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6일 월요일

장뢰 약계와 천천히 흉터치료이유

장뢰 약계와 천천히 흉터치료이유

장뢰 약계와 천천히 흉터치료이유

장뢰(張耒)는 북송(北宋)시대의 문인이며 청치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문인(門人)이다. 시문에 능했다. 년대는 조사할 수 없다. 장뢰는 국가를 통치하는 수단을 의원이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에 비유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약계(藥戒-약에 대한 경계)-장뢰(張耒)

客有病痞 積於其中者 伏而不能下 自外至者 捍而不得納
손님 중에 속답답한 질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는데, 배 속에 쌓여 엎드려 내려가지 않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은 막혀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從醫而問之 曰非下之不可
의원에게 찾아가 물어보니, 속의 것들을 설사[사하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歸而飮其藥 旣飮而暴下 不終日而向之伏者 散而無餘 向之捍者柔而不支
돌아와서 약을 마셨다. 이미 마시고 나자 갑자기 설사해 내려가 버려서, 하루도 안 되어 전에 엎드린 듯 체했던 것이 흩어져 남아 있는 게 없게 되었고, 전에 막혀졌던 것들이 부드러워져서 저지하지 않게 되었다.
焦鬲導達 呼吸開利 快然若未始有疾者 不數日 痞復作 投以故藥 其快然也亦如初
내장과 가슴 속이 전달이 되고 호흡이 열리고 순조로워져서, 상쾌한 것이 처음부터 병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다. 며칠 안가서 속병이 다시 일어났으나 전의 약을 먹자 깨끗이 낫는 것이 역시 처음이나 같았다.
自是不逾月 而痞五作五下 每下輒愈
이로부터 한 달도 넘지 않아 속 답답한 병이 다섯 번 일어났으나 다섯 번 속의 것을 사하해 내려 보냈고, 속의 것들을 내려 보낼 때마다 병이 곧 완쾌되었다.
然客之氣一語而三引 體不勞而汗 股不步而慄 膚革無所耗於前 而其中薾然 莫知其所來
나른하게 : 원문은 ‘苶然’인데, ‘薾然’으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뜻은 비슷하다. 뒤에 나오는 ‘苶’ 자도 같다.
그러나 그 손님의 기운[외부의 사기]은 한 마디 말을 하는데 세 번이나 인용하게 되었고, 몸에서는 노동하지 않아도 땀이 났으며, 다리는 걷지 않아도 떨리게 되었다. 살갗과 피부는 전보다 여윈 것이 없으면서도 그 속은 나른하게 되었는데, 그 유래를 알 수가 없었다.
嗟夫 心痞非下不可已 予從而下之 術未爽也 薾然獨何歟
아아! 속 답답한 병은 속의 것을 사하해 내려버리지 않고는 낫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속의 것을 내려 보내었으나, 그 의술이 깨끗하지를 못하여 힘이 없게 되었으니, 어째서인가?
聞楚之南 有良醫焉 往而問之
초나라 남쪽에 훌륭한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물었다.
醫曰 子無歎是然者也 凡子之術 固爲是薾然也 坐 吾語女 天下之理 有甚快於予心者 其末必有傷 求無傷於終者 則初無望於快吾心
의원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몸이 그렇게 된 것을 탄식하지 마시오. 당신의 병을 고친 수법이 본시 힘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소. 앉으시오. 내 당신에게 설명해 주리다. 천하의 이치는, 자기 마음에 매우 상쾌함을 주는 것들이란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그를 손상치 않음이 없는 것이니, 종말에 가서 손상 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곧 처음부터 자기 마음을 상쾌하게 할 것을 바라지 말아야만 할 것이오. ”
夫陰伏而陽蓄 氣與血不運 而爲痞 橫乎子之胸中者 其累大矣 擊而去之 不須臾而除甚大之累 和平之物 不能爲也 必將擊搏震撓 而後可 夫人之和氣 冲然而甚微 泊乎其易危 擊搏震撓之功 未成而子之和 蓋已病矣 由是觀之 則子之痞凡一快者 子之和一傷矣 不終月而快者五 則子之和平之氣 不旣索乎 故膚不勞而汗 股不步而慄 薾然如不可終日也 蓋將去子之痞 而無害於和乎 子歸燕居三月而後 予之藥可爲也
“대체로 음이 잠복하고 양이 축적되어 모이어, 기운과 피가 운행되지 않음으로써 속 답답한 병이 되어가지고 그대의 가슴 속에 가로놓이게 되는 것이니, 그 쌓인 것이 큰 것이오. 그것을 쳐서 제거해 버려야 하오. 잠깐 사이에 매우 크게 쌓인 것을 제거해 버리려면 부드럽고 평이한 물건으로는 할 수가 없소. 반드시 세게 쳐서 진동으로 흔든 연후에야 가능하게 되는 것이오, 사람의 화기란 깊으면서도 매우 미세하며 조용하면서도 매우 위태로워지기 쉬운 것이니, 세게 쳐서 진동시키는 효과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당신의 조화기에는 이미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오. 이로써 볼 것 같으면 곧 당신의 속 답답한 병은 한 번 완쾌될 때마다 당신의 화기는 한 번 손상을 받았던 것이오. 한 달이 다 가기도 전에 다섯 번이나 완쾌시켰다면 곧 당신의 화평한 기운은 이미 찾지 못하지 않았겠소. 그래서 피부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땀이 나고 다리는 걷지 않아도 떨리며 맥이 없어져 하루를 넘기지도 못할 것처럼 된 것이오 당신의 속 답답한 질병을 없애버리면서 화기도 해치고 싶지 않겠는가? 그대는 돌아가 편안히 3개월을 있은 뒤에 내가 준 약을 먹을 수 있소.”
客歸燕居三月 齋戒而復請之
손님은 집으로 돌아가 석 달을 보낸 다음 재계를 하고는 다시 찾아와 의원을 뵈었다.
醫曰 “子之氣小復矣.”
의원이 말하였다. “당신의 기운이 약간 회복되었소.”
取藥而授之曰 服之三月 而病少平 又三月而少康 終是年而復常 且飮藥 不得亟進
의원은 그리고 약을 지어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복용하면 석 달 만에 병이 약간 화평해지고, 또 석 달이 지나면 조금 편안해지고, 이 해가 다 갈 무렵이면 평상대로 회복될 것이오. 그러니 약을 마시는데 있어서 너무 자주 마셔도 안 되는 것이오.”
客歸而行其說 然其初 使人懣然遲之 蓋三投藥而三及之也.
손님은 돌아가 의원의 말대로 실행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람이 답답하게 효과가 더디어 세 번 약을 먹으면 세 번 모두 병이 효과가 이르지 못하는 듯 하였다.
然日不見其所攻之效 較則月異而時不同 蓋終歲疾平
그러나, 하루에는 병이 고쳐지는 효과가 보이지 않는듯 하였는데, 비교하면 대략 한 달 만에 보면 달라지고 한 계절을 두고 보면 전혀 다르게 나아가서, 한 해가 끝날 무렵에는 병이 화평되었다.

