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11월 16일
sbs 스페셜 아름다울 미를 시청하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왔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인대회 사관학교가 있고, 저스틴이란 사람은 켄이란
바비남자친구로 비슷하게 성형하여 성형 컨설턴트로 부자가 되었다. 일본 기생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방법으로 미인을 유지하였다. 특이한 사항은
굽이 높은 신발이 있는데 우리가 부나 과시를 위해서는 불편하게 하여 소수의 부자만이 쓰게 하여 부를 과시하는 것인데 굽이 높은 신발은 하녀가
옆에서 부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분을 과시하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나 프랑스 루이왕 왕조 시대의 의상은 치마가 불편해서 오히려 더 부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15세기에는 굽이 높은
구두인 초핀(CHOPINE)이 생겨났는데 상자 모양의 초핀이 최초이다. 16세기에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분된 구두가 처음으로
졌으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귀족층에서 선보인 당시의 부녀자들이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하여 사용되었고, 이는 투르크 족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한다. 초핀은 유행을 거듭하여 17세기에는 신발이 모든 유행의 중심이 되었다. 초핀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용도 출현해 구두굽으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귀족층에서만 사용하였다. 굽을 높이는 방법이 연구되기도 했는데, 우선 바닥 전체가 두꺼운 슬리퍼형이 등장하다가 차츰
뒷굽 부분이 높아져 오늘날 하이힐의 원형이 되었다. 이 구두는 루이 왕조 시대에 유행하여 루이 힐이라고 한다. 루이 힐은 루이 15세의 연인이
신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스페인에서는 뒷굽이 높아지면서 구두의 밑창이 얇아졌는데 벨벳의 고급
소재에 얇은 밑창과 높은 뒷굽을 가진 구두는 높은 신분의 귀족들만이 신을 수 있었고 천한 신분의 여자들은 굽 높은 샌들을 신었다고 한다.
루이 힐이 유행하였던 루이 왕조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굽 있는 신발을
발레에서도 사용하였다. 발레에서는 굽 있는 구두가 발레의 동작을 발전시켰고, 지금의 슈즈도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독일의 풍속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의 역저 『풍속의 역사』에 따르면
화장실이란 게 따로 없던 시절, 밤새 용기에 받은 오물을 창 밖으로 내던지던 것으로 집집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던 때였다. 일진이 사나운 사람은
오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고. 이 경우에 대비한 어성용 휴대품으로 발명된 것이 파라솔이고, 마른 땅과 진 땅을 가려 밟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고안된 신발이 하이힐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아름다움이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이힐이
각선미를 보여주지만 요통이나 발통증등을 유발한다. 그런데 각선미가 빼어나도 종아리나 허벅지에 튼살이 있다면 매우 어렵게 된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튼살침인 ST침으로 진피 콜라겐을 재생해 하체 뿐만 아니라 상체의 어깨, 팔뚝 가슴, 배나 허리의 튼살을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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