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맨발의 의사 적각의와 붉은색 튼살치료

맨발의 의사 적각의와 붉은색 튼살치료


맨발의 의사 적각의와 붉은색 튼살치료

베어풋닥터 [bare foot doctor] 는 중국혁명중에서 1953년경 상해시에서 처음으로 탄생해서 성장한 반농반의의 의사. 중국에서 의료는 생활과 함께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대략 행정구분에 따라서 제도화되어 있다. 행정구분의 제일선은 인민공사로 몇개의 생산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생산대대에는 위생점이 있어 2~3명의 적십자 정신에 입각한 의사가 제일선의료의 담당자로 상주하며, 교대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20명정도의 대원이 건강관리나 진료에 임하고 있다. 적각의는 생산대대원에서 선발되어 3년간의 맨발의사 교육을 받은 자로 투약만이 아닌 주사를 포함한 간단한 처치나 가족계획 지도 외에 특히 질병예방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인민공사의 위생원은 수십개의 병상을 가진 병원으로 대개의 환자는 여기에서 처치되나 더욱 고도의 의료를 요하는 중증환자는 상급의 현ㆍ시립병원이나 전문의 인민병원으로 보내지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맨발의사는 의사가 부족한 개발도 상국에 있어 일차건강 관리자의 기본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간호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마오쩌둥이 "합작의료는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합작의료제도는 맹렬한 파도처럼 전국에 퍼졌다. 그러나 의료 및 위생행정은 각 시기 정치와 대단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시기에는 ‘맨발의 의사(赤脚醫生)’로 상징되는 대중노선이 강조되었다. 1978년에는 ‘맨발의 의사’가 약 480만 명에 이르렀고, 합작의료도 거의 90%의 생산대대를 망라했다. 적각의생은 1980년대 협동농장 체계의 붕괴와 사회적 변화로 인해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협동농장이 사라지고 개별 농장으로 분리되자 소득원이 사라진 적각의생도 빠르게 동기를 잃어갔고, 보급률은 90%에서 1984년 4.8%까지 떨어졌다. 기초의료 서비스의 공백을 틈타 지방에도 유료 병원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고, 이는 결국 지방의 공공의료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어 사전을 보면 赤脚 [chijiǎo]은 “맨발, 맨발이 되다. [주로 신발과 양말을 아예 신지 않거나, 양말만 신지 않은 경우”이다. 적조조赤条条 [chitiaotiao①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다  ②적나라하다  ③꾸밈이 없다]란 글자도 벌거숭이란 말인데 붉을 赤적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다. 피부를 보면 벌거벗는 경우 발갛게 상기되어 있어서인데 발진이나 두드러기등으로 붉어질 때 특히 급성염증 시기에 發赤발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 피부에 생기는 튼살의 경우에도 처음 시작은 신호등의 경고사인인 붉은색 등이 켜지듯이 붉어짐에서 시작된다. 그 붉은 기간이 끝나면 허혈성 변화로 추정되는 흰색으로 튼살의 모습이 변하게 된다. 처음 튼살이 붉게 시작하는 경우 질병 진단이 안되고 흰색 튼살로 고정되는 경우에는 치료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한의원의 튼살침인 ST침이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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