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4일 목요일

주유의 분노의 죽음과 간경화 간수술 흉터치료

주유의 분노의 죽음과 간경화 간수술 흉터치료


주유(周瑜, 175년 ~ 210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이며, 양주 여강군 서현 사람으로 자는 공근(公瑾)이다. 초평 원년(190년), 손견(孫堅)이 동탁(董卓)을 치고자 거병했을 때 집을 서로 옮기면서, 동년배인 손책과 주유는 친교를 맺어‘단금’(斷金), 즉 금속을 끊을 정도로 굳은 정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손견이 죽고 난 뒤, 원술(袁術)은 주유의 종부 주상을 단양태수로 임명했고 주유도 이를 따라갔는데, 원술 휘하에 있던 손책이 강동을 치러 나아가면서 편지를 보내 주유를 불렀고, 주유는 병사를 이끌고 손책을 맞이했다. 이후 손책을 따라 후한의 양주자사 유요(劉繇)의 대 원술 항전의 최전선인 횡강과 당리구에 주둔하고 있던 우미(于糜), 번능(樊能), 장영(張英)을 무찔렀고, 장강을 건너 말릉을 지키고 있던 착융(笮融)과 설례(薛禮)도 깨부쉈으며, 호숙과 강승으로 넘어가 유요의 치소 곡아로 들어가자 유요는 달아났다. 손책은 자신은 회계로 나아가면서, 주유에게는 단양군을 지키게 했다. 이후 원술은 단양태수를 원윤(袁胤)으로 교체하고 주상과 주유를 수춘으로 불러들였으며, 주유를 장군으로 쓰려 했으나, 주유는 원술을 낮게 보고 나중에 동쪽으로 가고자 거소장(여강군 거소국의 현장)을 자청했다. 거소장 시절에 노숙(魯肅)에게 군자와 식량을 청했고, 노숙이 가진 곡식의 절반인 3천곡을 흔쾌히 내어준 것을 계기로 노숙과 친교를 맺었다. 건안 3년(198년)에 오로 달아났다. 손책은 주유를 환영하고 건위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주유는 여강군에서 민심을 얻고 있었으므로, 우저를 지키면서, 나중에는 춘곡장도 겸임했다.
건안 11년(206년), 마둔과 보둔을 쳐 그 우두머리를 효수하고 포로를 잡아왔으며, 황조가 등룡(鄧龍)을 보내 시상현을 공격하자 이를 쳐 등룡을 사로잡아 오로 압송했다. 건안 13년(208년) 봄에 손권이 황조를 칠 때 전부대독이 되었다
이 해 9월, 하북을 통일한 조조가 군대를 인솔해서 남하하고, 형주자사 유종(劉琮)을 항복시켜 그 병사를 흡수하면서, 수병과 보병 아울러서 80만이라고도 하는 대군이 되었다. 이 사태 당시의 손권 진영에서는 조조가 후한의 승상으로써 대의명분을 갖추고 있고, 장강의 지리적 이점도 조조가 형주를 얻고 유표(劉表)의 수군을 얻는 바람에 없어졌으므로 항복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유는 노숙과 함께 의견을 같이 해서 싸움을 주장했다. 주유는 조조를 후한의 적으로 규정하여 조조의 대의명분을 부정했고, 또 조조군에 있는 많은 불리한 점과 대항하는 자군의 이로운 점 등을 설명해서, 이에 뜻을 얻은 손권은 조조에게 대항하는 일을 결단했다. 손권은 3만 군사를 주유와 정보(程普) 등에게 주었고 이때 형주로부터 피해 온 유비(劉備)와 협력해 조조를 적벽의 땅에서 대치했다. 조조군은 벌써 군대에 전염병 등을 안고 있어서 단 한 번의 교전에서 조조군은 패배하고, 장강 북안에 주둔했다. 주유는 남안에 포진하고, 황개(黃蓋)의 화공책을 채용하고, 사항계라는 이중의 계책을 고안해내어 황개로 하여금 조조군에 거짓 투항하게 만들어 조조군 함대 내에서 화공을 실행하도록 계획했다. 이후 투항을 위장해 접근에 성공한 황개가 조조군의 선단에 불을 질렀다. 불은 금세 다른 배에 번져서, 거의 모든 배가 타들었다. 피해가 아주 컸기 때문에 조조군은 마침내 패배했고 조조는 도망쳤다. 유비는 주유 등과 함께 조조를 추격했다. 조조는 조인(曹仁)에게 강릉성(江陵城)의 수비를, 악진(樂進)에게는 양양의 수비를 맡겼고 자신은 북쪽으로 도망쳐 갔다.
