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문신의 흔적들 1991년 10월, 활과 화살 그리고 청동 도끼를 소지한 한 사냥꾼이 냉동된 채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오짤(Otzal) 알프스 산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냥꾼은 기원전 3,30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냥꾼의 몸에는 모두 58개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점이나 선의 형태를 지닌 단순한 무늬들이었다. 이 알프스 냉동 사냥꾼의 문신은 지금까지 발견된 문신에 관한 증거 자료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냥중 동사한 것으로 보이는 이 청동기시대의 무명 사냥꾼은 5천여 년 전 외롭게 죽어갔겠지만 우리에게 문신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침묵 속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고대 문신의 흔적은 이집트 미라들의 마른 피부 위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집트 학자들은 3왕조와 4왕조 시대(2686~2493B.C.)에 문신이 이집트의 중요한 관습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집트에서 문신을 한 미라는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것은 11왕조 시기(2160~1994 B.C.) 테베의 여신 하토르(Hathor)의 여사제였던 '아무네트(Amunet)'의 미라이다. 미라의 팔과 넓적다리에는 평행선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배꼽 아래쪽에 새겨진 타원형 문양들이 눈길을 끈다. 이 문양과 유사한 것이 아무네트와 함께 발견된 조상(彫像)들인데, 이집트 학자들이 '죽음의 신부(A bride of the dead)'라고 부르는 이 작은 조상들의 배꼽 아래쪽에도 유사한 문신이 있다. 풍요와 재생의 상징물로 알려진 이 조상들에는 기하학적 문신이 아로새겨져 있다. 근동과 유럽 지역의 문신 흔적을 일별했으니 이제 시선을 좀더 동쪽으로 옮겨 문신 여행을 계속해 보자. 제2차세계대전 직후 고고학자들은 남부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아주 잘 보존된 스키타이 족장의 미라를 발견했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무렵까지 남부 러시아 지역에서 활약한 유목민족이었는데 이들의 문화는 여러 유목민족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스키타이 족장의 미라가 흥미로운 것은 몸에 아주 잘 보존된 문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족장의 몸에는 서로 다른 토템 동물들을 표현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스키타이인들의 나무 조각물들이나 장신구 그리고 자수나 직물 등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이들은 나무와 장신구에 토템 동물들의 문양을 새기듯이 몸에도 그런 문양을 새겼던 셈이다.
스키타이 미라와 함께 고고학적 유물로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주목되는 것이 파지리크(Pazyryk) 무덤군이다. 1948년 러시아 인류학자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루덴코가 중국과 러시아 국경 북쪽 약 120마일 지점에서 일련의 무덤군을 발견했다. 이 무덤들은 기원전 6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동유럽과 서아시아 스텝 지역에 거주했던 철기시대 유목민 파지리크족의 전사들의 무덤이었는데, 여기서도 문신을 한 족장의 잘 보존된 미라가 나왔다. 특히 이 족장의 온몸에는 동물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로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가슴에는 그리스 신화의 독수리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을 지닌 그리핀과 유사한 동물이, 오른쪽 팔에는 당나귀와 산양과 사슴 두 마리, 오른쪽 다리에는 큰 물고기와 양 네 마리, 그리고 괴수(怪獸) 한 마리, 이런 식으로 무수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1993년 여름, 시베리아 우모크(Umok) 고원에서 또 다른 파지리크족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이전에 발견된 미라와 유사한 신화적 동물들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모크의 미라는 여성이라는 것뿐이었다. 이제 아시아 대륙에서 태평양을 건너 남북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보기로 하자. 앞에서 살펴본 문신의 흔적들이 주로 고고학적 자료들 속에 있었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흔적들은 문화인류학적 자료들 안에 있다. 이 말은 현지에서 직접 살아 있는 문신을 본 사람들의 기록들 속에 아메리카 대륙의 문신 흔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 이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유럽인의 침략 이후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 가운데 1653년 캐나다 동부 지역에 있던 프랑소아 브레사니의 보고에 따르면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바늘이나 가시 혹은 송곳 등을 이용하여 독수리나 뱀 그리고 용과 같은 동물이나 괴물들을 얼굴·목·가슴 그리고 다른 신체 부위에 새겼다. 그는 이 지역의 여러 원주민들 사이에 문신의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문신을 하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후일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 원주민들 사이에서 문신이 보편적인 습속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문신에 관한 한 사정은 남미에서도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악명 높은 정복자 코르테즈가 1519년 멕시코 해안에 도착했을 때 처음 발견한 것은 문신을 한 사람들이었다. 