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맹자와 지렁이의 청렴, 용이 아니라 차라리 지렁이가 되련다

맹자와 지렁이의 청렴, 용이 아니라 차라리 지렁이가 되련다


맹자와 지렁이의 청렴, 용이 아니라 차라리 지렁이가 되련다.

중국의 고전으로 4서중 하나인 ‘孟子맹자’란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지렁이에 대해서 말한다.
匡章曰:  「陳仲子는 豈不誠廉士哉리오? 居於陵할새, 三日不食하야, 耳無聞하며, 目無見也이러니. 井上有李가, 螬食實者가 過半矣어늘, 匍匐往將食之하야, 三咽, 然後에야 耳有聞하며, 目有見하니라. 」
광장이 말하길 “진중자는 어찌 청렴한 선비가 아니겠습니까? 오릉에 살 때 3일 동안 먹지 못해서 귀로는 듣지 못하고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가 우물위에 오얏나무를 굼벵이가 열매를 먹은 것이 절반이 넘거늘 기어가서 먹어서 세 번 씹어 넘긴 연후에야 귀가 들리고 눈이 보였습니다.”
광장과 진중자는 모두 제 나라 사람으로 둘 다 청렴은 분별해 변별함이 있어서 구차하게 취하지 않았다.
孟子曰:  「於齊國之士에, 吾必以仲子로 爲巨擘焉이어니와. 雖然이나, 仲子는 惡能廉이리오? 充仲子之操이면, 則蚓而後可者也이니라.
맹자가 말하길 “제나라 선비가 나는 반드시 진중자로 엄지손가락처럼 첫째로 여기지만 진중자가 어찌 청렴하겠습니까? 진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지렁이가 된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맹자의 말은 진중자는 청렴함을 얻지 못함이니 반드시 만약 지키는 뜻을 채우려면 오직 지렁이처럼 세상에 구함이 없은 연후에 청렴하게 됨을 말함이다.
夫蚓은, 上食槁壤하고, 下飮黃泉하나니. 仲子所居之室은, 伯夷之所築與아? 抑亦盜跖之所築與아? 所食之粟은, 伯夷之所樹與아? 抑亦盜跖之所樹與아? 是未可知也이로다. 」
“지렁이는 위로는 볏짚과 흙을 먹고 아래로는 황천의 탁한 물을 마시니 진중자가 사는 집은 청렴한 백이가 건축했습니까? 아니면 도둑인 도척이 지었습니까? 진중자가 먹는 곡식은 백이가 뿌렸습니까? 아니면 도척이 심었습니까? 이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맹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아무리 사람이 청렴하게 산다고 해도 흙의 유기물을 파먹는 지렁이를 능가하지 못하니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해서 청빈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이 가치가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안빈낙도중에 가난한 처지에 있는 것보다 올바는 도리를 즐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유교적 태도에서는 중용이 중요한데 재물도 과유불급이지만 너무 가난하게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들로 주나라 무왕을 피해서 수양산에 살아 고사리를 캐 먹다가 죽은 사람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청렴하고 아름답지 않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유교적 방식으로는 수양산에 비가 내려주는 것도 임금의 덕이고 은택이기 때문에 곡식을 먹든 고사리를 먹던 결국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견훤은 867년, 상주의 농부였던 아자개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출생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인 상주의 가은현이었다.견훤의 본래 성씨는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 이(李)씨였으나 훗날 견(甄)씨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제가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에게는 백융부인 사도라는 왕비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후손인 작진이 왕교파리라는 여인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아자개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견훤은 곧 신라 왕실 외척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리 신빙성있는 기록은 아니다.
