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4일 월요일

수이전 지귀설화와 화상흉터치료

수이전 지귀설화와 화상흉터치료


수이전(殊異傳)은 고려에서 조선 중기에 이르는 한국의 문헌들 속에 수록된 고대 삼국 시대(특히 신라)를 배경으로 한 설화들의 원전(原傳)이라고 소개되는 고대 문헌의 제목이다. 수이전이라는 책 자체는 현재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삼국유사등 고려 시대의 문헌과 삼국사절요, 필원잡기등 조선 중기의 문헌에 축약된 형태로 실린 일문(逸文)만이 남아 있다.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또는 신라이전(新羅異傳)이라고도 불린다.
대체로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편집된 것으로 중국의 태평광기(太平廣記)나 일본의 곤자쿠 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와 같은 설화 문학집으로 추정된다. 수이(殊異)라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수이전일문의 설화들은 '몹시 기이하고 이상한' 이야기들로, 대부분 실재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론과 인식론을 뛰어넘는 초월적이고도 신비로운 내용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현실적인 의미가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대체로
. 초현실적인 계기(특히 불교적인 신이가 결합한 종교적 영험)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이함' 그 자체에 주목하는 이야기: 아도, 원광서학, 보개, 연오랑 세오녀, 죽통미녀, 노옹화구.
. 타고난 재능으로 문제를 간파하여 해결하고 욕망을 성취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석탈해, 선덕여왕.
.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실현된다 해도 죽음이라는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하는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 선녀홍대, 심화요탑, 수삽석남, 호원.
이다. 편찬 관련 기사가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데서 국가적인 관심 속에서 편찬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고려의 해동고승전삼국유사, 제왕운기, 조선의 필원잡기, 삼국사절요, 태평통재,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운부군옥, 해동잡록, 사가집등 여러 문헌에서 기본 자료로 인용되어 쓰였다. 원본이 현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저작 시기나 저작자, 전체 체제 등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불완전한 부분이 많이 있으나, 한국의 초기 서사문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꼽히고 있다.
수이전에는 지귀설화가 존재한다.
 
志鬼, 新羅活里驛人也.
지귀는 신라 활리 역 사람이다.
慕善德王之端嚴美麗하여, 愁憂涕泣, 形容憔悴.
지귀는 선덕여왕의 단정하고 엄숙한 미모를 사모하여 근심으로 울다가 형체가 말라 수척해졌다.
王聞之하고, 召見曰:“朕明日幸靈廟寺行香이러니, 汝於其寺待朕하라!”
선덕여왕이 듣고 불러 말했다. “짐이 내일 영묘사에 가서 분향을 할 것이니 너는 이 절에서 짐을 기다려라!”
志鬼翌日, 歸靈廟寺塔下하여, 待駕幸이라가, 忽然睡酣이라.
지귀가 다음날에 영묘사 탑에 가서 어가행차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단잠에 들었다.
王到寺하여, 行香이라가, 見志鬼方睡著이라.
왕이 절에 도달해 분향을 하다가 지귀가 바로 잠들으을 보았다.
王脫臂環하여, 置諸胸하고, 卽還宮이라.
왕이 팔찌를 벗어 가슴에 두고 궁궐에 돌아왔다.
然後乃覺하니, 御環在胸이라, 恨不得待御하여, 悶絶良久라가, 心火出燒其身하여, 志鬼卽變火鬼하다.
지귀는 깨어나 임금 팔찌가 가슴에 있음을 보고 임금을 모시지 못함을 한탄해 한참 답답해 하다가 심화가 자기 몸을 태워 지귀는 불귀신으로 변화하였다.
於是, 王命術士作呪詞, :
이에 왕은 술사를 시켜 주문을 만들게 했다.
志鬼心中火러니, 燒身變火神이라.
지귀는 마음속 불이니 몸을 태워 불귀신으로 변화하였다.
流移滄海外하여, 不見不相親하라.
창해밖으로 옮겨가서 보이지 않고 서로 친하지 않게 하라.
時俗, 帖此詞於門壁하여, 以鎭火災.
세속에서는 이 말을 문벽에 붙이고 화재를 집압했다.
위 내용을 보면 처용이 자신의 처와 바람핀 역귀에 걸린 신을 용서해주어 처용의 얼굴이 질병을 쫓아내는 부적이 된 내용과 비슷하다.
중국의 불의 신인 축융은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커다란 호랑이를 탄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축융은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전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도운 신 중 하나였다.
축융은 자신의 아들인 물의 악령으로 대홍수를 일으킨 공공과의 전투로 유명하다. 축융은 자신의 아들이 하늘의 왕좌를 찬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제지하러 갔다. 둘은 하늘에서 며칠 동안 싸우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에 공공은 패하였고 축융은 승전고를 울리며 하늘로 돌아왔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축융부인은 축융의 후예라고 서술하였다.
고대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초나라의 선조 전욱의 후손인 중려(重黎)가 제곡이 즉위한 뒤에 화정(火正불을 관리하는 벼슬)을 맡았다. 중려는 불빛으로 천하를 밝게 비추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제곡이 그를 축융(祝融)이라 부르도록 명하였다. 축융(祝融)의 후손이 기()씨라고 전하기도 하는데, 주나라 시대 소()씨가 되었다.
 
아무튼 지귀설화로 부적의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신라에서 화재가 빈번했음을 알수 있다. 그 때는 목재 건축이 많고 소방시설이 미흡했으므로 화재에 대해서 대비하기 위해 이런 미신의 신화가 존재했을 듯하다. 현재에도 화재는 줄지만 화상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데 이 화상이후에는 화상흉터가 존재할 수 있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화상흉터를 화상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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