客謁醫 再拜而謝之 坐而問其故
손님이 의원을 찾아가 정중히 두 번 절하며 감사를 표시하고는 앉아서 그 까닭을 물었다.
醫曰 是醫國之說也 豈特醫之於疾哉 子獨不見夫秦之治乎 民悍而不聽令 惰而不勤事 放而不畏法 令之不聽 治之不變 則秦之民 嘗痞矣 商君見其痞也 厲以刑法 威以斬伐 悍戾猛鷙 不㒃毫髮 痛剗而力鋤之 於是乎秦之政 如建瓴 流蕩四達 無敢或拒 而秦之痞 嘗一快矣 의원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나라의 병도 고칠 이론이오. 어찌 다만 사람의 병만 고칠 뿐이겠소? 당신은 유독 진나라의 정치를 보지 못하였소? 진나라 백성들은 사나워서 명령을 따르지 않고 게을러서 일에 힘쓰지 아니하며 방종해서 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었소.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스려도 변화할 줄 몰랐으니, 곧 진나라 백성은 일찍이 속 답답한 병에 걸렸던 셈이지요. 상앙[상군]이 그 속 답답한 병을 보고서 형벌과 법령으로 엄히 다스리고 목 베고 치고 하는 것으로 위협하면서 사납고 맹렬하게 다루어 터럭 끝만 한 일도 용서치 않으면서 철저히 잘라내고 힘써 호미질처럼 뽑아내었소. 이에 진나라의 정치는 높은 곳에서 물병의 물을 쏟듯이 거침없이 흘러 사방으로 통하게 되어 감히 아무도 거역할 수가 없었으니, 진나라의 속 답답하던 병은 일찍이 한 번 쾌유되었었소.”
自孝公 以至二世也 凡幾痞而幾快矣乎 頑者已圮 强者已柔 而秦之民 無歡心矣 故猛政一快者 懽心一亡 積快而不已 而秦之四支枵然 徒有其物而已 民心日離而君孤立於上 故匹夫大呼 不終日而百病皆起 秦欲運其手足肩膂 而漠然不我應矣 故秦之亡者 是好爲快者之過也
枵(빌, 속이 빈 모양, 굶주리다 효; ⽊-총9획; xiāo)
진나라 효공으로 부터 이세황제[호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몇 번이나 속 답답한 병이 났다가 몇 번이나 쾌유되었던가? 완고했던 것은 이미 무너지고 강했던 것은 이미 부드러워졌으나 진나라 백성들에게는 기쁜 마음이 없어졌소. 그러므로 사나운 정치로써 한 번 병을 쾌유시키는 것은 백성들의 기쁜 마음을 한 번 없애버리는 것이 되오. 여러 번 끊임없이 병을 쾌유시키자 진나라의 사지는 맥도 없어져 공연히 그러한 물건이 달려있을 따름이 되었소. 백성들의 마음은 날로 떠나서 임금은 윗자리에 외로이 서있게 되니, 그래서 필부가 나와 크게 한 번 소리치자 하루도 넘기기 않은 사이에 백 가지 병이 한꺼번에 생겨났던 것이오. 진나라는 그의 손발과 어깨 등뼈를 움직여 보려 했었지만 까마득히 어느 것도 호응하여 움직여지지 않았었소. 그러므로 진나라가 망했던 것은 바로 병을 쾌유시키기를 좋아했던 잘못 때문이라 할 것이오.
昔先王之民 其初亦嘗痞矣 先王豈不知砉然擊去之以爲速也 惟其有懼於終也 故不敢求快於吾心 優柔而撫存之 敎以仁義 導以禮樂 陰解其亂而除去其滯 使其悠然自趨於平安 而不自知 方其未也 旁視而懣然者 有之矣 然月計之 前歲之俗 非今歲之俗也 不擊不搏 無所忤逆 是以日去其戾氣 而不嬰其歡心 於是政成敎達 安樂悠久 而無後患矣 是以三代之治皆更數聖人 歷數百年而後俗成 則予之藥 終年而愈疾 蓋無足怪
砉(뼈 바르는 소리 획; ⽯-총9획; huā,xū)
“옛날 선대 훌륭한 임금들의 백성들도 처음에는 역시 모두 속 답답한 병이 있었소. 훌륭한 임금들이 어찌 분연히 그들을 쳐서 쫓아버리는 것이 빠른 방법임을 몰랐겠소? 오직 그들은 끝을 두려워했던 것이오. 그러므로 감히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방법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더욱 부드럽게 그들을 어루만져 주었소. 그들을 인의로서 가르치고 예악으로 인도하여 몰래 그들의 혼란을 해결하고 그들의 정체한 것을 제거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유유히 평안하게 스스로 나가면서도 스스로는 잘 알지도 못하게 하였던 것이오. 그들의 병이 쾌유되기 전까지는 옆에서 보는 사람들 중에는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소. 그러나 한 달을 두고 헤아려보고 일 년을 두고 살펴보면, 지난해의 사람들 습속과 금년의 습속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소. 치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으며 그들을 거스른 일도 없었으니 그래서 날로 그들의 사나운 기운은 제거되면서도 그들의 기쁜 마음도 다치지 않았던 것이오. 이에 정치가 이루어지고 교화가 통달되어 안락함이 유구해져서 후환이 없게 되었던 것이오. 그러니 하, 은, 주 삼대의 정치도 모두 몇 분의 성인을 거치고 수백 년의 세월을 겪은 뒤에야 그들의 습속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러니 내가 준 약이 한 해가 지나야만 병을 완쾌시키는 것도 괴이하다고 여길게 못되는 것이오.”
故曰 天下之理 有甚快於吾心者 其末也 必有傷. 求無傷於其終 則初無望於快吾心 雖然豈獨於治天下哉
“그러므로 말하길 천하의 이치는, 내 마음을 매우 상쾌하게 해주는 것은 그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나를 손상시킨다고 하는 것이오. 그 종말에 가서 손상이 없기를 구한다면 곧 처음에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되는 것이오. 그러나 어찌 다만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이 그러하겠소.”
客再拜而記其說
손님은 두 번 절하고 그의 이론을 기록하였다.

