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더불어 희망찬 사람들
Part 1
Beautiful Leader
관상을
보듯
환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다
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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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시대 리더들의 터닝포인트 6, 문동진 외 8명 공저, 한국 리더스 포럼,
208-237페이지
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상쟁이 송강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21세기 최첨단 하이테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사상, 동양철학, 동양의학에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현상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하는 데에서 오는 학문적 깊이에 대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한의사로서, 파도를 보지 않고 바람을 보기
위해, 한의학이 시작되고, 발전했던 고대의 상황을 알고, 당시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고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은 마치
중국 한말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와도 같이 열정적인 어투로 경전들을 인용하며 병의 근본을 밝히고 치료하는 한의학의 놀라운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전 철학서, 의학서, 관상서 등을 넘나들며 신비로운 동양의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그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정직함을 경험한
환자들이라면 지방은 물론 제주도, 해외에서도 그에게 치료받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세종대왕은 그의 신하들에게
“온 힘을 다하여 읽고 또 읽어라. 그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책을 읽고 공부해야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고대 경전들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국내 유일의 튼살, 흉터 치료 전문가로 환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한의사 홍성민 원장은
당장의 눈에 띄는 결과를 위해 편법과 비양심이 난무하고 이전투구가 창궐하는 현실세계의 사람이 아닌 듯, 정녕 2000년 전 화타의 모습처럼,
오로지 병의 본질과 환자의 아픔에만 관심이 있는 진정한 ‘인의(仁醫)’라고 할 수 있다.
진료실을 유배지 삼아 환자들을 진료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고서를 해석하고 병의 근원을 밝히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쓴다는 그는 실제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비롯해 관상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마의상법」 등을 번역하여 책으로 펴냈으며, 관상학 전문가로서 강의도 하고, 칼럼을 쓰거나 각종 방송에서 동양의 인문고전을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고, 침술을 통한 튼살과 흉터 치료로 각종 수술이나 시술에 비해 뛰어난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내 가족이
아프다면, 화려한 최첨단의 의료시설을 갖춘 곳이 아니라, 절대 장담하지 않고, 다소 투박하며, 지나치게 검소하나, 병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나보다 더 고민하고 함께 아파해줄 그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Beautiful Leader
철학과 종교에
천착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 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섯 살 되는 해에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형과 나는 어려운 살림과 가장의 부재로 늘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갔고, ‘죽음’이라는 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접한 탓일까, 자연스럽게 철학과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생명을 다루는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국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역사서를 닥치는 대로 읽으며, 나는 책속에서 임금도 되고, 장군도 될 수
있었다. 내게는 현실보다 책속의 세계가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책속에 들어가 있으면,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상실감과, 매일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는데, 수많은 훌륭한 위인들을 보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얻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자고 다짐하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를 잘했지만,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었고, 친구들 앞에서
나서거나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는 되지 못했다.
우리시대 리더들의 터닝포인트 6
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
내가 친구를 사귈 용기를 내고, 자신감을 겉으로 조금씩 드러내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내가 다닌 공주한일고등학교는 당시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는데,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역사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국사학과를 가고 싶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로
진로를 정한 나는 3학년에 올라가서 서울대 국사학과에 지원하려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읽은 소설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동의보감」을 나는 밤을 새서 읽었다. 나는 단번에 한의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명예나
출세보다는 인간의 귀천에 관계없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원칙에 충실한, 진정한 의술인 허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꿈틀댔다.
내가 무엇에 그렇게 강하게 이끌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문과인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의사가 되기 위해 전과를 하고, 수학
공부를 하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나는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고, 더더군다나 입 밖으로 내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동양의학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읽게 된 책이 한의사 이철호 씨가 쓴 「체질대로
삽시다」였다. 나는 사상의학에 매료되었다. ‘사상체질로 본 인간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사상의학의
창시자이자 동의수세보원을 쓴 이제마라는 인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러나 한의사에 대한 꿈은 말 그대로 나만의 꿈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에 가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서울대에 불합격했다. 재수를 할 형편이 안 되었던 나는
후기대학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다 **대학교 한의학과가 문과와 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운명처럼,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한의대생이 되었다. 나는 의학서와 사상서를 닥치는 대로 원서로 읽었다. 번역된 책들은 오역이 너무 많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고, 원전을 읽는 습관은 그때부터 계속되었다.
