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2일 수요일

중세 평민 여성의 출산과 산후 튼살치료

중세 평민 여성의 출산과 산후 튼살치료


중세 평민 여성의 출산과 산후 튼살치료
 
중세에 불에 타죽는 일 다음으로 고통스럽다는 출산의 고통이 시작되면 당신은 집 안으로 옮겨진다. 남편은 밖으로 쫓겨나 술을 퍼마시든 꿇어앉아 기도를 하든 놔두고 당신이 누워있는 방안은 문이며 창이며 모두 꽁꽁 닫는다. 출산시에 악령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을 때는 여자 형제, 친척, 친구들이 들어와서 응원을 해주고 산파와 조수가 들어온다. 꽉 막혀 있는 방안에 불을 활활 지피고 사람도 많으니 방 안의 온도는 어마어마하게 높다. 어떤 경우에는 쪼그려 앉은 자세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20번 정도 힘을 주면 아기가 태어난다고 봤던 당시에 만약 20번 힘을 주었는데도 아기가 나오지 않으면 온 집안 사람들이 집안 곳곳의 서랍과 찬장을 모두 열어 놓는다. 자궁이 열리도록 하는 상징이다. 그 밖에도 출산의 고통을 겪는 와중에 성인전을 읽거나 성 유물을 배 위에 올리기도 하고 기도문을 외며 건강히 출산한다면 성인께 봉헌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무사히 아기를 낳는다면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자른다. 아기는 곧바로 따뜻한 물에 씻겼는데 12세기에는 아이의 입을 뜨거운 물로 씻는 것이 관례이다. 아기가 말을 똑바로 한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팔다리를 똑바로 한 채로 천에 둘둘 말려야 아기의 팔다리가 바로 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때 유아 사망률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아기에 대한 어머니들의 애정도가 낮았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신경을 덜 쓸수록 유아 사망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생겼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어머니의 모성애를 강조했고, 이 때부터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스캔들 세계사 1, 이주은, 파피에, 82-83페이지
 
중세 시대 여성은 귀족이나 평민이나 모두 생고생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현대에 태어난 여성도 출산시 죽을 걱정은 덜겠지만 산후 비만과 튼살에 대해서 걱정과 염려를 덜수 없다. 이런 산후에도 남아 있는 배 튼살이나 가슴의 튼살을 이미지한의원에서는 ST침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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