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8일 수요일

공신 오명항 초상화의 두창흉터와 호구거리 흉터치료

공신 오명항 초상화의 두창흉터와 호구거리 흉터치료

공신 오명항 초상화의 두창흉터와 호구거리 흉터치료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는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이렇게 얼굴에 나타난 마마자국이나 상처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보물 1177호 오명항영정 병함부양무공신교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모암(慕庵) 오명항[吳命恒,1673(현종 14) ~1728(영조 4)]을 그린 초상화 1점과 1등 공신으로 책록하는 교서 1부 그리고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로 만든 상자 1점 등 3점의 유물입니다. 숙종 31년(1705) 문과에 급제하고 그 뒤 이조좌랑, 병조판서, 우의정까지 올랐던 인물로 영조 3년(1727)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1등 공신으로 봉해졌습니다.
  초상화는 가로 1.03m, 세로 1.74m로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전신상이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머리에는 검은색사모를 쓰고 짙은 청록색의 관복을 입었습니다. 가슴에 수놓은 2마리 학의 모습에서 공신책록 후에 그린 전형적인 공신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높이가 높은 사모와 호랑이 가죽이 깔린 의자, 팔(八)자로 벌린 발 모습에서 그 당시의 화풍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갈색의 얼굴에 윤곽선과 양턱, 눈 주위에 붉은색을 사용하여 얼굴의 굴곡을 표현했고 종두 자국과 코 밑의 점까지 나타내 강직하고 진지한 그의 표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호구거리 :여신의 성격으로 잘 못하면 심술도 많이 부리고, 악한 일도 많이 생기게 하는 신인데, 옛날에 많았던 '홍역마마를 주관하는 신'으로 전해지며, 의대는 홍치마에 원삼과 족두리를 쓰고 호구보라고 불리는 커다란 보자기와 부채방울을 듭니다. 춤과 공수를 주는데 특이한 것은 '호구보라 불리는 너울'이나 홍치마를 벗어서 뒤집어쓴 무당이 제가집을 얼른다. 얼굴이 홍역마마를 앓아서 박박 얽었기 때문에 이렇게 뒤집어 썼는데 이것을 쓰고가면 제가집이 답답하니 얼른 벗고가게 해달라고 하는데,그러면 제가집은 그 얽은 얼굴을 다 가릴만큼의 분을 사라고 우둔높은 천량(화장품값)을 부채위에 얹어주며 액운을 거두어 갈 것을 사정합니다.
이내 그 보자기는 벗겨지고 호구신은 답답한 너울을 벗고나니 사방이 다 휘황찬란 하다고 하며 제가집이 편안하게 도와 줄 것을 약속하고 춤을 춥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가람문고본에 조선시대 무당에 대한 기록을 한 <무당내력巫黨來歷>이란 책이 있는데, 19세기 당시 서울지역 무당이 하는 각종 거리에 대하여 난곡(蘭谷)이라는 사람이 을유년 봄에 채색하여 놓은 도록입니다. 그 안에 호구거리(戶口巨里)가 있다. 
왕실에서는 마마 환자가 생기면 왕도 술과 고기를 먹지 못하고 수라의 반찬을 줄였으며, 가벼운 왕릉 행차나 제사 등은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민간에서는 마마가 끝날 무렵이면 마마신을 보내는 배송굿을 벌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기원했습니다.
또한 왕가에서는 배송굿 정도가 아니라 거창한 행사가 벌어졌는데, 왕이나 왕비 또는 세자의 마마가 나으면 궁궐 뒤 뜰에 백관을 모아 축하의식을 거행하였는데, 1879년 고종 때 여섯 살 난 세자(순종)가 마마를 앓다가 낫자 이 경사스러운 일을 종묘에 고하고 인정전 뜰에서 축하의식을 벌인 이 10폭 병풍으로 남아있습니다. 때론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하는 경과(慶科)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지방에 천연두가 유행해서 많은 사람들이고생을 했는데 의학에 관심이 있었던 정약용은『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의학책을 펴내서 천연두의 예방과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마과회통’은 6권 3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은 이몽수의 마진방, 임서봉의 임신방, 허준의 벽역신방 등을 참고로 하여 오늘날 홍역이라 하는 마진의 증상과 치료법을 주로 기록한 책입니다.
참고로 천연두(두창, 마마, 완두창, 질진)의 기원은 인류문명의 시발에서 찾기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했던 질병이다. 신라 선덕왕(제37대)과 문성왕(제46대)이 질진(疾疹)으로 사망하기도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으며, 1418년 정월에 성녕대군이 소아 완두창에 걸려 죽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조선 왕조 내내 유행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minyoonk님 출처

정약용도 어렸을 때 두창을 앓았고, 자식 여섯을 두창과 전염병으로 잃었던 아버지였다. 현대의학의 유일한 공적은 중국의 곰보딱지로 면역을 유발했던 인두창을 받아들여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 완전히 박멸시켰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두창 곰보는 없지만 여드름이 발생하여 흉터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여드름 흉터는 15년전만 해도 절대 치료가 안되는 것이었지만 서양의학 한의학 할것없이 흉터치료를 많이 한다. 이미지한의원에서도 여드름 치료를 하던 노하우를 살리고 또 성형흉터나 교통사고 흉터등도 이미지한의원의 수술후 흉터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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