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문신 욕망의 동일화와 문신흉터치료

문신 욕망의 동일화와 문신흉터치료

문신의 사회적 효과와 욕망의 동일화

앞 장에서 문신이 지닌 주술적 기능, 주술적 기능에서 종족표지나 신분표지기능으로의 확장 그리고 심미적 기능의 발현이라는 문제를 개략적으로 검토했다. 이제 문신의 깊은 의미를 해명하게 위해 이 기능들의 관계와 사회적 의미를 좀더 천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신은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적 효과를 지닌 행위인가?
먼저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아이들이 혹은 소녀들이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바늘로 찔리는 고통을 참는 모습. 문신은 어떤 방식을 선택하건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공포를 수반한다. 『동녕진씨향속도(東寧陳氏香俗圖)』에 따르면 타이완의 고산족들은 문신을 할 때 "문신은 대개 할아버지의 명으로 시행하는데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그 짐승의 피를 무리가 함께 마셔 그 자손을 취하게 한 후 기분 좋은 상태에서 바늘로 먹물을 들인다(文身皆命之祖父, 刑牲社衆飮, 其子孫至醉, 以針酣而墨之)". 이는 문신이 술에 의한 마취가 필요할 만큼 고통이 동반되는 '착복식'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대체 문신이 뭐길래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옷을 입으려 하는가 혹은 찔리기를 즐거워하는가? 문신은 문신자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 사회적 장치일까?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문신을 새길 수 있는 자격을 정교하게 규정하고 있는 고산족 타이야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들은 먼저 남자의 경우 적의 머리를 베어 와야 턱에 문신을 할 수 있고, 사냥한 적의 머리가 많은 경우에 가슴과 손에 문신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배의 문신은 사냥할 때 규정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한다. 여자의 경우 얼굴 문신은 무늬가 놓인 웃옷을 다 짠 후 얻을 수 있는 자격이지만, 가슴과 팔 그리고 다리의 문신은 베 짜는 기술이 탁월하거나 새로운 꽃무늬의 베를 짜는 기술을 발명한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고산족의 사례만을 거론했지만 어느 문신 사회이건 문신이 사회적 습속, 제도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문신을 하는 방법과 절차 그리고 자격과 시기가 정교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문신이 한 사회에서 제도를 통해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되면 문신 여부가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되고 정체성이 되고, 나아가 존재의 의미가 된다. 타이야 사회의 경우 특정한 문신은 남성의 경우 전쟁능력, 여성의 경우 방직능력의 표상이 되고, 그가 타이야 사회에서 필요한 인간 혹은 특별한 존재로 자리 매김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문신이 없는 인간은 인간취급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즉, 남자는 남자 대접을 못 받고 여자는 출가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문신 자체가 욕망의 중심이 된다. 문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도 감내해야 하고, 특정한 문신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이 요구하는 각고의 노동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제 하나의 문신 사회는 이 욕망을 중심으로 동일화된다. 이제 문신은 단지 피부 위에 새겨진 무늬가 아니라 정신의 무늬, 의식의 주름이 되는 것이다. 문신의 궁극적 기능은 욕망의 동일화, 그것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보면 '문신하기'란 일찍이 A. 반 즈네프가 말한 바 있는 통과의례(passage rites)의 일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통과의례로서의 문신은 할례나 새끼손가락 혹은 귓불을 자르는 것, 콧구멍 사이의 뼈를 뚫는 것이나 머리를 특별한 방식으로 깎는 것 등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한 사회에 영구적으로 통합하는 의례적 행위인 것이다. 이 의례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문신을 거부하면 집단으로부터의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배제는 원시 혹은 고대사회에서 개인에게 죽음보다 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돌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왕따'라는 사회적 현상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신 의례는 무의식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
문신이 미적 대상으로 인지되는 것도 이런 과정을 밟는다. 앞에서 공리관에서 심미관으로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미용문신을 이해한 바 있는데, 기실 심미 관념은 공리 관념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심미관에는 이미 공리관이 전제되어 있다. 우리가 대상을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것(美)은 그 대상이 나에게 좋은 것(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단지 개인적 쾌감만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문신 역시 그것이 집단이나 신분을 드러내어 사회구성체 내·외부의 질서를 보여 줌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조상(신)이 기대하는 것이고, 결국 아름다운 것이다.
근래 중국 민속학자 리우시앤(劉咸)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리족의 문신에는 정형과 법칙이 있는데 부녀들이 행하고 남자들에게는 이 풍속이 없다"고 한다. 앞에서 인용한 고대의 문신 습속에 관한 자료들에서 문신은 남자가 하거나 남녀 모두 하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는 문신한 신체의 아름다움이 여성들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근래의 리족 사회가 여성들에게만 문신을 하게 하는 것은 리족 사회의 문신 제도가 바뀌었다는 것, 그와 아울러 문신에 대한 미의식도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분명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의 소산이다. 이 구조의 지속을 위해 좋은 것은 여성들을 오래된 습속의 틀 속에 묶어 두는 것이다. 문신이 없는 여자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아내로 맞이하지 않는다는 관념, 나아가 문신의 아름다움이 여성들의 고유성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리족 사회의 구조적 변동에 따른 미적 감수성의 변화의 결과이다. 타이야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얼굴 문신 이상의 문신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베 짜는 여성이 되어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욕망은 이런 특정한 의미체계 속에서 간접화된다. 그리고 문신을 통한 사회적 질서는 이 간접화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이른바 원시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여전히 아프리카 등지에 남아 있는 기이한 패션들, 즉 코를 꿰는 것, 귀를 쳐지게 늘이는 것, 아랫입술을 둥근 진흙 원반을 넣어 기형적으로 늘이는 것 또는 고리를 끼워 목을 늘이는 것 등등. 이런 행위들은 문신과 마찬가지로 넓은 의미에서 복식문화의 한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왜 그런 고통스러운 신체변형술이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강행되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욕망의 간접화다. 문신이 습속인 사회에서 문신은 한 사회의 지배질서가 신체 위에 실현되는 방식인 것이다.

문신의 역사, 조현설, 살림, 46-51

문신을 보면 원시 사회등에서는 통과의료처럼 고통을 참은 댓가로 인간 대접을 해주지만 결국 문명사회에서 문신은 남과 다른 개성으로 결국 그 손가락질을 못 이겨서 문신을 지우기 마련이다. 즉 어린 철모르는 시절에 어른이 되고 싶어서 문신을 할 수 있지만 어른이 된 뒤에 취업이나 결혼등을 위해 문신을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문신 제거 흉터를 흉터침으로 치료하며 같은 비슷한 경우인 담배빵 흉터를 흉터침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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