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아바 애니 프리드의 축하받지 못한 출생과 튼살치료

아바 애니 프리드의 축하받지 못한 출생과 튼살치료


2016424일 오전 11시에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전설적인 그룹 아바의 멤버 애니 프리드 린스태드의 출생 스토리가 방송됐다.
그룹 아바는 아그네사 펠트스코그, 비에른 울뵈이우스, 베이 앤더슨과 애니 프리드 린스태드로 이뤄진 4인조 혼성 팝 가수였다. 이들은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waterloo워털루'로 우승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맘마미아', 'I have a dream아이 해브 어 드림', 'dancing queen댄싱 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유럽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대스타가 됐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애니 프리드의 출생 스토리가 화제를 모았다.
애니 프리드는 노르웨이 출신 쉬니 린스테드와 독일군 상사 알프레드 하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1차 세계대전 종결된 후 독일의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자 히틀러는 노르웨이 여성과 독일군 사이의 출산을 적극 장려했다. 아리안족 혈통인 스칸디나비아와 덴마크등과 혼인을 장려해 노르웨이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펼쳤다. 독일군과 노르웨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 12,000명이었다.
알프레드 역시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배고픈 소녀에게 감자를 주며 쉬니에게 접근했다. 순진했던 그는 알프레드에게 마음을 열게 됐다.
19454, 히틀러가 사망하며 독일군이 패배하자 한달 뒤 노르에이 주둔하던 독일군이 철수하게 됐다. 이에 알프레드 역시 독일로 떠나며 같이 갈 수 없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연합군의 공격으로 함선이 침몰했고 배에 타고 있던 독일군이 전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쉬니는 당시 알프레드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이에 쉬니는 알프레드 없이 19451115일에 딸 애니 프리드를 출산했다.
나찌군의 아이들이 박해를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자 쉬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쉬니는 2년후 악성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그 뒤 할머니의 손에 맡겨진 애니 프리드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애니 프리드의 이야기가 독일 잡지 브라보를 통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연을 안타까워했다. 한달 뒤 애니 프리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의 잡지를 보게된 아버지인 알프레드였다. 알프레드는 무사히 독일로 돌아갔다. 사실 그는 유부남이었고 쉬니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를 잊고 지냈다.
알프레드의 조카가 애니 프리드의 인터뷰를 보게 됐고 그제야 자신이 애니 프리드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애니 프리드는 19779932년 만에 사과하는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됐지만 평범한 부녀지간은 되지 못했다.
 
애니 프리드는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여겨져 졸지에 사생아가 되어 탄생 자체가 축하받지 못하는 비극적인 운명으로 시작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임신으로 출산을 하면 뜻밖의 배를 내놓고 다니지 못하는 장애가 생길수도 있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이런 산후 생긴 튼살을 출산이후 1개월 이후부터 튼살에 특화화된 튼살침인 ST침으로 기혈순환을 보좌하고 진피 콜라겐을 자극 재생시키는 튼살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