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8일 월요일

러시아의 백색 운동과 적군, 화극금과 붉은 튼살 흰 튼살

러시아의 백색 운동과 적군, 화극금과 붉은 튼살 흰 튼살


러시아 백색 운동(Белое движение 벨로에 드비졔니예), 그리고 그 무력인 하얀 군대(Белая Армия 벨라야 아르미야) 또는 백위대(Белая Гвардия 벨라야 그바르디야)10월 혁명으로 집권한 볼셰비키에 대항하여 러시아 내전에서 싸운 반혁명세력을 말한다. 이들 구성원을 백색파(Белые, 볠릐예 또는 белогвардейцы , 볠로그바르뎨이츼)라고 한다. 백색은 원래 왕당파의 색깔로서, 적색을 상징으로 삼은 볼셰비키나 붉은 군대와 대비로서 이름붙여졌다. 러시아 내전에서 최종적으로 볼셰비키가 승리함에 따라 이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또는 볼셰비키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백색파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첫째로, 이것은 적색파(볼셰비키 공산주의자와 붉은군대)와 정반대 세력이라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백색은 왕당파를 지칭한다. 역사적으로 통일된 러시아의 첫 번째 군주인 이반 3세는 라틴어로 Albus Rex "하얀 짜르"라고 불렸다. 또한 하얀색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 상징색이기도 하였다. 세 번째로는 하얀 군대의 병사들은 전통적인 러시아군의 하얀색 제복을 착용하였다.
엄밀히 따지면, "하얀군대"는 단일한 조직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상호 조정이나 통합력이 없는 여러 반혁명 세력의 느슨한 연합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하얀군대의 지휘관들은 명확한 이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코르닐로프나 데니킨과 같은 러시아 제국의 장군 출신도 제정을 부활시키려던 왕당파는 아니었다. 브랑겔은 제정을 선호하고 러시아 전통사상을 기초로 한 정치이념을 창안하기도 하였으나, 민주 공화정은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알려진 바와는 달리, 모든 하얀군대가 제정을 부활시키기 위한 왕당파는 아니었다.
하얀운동(반혁명운동)에는 물론 왕당파도 섞여 있었다. 미하일 디테리흐스같은 자는 극동에서 니콜라이 2세의 동생이던 니콜라이 로마노프 대공을 그가 현지에 부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르로 옹립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념들은 후에 내전에서 패한후 해외로 망명한 반볼셰비키 러시아인의 정치이념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반 일리인이 있고 이들의 사상을 "하얀 이념"이라고도 한다.
하얀군대는 러시아 제국의 해체를 불용하였고, 특히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을 절대로 반대하였다. 하얀군대는 서구식 자유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사회혁명당이나 멘셰비키 등의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의 일부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었다. 물론 사회혁명당은 시기나 정황에 따라서 붉은군대를 지지하기도 하였다.
 
레닌에게는 유대인의 피가 섞였다. 소련 초기 공산 혁명은 유태인들의 음모라는 공격을 막기 위해 레닌과 공산당은 최대한 레닌의 가족사를 숨기려고 애썼는데, 1930년대 레닌의 가족들이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레닌의 외할아버지가 유대인이며 이 사실을 알려 반유대주의를 막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90510월의 총파업사태 당시 러시아정부는 마침 로스차일드계열의 금융사들을 배제한채 차관 도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중이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입수한 유대인 자본가와 은행가들은 의도적으로 루블을 대량 매도하여 외환시장에서 공황사태를 야기함으로서 러시아 정부의 차관 도입을 무산시키는 한편 급락하는 러시아 환율에 대한 투기행위로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Vladimir Lamsdorf 러시아외무상
19172, 굶주림과 추위와 전쟁에 지친 러시아 민중은 수도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곧이어 노동자와 군인들이 시위대 편으로 합류하여 니콜라이 2세황제를 몰아냈는데, 이를 2월혁명이라 부른다.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면서 케렌스키를 내각수반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임시정부가 재편되었다. 반면, 당시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생활 중이던 레닌은 이때만 해도 혁명이 일어났으리라는 사실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레닌을 비롯한 32명의 러시아 혁명망명자들은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아 황금을 가득 실은'봉인열차'를 타고 191743일 늦은 밤에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했다.
러시아 혁명에 자금을 제공한 주요 금융가들
(3대 로스차일드 남작,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미국 에이젼트 야콥 쉬프)
(폴 워버그,미국FRB창설)
(워버그 삼형제, , 맥스-1차대전시 독일 정보국 총수,봉인된 기차에 레닌을 러시아로 보냄,필릭스 워버그; 책저자 유태인 체르노프-"독일과 미국 발전에 기여한 유태인 영웅들!")
(D.록펠러, 모노폴리의 대가, 세파르디crypto-jew)
(손자 데이빗 록펠러, 뉴욕FRB회장, 체이스맨하탄회장; CFR회장; 유태인 석유재벌 아만드 해머와 함께 소련에 대한 막후 영향력으로 유명; 유명한 家臣,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매들린 올브라이트, 조지H.W.부시, 버거, 홀브룩) 출처http://blogs.chosun.com/tempia7
 