우리시대 리더들의 터닝포인트 6
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
국사학자에서 한의사로 궤도를 변경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삶은 우리를 늘 갈림길에 놓아둔다. 서울대만
생각하던 나는 처음 **대에 갔을 때 낙담이 컸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에는 한 발 다가설 수 있게 됐지만, 지방대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 자존심 상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대에 합격했다면 의사로서의 나의 삶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낙담은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며 눈 녹듯 사라졌다. 온갖 사상서들과 의서들을 접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고전사상에 빠져들었다.
100년에서 2000년까지,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고전들에는 반드시 생존의 이유가 있다. 나는 사서삼경뿐만 아니라 불경,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마의상법, 상리형진 등을 독파했고, 허준과 이제마를 멘토 삼아 더욱 더 깊이 본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전공의 과정을 지원했다. 사상체질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지원한 병원은 사상체질 전공의를 2년에 한 번씩
뽑았기 때문에 있을 수 없었고, 다시 옮긴 병원은 수련병원 지정이 취소되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한방피부과 전문의를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나의 전공을 살려 튼살, 흉터 치료 전문의원을 하고 있다. 전공으로 선택하고 싶었던 사상체질을 전공하지 못하고,
차선으로 택한 선택이 내 운명을 다시 한 번 뒤바꾸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4년간의 수련의 과정을 거치고 전공의가 되었다.
수련의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 병원 시스템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공공의료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예과 2학년 때 약사의 한약조제시험 때문에 데모를 하던 것도 그렇고, 한의사도 의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1996년 설치된 경희대학과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외에 1998년
뒤이어 설치된 우석대학교 한의학과까지 총 세 개 대학에만 한약학과 있었고, 그로 인해 2000년부터 한약사국가고시인 한조시(한약조제약사
시험)라는 것을 실시해 매년 120여 명의 한약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제도의 시행을 둘러싸고 한의대생과 약대생 등의 이해관계가
대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철저한 경제논리에 지배되는 보건학 공부를 계속할 이유를 더는 찾지 못하고 나는 중간에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던가. 나는 그렇게 군에 입대했다.
본질과 절대 진리, 인술을
추구하다
다른 학문도 그렇겠지만, 한의대 공부는 혼자 하는 공부고, 어려운 공부다. 누가 가르쳐줘서 안다기보다 자신이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역사는 물론 철학사상, 당시의 상세한 시대상까지 알아야 하고 머리가 터지도록 한문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나에게 고전 공부는 잘 맞았다. 문과였고, 인문학을 좋아하면서도 의대에 간 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처방이 똑같다는 단순성,
명료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본질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정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을 절대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본질, 절대 진리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술(仁術)’이다. 맹자는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보고 생각할 겨를 없이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어미의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표현했으며, 왕도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왕이 먼저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알고 정치를 행한다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不忍之心, 불인지심)’이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여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을 말하며, 이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마치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굴리는 것과 같이 아주 쉽게 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는
이처럼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며 성선설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은 모두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진다.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즉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 근심하고 깊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반드시 달려가 구하려고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근본 마음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맹자의 말대로 사람은 모두 불쌍히 여기는 본능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이 물과 같아 땅을 파서 물길을 내주는 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했다.