208년 12월에 적벽에서 조조를 격파한 주유는 유비와 함께 남군까지 조조를 추격, 이후 강릉에서 조인과 대치한다. 감녕(甘寧)에게 명하여 이릉을 점령하게 하지만 감녕이 조인에게 패하여 포위당하자 위태로움을 주유에게 알렸다.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 조인과 전투를 치르지만 화살에 맞아 부상당한다. 이에 조인이 주유를 격파하였다. 조인이 군을 이끌고 주유에게 싸움을걸었다. 주유는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하였고 유비와 함께 조인을공격하였다. 조인은 군량과 병사도 크게 부상을 당하여 싸울수 있는 상태가 아니였다. 유비가 군을 이끌고 남군을 포위하였다. 주유는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말을 타고 군을 통솔했다. 조인은 성을 버리고 후퇴하였다. 이후 유비군의 관우(關羽)와 함께 후퇴하는 조인군을 격파, 1년여에 걸친 전투 끝에 강릉을 점령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정통하였다. 술에 많이 취했어도 연주한 음악의 음이 틀리면 그것을 알아채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곡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주랑이 돌아본다.”라고 말을 했다.
손권의 가신 중 정보는 손견이 거병할 때부터 손가를 섬겼던, 황개나 한당(韓當)보다 오래된 가신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유보다 연장자이기에 그를 무시했는데, 주유는 오히려 정보에게 성의를 다한 태도를 보였다. 후에 정보는 감복하고 주유와 친해지고 존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평하기를 주유의 친화력은 “주공근과의 사귐은 마치 향기나는 맛있는 술과 같아서 스스로 취함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http://upaper.net/homeosta 를 보면 주유는 제갈량에게 속아 형주를 빼앗기며 분노가 계속 쌓이며 피를 토하고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瑜怒曰:「可再登岸決一死戰!」
유노왈 가재등안결일사전.
주유가 분노하여 말하길 “다시 강가에 올라 결사적으로 한번 싸워보자!”
瑜自思曰:「吾計不成,有何面目去見吳侯!」
유자사왈 오계불성 유하면목거견오후?
주유가 스스로 생각하길 ‘내 계책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어떤 면목으로 오후[손권]를 뵐까?’
大叫一聲,金瘡迸裂,倒於船上。
대규일성 금창병렬 도어선상.
주유가 크게 한 소리를 지르니 금창상이 터지고 배 위에 쓰러졌다.
衆將急救,卻早不省人事。
중장급구 각조불성인사.
여러 장수가 급하게 구하니 일찍 인사불성이 되었다.
-중략-
遙觀玄德、孫夫人車馬僕從,都停住於山頂之上,瑜如何不氣?
요관현덕 손부인거마복종 도주어산정지상 유여하불기?
멀리 유현덕, 손부인의 수레와 말, 종들을 보니 모두 산정상 위에서 머무니 주유가 어찌 노기가 없겠는가?
箭瘡未癒,因怒氣沖激,瘡口迸裂,昏絕於地;
전창미유 인노기충격 창구병렬 혼절어지.
활살의 맞은 창이 아직 낫지 않아서 노기가 상충하고 충격받아서 창구가 솟아나 벌어지고 땅에 혼절하였다.
-중략-
瑜馬上大叫一聲,箭瘡復裂,墜於馬下。
유마상대규일성 전창부열 추어마하.
주유는 말위에서 크게 한 소리를 지르니 화살맞은 창[종기]이 다시 찢어져서 말 아래로 추락하였다.
瑜大怒,咬牙切齒:「你道我取不得西川,吾誓取之 !」
유대노 교아절치 니도아취부득서천 오서취지!
주유가 크게 분노하여 이를 갈며 말하길 “너희들이 내가 서천을 취하지 못한다고 말하 하니 내가 맹세코 그 땅을 취하겠다.”
중략
行至巴丘,人報上流有劉封、關平二人領軍截住水路。
행지파구 인보상류유유봉 관평이인령군절재수로.
행군이 파구에 이르러서 사람이 상류에서 유봉, 관평의 두 사람이 군사를 시켜 수로를 끊게 했다고 보고했다.
周瑜愈怒。
주유유노.
주유는 더욱 분노하였다.
忽又報孔明遣人送書至。
홀우보공명견인송서지.
갑자기 또 제갈공명이 사람을 보낸 편지가 이르렀다.
周瑜拆封視之。
주유척봉시지.
주유는 봉투를 찢어 편지를 봤다.
書曰:「漢軍師中郎將諸葛亮,致書於東吳大都督公瑾先生麾下:
서왈 한군사중랑장제갈량 치서어동오대도독공근선생휘하.
글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 군사 중랑장인 제갈량은 편지를 동오의 대도독인 공근[주유]선생 휘하에 올립니다.’
중략
   
