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일 일요일

태사자와 불세출의 공로 튼살치료

태사자와 불세출의 공로 튼살치료


태사자와 불세출의 공로 튼살치료


태사 자(太史 慈, 166년 ~ 206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자의(子義)이며 청주(靑州) 동래군(東萊郡) 황현(黃縣) 사람이다.
젊어서는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186년 당시 동래군의 군주조사를 지냈으나, 동래군과 청주 사이에 틈이 생기자 수작을 부려 주가 불리한 처분을 받게 했다. 이 일로 명성을 얻었으나 화를 얻을 것을 두려워해 요동으로 달아났다. 북해상 공융(孔融)은 태사자의 명성을 듣고 그 어머니를 잘 보살폈다. 191년, 공융이 황건적과 싸우러 도창에서 둔치고 있다가 적장 관해에게 포위되자, 마침 요동에서 돌아온 태사자는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 밤을 틈타 홀로 공융 밑으로 달려갔다. 태사자는 유비(劉備)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공융의 성은 엄중하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성에서 나와 활 연습을 하고 다시 성으로 들어가는 기묘한 행동을 반복해 적을 방심시킨 뒤 3일째 되는 날에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태사자가 유비에게 요청해서 정병 3천 명을 얻고 공융을 구하러 가자 관해는 포위를 풀고 도망쳤다.

