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효문태후 박씨는 박색이 아니다와 성형수술 점뺀 흉터치료

효문태후 박씨는 박색이 아니다와 성형수술 점뺀 흉터치료


2014년 10월 19일 오전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못생긴 황태후로 기록된 효문황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한 고조의 후궁이자 5대 효문황제의 생모 효문태후 박씨는 후궁으로 궁궐에 들어갔다. 하지만 못생긴 외모로 황제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황제는 술에 잔뜩 취해 산책중 효문태후 박씨를 목격했고, 그가 미인이다고 착각하게 됐다. 하룻밤을 보낸 후 효문태후 박씨는 건강한 아이를 생산하게 됐다. 
한고조는 얼마 가지 않아 일찍 세상을 떴고, 황태후 여씨는 황태자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던 척씨등 황제의 사랑을 받았던 후궁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씨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살려뒀고, 유배를 당했다. 이후 박씨의 아들은 효문황제로 추대됐고, 박씨는 효문태후로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박씨가 박색이란 내용은 역사는 사실과 다르다.
한문제는 전한의 제 5대 황제로 본명은 유항(劉恆)이고, 아버지가 바로 한고조 유방이다. 유방의 넷쩨 아들. 그리고 혜제의 이복동생이다. 어머니는 박희(薄姬)라는 사람. 부인이 도가의 노장사상에 감화되어 한무제와 대립을 벌인 효문황후 두태후다.
본래는 대나라의 왕노릇을 하고 있었으나 여후가 죽자 형제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가 되었다. 원래 서장손인 제왕 유양이 유력한 계승자였으나, 주발과 진평 및 종실들은 외가에 별 문제가 없고, 사람됨이 모나지 않았던 대왕을 선택하였다. 문제는 이후 제왕의 봉지를 늘려주었다.
효문태후 박씨(孝文太后 薄氏, ? ~ 기원전 155년)는 전한 고제 유방의 후궁 중 하나로 3대 황제인 전한 문제의 생모다. 박희의 어머니 위씨는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왕족으로 위나라가 멸망한 뒤 오 사람과 사통하여 박희를 낳았다. 아버지는 회계군 산음현에서 죽었다.
위나라를 재건해 왕이 된 위표의 후궁이 되었다. 당시에는 서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이 형양에서 대치하고 승패가 나지 않았는데, 관상쟁이로 유명한 허부에게서 천자를 낳을 것이란 예언을 받았다. 위표는 원래 한왕 측에 붙어서 팽성 대전에서도 종군했으나, 이 말을 듣고 기뻐해 한을 배반하고 중립에 서며 항우 쪽으로 돌아섰다. 위표가 한신 · 조참 · 관영에게 패하여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면서, 박희는 한의 직조실에 들어갔다. 한왕 4년(기원전 203년)에 위표가 죽은 후 한왕은 직조실에 들어갔다가 박희를 보고 후궁으로 들였지만, 해가 지나도록 관계를 맺지 않았다.
박희는 관부인, 조자아와 함께 “먼저 귀해지고서 서로 잊지 말자!”고 맹약했었다. 한왕 4년, 한왕이 하남의 성고대에 앉아서 이 두 후궁을 끼고 있었는데, 둘이서 박희와 함께 맹약한 것을 가지고 웃다가 그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긴 한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를 듣고 처연하다고 여긴 한왕의 부름을 받아 단 한 번 잠자리를 함께 했다. 박희는 유항(후의 문제)을 낳았고, 이후로는 거의 남편을 보지 못했다.
아들은 8세에 대왕(代王)으로 봉해졌다. 고제가 죽고 고황후가 고제의 총애를 받은 첩들에게 노해 모두 궁에 유폐하고 나오지 못하게 했으나, 박희는 고제와 거의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유폐하지 않고 대나라로 내보내 대나라의 왕태후로 삼았다. 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주발, 진평, 유장 등의 쿠데타로 몰락하고 아들이 황제로 옹립되면서 황태후가 되어 장안으로 돌아간다.
황태후가 된 이후에도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일이 없어 주위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서프라이즈란 프로그램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했는지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다.
첫째 여태후가 척씨를 죽인 것은 프로그램에서 칼로 쳐서 바로 죽이는 장면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인간돼지를 만들어서 죽였다. 고조가 죽고 혜제 유영이 즉위하면서 여치는 황태후로 후견을 맡았지만, 혜제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치는 조왕 유여의를 독살하고 유여의의 모비인 척부인의 손과 다리를 자르고 눈을 도려내었으며 약을 이용하여 귀를 멀게 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여 변소에 두어 '인간 돼지'라고 부르게 했다고 『사기史記』에 적혀 있다.
둘째 못생긴 박씨와 아들을 유배를 보낸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사실 아들[훗날 문제]는 대란 당의 대왕[代王] 으로 지위가 강등되었지만 유배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못살지는 않은 편이다.
셋째 효문황제의 어머니인 박씨가 정말 못생긴 여자라는 사실은 정사 어디에도 없다. 박씨는 위표의 후궁일 정도로 미인인것이고 또한 훗날 위표를 쳐부순 한고조가 빼앗은 여자이니 사실 못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한고조 유방에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총애를 받지 못한 내용은 있지만 못생김이 원인인지는 모른다. 필자 생각에는 유방이 정벌로 동분서주해서 바쁘고 워낙 여자가 많아서 과거 다른 사내의 여자에게까지 정을 주지 못한 것이지 얼굴때문이 아니다. 김개시를 보면 선조의 승은을 입고 광해군의 총애까지 부자간에 정도 얻었는데 외모는 불양[不揚]이라고 하여 예쁘지 않은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즉 외모가 왕후가 된 여성에게 다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효문태후가 박색이라는 역사적인 왜곡을 가져온다. 이는 외모 지상주의적인 편견이다. 여태후가 살려준 이유도 총애를 못 얻고 어짜피 황제가 되기 어렵다고 보며 척씨부인처럼 라이벌이 아니어서이지 효문태후가 못생겨서여서는 절대 아니다.
프로그램에서 중국에서 가장 못생긴 황후중 하나라는 날조가 이어졌지만 중국에서 가장 못생긴 황후는 종리춘이란 여성이다. 종리춘 [鍾離春]은 겁도 없이 제나라 선왕에게 나라의 좋지 않은 사정을 콕콕 집어 일침을 가했다. 분노에 휩싸인 제나라 선왕은 여인을 돌려 보냈지만 이후 그 여인의 말과 행동이 계속 눈과 귀에 맴돌자 결국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이 여인이 바로 종리춘이다.
제나라 선왕은 종리춘에게 무염군이라는 호칭을 내렸다. “궁의 여인들은 모두가 꽃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인데 못생긴 무염이 찾아와 감히 스스로를 뽐내며 나라가 처한 위험을 하나하나 분명히 지적하니 문무백관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네”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효문태후로 분한 여성은 못생긴 여성이 아니라 얼굴에 점이 존재했다. 즉 큰 점과 여러개 점으로 못난 얼굴로 분장한 것이다. 사실 얼굴에 점이 있으면 미관상도 좋지 않지만 관상학적으로 매우 해가 된다. 이런 점을 뺀 흉터를 제거하는 방법은 레이저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점이 표피 뿐만 아니라 진피까지 먹어들어간 경우에 진피 손상으로 흉터를 남기기 매우 쉽다. 또한 사마귀 제거나 기타 성형수술등으로 얼굴에 상처가 흉터로 고정화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파인흉터를 치료하는데 점뺀 흉터 뿐만 아니라, 대상포진 흉터, 수두 흉터등도 한약 재생약침, 침등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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