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6일 금요일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손톱 생채기 상처와 흉터치료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손톱 생채기 상처와 흉터치료


2016824일 밤 10시에 첫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에는 모친을 유방암으로 잃은 표나리(공효진 분)가 이화신(조정석 분)의 가슴에 집착하는 이유로 그려졌다. 짝사랑했던 기자를 향하여 쭈뼛쭈뼛, 이화신의 방콕 숙소를 찾아간 표나리는 제가 뭐든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까칠남 이화신은 뭘 도와라며 분장팀 왔으면 분장 들어오라 그래라고 지시했다.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들어온 건 표나리였다. 표나리는 제가 메이크업 담당입니다라고 말했고 안일한 제작팀의 준비에 이화신은 이것들이 진짜라고 분통을 터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표나리는 메이크업에 헤어, 의상까지 이화신의 모든 일을 옆에서 도왔다. 메이크업을 찾아도 표나리, 헤어를 찾아도 표나리가 들어오자 결국 이화신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이화신은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이게 다 국장님 짓이니 네가 무슨 죄가 있냐고 자포자기한 태도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표나리가 내민 의상에는 컨셉? 무슨 컨셉이라고 삐딱한 시선을 나타내며 급기야 자신이 선택한 옷을 고집했다. 의상을 바꿔주려는 표나리와 셔츠를 고수하려는 이화신은 셔츠 단추를 부여잡고 실갱이를 벌였다.
표나리의 손톱에 스친 이화신의 가슴에서 피가나고, 표나리는 크리넥스 티슈로 피를 닦으면서 말했다.“아휴 미친년 손톱 좀 깍지 뭐
그만해 별거 아니야라고 이화신이 말했다. 가슴에 피를 닦아내던 중 표나리가 손끝으로 가슴을 짓누르자 이화신은 딱딱~한 게 만질만하지 네가?“라고 말했다. 표나리가 계속 가슴에 손을 떼지 못하자 이화신은 이를 피하려다 침대 위로 쓰러졌고 이 상황에 야 너 지금 뭐하냐 성희롱? 너 기자 성희롱하면 온 국민이 다 알어 시집도 못 가 기집애야라고 화를 냈다. 표나리는 이에 아니 그게 기자님 가슴이 우리 엄마..아니에요 아니 선무당이 사람잡겠다.”고 말을 아꼈다.
가슴에 대한 집착은 방콕을 넘어 한국까지 이어졌다. 방송국에서 남들 보는 데서까지 가슴을 저돌적으로 만지는 표나리에 이화신은 눈을 피해 모니터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가 의사라도 자꾸 왜 그러냐?”며 화를 내는 이화신에 표나리는 모친이 유방암으로 사망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화신의 가슴이 당신의 어머니의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며 가슴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를 전했다. 이화신은 할머니, 어머니는 여자이고, 난 남자야, 수컷이라고! 하며 화를 내었다.
 
위 내용을 보면 사람의 손톱으로 상처가 나서 피가 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람이 손톱으로 할퀴어서 사약까지 받은 사실이 조선시대 폐비 윤씨 사건으로 존재한다.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715(음력 윤 61) ~ 1482829(음력 816))는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며 둘째부인이다. 성종과의 슬하에 두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장남은 조선 10대 왕 연산군이고 둘째 아들은 조졸하였다.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되어 사사되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3]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윤관의 11대손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남편인 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여자 관계가 복잡한 남편인 성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성종이 자신의 처소인 교태전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는데, 남편과 말싸움 중 남편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이 있고, 다른 설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왕실의 사후 예우를 본다면 왕실의 눈밖에 나 폐위된 것이 유력하다.
경쟁관계에 있던 성종의 다른 후궁들이 인수대비를 찾아가 윤씨를 비판하며 그녀의 폐위를 부추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등으로 인해 윤씨는 마침내 1479, 자신의 생일 바로 다음날인 음력 62(양력 621)에 왕비(王妃)에서 폐위되었다.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원자의 생모이자 조강지처가 되는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상소와 시위가 끈임없이 반복되었으며,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연산군이 즉위함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반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 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상 등이 있다. 인수대비는 원자가 더 자라서 자신의 어미얼굴을 기억할까봐 하루빨리 새 중전(中殿)을 세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숙의 윤씨(淑儀 尹氏)를 왕비(王妃)로 책봉시켰다.
 
손톱자국 하나만으로 윤씨는 폐위되고 연산군은 폭군이 되어서 중종반정을 일으키게 하니 손톱 상처 하나가 조선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얼굴에 생긴 손톱자국 흉터도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얼굴에 흉터가 존재하면 시선을 한곳에 집중적으로 받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매우 불편해질수 있다. 타인이 안 쳐다본다고 할지라도 본인의 자격지심으로 흉터에만 신경쓰기 때문에 더욱 문제이다. 특히 탈렌트, 배우, 아나운서나 승무원등 예술계통이나 서비스직을 하는 경우에 조그만 흉터라도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손톱자국인 흉터를 흉터침, , 한약 재생약침으로 치료한다. 물론 반려동물에게 할퀴거나 물린 흉터나 점뺀 흉터, 수두 흉터 뿐만 아니라 수두 흉터도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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