이 스페인 사내들은 이전에 문신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탄이 한 짓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의 살육은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예수회 선교사 자비에르는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을 제메(zeme)라고 불렀고 우상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몸에 새겼다.” 역사가 디에고 로페즈는 전사들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문신을 했는데, 그래서 늙은 영웅들의 몸은 상형문자로 완전히 뒤덮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단편적인 보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들 역시 문신 습속 안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래전에 본 뉴질랜드 영화 가운데 「전사의 후예」라는 작품이 있다. 백인중심사회에서 소수화된 원주민 마오리족의 삶을 다룬 영화인데 거기 등장하는 마오리족 청년의 문신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 마오리족을 포함하여 태평양의 많은 섬들에서도 문신은 보편적이었다. 근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문신 습속이 오래된 문신의 흔적을 찾는 우리의 여행에서 의미 있는 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거의 20세기까지도 석기시대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살아있는 고고학적 증거들인 것이다. 마오리 문신은 특히 머커(Moko)로 불리는데 노예와 평민을 제외한 모든 남성들이 얼굴과 신체의 다른 부분에 문신을 가지고 있었다. 마오리족의 문신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얼굴 문신인데 품위 있게 문신을 한 얼굴은 마오리 전사들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얼굴 문신은 전투에서 그들을 용감하게 만들었고 여성들에게는 매력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마오리 여성들의 문신은 남성들에 비해 간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문신은 남성들처럼 정교하지 않았고 입술의 라인을 그리거나 턱 혹은 뺨이나 이마 등에 약간의 선 혹은 나선형을 그리는 정도였다. 유럽의 배들이 사모아에 도착했을 때도 유럽인들이 처음 발견한 것은 사모아인들의 문신한 신체였다. 1768년 프랑스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장 프랑소와 페로즈는 원주민 남자들이 넓적다리에 문신을 하고 있었는데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옷을 입을 것처럼 보였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얼굴 문신만큼 사모아인들의 다리 문신은 특징적이다. 남성들은 짙은 청색 계통의 문신을 바디 페인팅을 하듯이 했다. 그림에서 보듯이 여성 역시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넓적다리에 문신을 했는데 그 형태는 전체를 짙게 칠하는 남성들의 문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20세기까지도 석기시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보르네오의 원주민들 역시 문신 습속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과 유사한 삶의 형식을 지니고 있었던 자바, 발리, 폴리네시아 등의 태평양 대부분의 섬들에서도 우리는 뉴질랜드나 사모아의 문신 습속과 유사한 문화 현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문신은 태평양 지역의 여러 섬들이 지닌 보편적인 습속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대륙, 아프리카로 가도 문신을 만날 수 있다. 일찍이 아프리카에 들어갔던 상인들이나 선교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 문신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문신은 문신의 기술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칼로 베거나 가성(苛性) 즙으로 염증을 만들어 흉터를 만드는 방식의 문신, 이른바 흉터 문신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은 피부가 검다는 그들의 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신의 역사, 조현설, 살림, 7-15페이지
문신은 기원전 3,300년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니 약 5300여년 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러 원시부족을 보면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등 여러 부족에서 문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오랜 역사성과 지역을 초월한 문신의 광범위한 분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문신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따라서 젊을 때 했던 문신을 나이가 들어 청장년기에 지우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문신을 할때와 지울 때 이중으로 비용이 발생하고 문신 제거이후에 흉터가 발생한다. 문신 제거 흉터는 이미지한의원의 흉터침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여러 시술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미지한의원에서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