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잭 더 리퍼와 자상 외과 이발사 수술후 흉터치료

잭 더 리퍼와 자상 외과 이발사 수술후 흉터치료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1888년 8월 7일부터 11월 10일까지 2개월에 걸쳐 영국 런던의 이스트 런던 지역인 화이트채플에서 최소 다섯 명이 넘는 매춘부를 엽기적인 방법으로 잇따라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잭 더 리퍼에 의한 희생자들은 모두 목이 해부되고 장기가 파헤쳐지고 그 장기가 시신주위에 전시되는등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되었다. ‘잭’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이름이 없는 남성을 가리킬 때 쓰는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칼잡이 잭’, ‘면도날 잭’, ‘살인마 잭’, ‘토막 살인자 잭’ 등으로 불린다. 이 살인마가 살인을 하던 시기는 과학 수사가 매우 뒤떨어진 시대였고 지문확보 조차 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경찰에게 잭 리퍼 검거 방법을 써 보내었고, 심지어 당시 영국 여왕 빅토리아 여왕까지 검거 방법을 보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단서가 거의 없으나 그가 남긴 단서는 단 한 가지였다고 한다. 영어로 휘갈겨 쓰여져 있었는데, “유태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게 영영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하였지만 2014년 9월 10일 잭 더 리퍼를 연구해오던 아마추어 탐정인 러셀 에드워즈는 최근 발간한 책 네이밍 잭 더 리퍼에서 사건현장에서 수습한 숄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과 요도의 상피세포를 채취하여 후손을 설득하여 DNA검사를 한 결과 범인을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이발사인 아론 코스민스키를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사건이 일어난지 무려 126년만이었다.
1888년 8월 31일 금요일, 메리 앤 니컬스(Mary Ann Nichols)라는 이름의 매춘부가 목을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이때만 해도 이런 사건은 흔해빠졌기에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당시 런던 경찰의 총 책임자인 Commissioner of Police of the Metropolis를 맡고 있던 사람은 찰스 워런 경(Sir Charles Warren, GCMG, KCB,)이라는 사람이었다. 9월 8일, 애니 채프먼(Annie Chapman)이라는 매춘부가 살해되었다. 이 살인은 내장을 도려내고 얼굴을 뭉개놓았으므로 단숨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진짜로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신문사에 보낸 편지였다.
“최근 사업의 성과로 얻은 빨간 물질로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잘 써질 줄 알았는데.”
잭 더 리퍼, 즉 살인마 잭이라는 별명이 처음으로 소개된 이 편지는 런던을 벌컥 뒤집어 놓았고, 화이트채플의 살인마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게 된다. 이렇게 신문사에 범행 사실을 알려주었기에, 그의 범죄는 최초의 '극장형 범죄'로 기록된다.
9월 30일, 더블 이벤트(Double event)라고 기록되는 세기의 대범죄가 일어난다. 매춘부 앨리자베스 스트라이드(Elizabeth Stride)가 살해된 것이다. 새벽 1시에 발견된, 피바다 속에 누워 있던 시신의 목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되었으나, 그녀의 시신에는 비교적 상처가 없었다. 행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몸을 피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그 대신 그녀의 시신 근처 벽에는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비난받지 않을 것(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새벽 1시 반, 매춘부 캐서린 에도스(Catherine Eddowes)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녀의 신장은 없어졌고 하복부는 절개되었으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더욱 곤란한 것은 경찰들이 그 일대를 순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놈은 경찰들의 코앞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간 것이다. 덤으로 31일에 화이트채플 감시위원회(Whitechapel Vigilance Committee)의 위원장인 조지 러스크(George Lusk)에게 온 편지가 공포심을 더욱 키웠다. 이 편지에는 신장 반쪽이 포함되어 있었고.

신장은 반밖에 없다. 나머지 반은 내가 먹었다. 러스크 선생,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시오.

보낸 이의 주소란에는 '지옥으로부터(From Hell)'이라고 표기되어 있었고, 이후 런던은 공포에 휩싸였다. 거리에는 인적이 끊어지고, 경찰들은 여장까지 해가면서 놈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들의 지휘자는 찰스 워런 경이었고, 그는 놈이 썼을지도 모를 The Jewes are the men they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이라는 낙서를 지우라고 명령한다. 반유대주의 폭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것이지만, 필적 감정을 해도 모자랄 단서를 지운 이 만행은 수사를 더욱 어렵게 한다. 워런 경의 악행은 계속되었는데, 사례를 들자면 무턱대고 거리에 개를 풀어서 범인을 잡으라고 시킨 것이다. 물론 그 개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간신히 구조되었으며 이러한 어리석음에 질려버린 사람들은 워런을 당장 해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워런 본인은 악착같이 사퇴를 거부했다. 11월 9일, 매춘부 메리 제인 켈리(Mary Jane Kelly)가 살해되었다. 살해 현장을 최초로 발견한 소년은 곧바로 비명과 함께 도망쳤으며, 나중에 "그건 미치광이의 짓이었다"고 증언했다. 시체의 내장과 유방이 모두 꺼내져서 주변에 가지런히 놓였고 얼굴은 뭉개졌던 것이다. 그녀의 뱃속에 든 태아 역시 살아남지 못했다. 이후 모든 사람들이 분노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반드시 놈을 잡으라"고 어명까지 내렸으며 결국 찰스 워런 경은 쫓겨났다.-엔하위키 미러싸이트 발췌-

