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일 월요일

땔나무를 지고 들어가 불을 돕는 파신조화把薪助火와 화상흉터치료

땔나무를 지고 들어가 불을 돕는 파신조화把薪助火와 화상흉터치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62회[http://upaper.net/homeosta/1009415] 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玄德從之,遣人往成都。
현덕종지 견인왕성도.
유현덕은 방통의 말을 따라서 사람을 성도에 파견하였다.
來到關前,楊懷、高沛聞知此事,遂教高沛守關,楊懷同使者入成都,見劉璋呈上書信。
래도관전 양회 고패문지차사 수교고패수관 양회동사자입성도 견유장정상서신.
관의 앞에 도달하니 양회, 고패는 이 일을 듣고 곧 고패는 관문을 지키게 하며 양회는 사신과 함께 성도에 들어가서 유장을 알현하며 이 서신을 올렸다.
劉璋看畢,問楊懷爲何亦同來。
유장간필 문양회위하역동래.
유장이 보길 마치고 양회에게 어떻게 같이 왔는지를 물었다.
楊懷曰:「專爲此書而來。劉備自從入川,廣布恩德,以收民心,其意甚是不善。今求軍馬錢糧,切不可與。如若相助,是把薪助火也。」
양회왈 전위차서이래. 유비자종입천 광포은덕 이수민심 기의심시불선. 금구군마전량 절불가여. 여약상조 시파신조화야.
양회가 말하길 “오로지 이 글을 위해 왔습니다. 유비는 스스로 서천에 들어와 널리 은혜의 덕을 베풀고 민심을 수습하니 뜻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지금 군사와 말 돈과 식량을 구함은 절대 주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서로 도우면 땔나무를 가지고 불을 도움입니다.”
劉璋曰:「吾與玄德有兄弟之情,豈可不助 ?」
유장왈 오여현덕유형제지정 기가부조?
유장이 말하길 “나와 유현덕은 형제의 정이 있는데 어찌 돕지 못하오?”
一人出曰:「劉備梟雄,久留於蜀而不遣,是縱虎入室矣。今更助之以軍馬錢糧,何異與虎添翼乎 ?」
일인출왈 유비효웅 구류어촉이불견 시종호입실의. 금갱조지이군마전량 하이여호첨익호?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길 “유비는 사나운 간웅이며 오랫동안 촉에 머물러서 돌려보내지 않으면 호랑이를 풀어서 방에 들어가게 함입니다. 지금 다시 군사와 말, 돈과 식량으로 도우면 어찌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줌과 다르겠습니까?”
衆視其人,乃零陵 丞陽人:
중시기인 내영릉 승양인.
여럿이 그 사람을 보니 영릉의 승양 사람이었다.
姓劉,名巴,字子初。
성유 명파 자자초.
성은 유이며 이름은 파이며 자는 자초였다.
劉璋聞劉巴之言,猶豫未決。
유장문유파지언 유예미결.
유장이 유파의 말을 듣고 유예하면서 결정치 못했다.
黃權又復苦諫,璋乃量撥老弱軍四千,米一萬斛,發書遣使報玄德。
황권우부고간 장내량발노약군사천 미일만곡 발서견사보현덕.
황권이 또 다시 고언으로 간언하니 유장은 노약의 병사 4천명과 쌀 1만곡을 헤아리어 징발하고 서신을 써서 유현덕에게 사신을 보내 보고하게 했다.
仍令楊懷、高沛緊守關隘。
잉령양회 고패긴수관애.
유장은 양회, 고패를 시켜 관문 입구을 긴밀하게 지키게 했다.
劉璋使者到葭萌關見玄德,呈上回書。
유장사자도가맹관견현덕 정상회서.
유장의 사신이 가맹관에 이르러서 유현덕을 보아 회신을 올렸다.
玄德大怒曰:「吾爲汝禦敵,費力勞心。汝今積財吝賞,何以使士卒效命乎 ?」
현덕대노왈 오위여어적 비력노심. 여금적재린상 하이사사졸효명호?
유현덕이 크게 분노하여 말하길 “내가 너희를 위해서 적을 방어하는데 힘을 낭비하고 노력을 하였다. 너는 지금 재물을 쌓아서 상에 인색하니 어찌 사졸들이 목숨을 내놓게 하겠는가?”
遂扯毀回書,大罵而起。
수차훼회서 대매이기.
유현덕은 곧 회답의 서신글을 찢어 훼손하고 크게 욕하면서 일어났다.

파신조화와 같은 포신구화 [抱薪救火]란 말이 있는데 《사기(史記)》의 〈위세가(魏世家)〉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일이다. 국력이 나날이 강대해진 진(秦)나라는 범저(范雎)가 주창한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을 펴 가까운 나라를 끊임없이 침략해 영토를 확장해 갔다. 이 정책으로 인해 위(魏)나라도 진나라로부터 연거푸 침공당해 영토를 점령당했다. 이처럼 진나라의 영토 침공이 계속되자, 위나라 백성들은 진나라를 두려워해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이때 위나라 장수 단간자(段干子)가 난양[南陽]을 할양하고 강화를 맺을 것을 왕에게 건의했다. 그러자 전술가 소대(蘇代)가 왕에게 충고하기를 "단간자의 본심은 왕위를 빼앗는 것이고, 진나라의 목적은 위나라를 병합하는 것이므로 화의를 맺어도 침공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나라에 땅을 할양하는 것은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는 것[抱薪救火]'과 같아, 땔나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불은 꺼지지 않듯이, 땅을 할양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소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난양지구를 진나라에 할양하고 화의를 제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소대의 말처럼 화의를 맺고도 침공을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위나라 땅을 빼앗았다. 위나라 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하여 성을 20개나 빼앗아 진나라의 동군(東郡)이라 했다. 위나라는 마침내 저항할 힘을 잃고 BC 255년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포신구화'는 '섶을 지고 불을 끈다'는 뜻의 '부신구화(負薪救火)' 와 같은 말이다. 또 '불을 끄는데 섶을 던져 넣는다'는 뜻의 '구화투신(救火投薪)'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는 연료를 짊어지고 불에 뛰어들어 화상을 입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부주의로 끓는물등의 취급을 잘못하거나 발로차거나 하는 등으로 우연치 않게 본인 의도와 상관이 없이 화상을 입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화상흉터의 발생연령은 1세-5세 걸음마를 시작한 1-3세 유아가 많이 발생한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BT침을 사용하여 진피 대다수를 차지하는 콜라겐의 화상흉터를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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