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하고 "Kapuziner"(독어)불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에스프레소 머신의 발전과 더불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0세기 경 남쪽으로 퍼지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져다 놓은 큰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유명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1950년경 이탈리아는 카푸치노의 Form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이탈리아어로 Cappuccino라는 이름을 명명하게 된다. 카푸치노는 카푸친(Capuchin friars)수도사들이 입던 의상 색에서(크레마 색깔의 수도사복)유래된다. 우유와 섞인 커피의 색깔이 마치 수도사들의 수도복 색과 비슷해서 그렇게 불렀다. 카푸친 수사들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회에서 유래되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사제, 복자 마르코 아비아노(Marco d‘Aviano, 1631~1699)가 있다. 마르코 아비아노는 아비아노, 즉 이탈리아 북부 출신이지만, 이 복자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지역은 바로 카푸치노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의 빈이다. 하느님 말씀이 흠뻑 담긴 카푸친 특유의 강론으로 많은 이들을 감명시키던 복자는 1693년 빈이 오스만 터키군에 포위돼 전투를 치를 당시에 큰 역할을 한다. 터키군에 대항하기 위해 교황의 명으로 모인 신성 연맹은 그의 설교에 힘입어 일치와 단결을 이뤘을 뿐 아니라, 사기가 높아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승리는 유럽의 이슬람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복자는 빈 시민과 황제에게 큰 감사와 사랑을 받았는데, 복자가 선종했을 때는 황제가 몸소 그 장례를 치르고 오스트리아의 황릉과 복자의 묘를 나란히 안치할 정도였다. 일부 전설에는 마르코 아비아노가 직접 카푸치노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찾기 어렵다. 또한 Cappuccin의 어원은 Hood란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cappuccio" [kap'put:ʃo], 에서 비롯됩니다. Cappuchino는 후드처럼 우유거품으로 커피를 덮어서 Cappuccino란 이름을 가지게됩니다. 흔히들 카푸치노의 어원으로 알고있는 카프친 수도사들이 썼다는 흰 모자나 흰 터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또한 수도사들은 흰모자나 터번은 전혀 쓰질 안습니다. 사진에서 보여주는것처럼 옷은 밝은/어두운 갈색이다. 크루아상 [croissant]도 1636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투르크 군대에 포위되자, 오스트리아의 제빵기술자가 창고에 있는 밀가루를 꺼내러 갔다가 투르크 군대의 공격개시 계획을 우연히 듣고 아군에게 이 사실을 알려 적을 격퇴하게 했다. 이 공로로 제빵기술자는 명문가였던 페데스부르크가의 훈장을 제과점의 심벌 마크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에 대한 답례로 제빵기술자는 투르크군의 반달기를 본뜬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카푸치노 커피는 만드는 방법은 먼저 에스프레소를 1컵 준비한다. 우유 3분의1 컵을 끓기 직전까지 데운 다음 거품기로 저어 거품을 만든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섞고 그 위에 우유 거품을 얹는다. 거품 위에 계핏가루를 살짝 뿌린다. 계핏가루를 뿌리는 대신 에스프레소를 뽑을 때 계핏가루를 섞어서 커피를 추출하기도 한다. 또한 커피 위에 우유 거품 대신 휘프드크림(휘핑크림)을 올리기도 하며, 기호에 따라 시럽을 첨가하기도 한다. 계피 막대를 이용해 커피를 저으면 향이 더욱 좋다. 요즘에는 카푸치노의 거품을 거품기로 젓는 대신에 에스프레소 머신에 있는 스팀원드로 거품을 만들어 낸다. (두산백과) 카푸치노는 시나몬+우유+커피의 3가지 맛이 어울려 일품인데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물을 끓이고 물을 쏟아지게 하거나 해서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가 끓는 물을 신기해 해서 증기에 데거나 물끓이는 도구를 발로 차거나 호기심으로 잡아당겨서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화상흉터는 어린시절에 트라우마로 작용하게 되는데 성인이 될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된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화상흉터침을 사용하여 특화된 방식으로 진피 콜라겐을 자극해 BT침으로 치료한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