐비즘으로 분리되며 히틀러는 이 중 공장 등의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할 것을 분명히 하였으므로 민족을 아무리 그 정당강령에서 중요시하였다하더라도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나치즘에 사용하려면 국가사회주의로 번역을 하는 것이 사회주의라는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이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론에 의한 중간단계로서의 국가가 소유권을 가지는 사회주의 이론에도 부합한다.
3제국’(das Dritte Reich, [das ˌdʁɪtʰə ˈʁae̯ç])이라는 표현은 아돌프 히틀러가 로마제국을 제1제국, 1871년 통일의 결과로 수립된 독일 제국을 제2제국이라고 부르고 자신이 수립한 나치 독일 체제가 독일 국민의 세 번째 제국으로서 천 년을 갈 것이라고 주장한 이후 사용되었다. 물론, 히틀러가 천 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제3제국은 124개월 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나치즘(영어: Nazism)은 나치의 사상 체계 및 그들이 수립한 전체주의 체제를 뜻하는 것으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현대사 최초의 공익적인 금연 운동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담배 운동을 전개했던 나라는 나치 독일이다.
독일의 의사들이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알아낸 이후로 나치 독일은 강력한 반담매 운동을 벌였는데, 놀라운것은 나치가 이런 운동을 했다는게 더 놀라운 듯 것은 히틀러 총통의 담배에 대한 반응이다.
본디 히틀러는 하루에 25에서 40개비 정도를 비우는 골초였다. 그런데 이후에 담배는 '퇴폐한 것' 이라고 규정짓고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팔동생헤르만 괴링이 시가를 피는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히틀러 총통 : 괴링, 흡연은 나빠! 차라리 모르핀을 줄테니까, 담배 피지마.
괴링 : 알겠습니다!
1인당 담배소비량을 비교해보면 1930년 독일이 490개피인 반면에 미국은 1485개이며, 1944년 독일이 743개인 반면에 미국은 3039개피이다.
1930년대에도 반담배 운동이 있었으나 실패하고 1940년까지 급증하였으나, 이후로 나치 독일의 반담배 운동으로 4년 만에 300개비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줄이는데 성공하였고, 독일에서는 전후로 그 어떤 금연 운동도 2차 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이 주도한 반담배 운동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히틀러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나의 투쟁'으로부터 번 수익으로 자신이 직접 Jena 대학에 의뢰한 암 연구에 10만 마르크를 기부했다. 금연연구는 정부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았으며, 독일 과학자들은 세계최초로 담배가 폐암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1939년에 나치 당원이며 의사인 Franz H. Müller는 박사 논문에서 흡연과 폐암의 관계에 대해 증명했으며, 2년 후 독일 연구자들은 폐암의 주원인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연구는 1941년에 JenaFriedrich-Schiller 대학에 설치된 '담배의 폐해에 대한 과학연구소'에서 실시되었다. 그러한 종류의 연구소로는 세계 최초였다.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담배는 '민족의 적(Volksfeind)'으로 선언되었으며 흡연이 돈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비판되었다. 히틀러는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법을 또한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그것은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금연 캠페인이었다. 나치 독일 정부는 의사들에게 환자들에게 금연을 적극 권유하도록 요구했다. 뿐만아니라 공군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었으며, 국방군의 담배 배급 제한과 군인들을 위한 의학 강연 개최, 담배세 증세도 실행에 옮겼다. 또한 제복을 입은 경찰은 흡연이 금지되었고, 노면 전차와 버스, 시가 전차 내에서의 흡연 금지령을 비롯해 레스토랑과 카페는 여자에게 담배 파는 것이 금지되었다. 또 임신부에게 담배 쿠폰은 거부되었고, 18세 이하가 공개적으로 흡연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담배제품을 위한 광고는 엄격히 규제되었다. 또한 '간접흡연'이라는 말은 '담배와 유기체'의 저자 Fritz Lickint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그는 그 책에서 나치의 금연동맹과 궤를 같이 했다. 독일 국민들은 운동을 하고, 야채를 많이 섭취하고, 술 대신에 미네랄 워터를 마시며, 금연을 하도록 권장되었다.
또한 초기 단계에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성들이 유방 자가진단을 하도록 권장하는 세계 최초의 계획이 히틀러의 적극적인 격려와 승인을 얻어 드레스덴에 있는 독일 위생박물관에서 시행되었다. 그러는 한편 여성은 유방암 정기검진을 요구받았다. 그때까지 그러한 건강 캠페인을 후원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독일 말고는 없었다. 독일은 이러한 공공 건강교육을 실시한 첫번째 나라였다. 비교해 본다면,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계획이 30년 후에야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이미 전쟁 전부터 인간을 위험한 마약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히틀러는 알코올이 "민족의 적"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나치 독일은 공공보건 캠페인의 일환으로 수도시설을 전폭적으로 개선하고, 납과 방사선, 수은, 카드뮴을 소비재에서 모두 제거시켰다. 대중매체와 학교를 통하여 독일국민들은 인공 식용색소와 음식과 음료에 포함된 방부제의 사용을 피하도록 권고되었다. 약품을 사용하는 대신에 유기체 또는 천연 재료를 사용한 비료와 화장품 사용이 권장되었다.
60년이 지난 후에도,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아직도 이 계획의 높은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말 전후 독일의 금연운동은 나치 독일의 금연운동 수준의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레스토랑과 같은 공공장소는 흡연자들로 넘쳐난다. 한편 미국과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 흡연의 폐해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진행되었고,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포괄적 합의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 이루어졌다.
'나치는 '마약 중독'을 국민적 폐퇴주의와 유대인의 불순 행위의 상징일 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이익을 위해 근절되어야 할 열등함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나치 시대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은 나치의 도덕적 기준에서 "무가치한 삶"이라는 위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동시에 근절되어야 될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작성자 세계사광(dyat2001)-
 
한 여인만을 사랑해 여자 관계가 깨끗했고, 금주 금연에 채식을 먹었으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히틀러가 2차 사계대전을 일으키고 원흉이 된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담배는 건강상 문제도 있지만 꽁초를 아무데나 버려서 화재가 일어나 재물과 신체 손상이 많다. 또 불량학생시절 담배빵을 당하거나 자해로 해서 화상흉터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화재나 화상으로 발생하는 흉터를 화상흉터침인 BT침과 담배빵은 흉터침인 한약 재생약침, 침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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