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단의 유래 논어 무위이치 만기친람
공진단은 원(元)나라 때의 유명한 의학자인 위역림(危亦林)이 저술한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에서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다. 공진단은 사향(麝香), 녹용(鹿茸), 당귀(當歸), 산수유(山茱萸)라는 총 4가지 약재로 구성된 아주 간결한 처방이며, 이름그대로 알약이다. 물론 단이란 환이 큰 것을 말한다(丹卽丸之大者也)고 하였으므로 벽오동씨만한(梧子大) 다른 알약보다는 좀 더 크다. “대체로 남자가 장년기에 진기가 몹시 약한 것은 타고날 때부터 약하고 허한 것이 아니므로 성질이 건조한 약재를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음혈(陰血)을 보충하는 다른 처방들을 보면 약물 숫자는 많지만 약효가 매우 약하여 효력을 보기 어렵다. 따라서 단지 타고난 원기를 공고히 하여 신수(腎水)와 심화(心火)가 잘 오르내리게 하면 오장이 스스로 조화되고 온갖 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니, 이럴 때 공진단을 사용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도 태음인의 공진흑원단이란 처방이 있는데, 공진단은 선천적으로 허약한 사람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피로가 누적된 장년기의 환자에게 적합하며, 원기를 굳건히 함으로써 신체의 자생력(自生力)을 도와주는데 적합한 처방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공진단 이름의 유래는 논어의 爲政(위정편)에서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이중성공지]라고 하여 덕으로써 정치하길 비유하면 마치 북극성이 한 곳에 있어도 모든 별이 그 주위로 돈다는 뜻을 가진다. 즉 우리 몸의 중심축을 만들어주며, 한 기운을 모아주어 집중케 하는 효과를 지닌 약이란 뜻이다. 따라서 공진단이 아니라 공신단이라고 말해야 하긴 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했다.
子曰:「無爲而治者,其舜也與!夫何爲哉?恭己正南面而已矣。」
스승 공자께서 말하셨다. “아무 것도 안하면서 다스린 사람 아마 순임금 일 것이야. 도대체 어떻게 했는가? 공손히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쪽을 향해 앉아 있었을 뿐이지.”
왕숙이란 사람이 쓴 공자가어에도 다음과 같이 임금은 수고롭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曾子曰:「不勞不費之謂明王을,可得聞乎잇가?」
증자가 말했다. “수고롭지도 않고, 낭비하지 않는 것을 밝은 임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孔子曰:「“昔者에 帝舜左禹而右皐陶하니,不下席而天下治하니라,夫如此면,何上之勞乎요?”
공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순임금은 왼편에 우를 앉히고 오른쪽에 고도를 앉힌 채로 앉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천하가 다스려졌으니 이 같은 것은 무엇이 윗사람이 수고롭겠는가?”
政之不平은,君之患也요,令之不行은,臣之罪也니라. 若乃十一而稅하고,用民之力에,歲不過三日하며,入山澤以其時. 而無征하고,關譏市廛하며,皆不收賦면,此則生財之路요,而明王節之면,何財之費乎리오?」
“정치가 평화롭지 않은 것은 임금의 근심이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음은 신의 죄이다. 만약 10분의 1을 조세로 받고, 백성의 힘을 사용하는데 1년에 3일을 넘지 않고, 산에 가고 못에 가서 고기 잡는 것을 때에 맞추어 하고, 여기에서 세금을 받지 않고, 관문에서는 조사만 하고 다른 여러 장사꾼에게도 세금을 받지 않으면 이는 다 세금을 거두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재물을 낳는 길인데, 현명한 왕이 이를 잘 조절하면 어찌 재물의 낭비가 있겠는가?”
다산 정약용은 편지에 “순임금은 장차 옷소매를 드리우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진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점잖게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천하가 저절로 크게 화평해졌다. 이것은 잠꼬대 같은 말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태평성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논박했다.
요약해보면 동양사상에서는 북극성은 하늘에서 임금과 같은 존재로 본인은 움직이지 않고 남들의 움직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a first uncaused cause[최초의 원인] 부동의 동자 Unmoved Mover를 기독교의 신 관념에 적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의 조직신학적 신론으로 보았다. 즉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고도 만물을 창조했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동양사상에서 성군으로 본 순 임금은 장차 옷소매를 드리우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진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점잖게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천하가 저절로 크게 화평해졌다고 하였다.
정조 1781년(정조 5년), 규장각 제학 김종수가 ‘임금의 태도를 지적한 6개항’을 상소문으로 올렸다. “작은 일에 너무 신경쓰시면 큰 일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크고 실한 것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눈 앞의 일만 신경을 쓰면 겉치레의 말단입니다. .”
정조는 살인 사건의 판결문을 직접 쓰고 지독히 담배를 많이 피우는 골초였으며 백성을 위해 하나하나 사사건건 따지다 보니 화병과 일중독으로 일찍 사망하여버렸다.
필자가 번역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103회[http://bit.ly/1OLeYCg] 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마의가 물었다. “제갈공명의 잠과 식사의 일이 어떠한가?”
사자가 말했다. “승상께서 일찍 일어나고 야간에 잠들고 20개 이상의 벌을 주고 친히 보십니다. 먹는 음식은 하루에 몇 되를 넘지 않습니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제갈공명이 식사가 적고 일이 번잡하니 오래살겠소?”
사자가 간다고 말하며 오장원에 돌아와서 제갈공명에게 말했다. “사마의가 옷 베와 장식 여인옷을 받고 서찰을 보고 진노하지 않고 단지 승상의 침식과 일의 번거로움과 간단함을 물으며 절대 군사를 일으키지 않게 합니다. 제가 이처럼 대응하니 그는 말했습니다. ‘음식이 적고 일이 번거로운데 어찌 오래 살겠소?’”
제갈공명이 한탄하여 말했다. “그는 깊이 나를 안다.” 제갈공명은 그 말을 한 뒤에 오장원에서 병사했다.
필자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의사는 사실 바쁘게 하는 것 같아도 움직일수 있는 조건만 만들어주고 환자의 몸이 알아서 좋아지게 만들어야 한다. 환자의 신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약물등은 항상 커다란 부작용이나 죽음을 남긴다. 필자가 하는 튼살 치료도 튼살이 발생한 진피 부위를 콜라겐을 단순히 ST침만으로 자극하여 치료하면 피부의 자생능력으로 원래 피부상태로 복구하는 것이다.
서경 고요모에 나오는 일일만기(一日萬機)란 천자(군주)는 하루 동안 만가지 일을 처리한다 해서 ‘일일만기’ 혹은 ‘일리만기(日理萬機)’라 했다. 최악의 지도자인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등은 백성을 못 믿어서 직접 군부대 시찰, 돌아다니면서 국민에게 민폐만 끼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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