나도
환자들의 흉터를 치료하면서 저절로 드는 측은지심을 어쩔 수 없다. 흉터 환자 중에서도 특히 화상으로 인한 흉터를 가진 환자들은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1~5세 무렵에 보호자의 부주의로 화상을 입은 경우가 많아 화상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또, 화상 흉터에 대해서도 흉터라기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다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환자들의 흉터를 치료하면서
저절로 드는 측은지심을 어쩔 수 없다. 흉터 환자 중에서도 특히 화상으로 인한 흉터를 가진 환자들은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1~5세 무렵에
보호자의 부주의로 화상을 입은 경우가 많아 화상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또, 화상 흉터에 대해서도 흉터라기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다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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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어쩔 수 없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병원을 개원했다. 갈
수 있는 대학병원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방 안 이비인후 피부과 한의학 전공의는 130여 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전공의를 땄어도,
워낙 대학이 적어 갈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 나는 동네사랑방 같은 작고 아담한 한의원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개원 후 1년, 나는
혹독한 현실 앞에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얻다
2008년 당시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동네사랑방은커녕 하루 종일 환자 한 사람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좌절의 나날이었다. 나는 계속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마침내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워낙 초기에 고생을 많이 해서 요즘에는
웬만한 문제는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지만, 당시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병원을 그만둘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
그만두면 다시는 한의사로 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임신 중인 아내의 튼살을 치료하면서 튼살 치료에 내가 가진 이론적 지식들을 접목했다.
또 화상 흉터 환자 몇 명을 치료하면서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유태인의 지혜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진리의 말씀이 내 삶속에
들어왔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짐을 위해 반지를 만들고 그 반지에 글귀를 하나 새겨 넣어라.
그 내용은 내가 승리했을 때 기쁨에 취해 자만해지지 않도록, 또한 동시에 절망에 빠져있을 때 수렁에서 건져줄 수 있는 그런 글이어야 하느니라.”
보석 세공인은 왕의 명령대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었지만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을 하다 지혜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폐하의 황홀한 기쁨을 절제해주고 동시에 폐하께서 낙담했을 때 격려를 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요?” 솔로몬 왕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폐하께서 승리의 순간에 그 글을 보시면 자만심을 가라앉히게 될 것이고, 절망의 순간에 그것을 보신다면 곧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 나는 그렇게 좌절과 절망의 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내가 미혹되지 않고 진실로 문제를 알고 깨닫고 해결하고자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다.’ 나는 정말 열심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나는 전공을 살려 한방피부과 위주로 진료를 하며 종아리,
허벅지, 배, 어깨, 팔뚝 등 튼살과 화상 흉터, 수술 흉터, 사고 후 흉터 등을 치료하는 튼살과 흉터 전문 병원을 표방하고, 임상자료들을
기록해나갔다.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튼살과 흉터 치료가 치료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튼살과 흉터를 좋아지지 않는 불치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깨우쳐주는 것이었다.
피부에 나타나는 문제는 피부만 봐서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드름 치료의 경우, 여드름 균이나 모낭충, 피지 등 피부 자체만 보면 답을
찾기 어렵다. 여드름은 스트레스, 남성호르몬, 먹는 음식, 세안, 수면, 체질 등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다 보아야 치료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하는 동안에만 좋아지고 치료를 중단하면 바로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피부는 오장육부의 거울이다. 피부에 트러블이
생겼다고 약을 바르는 것으로는 절대 피부가 좋아질 수 없다. 피부는 오장육부, 즉 본인의 몸 관리에 대한 결과이지 피부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더 이상 나의 불행이 두렵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고전에서 얻은 삶에 대한
통찰 때문이다.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이라는 말은 ‘궁즉변, 궁즉통, 통즉구(窮則變, 窮則通, 通則久)’를 줄여서 궁즉통이라고 쓰는데,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뜻이다. 결국 어려운 일도 변화하여 결국 해결이 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치료는
