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7일 일요일

진림의 활시위의 화살과 화상흉터치료

진림의 활시위의 화살과 화상흉터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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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림(陳琳, ? ~ 217)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공장(孔璋)이며 서주(徐州) 광릉군(廣陵郡) 사람이다.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이다. 소속은 하진 원소 원상 조조로 옮겨갔다.
처음에는 대장군(大將軍) 하진(何進)의 밑에서 주부(注簿)를 지냈다. 하진이 환관(宦官)들을 주살할 목적으로 제후들을 수도로 오게 하자, 이를 극구 반대하였다. 광희(光熹) 원년(189) 8, 하진이 암살당하자 기주(冀州)로 몸을 피하였고 원소(袁紹)의 막료가 되었다. 건안(建安) 5(200), 원소의 명령으로 조조(曹操)를 비난하는 격문을 썼다.
건안(建安) 7(202) 5, 조조와의 싸움에서 패한 원소가 병사하였다. 원소의 장남 원담(袁譚)과 삼남 원상(袁尙)은 후계 자리를 놓고 다투었고, 진림은 원상을 지지하였다.
원상이 병을 핑계로 출두하지 않는 최염(崔琰)을 옥에 가두자, 진림은 동료 음기(陰夔)와 함께 그를 변호하여 최염을 구하였다. 건안(建安) 9(204) 8, ()이 조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조조를 섬겼으며, 건안 22(217)에 병으로 죽었다. 조비(曹丕)는 진림을 "문장은 탁월하나, 조금 번잡하다"고 평하였다.
나관중 삼국지연의 32[전자책 http://upaper.net/homeosta/1005986]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審配既死操憐其忠義命葬於城北
심배기사 조련기충의 명장어성북.
심배가 이미 죽으니 조조는 그의 충의를 가련하게 여겨서 생명을 성의 북쪽에 장례를 지내라 명령했다.
衆將請曹操入城
중장청조조입성.
여러 장수가 조조를 청하여 성에 들어가게 했다.
操方欲起行只見刀斧手擁一人至操視之乃陳琳也
조방욕기행 지견도부수옹일인지 조시지 내진림야.
조조는 바로 일으켜 가려다 단지 도부수가 한사람을 안고 들어감을 보니 조조가 그를 보니 진림이었다.
操謂之曰:「汝前爲本初作檄但罪狀孤可也何乃辱及祖父耶?」
조위지왈 여전위본초작격 단죄상고 가야. 하내욕급조 부야?
조조가 말하길 너는 전에 원소[원본초]를 위해 격문을 만들어서 단지 죄상이 나한테나 가능한데 어찌 조상과 아버지까지를 욕되게 하는가?”
琳答曰:「箭在弦上不得不發耳。」
림답왈 전재현상 부득불발이.
진림이 말하길 화살이 활의 현 위에 있으니 발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左右勸操殺之
좌우권조살지.
좌우에서 조조를 권하여 그를 죽이라고 했다.
操憐其才乃赦之命爲從事
조련기재 내사지 명위종사.
조조가 그 재능을 아껴서 사면하며 종사로 삼으라고 명령하였다.
삼국지연의 56회를 보면 진림이 조조에게 아부의 문장을 올리는 내용이 나온다.
時有王朗鍾繇王粲陳琳一班文官進獻詩章
시유왕랑 종요 왕찬 진림일반문관 진헌시장.
이 때 왕랑, 종요, 왕찬, 진림의 일반 문관이 있어서 시와 문장을 진상하여 바쳤다.
詩中多有稱頌曹操功德巍巍合當受命之意
시중다유칭송조조공덕위위 합당수명지의.
시중에 많이 조조의 공덕이 크며 천명을 받음이 합당함을 칭송하였다.
 
원래 부모 욕하는 사람은 그냥 안둔다는 말이 있지만 조조를 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욕한 진림을 용서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조를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간웅이나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조조는 춘추전국시대 왕처럼 인재 등용에 지위고하 귀천이나 자신에게 했던 과거까지 다 용서하고 오로지 능력위주로 뽑았다. 오나라는 손견으로 내려오는 가신위주, 촉나라는 의형제등 인재풀이 적었던 반면에 위나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유도 바로 이 인재등용원칙에 따라 쓴 것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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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생각하기에 화상흉터치료도 마찬가지이다. 불에 화상을 입은 과거에 연연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현재 지금 이순간[now here]이 중요하며 만약 흉터를 전 피부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아무데도 없는 것[no where]이다. 하지만 이미지한의원의 화상후 흉터침인 BT침 치료를 하면 매우 탁월한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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