논어에 ‘빨리 하려고하면 오히려 이루지 못한다.(欲速不達)’는 말이 있다. 필자는 흉터를 치료하는데 화상흉터의 경우 피부 이식수술이나 조직확장술로 한번 수술해버리면 끝나게 되는데 왜 2년이상 걸려서 화상흉터를 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다. 피부 이식수술을 받으면 공여 부위가 늘어남으로 흉터가 2배로 늘어나고 또 생착이 안되면 새까맣게 죽기도 한다. 또 피부가 자라나면 다시 벌어지거나 주위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모양이 생기고 피부의 과증식이 일어나게 된다. 조직확장술도 확장기를 달고 있으면 매우 불편하고 이런 수술은 절대 한번으로써 끝나지 않는다. 한의학의 역사를 보면 설사 시키는 사하약을 가지고 치료하던 장종정이란 명의는 그 학설이 오래 가지 않았고 오히려 비위인 소화기를 보호하는 보약이 한의학의 주된 흐름이 된 이유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역사에서 송대 왕안석의 신법으로 급진적으로 바꾸려고 했다가 구법세력과 대립하고 오히려 더 혼란만 커져 결국 송나라가 망하게 된 역사도 있다. 한국에서는 개화파 김옥균, 서광범등이 일으키다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흉터치료의 정도는 충분한 시일을 가지고 끌어가면서 흉터침으로 천천히 치료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화상흉터뿐만 아니라 점뺀 흉터, 수두 흉터, 갑상선암흉터, 성형흉터, 교통사고흉터등 다양한 흉터를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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