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우유구화 선비의 집에 불과 화상흉터치료

우유구화 선비의 집에 불과 화상흉터치료


송렴 [宋濂] 은 명나라 절강(浙江) 포강(浦江) 사람. 자는 경렴(景濂)이고, 호는 잠계(潛溪)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기억력이 비상했으며, 오래(吳萊) 등 스승에게 배웠다. 원나라 말기에 전란을 피해 용문산(龍門山)에 은거하며 저작에 종사하면서 호를 현진자(玄眞子)라 했다. 명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무주(婺州)를 차지하자 유기(劉基), 장일(章溢), 섭침(葉琛) 등과 함께 응천(應天)에 가서 강남유학제거(江南儒學提擧)로 태자에게 경서를 가르쳤다. 『원사(元史)』 편찬을 책임졌고, 일력(日曆) 등을 정리했다. 국자사업(國子司業)과 예부주사(禮部主事)를 거쳐 학사승지지제고(學士承旨知制誥)까지 올랐다. 오랫동안 내정에서 재직했지만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았다. 홍무(洪武) 13년(1380) 장손 송신(宋愼)이 호유용(胡惟庸)의 당파로 연좌되어 죽자 황제가 그도 처형하려 했지만 황후와 태자의 간곡한 청으로 전가족이 무주(茂州)로 유배를 갔다가 기주(夔州)에서 죽었다. 명나라의 대표적인 개국공신으로, 학자들은 태사공(太史公)이라 불렀다. 정덕(正德) 연간에 문헌(文憲)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전기 작품 외에 「열강루기(閱江樓記)」와 『송학사문집(宋學士文集)』 등이 있다. 그 밖의 저서에 『편학류찬(篇學類纂)』과 『용문자(龍門子)』 등이 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명나라때 송렴이 지은 <연서>라는 산문에 실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선비의 집 지붕에 불이 났습니다. 아비는 아들에게 옆집에 가서 사다리를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예를 갖추기 위해 먼저 이웃집을 방문하기에 적당한 옷을 갈아 입고 선비에게 걸맞은 팔자 걸음으로 휘휘 저으며 옆집으로 갔습니다. 잠시후 옆집에 도착한 선비는 예를 갖추기 위해 주인에게 세번 인사를 하였습니다. 옆집 주인은 손님을 맞기 위해 술상을 내어 왔습니다. 술을 한잔씩 나누어 마신 뒤 주인은 손님에게 무슨 일을 찾아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옆집 아들은 집에 큰불이 나서 사다리를 빌리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주인은 “어찌 그리 세상 물정을 모르는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먹던 밥도 내 뱉고 도망가야 살고, 물가에서 악어를 만나면 신발을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법이요. 지금 집에 불이 났는데 예의를 차릴 때가 아니지 않소?” 우유구화(迂儒救火)란 말이 있습니다. 원칙만 따지다가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뜻하는 것입니다.

2500여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제후의 딸 가운데 백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송나라 궁궐에 불이 났을 때 방에서 나오지 않고 타죽었다. 아녀자는 그 유모나 선생과 함께가 아니면 집 밖 출입을 할 수 없다는 예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송나라는 수주대토란 고사처럼 옛방법만 고수해서 피해를 보는 고지식한 사람을 풍자하는데 많이 등장하는데 송나라 사람의 후손이며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도 유교를 만든 이유도 그것이다.
아무튼 화재가 나면 화상을 입기 매우 쉬워진다. 직접 불로 때는 난방이나 목조 건물이 줄어든 요즘에도 화상은 빈번한데 주로 끓는 물에 의해서 화상을 입게 된다. 한방 피부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화상흉터침인 BT침이라는 것이 있어서 화상흉터에 맞는 맞춤 치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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