周瑜覽畢,長歎一聲,喚左右取紙筆作書上吳侯。
주유람필 장탄일성 환좌우취지필작서상오후.
주유가 읽길 마치고 크게 한 소리를 탄식하며 좌우를 불러 지필묵을 취해 글을 써서 오후[손권]에 올렸다.
乃聚衆將曰:「吾非不欲盡忠報國,奈天命已絕矣。汝等善事吳侯,共成大業。」
내취중장왈 오비불욕진충보국 내천명이절의. 여등선사오후 공성대업.
주유가 여러 장수를 모아서 말하길 “나는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지 못하려 함은 아닌데 어찌 천명이 이미 끊어졌다. 너희들은 잘 오후를 섬기며 함께 대업을 이루어라.”
言訖,昏絕。
언흘 혼절.
주유는 말을 마치고 혼절하였다.
徐徐又醒,仰天長歎曰:「既生瑜,何生亮 ?」
서서우성 내앙천장탄왈 기생유 하생량?
서서히 또 깨어나서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길 “이미 주유를 낳아서 어찌 또 제갈량을 낳았습니까?”
連叫數聲而亡。
연규수성이망.
주유는 연달아 몇 소리를 지르고 죽었다.
壽三十六歲。
수삼십육세.
주유의 수명은 36세였다.

주유는 매우 단명했는데 물론 한의학과 서양의학 해부학적으로 다르지만 분노로 간을 손상하여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유는 분노와 스트레스로 폭음을 했을 수도 있고, 식도 정맥류 출혈을 겪은 듯하다. 간은 위, 소장 및 대장으로부터 모여드는 혈액을 받아 들이며, 이것을 간문맥이라고 한다. 간경변이 있어서 간이 딱딱하게 되면 간문맥의 혈류에 저항을 받아 압력이 세져 출혈이 일어난다. 식도 정맥류의 원인은 간경변증을 일으키는 원인과 같다.  내시경 검사에서 정맥류의 크기가 클수록, 간 기능이 나쁠수록(황달, 복수, 간성 혼수 등이 동반된 경우), 간 문맥압이 높을수록, 정맥류의 일부분 색깔이 빨간색으로 변했을 경우(일반적으로 푸른색) 등입니다.
정맥류 자체는 출혈이 없으면 증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일단 출혈이 생기면 토혈(피를 토하는 증상), 갑작스러운 어지러움, 흑색변(자장면 같은 검은색의 변), 혈변, 의식 소실 등의 증상이 단독 또는 동시에 나타난다.
보통 간경화나 간암등을 겪으면 이식수술이 서양의학으로는 최고의 해결책일 것이다. 하지만 간 이식수술을 받으면 공여자나 이식받은 사람 모두 배에 칼자국인 흉터가 남게 된다. 이런 수술적 흉터는 절개반흔이 매우 크기 때문에 쉽게 없어지지 않는데 이미지한의원의 수술후 흉터침인 OT침 시술을 받으면 흉터가 소멸하고 정상 피부에 가깝게 변모할 수 있다. 특히 이미지한의원에서는 목에 있는 갑상선 수술 흉터 치료에 특장점이 있다. 물론 성형수술흉터나 점뺀 흉터, 수두흉터등도 모두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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