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9일 화요일

백호와 백마 태몽, 백색 튼살 치료

백호와 백마 태몽, 백색 튼살 치료


노무현은 1946년 아버지 노판석과 어머니 이순례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 노씨(光州)이다. 노무현의 위로는 형이 두 명 있었으나 맏형 노영현은 교통사고로 일찍 죽고, 둘째 형 노건평만 살아있었다. 둘째 형 노건평은 1968년 세무직 9급 공무원이 되어 10년간 지방 세무서에서 근무하였다.
1953년 대창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학업 성적은 우수했으나 가난으로 결석이 잦았다고 한다. 6학년에는 담임교사의 권유로 전교 학생회장을 했다. 그 뒤 1959년 2월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 진영중학교에 진학했다. 진영중학교 재학 당시 그는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는 외상으로 입학하였다 한다. 중학교 1학년 말에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자인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리자 노무현은 백지동맹을 일으키다가 정학(停學)을 당하기도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중학교를 1년간 휴학한 뒤 부일장학회의 장학금을 얻어 가까스로 중학교에 다니다가 1963년에 진영중학교를 졸업했고, 1966년에는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 농업협동조합의 입사 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발등을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하여 그만두었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 제 12사단(을지부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1971년 육군 상병으로 만기 제대했다. 1973년 초등학교 동창인 권양숙과 결혼했다. 1973년에 아들 노건호, 1975년에 딸 노정연을 낳았다.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는 네 번째 도전에서 이루어진 성과였고 노무현은 제17회 사법시험에서 유일한 고졸 출신 합격자였다. 판사로 임용되어 대전 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되었다. 그러나 7개월만에 판사직을 스스로 사퇴하였다.

1978년 5월,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고,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다. 이후 주로 조세 및 회계 사건 등을 통해 높은 수임료를 받았다. 당시 평범한 동료 변호사들처럼 지역의 경제인과 어울리며 요트를 즐기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민청학련 사건 변론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광일 변호사가 1981년 부림 사건의 변호에 참여하라고 권유했고, 이를 수락함으로써 본격적인 인권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의 변론에 참여하였고 1984년 부산 공해문제 연구소 이사를 거쳐 1985년에는 부산 민주시민 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해 자신의 사무실에 노동법률 상담소를 열기도 했다. 또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부산 본부 상임 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다. 그 해 8월 22일의 거제도 대우조선 사건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사망하자 이상수 등과 함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가 9월에 제삼자 개입, 장식(葬式) 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어 1987년 11월에는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면 사신수(四神獸)가 보인다.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다. 태몽에 이 사신수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그 태어난 인물은 A급으로 단정한다. 청룡이 보이면 정치인이 많다. 청룡은 힘이 좋으므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추진력이 뛰어나다. 백호는 살생(殺生)의 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백호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터에 가면 나라를 구하는 장군이 되기도 한다. 태몽에 백호가 보이면 장군이나 뛰어난 전사(戰士)로 본다. 조선 초기 남이(南怡)장군을 죽였던 유자광(柳子光)의 태몽은 아버지가 꾸었는데, 백호가 배 속으로 들어와서 꿈틀거리는 꿈이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는 아마 '암 백호'가 아니었을까 싶다.
백호와 비슷한 맥락의 동물이 백마다. 필자가 입수한 노무현 대통령의 태몽은 키가 큰 백마였다. 노대통령 어머니 꿈에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나타나 키가 큰 백마의 고삐를 쥐어 주면서 데리고 가라는 꿈을 꾸었다. 너무 커다란 말이라 처음에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 노인이 자꾸 몰고 가라고 해서 엉겁결에 고삐를 쥐었더니 의외로 순순히 백마가 따라왔다고 한다. 백마는 장군이 타는 말이다. 만약 노대통령이 20세기에 태어나지 않고, 임진왜란 때 태어났더라면 이순신 장군 다음 가는 전공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談畵담화, 글 조용헌, 그림 이보름, 랜덤하우스, 208-209

백마 태몽은 추진력과 정열이다. 말은 머리가 크고 몸이 뜨거우며 매우 활동성이 강하다.더구나 백마는 말들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니 정열적이고 추진력이 왕성한 아가가 태어날 징조이다. 이제마 선생도 할아버지의 태몽에서 제주도의 명마인데 당신이 가져 가라는 꿈을 꾸었다. 말을 보면 말은 가로막대만 세워 놓으면 도망가지 않는다고 한다. 말이 막대기 아래로 기어서 도망갈 수 있지만 뛰어넘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말은 양적이고 불의 속성이 있으며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백색이란 한국 전통에서 흰 옷은 상가집에서 입기 때문에 죽음을 의미한다. 한의학적으로 폐에 좋은 음식인 도라지, 무, 더덕, 배등이 모두 흰색을 띠고 있는 것도 백색과 숙살지기인 살기, 가을기운과 상관이 있는 것이다.
또한 가을에 흰색 서리가 내리면 모든 것이 죽기 때문에 백마를 타는 꿈은 죽을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흉몽이다.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같이 해석이 될 수 있다.
우리 몸에서 머리카락의 노화의 증거로 흰머리가 있다. 같은 의미로 피부에는 흰색 튼살이 생기기도 한다. 즉 얼굴의 흰색은 화이트닝으로 좋기는 하지만 군데군데 튼살이 얼룩진 것은 좋지 않다. 이런 하양색 튼살은 이미지한의원의 진피를 자극해서 재생시키는 ST침이라고 불리는 튼살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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