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6일 목요일

잉카의 젖먹이기와 수유시 튼살치료

잉카의 젖먹이기와 수유시 튼살치료


젖을 먹일 때도 물론이고 그 어떤 경우에도 아기를 안는 법은 없었다. 아기를 안아 주기 시작하면 엄마의 춤만 찾으며 울 뿐 요람에는 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기 쪽으로 몸을 숙여 젖을 내밀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 먹였다. 그 외에는 아무리 울어도 젖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가는 하루 종일 젖을 빨려고 들것이고, 토한 것들로 옷이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는 식충이가 된다고 말했다. 동물의 경우도 새끼들에게 하루 종일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만 준다고 했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물론 어머니이다. 아무리 지체 높은 여자라도 보모에게 아기를 맡기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다만 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는 예외였다. 여자들은 아기에게 젖을 줄 때는 남편과 성관계를 삼갔다. 그랬다가는 모유가 나빠지고 아기가 야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야윈 아기를 아유스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요정이 남기고 간 못생긴 어린이가 맞을 것이다.
만약 아기에게 줄 젖이 충분히 나오면 어머니는 젖이 마를 때까지 절대 다른 음식을 주지 않았다. 음식이 젖을 상하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아기를 더럽고 단정치 못하게 키웠다. 아기를 요람에서 꺼낼 때가 되면, 아기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못하도록 땅바닥에 아이 가슴께까지 올라오는 구덩이를 파고 더러운 수건으로 싼 아기를 그 속에 넣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올 수 있게 몇 가지 장난감도 함께 집어넣었다. 아기는 그 안에서 뛰고 발길질도 했다. 그러나 절대 팔에 안고 옮기지는 않았다. 왕국에서 최고의 쿠라카의 아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잉카 태양신의 후예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카르망 베르낭 지음, 옮긴이 장동현, 페이지 141
 
잉카인에 관한 왕가의 회고록 저자인 가르실라소 데라 베가는 잉카 공주와 에스파냐 대장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잉카의 수유 풍습까지 적을 정도로 많은 공헌을 하였다.
현대에도 출산을 한 어머니들은 자연적인 모유 수유에 목을 맨다. 그런데 모유 수유 단점은 가슴 모양이 흐트러질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수유기에 유선이 부풀어 올라서 임신중과 수유기에 피부인 진피가 찢어져서 발생할수 있다. 문제점은 시간이 없고 심각성을 못 느끼고 튼살을 방치하는 경우인데 오래된 수유시기에 발생한 가슴 튼살도 이미지한의원의 튼살침인 ST침도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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