MBC ‘서프라이즈’에서 2014년 10월 19일 방송한 잭더리퍼를 다루었는데 탐정 러셀 에드워드는 1988년 런던, 총 5건의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잭 더 리퍼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4번째 희생자 캐서린의 스카프에서 발견된 잭더리퍼의 DNA. 그러나 상피조직이 너무 오래돼 DNA검출이 어려웠다.  러셀 에드워드는 포기하지 않고 미토콘드리아 유전정보를 위해서 여자 혈통의 가계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은 죄가 없다’라는 살인사건 현장의 메모를 보고 잭 더 리퍼가 유대인일 것이라고 확신했고, 후손을 찾아 DNA검사를 하면 된다고 확신해 아론 코스민스키의 조카 손녀를 찾아냈다. 사설탐정의 끈질긴 노력과 첨단 과학수사 덕분에 126년 만에 세기의 미스터리였던 잭 더 리퍼의 정체가 밝혀졌다.  러셀 에드워드가 엽기 살인마 잭더리퍼의 정체를 밝혀진 과정을 담은 책 ‘네이밍 잭더리퍼’은 전 세계 언론과 범죄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필자는 폴란드에서 이민온 코스민스키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데 그가 유태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직업이 이발사란 점에서 외과 이발사일수 있으며 또한 해부학적인 의료지식이 뛰어난 자라고 여길 수 있다.

1163년 성직자가 방혈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황의 강령에 의해 유럽에서는 이발사들이 외과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방혈을 하도록 요구받았던 수도사들은 간단한 외과수술을 함께 수행하기도 했는데, 수도사들은 1092년 이후로 수도원에서 면도를 해주던 이발사들에게 이런 임무를 양도했다. 또한 방혈이 필요한 행위이기는 하나 그들의 체면을 깎는 짓이라고 생각하던 그 시대 의사들도 이발사가 방혈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의사들은 그밖에도 종기를 째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같은 신체적 치료행위도 이발사에게 넘겼다. 외과의사의 위대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앙브루아즈 파레는 의사 직업 초창기에 생계를 위해 면도와 이발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1383년 '국왕의 수석이발사 겸 시종'을 왕국의 이발사와 외과의사들로 조직된 동업조합(1361)의 우두머리로 임명한다는 법령이 포고되었다. 런던의 이발사들은 처음에 종교조합을 조직했으나 1462년 에드워드 4세에 의해 상인조합의 인가장을 받았다. 이 동업조합은 1540년 외과의사들의 동업조합과 합병되면서 헨리 8세로부터 인가장을 받았으며 합동조합의 구성원들에게는 'Master'(거장)라고 불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Master'는 구어적으로 'Mister'가 되었고, 지금도 영국 외과의사들의 이름 앞에는 'Dr.'라는 말 대신 'Mr.'가 붙는다.
이발사 겸직 외과의사들은 '짧은 옷을 입은 의사'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대학에서 훈련받아 라틴어 실력이 우월하고, '긴 옷을 입은 의사'라고 불리는 내과·외과 의사들과 구분하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1745년 외과의사조합이 이발사조합에서 떨어져나왔으나 왕립외과대학은 1800년이 되어서야 인가장을 받았다. 이발사 직업은 이발학교가 설립된 1890년대까지는 장기간의 도제기간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물론 그 당시 이발사가 외과수술을 하지 않았겠지만 전통적으로 이발사는 외과업무에 대한 지식이 있었을수 있다.
잭 더 리퍼라는 이름 자체는 직역하면 "잭, 찢는 사람"이며 "면도날 잭" 혹은 "칼잡이 잭" 정도의 아무 의미없는 말이다. 잭(Jack)도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아무개"라는 뜻의 단어로 의역 하자면 '살인마 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칼로 찌르는 상처는 자상[刺傷]이라고 불린다. 이런 찌르거나 베이면 살아난다고 해도 나중에 흉터를 가지게 되는데 흉터는 발달한 서양의학으로 치료가 안된다. 또한 의사학적으로 이발사의 후예인 외과의사가 만들어낸 각종 수술이후에도 흉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수술후 흉터는 이미지한의원에서 흉터침과 한약 재생약침 침등으로 치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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