너무 빠른 효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무조건 빠른 효과를 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두 가지 기본 원칙만 알고 있다면, 치료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이 이를 치료하고 의사는 이것을 보완할
뿐이다(medicus curat, natura sanat)’라고 말한 바 있다.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 중에는 불필요한 수술을 받고, 수술 후
흉터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안 해도 될 성형수술을 과도하게 하다 얼굴에 씻기 힘든 흉터를 만들고 고민하다 찾아온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과도한 의학적 개입은 오히려 삶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이 최선이다. 나는 나의 의술을 그
정도에서 정의한다. 사실 그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치료된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렇게 병원을 개원하고,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것에 대해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맹자 ‘고자편(告子篇)’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 亂其所爲 所人心忍性 曾益其所不能.’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주려 하실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고생스럽게 하며 육체를 피로하게 하고 몸을 굶주려 몸을 궁핍하게 만들어 행동을 어렵게 하는데, 그 이유는 마음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맹자는 또, ‘고립된 신하나 첩에서 난 서자는 혜택을 받지 못한 까닭에
항상 전전긍긍하고 조심하며 어떤 우환이 닥칠까 깊이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언행을 조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덕과 지혜를 갖추게
된다’고 했다. 허준이나 이제마가 공교롭게도 둘 다 서자이면서 한의학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여,
나는 더 이상 나의 불행이 두렵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고전에서 얻은 삶에 대한 통찰 때문이다.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이라는 말은 ‘궁즉변, 궁즉통, 통즉구(窮則變, 窮則通, 通則久)’를 줄여서 궁즉통이라고 쓰는데,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뜻이다. 결국 어려운 일도 변화하여 결국 해결이 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고전으로 온전해지는 삶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관상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주는 관상만 못하며, 관상은 마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현세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서는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사주불여관상’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말은 관상학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사주는 산술적인 조합의 결과,
51만 8400가지라는 정해진 수로 나타나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상은 천변만화의 조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관상학을 길흉화복의 구체상을 사람의 생긴 모습에서 관찰하고 점쳐내는 방술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응용의 분야에서는
그 영역의 한계를 모를 정도로 다양하고 방대하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지피지기의 최대 무기로 관상학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와 재계에서 뼈가 굵은 노련한 보스들은 스스로가 관상학 지식을 연마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관상학이 추구하는 바는 어려운
용어를 쓰자면 ‘성명쌍수’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본래 마음자리와 하늘이 주신 천명을 갈고 닦아 선천에서 주어진 예정된 시스템을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바꾸어보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관상학은 입문은 쉬운 반면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 정수를 맛보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주나라 이후 고포자, 동방삭, 허부 등이 유명한 관상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한나라 때에는 상학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곽림종 선생이 ‘관인팔법’을 주창했다. 당나라 때는 ‘달마상법’이 등장했으며, 오대에는 양대 거목의 한 사람인 마의선생이
「마의상법」을 남겼고, 다른 한 사람인 진희이 선생이 마의 선생의 제자로서 상법을 구결로 전수받아 정리했다. 이외에 「신상전편」과
「상리형진」이 유명하고, 또 한 권의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청나라 때 우계도인이 지은 「수경상법」으로,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이론전개로 유명하다.
SBS 생활경제 방송 출연 모습
나는 관상학의 교과서라는 「마의상법」을, 국내
최초로 원전 한문과 번역 한글을 동시에 실어서 출간했다. 완역 후에는 블로그를 통해 유명인의 관상에 대해 풀이를 하기도 하고, 중국의 영락황제와
당대 최고의 관상가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질문으로 옮겨놓은 「유장상법」 등을 전자책으로 계속 번역해 출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채동번의 「통속송사연의」나 풍몽룡의 「동주열국지」 같은 역사서들을 계속해서 번역할 생각이다. 이처럼 고전을 읽고 번역하는 것은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생활이다.