그 후인 194년, 같은 동래군 사람인 양주자사 유요(劉繇)에게 의지하지만, 유요가 허소(許劭)의 말을 들어 태사자를 중용하지 않아 정찰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손책(孫策)의 군대를 정탐하다가 손책과 우연히 마주쳐 단기필마로 격렬하게 싸우게 되었다. 서로 월등히 뛰어난 무장인지라 좀처럼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는데, 태사자는 투구를, 손책은 단극을 각각 빼앗았다.
197년, 유요가 손책에게 패배한 후에도 태사자는 이민족을 이끌고 저항을 계속하지만 마침내 붙잡혀 포박되고 만다. 손책이 태사자의 포승을 풀어주고 협력을 구하자 태사자는 뿔뿔이 흩어진 유요의 병사들을 모아서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손책은 그것을 허락했다. 손책의 가신들은 모두들 태사자가 거짓말을 해 도망가는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손책은 태사자를 끝까지 믿었고, 태사자 또한 약속 날짜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되돌아왔다. 이후 유반이 수차례에 걸쳐 애, 서안 일대를 침략하자, 손권은 해혼과 건창 일대의 몇 현을 나누어 건창도위를 새로 만들고 태사자에게 맡겨 해혼 일대를 다스리며 장수들을 감독하여 유반을 저지하도록 했고, 이후 유반은 쳐들어오지 않았다. 206년, 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토벌하러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아들 태사향(太史享)도 오나라의 신하로 살았다.
卻說戈定乃太史慈鄉人;
각설하고 과정은 태사자의 고향 사람이다.
當日雜在軍中,隨入合淝城,尋見養馬後槽,兩個商議。
당일 군사속에 혼잡으로 들어가서 합비성에 따라 들어가서 양마후조를 찾아 보고 둘이 상의하였다.
戈定曰:“我已使人報太史慈將軍去了,今夜必來接應。你如何用事?”
과정왈 아이사인보태사자장군거료 금야필래접응 니여하용사?
과정이 말하길 “나는 이미 사람을 시켜 태사자 장군에게 간다고 보고하니 오늘 밤에 반드시 접응하러 올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일을 할 것입니까?”
後槽曰:“此間離中軍較遠,夜間急不能進,只就草堆上放起一把火,你去前面叫反,城中兵亂,就裏刺殺張遼,餘軍自走也。”
후조가 말하길 “이 사이에 중군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지니 야간에 급히 나아가지 말고 단지 풀쌓은 곳에 한 불을 놓고 당신이 앞에 가서 고함을 지르면 성안의 병사가 혼란하고 곧 장료를 죽이면 나머지 군사는 스스로 도망갈 것입니다.”
戈定曰:“此計大妙!”
과정왈 차계대묘.
과정이 말하길 “이 계책은 매우 오묘합니다.”
-중략-
遼曰:“此是吳兵外應,可就計破之。”
료왈 차시오병외응 가취계파지.
장료가 말하길 “이는 오나라 병사가 외응함이니 계책을 따라서 그들을 깨뜨리겠소.”
便令人於城門內放起一把火,衆皆叫反,大開城門,放下吊橋。
변령인어성문내방기일파화 중개규반 대개성문 방하조교.
곧 장료는 성문안에 한 불을 놓고 여럿이 모두 반란이라고 소리치게 하며 크게 성문을 열어서 조교를 내려 놓게 했다.
太史慈見城門大開,只道內變,挺槍縱馬先入。
태사자견성문대개 지도내변 정창종마선입.
태사자는 성문이 크게 열림을 보고 단지 내변이라고 말하며 창을 잡고 말을 달려 먼저 들어갔다.
城上一聲礮響,亂箭射下,太史慈急退,身中數箭。
성상일성포향 란전사하 태사자급퇴 신중수전.
성위에서 한 소리로 돌쇠뇌 소리가 울리며 어지러운 화살이 내려오니 태사자가 급히 후퇴하나 몸에 몇대 화살을 맞았다.
背後李典、樂進殺出,吳兵折其大半,乘勢直趕到寨前。
배후이전 악진살출 오병절기대반 승세직간도채전.
배후에 이전과 악진이 나와서 오나라 병사는 태반이 꺽이고 기세를 틈타 곧장 영채앞까지 추격하였다.
陸遜,董襲殺出,救了太史慈。
육손 동습살출 구료태사자.
육손과 동습이 나와서 태사자를 구출하였다.
曹兵自回。
조병자회.
조조병사는 스스로 돌아갔다.
孫權見太史慈身帶重傷,愈加傷感。
손권견태사자신대중상 유가상감.
손권은 태사자 몸에 중상을 입음을 보고 더욱 슬픈 감정이 더해졌다.
張昭請權罷兵。
장소청권파병.
장소는 손권에게 전쟁을 그칠것을 청했다.
權從之,遂收兵下船,回南徐 潤州。
권종지 수수병하선 회남서윤주.
손권이 그의 말을 따라서 곧 병사를 거두고 배를 타서 남서 윤주로 돌아왔다.
比及屯住軍馬,太史慈病重;
비급둔주군마 태사자병중.
마침 군마를 주둔하나 태사자의 병이 중태였다.
權使張昭等問安,太史慈大叫曰:“大丈夫生於亂世,當帶三尺劍立不世之功;今所志未遂,奈何死乎!”
권사장소등문안 태사자대규왈 대장부생어란세 당대삼척검립불세지공. 금소지미수 내하사호?
손권이 장소등을 보내 문안하게 하니 태사자가 크게 소리쳤다. “대장부가 난세에 태어나 응당 3척검을 가지고 불세출의 공로를 세워야 한다. 지금 뜻이 아직 완수되지 못하는데 어찌 죽겠습니까?”
言訖而亡,年四十一歲。
언흘이망 년사십일세.
말을 마치고 죽으니 태사자 나이 41세였다.

不世之功 [ 불세지공 ]은 ①대대(代代)로 흔하지 않은 큰 공로(功勞) ②세상(世上)에 드문 매우 큰 공로(功勞)이다. 불세출 [不世出]이란 말도 세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만큼 뛰어남.<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가 출전이다.
불세출이란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인데 이미지한의원에서 진료과목도 불세출인 것이 있다. 바로 튼살치료인데 동의보감이나 동의수세보원등 기존 한의학책에서는 튼살의 치료법은커녕 튼살이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지한의원에서 치료하는 튼살침인 ST침으로 종아리 튼살, 허리 튼살, 허벅지 튼살, 배 튼살, 가슴튼살, 어깨튼살등 튼살을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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