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의 여성 혐오 발언과 노파소암 화상흉터치료
중세 유럽에서 여성의 지위는 말할 것도 없이 낮아 많은 여성들이 고달픈 삶을 살았다. 클뤼니 수도원의 제 2대 원장이었던 오동이 여성에 대한 한 말을 보면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수 있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살가죽을 넘어서지 못한다. 남자들이 살가죽 밑에 있는 것을 본다면 여자를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힐 것이다. 손끝으로 가래침이나 똥도 만지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그 오물 자루에 포옹하기를 원할 수 있겠는가.
성직자들이 여성을 역겨운 생물이라고 여기고 혐오감을 갖는 일은 매우 흔해 중세 사람들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욕망이 강하고 남성들을 타락시키는 악마의 자식이라 생각했다.
스캔들 세계사 1, 이주은, 파피에, 75페이지
우선 이 책의 내용과 달리 중세 시대에는 성직자들도 여성과 관계를 맺고 사생아가 생겼기 때문에 그런 육체적 욕망 때문에 생긴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 여성 혐오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서양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아직 신에 대해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동양의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신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으니 죽이고 살리고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즉 어떤 것에 대한 혐오를 보면 더 집착하다 욕망해결이 안되었을 경우 생긴다. **녀등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남자는 여성에 대한 집착과 사귐이 몇 번 좌절되자 인터넷상에서 공격적으로 변했을수도 있다. 광주에 사는 남성이 부산까지 찾아가 한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있는데 처음에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친하게 지내다가 여성이 사귐을 거부하자 애정이 미움으로 돌변해서 살인까지 한 사건이 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속 고르곤 족의 미녀 였던 메두사가 머리에 뱀이 달린 못생긴 괴물로 변한 것과 비슷하다.
불교에서는 '노파소암老婆燒庵'이라는 선문염송 마지막 화두가 있다. 청신녀(淸信女) 노파가 암자를 지어 한 수행승의 뒷바라지를 했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스님의 도 닦은 정도를 점검하려고 공양상을 나르는 딸아이를 시켜 요염한 교태를 부려보도록 했다. 아가씨는 수행승 무릎에 올라앉아 스님 얼굴에 뽀뽀하면서 “스님, 이럴 때 기분은 어떠십니까?”고 물었다. 수행승은 “고목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하니 삼동설한에 따뜻한 기운이 없구나(枯木倚寒巖 三冬無暖氣)”고 했다. 딸은 마지막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스님, 저는 오래 전부터 스님을 사모하여 왔습니다. 저를 한 번만 안아 주시지요. 제발 저의 정을 뿌리치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선객은 흔들림 없이 말하였다.
“나는 수도를 하는 스님이오. 내게 있어 여자는 사마외도邪魔外道일 뿐이오. 썩 물러가시오.”
노파의 딸은 더 이상의 유혹을 포기하고 암자를 내려와 어머니에게 낱낱이 고하며 말했다.
“어머니, 스님의 공부가 이제 성도에 이르셨나 봐요. 저 같은 처녀가 아무리 교태를 부려도 소용없어요.”
딸의 얘기를 다 들은 노파는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그 같은 사마외도(邪魔外道)를 더 돌보다간 나도 함께 지옥에 떨어지고 말겠구나!” 노파는 당장 선객을 내쫓고는 이내 암자까지도 불질러 태워버렸다.
필자는 이 화두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극한 도는 간택함을 꺼린다는 말처럼 만약 여인이 안아준 것이 진정으로 싫었다면 오히려 좋고 나쁨의 경계에 끄달리는 것이니 오히려 나쁜 행위가 될수 있다. 물론 거짓말한 스님의 위선적인 행동을 경계해서 불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방화행위는 매우 큰 범죄행동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방화는 재산상 손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명피해를 한꺼번에 줄수 있다. 기타 질병의 경우에는 치료가 끝나면 마음에서 잊어 고통이나 트라우마가 적다. 하지만 필자의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화상을 당한지 수년 수십년이 되어도 화상흉터 때문에 치료받으러 온다. 화상이 피부에 생긴지 오래되어도 화상흉터라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끔직한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화상흉터침인 BT침 침 치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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