이런 고전들에는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어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어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작가 이지성은 그의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지도자들은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을 삼고 있으며, 인문고전을 통해 인류의 지혜를 자기 것으로 승화시켜 스스로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까지 개척해 나가는 위력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적인 회사 애플의 스티븐 잡스나 우리나라 삼성의
이건희, 현대의 정주영 등 유명 CEO들이 즐겨 읽었던 책들이 우리가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던 인문고전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그런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고전이라는 선인들의 생각이 묻어나는 글 속에서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배움을 얻고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난과 슬픔, 지혜와 선과 악 등의 인간본성을 찾아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의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설계도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기대수명도 늘어나 인생 100세 시대에
이르렀다. 인생 100세 시대를 준비하며 경제적인 풍요뿐 아니라 정신건강의 밑거름인 삶의 지혜까지 충전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류의 정신문명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인문고전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되는 정신문명의
정수이자 보고이므로 인문고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당장의 먹을거리가 아닌 인문고전 독서가 우리 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인의 인생경영과 함께 경제적인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세계 속의
리더들을 보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고자 하는 지도자들에게서 인문고전 독서의 효율성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인문고전 독서법을 소개하며, 인문고전 독서는 개인과 가족, 기업을 넘어 국가의 운명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가졌다고 말하고,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처칠, 에디슨 등의 석학들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을 인문고전 독서법에서 찾고
있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인문고전 독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처음에는 인문고전의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 계속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면 그 고통은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천재들의 사고 속으로 들어가는 지적 희열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고방식으로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것에서 지혜로운 현인들의 두뇌에 직접 접속하는 것이라는 즐거운 깨달음으로 지적 쾌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지난 시대를 살아간 선조들의 지혜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품을 수 있다면
그로써도 충분한 일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고전 속의 지혜로운 선조들과 나의 환자들을 비롯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이어주는
채널 역할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한편, 서양의 자연과학이라는 잣대에 의해 비과학으로 치부당했던 동양의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도 더욱 매진할
생각이다. 미신 취급을 당했던 인도, 중국,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등지의 명상과 수행법 등은 오늘날 가장 고급의 소비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문명의 태동기에 들어섰다. 과학과 삶의 영역에서 새로운 모색이 진
나는 앞으로도 고전 속의 지혜로운
선조들과 나의 환자들을 비롯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이어주는 채널 역할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한편, 서양의 자연과학이라는 잣대에 의해
비과학으로 치부당했던 동양의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도 더욱 매진할 생각이다. 미신 취급을 당했던 인도, 중국,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등지의 명상과 수행법 등은 오늘날 가장 고급의 소비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문명의 태동기에 들어섰다. 과학과 삶의
영역에서 새로운 모색이 진행 중인 것이다.
서양의 실험과학적 방법을 통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침은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매우 간편하고 효험이 뛰어난 치료방법이었다. 오늘날 침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서양에서도 뛰어난 치료법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한 주간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침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76%에 이르고,
침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6%에 이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5년 간 한의학, 자연식물요법, 아로마치료,
음악치료 등 이른바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단연 한의학이다. 미국 안에 한의대가 있다는 사실조차 생소할 수 있겠지만, 미국 내 한의과대 학생 수는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의대에 속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사우드배일로대학과 엠퍼러대학은 최근 5년 사이 학생 수가 두 배로
늘었다. 학생들의 구성도 동양계 중심이었던 초기와 달리 현재는 미국인이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서양의학의 물리치료 요법으로 치료해오다 한의학을 배워 지난 1995년부터 한의사로서 임상진료를 하고 있는 사우드배일로대학 론 소콜스키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경마비 증세와 관절염 등 물리치료나 서양의학의 수술로 완쾌시킬 수 없는 증상을 값싼 진료비로 치료할 수 있다. 한의학은
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데 반해 서양의학은 증상만을 치료한다. 서양의학이나 한의학은 각각 장점이
있으므로 함께 작업을 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동양의학은 고전의
신비만큼이나 깊은 신비를 가지고 있는 미개척의 분야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읽고, 동양의학을 공부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우수성, 세계를 주도해온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폄훼되었던 동양의 뛰어난 학문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화상
등의 흉터나 튼살 때문에 고민하는 전 세계의 환자들에게 한방치료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이미지한의원 홍성민 원장
● 우석대학교 한의대 졸업,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정책관리학과 석사
● 인천 유민한방병원 및 해광한방병원 사상체질과 근무, 경원대 인천 한방병원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전문수련의, 가천대부속
길한방병원 전문수련과정 수료
● 보건복지부에서 주최한 인천 광역시 강화군 허브보건소 사업(독거 노인 탕제 치료, 방문진료,
중풍예방사업, 금연사업, 차상위 계층을 위한 환제사업, 강화군 보건소 한방 알러지 강의 및 치료) 참여
● 대한한의학회, 한방
피부과, 한방 피부미용학회, 한방 비만학회, 사상체질의학회 정회원
● 생방송 오늘아침, SBS 생활경제, MBN 천기누설 등 방송
출연
● 저서 - 「삼국지연의 1」, 「마의상법」, 「홍성민 원장이 말하는 튼살과 흉터」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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