전통적으로 서구의 백색은 현체제를 지키자는 보수, 수구파, 적색은 현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진보, 공산주의의 개념이 있다. 그런데 사실 자본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포함 특정 인종이 만든 냄새가 나며, 또 그 배후에는 **회가 도사리고 있다. 서구에서는 오히려 가장 최고 부자가 소득세를 더 내겠다 세금을 더 걷어라 하면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모습을 가진다. 그런데 그들은 재단을 만들거나 스위스나 버진 아일랜드등 각종 절세가 가능한 섬등 해외로 재산을 빼돌려서 세금 회피나 은닉이 가능하지만 상위 0.1-5%의 부자는 빼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피라미드 상층부 사람이 그 바로 아래 단계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사학인 레토릭을 펼치고 있는 것이니 양의 탈을 쓴 이리들에 속지 말아야 한다. 항상 헤겔의 정반합 법칙을 생각해 공황을 일으켜 주기적으로 부풀린 통화를 수축시키듯 양털을 깍는듯한 자본주의 정-공산주의 반-신 세계질서 합의 과정을 겪는 동안 우리는 점차 더 가난해짐을 명심해야 한다.
축구 A대표팀은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무승 징크스에 시달렸다. 1958년 스위스월드컵부터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A대표팀은 8번의 월드컵에 나섰지만 총 28경기에서 5815패에 그쳤다. 이 가운데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고 나선 건 4경기로 13패의 성과를 보이며 부진했다.
'화이트 징크스'는 월드컵 뿐만이 아니다. 대표팀이 지난 2001년부터 10년간 치른 A매치 기록을 살펴보면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착용했을 때의 승률은 20%에 불과하다.
46% 승률을 보인 붉은색 상의 유니폼과 33.3% 승률을 보인 흰색 상의 유니폼보다 크게 떨어진다.
러시아를 봐도 백색인 황제파를 적색인 공산주의 세력이 혁명으로 타도시켰는데 동양철학을 하면 그 이유를 알수 있다. 즉 백색은 한의학적으로 흰색 서방의 금의 기운이며 적색은 남방의 화의 기운이다. 한의학의 오행에 상극사상이 있는데 바로 용광로에서 금속이 제련과정을 겪듯이 불이 금속을 녹이는 火克金화극금의 뜻이 있기 때문에 오행적으로도 역사가 적색의 승리의 깃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의학적으로 폐나 기관지, 피부의 염증이나 발열이 발생하면 큰 피해가 생기는 것도 화극금의 뜻이니 불을 꺼주는 치료를 한다.
같은 이유로도 축구에서 흰색 유니폼이 붉은색만 못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축구 경기장은 잔디가 초록색으로 동방 靑色청색 파란색 나무 목인데 흰색은 金克木금극목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붉은색은 나무가 불을 피우는 木生火목생화의 기전이기 때문에 잔디의 푸른 기운을 받아 더 잘되게 된다.
아무튼 우리 인체에서도 처음에는 적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흰색이 되는 팽창선조 즉 튼살이 존재한다. 이런 튼살은 이미지한의원의 튼살침인 ST침으로 생각보다 쉽게 치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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