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6일 목요일

논어로 밝히는 소현세자와 사도세자 죽음과 흉터치료

논어로 밝히는 소현세자와 사도세자 죽음과 흉터치료


논어집주의 자로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등장한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하니, 其父攘羊이어늘, 而子證之하니이다.
섭공이 어공자왈 오당에 유직궁자하니 기부양양이어늘 이자증지하니이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길 우리 마을에 정직이 몸에 밴 사람이 있으니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거늘 아들이 이를 증명하였습니다.”
直躬, 直身而行者.
직궁은 몸을 정직하게 하여 실행하는 사람이다.
有因而盜曰攘이라.
원인이 있어 훔치는 것을 양이라고 한다.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하니. 父爲子隱하며, 子爲父隱하나니, 直在其中矣니라.
공자왈 오당지직자는 이어시하니 부위자은하며 자위부은하나니 직재기중의니라.
공자가 말하길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는 다르니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숨겨주고,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숨겨주니 정직은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父子相隱, 天理人情之至也.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숨겨줌은 천리 인정의 지극함이다.
不求爲直이나, 而直在其中이니라.
그러므로 정직을 구하지 않아도 정직이 그 속에 있다.
謝氏曰: 順理爲直이나. 父不爲子隱하고, 子不爲父隱이면, 於理順邪?
사씨가 말하길 순리가 정직이니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숨기지 않고,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숨기지 않으면 순리가 있는것인가?”
瞽瞍殺人이어든, 舜竊負而逃하여, 遵海濱而處하시리니. 當是時하여, 愛親之心勝하니, 其於直不直, 何暇計哉리오?
순의 아버지 고수가 살인하면 순은 가만히 업고 도망하여 물가를 따라서 거처하니 이 당시에 어버이를 아끼는 마음이 이기니 정직과 부정직에 있어 어떤 계산할 겨를이 있겠는가?
또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陳司敗問 昭公知禮乎? 孔子曰:知禮
진사패문 소공지례호 공자왈지례
진나라 사패가 소공은 예를 압니까?”하고 여쭙자, 공자는 예를 압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君取於吳 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공자퇴 읍무마기이진지 왈 오문군자부당 군자역당호 군취어오 위동성 위지오맹자 군이지례 숙부지례
공자께서 물러가시자, 사패가 무마기에게 읍을 하며 다가오게 하고는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편당적(한 당파에 치우친)이지 않다 하였는데, 군자도 편당적인가요? 노나라 임금은 오나라에 장가를 들었는데, 그들은 같은 성이었기 때문에 부인을 오맹자라 불렀습니다. 그런 임금이 예를 안다고 한다면 예를 모르는 자가 또 어디에 있겠소이까?”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무마기이고 자왈 구야행 구유과 인필지지
무마기가 이 말을 아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행복해! 진실로 잘못이 있으면 남이 반드시 그것을 알게 하니!”
<논어>6편 술이(述而)-30.
사패는 노나라 소공이 원래 안되는 같은 동성동본 성씨를 가진 오나라 여자와 결혼하면 안되는데 결혼을 했으니 예를 모르는 자라고 생각하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소공이 본 모국의 왕이기 때문에 차마 이런 역사를 왜곡시켜서라도 소공이 예를 안다고 거짓말 했다. 하지만 사패는 공자가 같은 성씨인 사람에게 결혼한 소공이 무례한데 공자가 예를 안다고 편을 들어주니 발끈해 화가 나서 말하고 나가니 공자는 또 임금을 위해서 그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그냥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잘못을 숨겨줌이 인지상정으로 법보다 우선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조선시대에서는 처가 남편의, 자식이 부모의, 종이 상전의 반역을 고변하면 사형에 처했다. 왕권을 지키는데 가장 문제가 반란인데 그 사실을 밀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만약 이런 가족과 일가친척간에 서로 고발이 난무하면 도덕을 지탱하지 못하여 나라가 망하니 차라리 반란으로 망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성삼문등 사육신이 세조를 죽이려고 모의할 때 김질金礩이란 자가 자신의 아버지나 형제등이 아니라 장인인 정창손을 통해 성삼문등을 고발함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반란을 역사에서 정확히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논어에 따르면 아버지의 도둑질을 숨겨주는 것이 정직이므로 소현과 사도세자의 반란 행위를 아버지는 차마 반란이라고 기록하지 못하고 숨긴 것이다.
