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손숙오와 이약곡 제방과 흉터치료

손숙오와 이약곡 제방과 흉터치료


손숙오(孫叔敖):춘추 때 초장왕(楚莊王 : 재위 전613-592년)의 영윤(令尹)이다. 이름은 위오(蔿敖)이고 숙오(叔敖)는 그의 자(字)이다. 원래 침구(寢丘)에 살았음으로 침윤(寢尹) 혹은 심윤(沈尹)이라고 칭했다. 성왕에게 살해 당한 초왕 분모(蚡冒)의 증손자다. 사마(司馬)로 있던 그의 부친 위가(蔿賈)가 장왕 때 반란을 일으킨 투월초(鬪越椒)에 의해 살해 당하자, 그는 그의 종족들을 이끌고 지금의 하남성 회빈(淮濱) 동남의 기사(期思)라는 지방으로 이주해서 근검절약하며 살았다. 후에 초장왕에 의해 발탁되어 초나라의 영윤이 되었다. 그는 작피에 대규모의 수리시설을 확충한 다음 현재 평수로 5500만 평에 달하는 땅을 개간하여 농사가 가능하게 했으며 다시 지금의 하남성 상성(商城)의 우루(雩婁)의 대규모의 전답을 조성하여 초나라의 농업생산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다시 초장왕이 무게가 가벼운 화폐를 무겁고 큰 것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백성들이 사용하기가 불편하다고 호소하자, 손숙오는 있는 힘을 다하여 왕명을 취소하도록 했다. 후에 장왕을 따라 종군하여 지금의 하남성 형양(滎陽) 동북의 필(邲)에서 당진군을 대파하여 초장왕이 패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기 둔리열전(循吏列傳)에 ‘ 그가 재상에 세 번이나 임명되었으나 그때마다 한 번도 기뻐하지 않은 것은, 그의 재주가 그럴만하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가 세 번이나 재상의 직에서 파면되었지만 슬퍼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자기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출전 열국연의-
손숙오는 원래 제방을 쌓는 토목 기술자였다. 그는 경제적으로 식민지 경영을 시도한 정치가였다. 춘추시기에 하천에 제방을 쌓아 물을 댔다는 기록을 남긴 사람은 손숙오가 첫 번째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재방을 만들고 물을 활용했다. 그러나 당시 손숙오가 한 일은 그저 흐르는 물을 가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돌리는 거대 공정이었다. 그런 대규모 공사는 기록상으로는 손숙오의 기사피라는 인공호수가 최초다. 이 기사피는 초나라의 동방 진출 교두보가 되었다. 전국시대 중기까지 영토를 가장 크게 넓힌 나라는 초다.
가뭄이 들자 수로 부근에 사는 농민들이 물이 빠져나간 제방 근처에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우기가 되어 수로에 물이 불어나자 농민들은 농작물을 지키려고 몰래 제방에 구멍을 내서 물을 흘러보냈다. 사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고 고심해서 만든 수로는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제방이 구멍이 난 것 때문에 수재가 자주 발생해 이득보다는 오히려 피해가 되고 말았다. 수로에 물이 불어날 때마다 군대를 보내 제방을 고치고 그새 생겨난 구멍을 메우는 수밖에 없었다.
宋송대에 李若谷이약곡이 구피현에 임명되었을 때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앞으로 수로에 구멍이 생겨도 군대를 동원해서 수리하지 않을 것이며 수로 근처에 사는 백성은 자신이 낸 구멍을 스스로 메워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방을 붙였다. 그 후로 제방에 몰래 구멍을 뚫는 일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사기를 공부하고 삼국지를 통하고 홍루몽을 즐겨라, 김세중, 스타북스, 32-33페이지

이런 내용을 보면 얼굴에도 관상학이 있는데 운명의 그릇을 받는 얼굴이 만약 제방처럼 구멍이 생겼다면 하늘에서 준 행운이 줄줄 새게 된다. 일반적으로 흉터는 긁히거나 베이거나 점뺀 흉터, 수두흉터, 대상포진 흉터, 성형흉터등이 있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각종 흉터를 흉터침으로 기혈순환을 촉진하고 진피 재생을 하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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