또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견훤에게는 여러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남동생들로는 능애, 용개, 보개, 소개 등이 있으며 여동생은 대주도금이 있다. 견훤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삼국사기에서는 견훤의 비범함을 나타내는 설화를 하나 전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아자개에게 식사를 날라 주기 위해 포대기에 쌓인 어린 견훤을 나무 밑에 놓아두었는데 지나가던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견훤에게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견훤의 어머니가 매일 밤마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와 밤에 합방을 해 남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남자의 옷에 실을 매달아 따라가보니 땅속으로 이어져 있어서 파봤더니 지렁이가 바늘에 꿰인 채로 죽어 있었다.”더라란 이야기가 있어 토룡(지렁이)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한다. 즉 지렁이 모습이 용과 비슷한데 옛날 용안등의 말처럼 용은 임금을 뜻하며 지렁이는 미천한 용 즉 한미한 임금의 자식을 뜻한다. 즉 필자가 생각하기에 견훤은 신라의 왕족일 확률이 매우 크다. 또 한가지 첨언을 하자면 경북 상주 사람인 견훤이 전북 전주에 와서 후백제를 세우고 백제의 원한을 갚고 신라에 적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이하다. 즉 후삼국시대등에는 역사적으로 지역감정이 없었으며 지역감정이 최근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장된 측면이 매우 크다.
설화에서는 못된 며느리가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자기는 고기를 먹고 시어머니에게는 지렁이를 고기라면서 속여서 먹이던 도중 남편이 그걸 알게되지만 소심한 남편은 아무말 못하고 결국 참다못한 하늘이 며느리에게 벼락을 내려 지렁이로 바꿔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내용으로는 악한 며느리가 눈먼 시어머니에게 지렁이를 고기라고 속여서 먹였는데, 그 지렁이가 고기라고 철석같이 믿은 시어머니가 힘들게 일하는 아들에게 먹이려고 아껴두었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내놓아서 아들이 진실을 깨닫고 악한 아내를 내쫓았다는 다른 버전도 있다.
지렁이는 蚯蚓구인이라고 하여 한약재로도 입술 립스틱 용도로도 쓰인다. 여담이지만 하지정맥류도 푸른 지렁이 모양이지만 수술후 흉터도 지렁이 모양이다. 즉 절개하여 잘려진 수술 부위가 지렁이처럼 보일 수 있다. 지렁이는 매우 징그러운 모양이므로 미적으로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지렁이 모양의 수술후 흉터가 몸에 남아 있다면 본인의 몸에 호감을 가지고 살기 어렵겠지만 필자가 진료하는 한의원에서 수술후 흉터침인 OT침 치료로 흉터가 잘 안보이게 되며 남이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하삶의 질 향상도 가능하다.
진화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은 지렁이 옆에서 지렁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보려고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큰소리를 쳐보기도 했고 지렁이를 위한 피아노 연주도 시도했습니다. 다윈은 담배연기를 뿜어 보기도 하고 잔디밭 위에서 발을 굴러 쿵쿵 뛰면 지렁이가 놀라서 자기 구멍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까도 관찰하고 땅 위에 백묵가루를 뿌려 놓고 이 백묵가루를 얼마나 깊이 지렁이가 가지고 들어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땅을 온통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시뻘겋게 달군 쇠 부지깽이를 지렁이 옆에 놓아두기도 하고 또 배추나 파를 주어 지렁이의 미각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찰스 다윈은 일생의 거의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렁이에 관심을 가지고 끈기 있게 관찰하는 데 투자했다.
지렁이는 땅 속에 구멍을 파면서 그 밑바닥의 흙의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이용하며 통기나 수분 흡수가 잘 되도록 흙을 일구어주므로 이들이 지나다닌 토지에서는 식물이 잘 자란다. 배설물은 항문으로 배출되는데, 지렁이의 배설물은 칼슘과 그 밖의 영양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식물이 성장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는 기름진 흙이다. 지렁이는 물고기, 새, 두더지의 중요한 먹이가 되어 먹이사슬 유지에 기여하며, 낚시의 미끼로도 이용되어 환경과 사람에게 매우 유용하다. 필자는 하늘을 나는 용이 아니라 차라리 땅속에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지렁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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