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연우의 형수를 위한 요리하다 상처 조리중 흉터치료
고국천왕이 죽을때 부인 왕후 우씨는 사실을 숨기고 그날 밤으로 고국천왕의 형인 발기의 집으로 찾아가 이와 같이 말했다. “왕이 후사가 없으니 그대가 계승하라!”
발기는 “하늘의 역수가 돌아가는 이치가 있는데 갑자기 뭔 말인가? 그런 것은 가벼이 논할 수 없다. 하물며 부인이 밤에 나와 쏴다니니 어찌 예라고 할 수 있겠느뇨?”
발기의 말을 들은 왕후 우씨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고국천왕의 아우(발기의 친동생)이었던 연우를 찾아갔다. 연우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라 의관을 갖추고 문에서 맞이하여 안으로 들어와 주연을 베풀었다. 왕후 우씨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연우에게 털어놓았다. “오늘 왕이 돌아가셨습니다. 후사가 없어 발기가 어른인지라 그에게 가서 뒤를 이으라고 말했는데 도리어 나보고 異心이심이 있다하며 포악무례하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제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연우는 예를 더하여 친히 칼을 잡고 고기를 베다가 그의 손가락을 다치었다. 형수가 허리띠를 풀어 그의 손가락을 싸매 주었다. 그리고 속삭였따. “밤이 깊어 연고가 있을까 염려되니 날 궁까지 바래다주오.” 왕후는 연우의 손을 잡고 궁으로 돌아갔다.
고구려 패러다임 도올의 중국일기 2, 도올 김용옥 지음, 통나무, 페이지 136-140
延優연우는 10대 산상왕(山上王)의 휘(諱)이다. 또는 이이모(伊夷謨)라 한다. 그런데 위궁이라고도 한다고 했는데 휘는 위궁(位宮)이 아니다.
<삼국사기>에 <위서>를 인용하여 “6대 대조대왕(大祖大王) 궁(宮)이 낳자마자 눈을 떠서 능히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증손(曾孫)인 산상왕(山上王)도 또한 낳자마자 눈을 떠서 사람을 봄이 그 증조와 같았다. 고구려에서는 서로 비슷한 것을 위(位)라 하므로 '위궁'이라 하였다.”고 기술하였으나 남무(男武) 또는 이이모(伊夷謨) <삼국사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상왕'의 이름은 이이모(伊夷謨)이고 동천왕(東川王)의 이름은 '위궁'이다.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 우 왕후는 산상왕의 아내가 되어 다시 왕후에 올랐다. 이것은 고구려의 형사취수 풍습이 남아있는 것이며, 우씨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산상왕의 형이었던 발기(發岐)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3일 동안 산상왕이 농성하는 가운데 고구려 국내에서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자 발기는 요동으로 망명하였다. 뒤이어 발기가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에게 군사를 빌려 쳐들어 오니 왕은 동생 계수(罽須)를 보내 막게 하였다. 계수가 발기의 군대를 물리치자 발기는 자살하였다.
198년에 환도성(丸都城)을 쌓았고 203년에는 국상 을파소(乙巴素)가 죽어 고우루(高優婁)를 후임 국상으로 삼았다. 209년에는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208년 겨울 음력 11월에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나는 일이 일어났다. 제사 담당자는 돼지의 뒤를 쫓아 주통촌(酒桶村)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후녀(后女)라는 20세 가량의 여인의 도움으로 돼지를 잡았다. 이 소식을 들은 산상왕은 후녀를 몰래 찾아가 하룻밤을 보냈다. 왕후는 이를 알고 분노하여 그 후녀를 죽이려 하였으나 후녀가 산상왕의 아들을 잉태하여 죽이지 못하였으며, 후녀는 아들 교체(郊彘)를 낳았다. 후녀는 소후(小后)로 봉해졌고 213년에는 후녀의 아들 교체가 태자에 책봉되었다.
217년에는 후한(後漢) 평주(平州)의 하요(夏瑤)가 위나라 조조 군에 쫓겨 1천여 가(家)를 거느리고 투항하였으며, 왕은 책성(柵城)에 이들을 안치하였다. 227년에 서거하니 산상릉(山上陵)에 장사지냈다.
구구려에서는 형수가 죽으면 아우가 계승하는 형사취수제란 제도가 있어서 형수가 자기 몸을 의탁하기 위해 적당한 사람을 물색했던 내용이 등장하는 것 같다.
조선 시대만 해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꺼렸는데 4서중 하나인 맹자가 군자는 생명을 죽이는 도살로 요리를 하지 않으니 그래서 부엌을 멀리한다는 구절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유학이 쇠퇴하고 남자 세프가 대세로 등장했는데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요리중에 칼에 베여 다치거나 불로 조리도중에 화상을 경우가 매우 많다. 성인기에 불에 데인 화상 흉터나 다쳐 흉터 생기는 경우도 수술로 흉터 생기는 경우 제외하고 가장 많다. 또 대다수가 여성이 조리 과정중 흉터가 생기는데 이것도 이미지한의원의 화상흉터침인 BT침과 흉터침으로 진피 콜라겐을 자극 재생하고 기혈순환을 도와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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