소현세자는 1644년 음력 9월 명나라 정벌을 위해 나선 도르곤이 이끄는 청군을 따라 베이징에 70여 일을 머물면서, 독일인 신부 아담 샬 등의 예수회 선교사와 친하게 지냈으며, 그들을 통해 로마 가톨릭과 서양 문물을 접하였다. 소현세자는1645년 음력 2월에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 인조는 가톨릭과 서양 과학을 들여와 조선을 발전시키고자 한 세자를 감시하고 박대했다. 심기원 일파가 세자 추대 역모사건까지 벌어져 세자는 이미 인조의 정적 제거 대상 1호가 되어 소현세자를 제거해야만 했다. 즉 인조가 며느리 그의 손자까지 죽인 것은 분명히 소현세자가 청나라나 서양인 예수회 선교사등의 힘을 빌려 쿠테타를 일으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가 지은 심양일기에서 아담샬을 만난 부분만 사라진 것도 수상하다.
같은 이유로 사도세자도 설명할 수 있다. 갑자기 평양에 다녀온 것이 적발된 이후에 사도세자는 죽게 되는데 평양은 청나라를 방비해야 하기 때문에 군사력을 빌릴수 있는 곳이다. 또한 서북지역은 서학[천주교]의 전파가 되기 쉬우니 사도세자도 소현세자처럼 외국 세력을 빌려 자신의 목적 달성을 하려다가 죽은 것이다. 옷을 못입는 의대병이 있고 궁녀를 죽일 정도로 정상적인 상황 판단이 안되는 상황에서 반란까지 일으키니 영조는 참을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뒤주에 가둬 죽인 방식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고 명예를 존중해주지 않아 끔찍하기는 하다. 신유박해의 원인이 된 황사영 백서사건을 보면 서양세력을 통해 조선을 전복시키려고 하는 세력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역사 드라마에서는 항상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는 개혁가로 부패한 조선을 서양 천주교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다시 건국시켜 개혁개방 개화로 나아가려고 했는데 인조와 서인, 영조와 정순왕후, 노론이 방해를 했다고 항상 나온다. 또 두 서양 오랑캐와 싸워 이긴 흥선대원군은 수구꼴통처럼 비추어진다. 잉카제국은 150여명 스페인 군에게 망했는데 대포와 군함을 가진 서양을 이기고 척화비를 세우고 승리한 대원군이 왜 나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기존의 사상을 뿌리채 뽑고 아버지를 없애면서까지 개혁을 한다면 그것이 유교사회에서 납득이 갈까? 서양 과학과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시급했다면 스페인에 정복당했던 필리핀과 마야제국의 멕시코, 망한 잉카제국의 칠레나 페루의 현재 상태를 생각해보면 서양에 문을 열어준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역사를 공부하면 알 것이다. 오히려 조선은 서구의 역사가 오래된 거대한 음모세력에 협조를 안하다가 망한 것이고, 그것도 조선이 아닌 개혁개방을 일삼고 서양 오랑캐를 끌어들였던 민비와 고종의 대한제국이 멸망한 것이다.
 
소현세자가 사도세자처럼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대든 자식이 오히려 추앙되고 아들의 잘못된 점을 차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하지 못하고 숨기려고 하는 아버지가 패륜으로 비난받는 것이 역사이다. 물론 인조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으니 더 욕을 먹어야 한다.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를 보면 정현세자(소현세자)와 사동세자(사도세자)가 등장하여 120년 전의 정현세자 비망록을 찾아야 사동세자의 억울함을 풀수 있다고 하는데 두 사건이 관련이 있음을 알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또 꽈배기처럼 비트는데 문체반정을 한 수구 보수파 정조 역할인 세손 윤이 오히려 음란서생으로 소설을 마구 짓고, 실제 귀에게 잡혀갔는데 사동세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 듯이 반란사건이 무고이거나 아닌 자꾸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감추어진 역사 사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역사를 숨긴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다. 필자가 치료하는 흉터란 질병도 환자는 숨기는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물론 흉터를 타인에게 노출시키면 정신이 소모되니 안보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지한의원에서 점뺀 흉터, 수두 흉터, 수술흉터(갑상선 흉터, 성형 수술 흉터)등을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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